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꽁트> 여름에 양말 신고 자는 남자

[이레나]

여름에 양말 신고 자는 남자                                                                     한상림 서른 아홉 나이에 초등학생 6학년짜리 아들과 4학년짜리 딸을 둔 한의사 석이, 남들처럼 그저 평범한 나이게 결혼을 하여 가정생활을 행복하게 꾸려 나가면서 살아가는게 꿈이었건만, 악처인지 악연인지 모르는 아내와의 결혼생활이 평탄치 못하여 결혼생활 7년만에 파경에 이르고, 결국은 이혼남이란 타이틀로 살아간지 5년째다. 이혼과 동시에 위자료로 함께 살던 아파트까지 내 주고 나니 빈털털이가 되어, 재기를 위해 꼬박꼬박 돈을  모아서 작은 사업에 투자하였건만 경험부족으로 인하여 다 날려버리고 이제는 재혼을 하려해도 적금이라도 타야만 새로 출발할 수 있는 형편였다. 그러나 언제까지 나 홀로 살아갈 수만은 없지 않은가? 여자라면 진저리가 치도록 힘든 이혼과정을 겪고보니 계속 혼자 살고도 싶었지만, 아이들에게 엄마의 자리가 중요한 자리인만큼 어쩔수 없이 재혼을 하려고 몇 번 시도했다가 실패하여 포기상태로 있었다. 어느 땐 결혼 날짜까지 잡아놓고도 약혼녀에게서 배신까지 당한적도 있던 그는  선뜻 선을 본다든가 누구를 소개 받는다는게 두렵고 내키지 않았지만 외로움은 그지없이 밀려왔다. 그러던 차, 몇 번이나 친구녀석이 자기 여동생 지현이를 소개하고 싶어했지만 막상 친한 친구와의 우정에 금이 갈까봐 미적거리며 뜸을 들이고 있을때였다. "여보세요?..저  지만이 오빠 동생 지현인데요, 오늘 시간 내실 수 있어요?" 전화기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마치 소녀처럼 가냘퍼 혹시 어린아이가 장난치는건 아닌가 싶어 갸우뚱 머리를 흔들며 선뜻 대답을 못한채 우물거리고 있었다. 지현이 역시 대학시절에 멋모르고 연애를 하여 그토록 친정엄마가 말리고 반대한 결혼을 고집 피워 한 끝 후에, 겨우 결혼생활 1년도 채 못하고 바람둥이 남편과 이혼을 한 후,   혼자서 아들 하나를 10 년간 키우다가 1년전에  전남편에게 아이를 보내고 대학원 공부를 하면서 살아가는 착하고 마음 여린 여자다. 그녀 역시 남자라면 진저리 치도록 전남편에 대한 배신감으로 깊은 상처를 갖고 혼자서 살아왔지만, 아이를  막상 보내놓고 나니 외로움과 허전함을 견딜수 없이 힘들어하며, 세월이 약이라는 듯 상처가 조금씩 아물 즈음 친정엄마와 주위 사람들의 권유로 이제는 홀로서기보다는 누군가를 다시 만나서 의지하며 새로운 삶을 꿈 꾸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 한의대 동기생인 친오빠인 지만이 오빠가 대학동기면서 가까이 지내던 친구를 소개해 준다는 말에 선뜻 내키지는 않았지만, 더 이상 고집을 피울 형편도 아니었다.  " 아, 그런데요, 지금은 근무시간이라 나갈 수가 없고요. 저녁때나 시간이 가능할거 같아요.." 전화기에서 들려오는 굵직한 목소리에 한번도 만나본적은  없었지만, 좋은 예감이 탁 스치면서 지현의 마음은 조급해지기 시작하였다. 이 순간을 놓치면 다시 영원히 못 잡을 거 같아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 석이오빠, 나 저녁에는 시간이 없어요. 그냥 오늘 점심시간에 만나요.  잠시 차 한잔만 해도 괜찮아요." 지만오빠를 통하여 석이에 대한 많은 이야기는 들었지만 한번도 본 적없는 석이를 마치 오래전부터 "오빠, 오빠" 하며 불러왔던 것처럼 지현은 하나도 어색하지가  않았다. "그럼 점심식사도 못하게 될텐데..어쩌지?" "점심식사는 안 할거예요. 첫 선 보는날 식사를 하면 깨진다는 말도 있던데요. 그냥 잠시 뵙고  차 한잔 하고 싶어요..." "그럴까?, 그럼 어디서 만날까?" " 석이오빠, 내가 오빠 한의원 근방으로 갈게요. 그럼 되죠?" 석이와 지현의 첫 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지현을 처음 본 순간 석이는 자기의 눈을 의심하였다. 서른 일곱살이라면 분명히 펑퍼짐한 아지매라고만 연상하였는데, 167센티미터의 날씬한 키에 잡티없이 뽀얀 얼굴은 화장기 하나 없는 깨끗한 이미지로 아직 이십대 중반정도의 앳된 모습으로 보여서 행여 올드미스가 아닌가 할 정도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한편 182 센티미터의 건장한 석이는 혼자서 외로움을 풀기위하여 매일 퇴근 후에 헬스클럽에 가서 다져진 근육질 멋진 몸매를 가진 작고도 예리한 눈매를 가진 남성미가 넘치는 남자였다. 지현 역시 석이를 처음 본 순간 거부감없이  콩당거리는 설레임을 얼굴에서 감추지 못하여 빨개지기 시작하였다. " 나 그 동안 발이 너무 시리어서 여름에도 꼭 양말을 신어야만 잠을 잤단다. 내 곁에 이렇게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지현이가 오리라곤 꿈도 못 꾸었어. 이제는 양말을 벗고 편히 잘 수가 있었음 좋겠어." 석이는  지현을 처음 보자마자 지만에게서 들어왔던 지현이가 이미 오래전 부터 만나온 사람처럼 느껴져, 아무  망설임 없이 자기도 모르게 청혼하는 말이 툭 튀어나왔다. 외로움은 외로움을 맛 본 사람만이 그 깊이를 교감할 수 있는게 아니었을까? '오빠, 지금 나는 출렁이는 파도의 춤사위까지 다 안아줄 수 있는 오빠만을 사랑하는 무인도이고 싶어. 오빠가 출렁이는 파도라면 매일매일 밀려왔다 밀려가는 오빠의 고독까지도 다 사랑할 수 있는 섬으로 살아가고 싶어.'..... 석이를 처음 본 지현의 가슴에서도 독백이 흘러나왔다. 두 사람 사이로 흐르는 긴 침묵~ 말 없이 내미는 석이의  손에서 전해오는 따스한 체온에 진공 청소기처럼 빨려 들어가는 지현의 동맥혈관으로 짜릿한 전율이 느껴왔다. 홀아비로 살아온 지 5년.....맞선, 소개팅,,,잠시잠시 스쳐간 짧은 여인들과 흔적들을 씻어내듯, 두 연인을 축복하는 소나기가 쫙쫙 쏟아졌다.   "지현아, 이제 이 낡은 구두까지 다 벗어 버리고싶다. 내일 아침부터 당장 새 양말을 신고    새 구두를 신고 싶다. 그럴 수 있을까?" 석이는 지현을 놓치고 싶지 않아 진지한 마음으로 고백을 하고 있었다. 수줍은 듯, 그러나 속으로는 펄쩍 뛸 듯 기쁜 지현의 가슴에서도 무어라고 대답을 하고 싶은데 빨개진 얼굴에서 하얀 웃음만 퍼져가면서 잠시 짧은 침묵이 길게 흘러갔다.  "날 찾아 오신 내님, 어서오세요. 당신을 기다렸어요. 니 라이라이라이야,   어디서 무얼하다 이제 왔나요, 당신을 기다렸어요,  니 라이라이라이야,   당신은 나의 나무가 되고, 나는 당신의 꽃이 될래요." 석이의 핸드폰에서 갑자기 장윤정의 트롯트 컬러링이  흘러나왔다. 발신자 표시 없음을 본 순간 석이의 당황스런 얼굴빛이 스쳤다. 지현 역시 빨개진 석이의 얼굴표정들 하나까지도 놓치지 않으며 바싹 긴장이 닳아 올랐다.  '혹시 지난번에 파혼한 이후 줄곧 다시 재결합하자며 요즘 들어서 부쩍 매달리고 있던 민정이   전화가 아닐까?'   석이는 한참을 망설이다 할 수 없이 핸드폰 뚜껑을 열었다.     "여보세요, 석이오빠..이제는 제가  밤마다 오빠의  양말을 벗겨 드릴게요.     그리고 아침마다 새로운 양말도 제가 신겨 드릴게요.      이제부터는 여름에도 발이 시리지 않도록 곁에 있어 주고 싶어요." 피식,...장난끼 어린 눈으로 마주 보며 석이 바로 옆에서 전화기를 들고 웃는 지현의 목소리에 석이의 얼굴은 뱅그르르  밝은 미소가 햇살처럼 퍼져나갔다. 06.6월 시와 글사랑 문학 꽁트 원고

[송포]

이레나님, 반가워요. 제목이 아주 재미있어요. 글도 쑥쑥 읽히구요~~양말을 신겨 줄 수 있는 사랑이 오래가기를...

[박명춘]

"날 찾아 오신 내님, 어서오세요. 당신을 기다렸어요. 니 라이라이라이야, 어디서 무얼하다 이제 왔나요, 당신을 기다렸어요, 니 라이라이라이야, 당신은 나의 나무가 되고, 나는 당신의 꽃이 될래요." ~~아름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