아 ~~~~.
이제는 말할 수 있습니다.
내일 모레면 우리 곁을 떠날 그 분을 위해 이제 고백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공소시효도 지나서 이 카페를 모니터하는 정보과 형사님도 어쩌지 못할 것 같으니 밝혀도 되겠죠. ㅋㅋ
때는 바야흐로 일천구백팔십칠년 12월
세상의 모든 사기꾼들이 활개 치는 정치의 장날.
그것도 5년마다 열리는 5년 장으로 대목장이라는 대선이 있었던 그 때.
룸펜으로 살던 우리3기 { 함사장(주동). 이책사. 신백수. 정선생. 그리고 나 }
이 큰 장날에 우린 뭘 팔까 고민을 하던 중.
우리의 호프 함사장이 인동초 선생님을 팔자는 기막힌 아이디어를 제출.
그리하여 우린 인동초 선생님의 엽서를 만들어 팔기로 의기투합.
첫날,
걱정 반 기대 반으로 매상을 올릴 확실한 길목
바람 찬 강남고속버스 터미널 호남선 앞에서 좌판을 깔고 큰소리로 호객행위(정치연설)를 하는데
엽서를 살 소비자(?)보다 사복짭새들이 잽싸게 빙둘러 싸더군요.
그러나 때가 때인지라 함부로 어쩌지는 못하고
서로 기싸움을 하고 있는데
호남선을 타고 남도로 가려던 어느 촌할머니가 우리 앞을 지나다 인동초 선생님의 엽서를 보더니
“ 아이고 우리 선상님”하면서 치마를 올려
꼬쟁이 속에 고이고이 넣고 있었던 비상금으로 보이는 그 할머니의 전 재산
일 만원을 모금함에 쏙 넣는 게 아닌가.
우리도 예기치 못한 순간이라 뭐라 말도 못하고 있었는데
그 할머니가 눈물을 글썽이며 우리 손을 꼭 붙들고 “ 젊은이들이 고생이 많아서 으쩔쓰가? 으쩔쓰가? ”
순간 게임 끝.
그 때부터
옆에서 짭새 때문에 눈치만 보던 호남선을 이용하려던 무수한 사람들이 너도나도 “선상님. 선상님” 함시롱 모금함에 돈을 넣는데
정신이 없더라고 ...
엽서를 챙겨드려도 많은 사람들이 자긴 필요 없씅깨 다른 사람들 나눠주라고 ...
그럼, 물건은 안 갖고 가서 그대로 인데 물건 값은 지불이라
(헉, 이건 그냥 대동강 물을 팔았다는 봉이 김선달보다 더 남는 장사)
또한,
호남선 매표창구에서 표를 팔던 그 아리따운 아가씨들이 뜨거운 커피까지 갖다 주면서 추운데 힘내시라고.
아싸. ~~~
님 도 보고 뽕도 따는 ... (일석이조)
그게 다가 아닙니다.
점심때가 되니 그 주변에 음식점을 하던 사장님들이 오셔서 서로들 저희 가계에 와서 식사를 하라고 ...
그래서 우리가 순번을 정해서 돌아가면서 장이 끝날 때까지 공짜로 먹었죠. (완전히 일타삼피)
그리고 호남선을 이용하려 그 앞을 지나가던 사람들이 음료수를 갖다 주고 가는데 (야구로 말하면 싸이클히트)
그렇게 첫째 날 장사를 마치고 아지트(?)에 모여 손익계산 확인. (말이 필요 없는 대박)
너무나 긴 장(15일)이라서 체력을 아끼려고 뒷풀이 없이 일찍 숙면.
둘째 날.
어제 보다 모금함을 더 크게 만들었죠. ㅎㅎ
그리고 각자 호객행위도 더 열심히 ...
저의 래파토리는
“ 대중은 김대중 !!!
평민은 평민당 !!!
행동하는 양심 기호 3번 !!!
이 자리를 지나가는 애국시민 여러분.~~
12월16일 우리 모두 손에 손을 잡고
투표소에서 김대중 선생님에 따뜻한 손을 잡읍시다.
여러분들이 잡아주는 손길이
우리 선생님으로 하여금 우리 광주의 아픔을 치유하게 할 것입니다.
12월 16일 그 날을 꼭 기억합시다.
행동하는 양심. 기호 3번을 꼭 기억합시다. “ ( 지금도 생생히 기억나네 ㅋㅋ)
그 5년 장에서 신백수의 호객행위가 압권 이였습니다.
당대 최고였던 김지하의 <오적>을 넘어선
부자들의 강남술집에서 향락생활을 적나라하게 까발려서 대중에게 큰 충격을 ... ( 기억나 신백수 ㅋㅋ)
둘째 날도 대박.
그리고 쭉~~ 대박.
장사가 잘 된다는 소문이 퍼져
정말 평민당 최고위원인 예춘호씨가 내사를 왔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누구입니까?
이미 연청사조직 회원증을 가라로 만들어서 갖고 있었죠.
선거자금 지원이 없어서 청년조직에서 자력갱생을 하고 있는데 내사를 하냐고
방귀 뀐 놈이 성을 낸다고
우리가 그 짝.
당에서 나온 사람들이 고생이 많다고 열심히 부탁을 한다고 ... ㅋㅋ
어느 날은
경부선에서 YS선거운동원이 떴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우리가 바로 출동해서 진압을 했죠. (우리 호객행위를 못 따라 오더군. 우린 4년 동안 그 짓만 했잖아)
다음날부터 안 나오더군.
이런 황당한 일도 있었습니다.
어떤 놈이 허름하게 모금함을 만들어서 호남선 역사를 돌아다니는 거야
그래서 내가 가서 붙잡았지
가라 연청증을 보여주면서 어디서 나왔냐고 그랬더니 그 놈이 우물쭈물하는 거야
그러더니 봐달라고 그러면서 모금함을 드린다는 거야
내가 모금함을 받고 점잖게 타일렀지 이게 다 김선생님을 욕되게 하는 거라고 ... ㅠㅠㅠ
( 더 황당한 것은 그 허름한 모금함에서도 돈이 나왔다는 거야. 그러니 얼마나 땅 집고 헤엄을 ...)
세상이 참 좁더군.
어느 날 구경꾼들 앞에서 호객행위를 열심히 하는데
그 속에 류방현(5기)이가 눈에 띄는 거라.
그 순간 머릿속이 하얘지고 눈앞이 깜깜한 거라.
뭐라 떠들었는지도 모르게 말을 마치고 방현이 앞에 섰는데
아, 이놈이 내손을 잡으면서 형님 고생이 많다고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은 심정 이였지.
선거의 마력을 전 그때 알았습니다.
처음엔 그냥 장난으로 시작을 했었는데 하루 이틀 지나니까
이게 장난이 아니더군요.
그 후 정말 다들 열심히 했던 기억이 ...
장이 후끈 달아 오르자.
함사장과 정선생이 영업을 확장하자고
함사장은 서울역으로 가서 호남열차를 타고 광주로 직행
정선생은 보라매공원에서 백만군중이 모인다고 거기서 한 판 걸자고
허나,
호남열차는 지하철과 달리 사람이 타고 내리면서 새로운 고객층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한 번 타면 그 사람이 그 사람.
보라매공원은 너무 협소해서 백만군중이 발디딜틈도 없이 꽉 차서 사람사이로 비집고 다닐 수가 없어서 기대이하의 수익. ㅠㅠㅠ
그러나 중대한 정보를 정선생이 갖고 왔었지요.
보라매공원에서 안기부 놈들이 노점상으로 위장을 해서 김선생님 테이프를 파는데
처음 5분간은 연설이 나오는데 그 다음은 쌕비디오로 변신해서 김선생님 이미지에 먹칠을 해서 표를 떨어뜨린다고 ...
그 소식을 접하고 우린 비분강개하여 지금까지 번 모든 돈을 투자하여
그 비디오를 싹 사서 우리가 먼저 보고 분석^^;해서 놈들의 저질수법을 만천하에 고하자고 ... ㅋㅋㅋ
해가 석양 노을을 멋지게 그릴 때
우린 이제 장이 끝나 감을 아쉬워했지.
함사장이 그러더군
앞으로 우리나라는 헌법을 바꿔서
일 년에 한 번씩 대선을 치르자고 그리고 꼭 김선생님은 매 번 출마해야 한다고
다들 웃었지만 속으론 씁슬들 했지.
그리고
장이 끝나기 직전
대반전이 생긴 거야.
지금까지 장사에 내실을 책임지며 안살림을 잘하던
이책사가 백기완선본에 이 돈을 기부하자는 청천벽력과 같은 제안을
허나, 백기완이 김영삼과 단일화로 우리의 고민은 자연스럽게 해결됐지.
그렇게 해서
우린 5년 장에서 주머니를 두툼히 채우고
인동초 선생님과의 인연을 마쳤지.
허지만, 개표방송으로 우린 다들 부끄럽게 생각을 했을 거야.
그래서 각목사건과 구로구청 일들이 일어난 거지.
그 일들을 잘 아는 신백수가 글을 받아서 완결했으면 ...
그리고
내가 내일모래 국회영결식장에 가서 진심으로 사죄를 해야지
몇 일전 구청에서 전화가 왔었지
구의3동 주민대표로 영결식에 참석을 할 수 있냐고
그래서 내가 꼭 간다고 했지.
이런 기억 때문에 ...
******** 뱀다리 ******
낙구는 내가 김대중 선생님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이유가
외환위기 때 건설업체의 과도한 구조조정으로 건설업으로 먹고사는 내가
많은 피해(죽다 살아났지)를 봤기 때문이라고 생각을 하지만
사실은 외환위기 당시 국가를 경영하는 책임자로써 IMF의 처방을
무조건적으로 순응한 결과 신자유주의 경제질서에 대문을 열어준 꼴로
지금의 경제적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단초를 제공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기 때문이지.
몇 년 전 삼성경제연구소 토론회참관기에서 적었듯이 당시 우린 우릴 너무 몰랐다는 거야.
그래서 IMF의 과도한 처방으로 성장동력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았다고
대기업연구소에서도 거론할 정도면 우리가 말레시아(조건부 모라토리엄 선언)와 같은 길을 걸었다면
지금쯤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이 들어 ...
첫댓글 有口無言 泣謝罪
상업으로 일치단결! 함선배 그 당시 구호였었죠! 국가가 안물어주고 배째라 식으로 차기대권후보자들(회충이 인제 등등과 김선생)이 했슴 깡드쉬가 아웃선언해버리면 ~~~지나간 이야기고 한국경제의 과도한 수출의존도70프로는 지나치게 오바한 거죠. 땡박 형님이 정신차려 남북경제소통해서 내수시장 1억인구만들어 일본처럼 도약해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