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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청 중 넷만 모였다. 성식이와 충현이가 못왔다. 보고 싶었는데. 옥룡 바위산장은 태풍 우쿵이 온다는 소식 때문인지 사람이 별로 없고, 9시가 넘자 술 마시는 이는 우리 뿐이다. 한차례 바람이 불더니 깻잎을 날려 버리고는 또 조용해진다. 고흥의 교원들 이야기를 한다. 후배들을 더 포함시켜 육청의 이름을 버리는 것도 생각해보자 한다. 그러고 보니 참 욕심이 많다. 줄지어 서 있는 둥근 황토방은 시원하다. 7만원 주었댄다.
아침 9시 무렵 닭국에 밥을 먹는데 빗방울이 떨어진다. 빗속에 산에 간다하니 정헌이와 웅규가 걱정한다. 85년엔가 송창욱, 조구호랑 백운산을 오를 때와는 많이 달라졌다. 그간 몇 번 왔지만 길가에 차를 주차할 수있는 공간이 넓어졌고, 민박집이 많다. 흑염소에 배구장 족구장을 갖추었다고 간판이 줄을 잇는다. 동동지나 답곡마을 앞에서 차를 내려 올랐던 옛생각이 난다. 진틀마을은 얼른 찾기 어렵다. 한참을 올랐다가 다시 내려와 병암민박이라고 씐 곳을 따라 운전한다. 예전 다랑치 논이 돌 사이에 있었고 그 사이로 올랐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창욱이가 가르쳐 주었던 고욤나무도 안 보인다. 민박집은 ㄱ자 모양으로 방을 여러 개 두고 주차장도 넓다. 등산로라고 안내된 곳을 따라 오른다. 10시 20분 비는 계속 내린다. 모자를 가린 얼굴은 젖지 않으나 옷은 금방 젖는다.
20여분 오르자, 빗물인지 땀인지 분간이 안된다. 삼거리에서 신선대 방향은 처다보기만 하고 오른편 정상쪽으로 개울에서 물을 채운다. 능선을 올라가자 두꺼비가 기다리고 있다. 사진을 찍느라 가뿐 숨을 고른다. 꽃을 찍어보려고 멈추는데 빗방울이 들어와 렌즈가 흐려진다. 빗방울에 바람에 흔들리는 꽃을 찍으며 천천히 오른다. 정상을 700m정도 남기고는 계단이다. 이삼백미터쯤의 계단을 지나 삼거리지나 정상은 금방이다. 비는 어느새 그쳤다. 11시 50분을 지나고 있다.
일단의 산악회 팀들이 정상을 차지한다. 산남쪽은 온통 안개구름이 가득하여 하늘과 땅 분간이 어려운데 북쪽은 바람탓인지 구름이 움직이며 섬진강 너머 지리산을 보여주곤 한다. 오른쪽으로 악양벌판이 보인다. 손으로 렌즈를 보호하며 사진을 찍는다. 등산객 단체사진을 찍어주고 나도 한장 부탁한다. 차가움을 느끼며 건너 신선대 쪽으로 내려간다. 몇 번 멈추며 지리산쪽을 본다. 현석이는 지리산 종주를 했을까? 신선대는 오르기 편하게 해 두었다. 처음 창욱이랑 이 곳을 올랐을 때 그는 암벽을 탔다. 그를 따라 오른 나는 많이 무서웠던 기억이 난다. 올랐던 쪽을 내려다보니 아찔하다. 20년 전이었으니 그땐 겁이 없었을까, 몸이 가벼웠을까? 그 동안 나는 어떻게 변했을까? 다시 건너다 보아도 좋다. 세수한 것처럼 맑고 곱다. 한참을 서 있다가 내려온다. 한참을 가다가 왼쪽으로 길을 잡았는데 한참을 내려가도 삼거리가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오른쪽으로 굽어지며 골짜기로 내려간다. 어딘들 무슨 상관이랴. 독일가문비인지 전나무인지 키가 늘씬한 나무 숲을 지난다. 내려오니 차가 다닐만한 길인데 처음 보는 길이다. 한재 아래쯤인가 보다.
다시 시작되는 비를 맞으며 내려오니, 서울대 남부연습림이라고 들어가지 말라는 표시가 있다. 그 아래 공사 흔적이 있고 백운산희생정령탑이 세운 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정당의 조화가 빗속에 비스듬히 기울었다. 거기서 들어선 길이 또 공사중이고 어느 사이 사라져 버렸다. 이끼 낀 바위와 덩굴을 헤지고 계곡으로 들어서 맑은 물속을 걷는다. 시원하다. 허벅지까지 물이 차 옷을 버려도 마냥 기분이 좋다.
너른 물을 만난 곳에서 사람길을 찾아 들어선다. 한참을 빗물이 흐르는 아스팔트를 따라 내려온다. 운전기사와 손님 한 사람이 탄 광양시내버스가 지나간다. 몇 대의 승용차들이 오르내린다. 민박집에나 식당에나 사람들이 많다.
어젯밤 우리도 저런 모습이었을거다. 우리 무엇을 하였는지 서로 모른다. 병암민박까지 다시 올라가 시계를 보니 2시다. 웃옷만 갈아입고 운전하고 내려오는데 배가 고프다. 가게에 가서 컵라면이나 먹을까 하다가 그냥 내려온다. 옥룡사지 가는 삼거리 다리 위에 핫도그 붕어빵을 파는 트럭에서 핫바와 붕어빵을 2,000원 주고 산다. 차로 돌아와 허겁지겁 먹는데 붕어빵 앙꼬가 옷에 흐른다. 과속하며 오다가 곡성휴게소에서 콩나물국밥을 한 그릇을 국물한방울 남기지 않고 다 먹으니 속이 든든하다. 오른쪽 발목이 아파 절둑거리며 휴게소를 걷는데다 헝크러진 머리에 와이셔츠를 입고 등산샌달에 등산바지를 입은 내 모양을 사람들이 이상하다는 듯 처다보곤 한다. |
첫댓글 홈에있는 사진만 보고 백두산 인줄 알았어요.- 구름 아래 천지의 모습인 것 같아요 백운산에 가보기는 했어요 정상까지는 가지 못했는데 한 번 가보고 싶어요 아름다운 꽃들의 모습에 작은 미소가 피어오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