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
맹문재
나는 완전에 가까운 그의 결단을
지천명처럼 믿네
그에게는 하루 14시간의 작업이나
단수(斷水) 같은 월급이
문제가 아니었네
위장병이나
화장실조차 막는 금지도
문제가 아니었네
바늘로 졸음을 찌르며
배고파하는 어린 여공들에게
풀빵을 사준 일이
문제였네
내게 배수진을 쳐야 할 이유를
처음으로 알려준 사람
마지막까지 알려줄 것이네
2015년 6월 5~6일 전태일 열사의 생가와 그가 배움을 갈망했던 청옥고등공민학교 등을 둘러보았다. 그의 동생인 전태삼과 함께했는데, 지역 문학회에서 마련한 자리에도 참석했다. 11월 12~21일에는 전태일 열사 45주기를 맞이해서 대구시민문화제가 열렸는데, 마지막 날에 또한 전태삼과 함께 참석했다.
전태일 열사는 1948년 8월 24일 대구에서 전상수 아버지와 이소선 어머니 사이에서 맏아들로 태어났다. ‘전태일대구시민문화제’는 시민들이 이 사실을 새롭게 인식하고 열사의 삶과 정신을 계승하려는 것이었다. 시민 단체와 300여 명의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토론회를 비롯해 전태일의 생가와 학교 방문, 시화전 및 시낭송, 전태일공원 선포식 등 다양한 행사가 열렸다. 해고된 아사히글라스 하청노조 노동자들도 참석해 투쟁의 필요성을 알렸다. 이처럼 전태일대구시민문화제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비정규직이 늘어나고 고용이 불안한 상황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가를 함께 모색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일제 강점기와 해방기까지 대구는 진보의 도시였는데 어느덧 보수와 수구의 상징이 되었다. 따라서 전태일대구시민문화제는 대구를 새롭게 살리는 데 선구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올해에도 이 시민문화제가 열려 더욱 노동자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며 1970년 11월 13일 자신의 몸을 불살랐던 전태일의 열사의 목소리가 널리 퍼져나가길 응원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