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은 산악인 신체 일부와도 같이 중요하다
구입부터 짐꾸리기와 메기의 숨은 비밀을 알아야 한다
산행준비 시 맨 처음 꺼내는 것이 배낭이다. 필요한 짐을 넣어 자신의 힘으로 메고 산으로 들어간다. 땀내음 밴 배낭은 다른 사람에겐 눈살이 찌푸려질지 몰라도 산악인에겐 소중한 보따리다. 다 낡아 해진 배낭도 차마 버리질 못하고 이삿짐 목록 제1순위에 넣는다.
배낭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가를 보면 그 사람의 산행 목적과 스타일은 물론 어느 정도의 경력이 있는지 알 수 있다. 아무리 힘들어도 웬만하면 내 배낭을 타인에게 맡기지 않는다. 산악인의 배낭 안에는 그 사람의 산행 방식이 들어있다. 산악인의 신체 일부와도 같은 배낭은 구입부터 짐꾸리기, 메기에 관한 배낭의 숨은 비밀을 알아야 한다 .
1. 배낭의 가슴벨트
등산은 장시간 하는 운동이다. 배낭의 잘못된 무게중심은 하루 종일 우리 신체에 작용한다. 히말라야 아일랜드피크(6189m)를 등반했을 때의 일이다. 전진캠프에서 정상으로 향하는 날. 고산증에 시달리며 각자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고 있을 때, 우리 팀 셀파가 대원 배낭의 가슴벨트를 채워주는 것을 보았다. 모두 경험 많은 산악인이었기에 나 역시 가슴벨트 채우는 것 정도는 대원 각자에게 맡겼던 것인데, 셀파는 그것을 놓치지 않고 체크했던 것이다. 극한 상황의 체력관리는 작은 것도 중요하다는 셀파의 경험에서 우러난 조치였다.
2. 배낭 구입 시 이것을 체크하라
1) 브랜드보다 몸에 맞는 배낭을
얼마 전 전문산악인 후배가 “수입 브랜드 비싼 배낭을 샀는데 어깨가 조이며 불편하다.”고 해서 나도 메 보니, 정말 양 어깨가 뒤로 젖혀지면서 너무 조여 왔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브랜드가 배낭을 왜 이렇게 만들었을까?”하고 묻자, “옷을 잘 만드는 회사라고 배낭도 잘 만드는 것은 아닌가 봐요.”라 한다. 맞는 말이다. 어깨 좁은 여성의 체형에 맞는 배낭이 건장한 남성에게 편할 리 없다.
배낭의 하중은 어깨와 척추상단을 중심으로 신체에 골고루 분산될수록 좋다. 배낭의 각 조임벨트는 하중을 골고루 분산시키고 배낭을 몸에 밀착시키는 역할을 한다. 어깨에 걸리는 멜빵 부분은 쿠션이나 두께도 적당해야 하며, 멜빵상단의 좌우 간격과 부착 각도가 자기 가슴둘레에 맞아야 하고, 멜빵높이는 자신의 척추 길이와 같게 조절 가능해야 한다.
2) 당일용과 캠핑용을 따로 준비한다.
산악인들 중에는 봄, 여름, 가을 3계절용으로 15-25L 배낭이면 충분하다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초봄이나 늦가을에는 배낭이 작아 불편함을 느낄 것이다. 그런 소형 배낭은 여기에서 설명하고자 하는 분야가 아니다. 25L 이하로 만족하는 산악인에게는 배낭의 중요성을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다고 본다.
당일 산행용은 30-40L가 적당하며 9-15kg을 운반할 수 있다. 캠핑용은 60-80L 정도가 적당하며 15-27kg을 운반할 수 있다. 85-110L도 있지만 이는 전문 훈련용으로 사용된다.
3) 배낭의 크기는 표시된 것과 다를 수 있다.
수납공간의 크기는 리터(L)를 사용한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제조 회사별로 배낭의 용량표시 기준이 다르다는 것이다. 어떤 회사는 보조수납공간(배낭의 헤드포켓이나 사이드포켓)을 배낭 전체 용량에 포함하여 표시하는가하면 어떤 회사는 주 수납공간만을 표시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40L 이하의 소형 배낭을 구입할 때는 표시된 용량을 참고하여 주 수납공간의 크기를 직접 눈으로 확인해야 한다. 35-40L 배낭이란 우모복과 윈드재킷, 보온 티셔츠를 함께 넣고 적당히 눌렀을 때 배낭 내부의 절반 이하로 압축되는 정도의 크기다.
4) 필요한 조임벨트는 반드시 있어야
배낭은 일단, 외관상 디자인이 심플하면서 각 조임벨트가 ‘정확한 위치’에 ‘적당한 길이’로 붙어 있어야 한다. 사이드벨트는 매트리스, 윈드재킷, 로프 등 물건을 부착할 때 불편함이 없어야하고 보조 장식인 스틱고리, 피켈고리, 배낭고리가 있어야 편리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각 벨트의 조임장치(플라스틱 버클)는 배낭을 멘 상태에서도 부드럽게 유통되면서 바짝 조였을 때 밀리거나 풀리지 않아야 한다.
예를 들어, 가슴벨트는 멜빵 양쪽을 연결시킴으로써 하중의 분산에 기여할 뿐 아니라, 상체가 균형을 잃었을 때 한쪽 어깨로 하중이 쏠리는 것을 방지하고, 추락 시 배낭이 벗겨지는 것도 예방한다. 가슴벨트는 상하로 위치를 조절하는 기능이 반드시 있어야 하고 맨 아래에서 세팅할 때도 너무 꽉 조여 호흡이 답답하지 않게 여유가 있어야 한다.
5) 대형 배낭일수록 ‘등판높이’와 '멜빵높이를 조절하는 기능이 있어야 한다.
‘등판높이’란 배낭의 등판 전체의 높이를 의미하고, ‘멜빵높이’란 배낭의 등판에 붙은 멜빵의 수직높이를 말한다. 멜빵높이란 멜빵의 전체 길이가 아닌, 배낭의 하중이 몸에 붙는 높이다.
대형 배낭은 등판높이 자체를 조절하는 기능과 멜빵높이를 조절하는 기능이 각각 있는 반면, 소형 배낭은 어깨벨트에 의한 멜빵높이를 조절 기능 하나만 있다. 옛날 배낭에는 이 두 기능이 모두 없었지만 지금의 배낭에는 있다. 말하자면 배낭의 혁명이라 할 정도로 인체공학적 제조 기술이 발달했다.
배낭의 가장 무거운 부분(배낭 속 하중이 집중된 곳)이 자신의 척추 어느 위치에 붙는가를 고려해서 등판높이와 멜빵높이를 자신의 체형에 맞게 세팅해야 한다. 대형 배낭일수록 ‘등판높이’와 ‘멜빵높이’를 세팅하는 기술이 체감하중을 가볍게 하여 신체피로를 줄이는 중요한 포인트다.
소형 배낭도 어깨벨트로 멜빵높이를 잘 세팅하는 데 따라 체감하중이 확연히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 산악인들은 이 사실을 간과하여 불필요한 체력소모를 한다든지, 배낭의 하중에 시달린다.
6) ‘멜빵높이’와 ‘허리벨트’의 역학관계
과거의 배낭은 허리벨트(힙벨트)라는 것 자체가 없었다. 무거운 배낭이 좌우로 출렁거려 멜빵끈이 끊어지거나 재봉선이 뜯어졌다. 장기등반 시 이를 수선하기 위한 철사와 펜치는 필수 수선장비였다.
대형 배낭일수록 허리벨트의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허리벨트는 배낭의 요동을 막고 하중을 골반 뼈에 밀착시켜준다. 따라서 대형 배낭은 허리벨트의 골반 접촉부분은, 어느 정도의 쿠션과 두께가 있어야 한다.
‘멜빵높이’를 조절할 때는 먼저, 허리벨트를 골반 접촉부분에 잘 맞추어 본 후 등판높이를 먼저 조절한 다음에 멜빵높이를 조절하는 것이 요령이다. 요즘 판매되는 배낭은 여성용, 남성용으로 구분되어 있는 제품도 있으므로 구입 시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7) 후드 있는 배낭과 없는 배낭의 차이
당일용 배낭은 후드(헤드 또는 뚜껑)가 없어도 좋지만 캠핑용은 후드가 있어야 편리하다. 후드가 있는 배낭은 수납구가 주머니식이고 후드가 없는 배낭은 지퍼식이다.
후드가 있는 배낭 즉, 주머니식은 일단 짐을 꾸리면 아래에 넣은 짐을 꺼내기가 불편하다. 그래서 물, 간식, 구급약품, 카메라, 휴대폰 등 사용이 빈번한 것은 후드에 달린 포켓에 넣는다.
대형 배낭의 경우, 수납공간이 깊기 때문에 맨 아래에 침낭을 넣는 공간은 내부 조임줄로 공간을 구분하게 되어있다. 그래야 침낭을 꺼내더라도 배낭 중간의 물건이 아래로 흘러내리지 않는다. 이런 배낭은 대부분 중간에 외부 지퍼가 있어서 후드를 열지 않고도 짐을 꺼낼 수 있게 만든다.
8) 동계 캠핑용은 70L 이상
캠핑용 배낭을 처음 마련하는 사람은 우선 배낭의 크기에 질려버린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작은 배낭에 미련을 갖는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점은 45-55L의 어중간한 크기의 배낭에는 동계용 침낭이 맨 아래 수납공간에 들어가지 않을 수도 있다. 나 역시 그런 시행착오를 겪었다.
그러므로 동계 캠핑을 계획한 사람은 배낭을 구입할 때 반드시 70L 이상으로 마련하는 것이 좋다. 어중간한 크기의 배낭에 침낭을 매달거나 손에 들고 가는 것 보다 조금 큰 배낭에 넣어가는 것이 체력손실을 막아준다. 구입 당시에는 다소 부담스럽더라도 그것은 단 한 번의 캠핑으로 모두 해소됨을 조언한다.
초보자들은 대형 배낭이 머리 위로 한 자나 올라간 것을 보기만 해도 눈이 휘둥글해진다. 그러나 배낭이 아무리 높다 해도 배낭의 하중을 척추 상단에 걸리게 짐을 잘 꾸리고, 멜빵높이를 잘 조절하면 “어! 생각보다 안 무겁군!”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그래서 가능하면 큰 배낭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배낭이 크다고 해서 지레 겁먹을 필요는 전혀 없다.
9) 후레임이 있는 배낭과 없는 배낭
후레임이란 배낭의 등판 모양을 일정하게 유지시키는 지지대로써 대개 보이지 않게 감추어져 있다. 당일 배낭에 후레임이 있는 것이 있으나, 나의 경험으론 불편하여 결국 프레임을 빼버리고 사용했다. 캠핑용 배낭에는 후레임이 있는 것도 있고 없는 것도 있다.
짐꾸리기를 잘하는 사람은 후레임이 없어도 문제될 것이 없다. 오히려 텐트 안에서 배낭을 접어서 다른 용도(베개 등)로 사용할 수도 있다. 한편 후레임이 있으면 짐꾸리기가 어설퍼도 배낭 모양이 유지된다. 후레임은 선택사양 이라기보다는 메이커의 사양에 따르는 수밖에 없다.
10) 가볍고 질기면서 방수가 되어야
당연한 말처럼 들리겠지만 배낭 원단은 가볍고 질기고 방수가 되어야 한다. 원단의 견고성은 여러 배낭을 서로 비교해보면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방수가 안 되면 비 오는 날 내부의 의류나 식품이 젖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젖은 만큼 배낭도 무거워진다.
방수처리가 된 원단도 지퍼부분은 방수에 취약하다. 그래서 대개 보완날개로 지퍼를 덮는데, 형식적으로 시늉만 낸 것도 있으므로 한 번쯤 체크해봐야 한다.
11) 배낭 커버
배낭이 젖으면 무거워지고 방수가 되는 배낭이라도 지퍼나 재봉선을 통해 물이 스며든다. 또 세탁을 자주하게 되면 방수 기능이 저하된다. 따라서 우중산행을 할 때는 배낭커버를 씌우는데 강한 바람에도 벗겨지지 않아야 한다. 바람에 날려가지 않게 조임줄을 확실하게 하거나 배낭에 부착시키는 조치가 필요하다. 우비와 배낭커버 일체형도 있다.
12) 사이드포켓에 관하여
소형 배낭일수록 사이드포켓이 있는 모델이 많다. 이곳에 물통이나 수건, 간식을 넣어 가면 편리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대부분의 산 쓰레기는 이 사이드포켓에서 흘러나온 물통, 수건, 사탕봉지, 비닐주머니 등이다. 특히 물통은 물이 들어 있을 때는 자체 무게로 잘 빠지지 않지만, 물을 다 마시고 나면 가벼워져서 작은 충격에도 튀어나온다.
또, 사이드포켓에 물건을 넣으면, 바위나 잡목이 많은 우리나라 등산로 특성상 그물망에 구멍이 생기기도 한다. 등산 쓰레기는 고의적으로 버렸다기보다는 대부분 실수에 의한 것이다.
실전등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