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명성황후 죽음에 대한 용어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있어 눈길을 끈다. 우리는 명성황후가 시해당한 사건을 을미사변(을미사변)이라는 역사용어로 쓰고 있는데, 이는 매우 부적절한 용어이다. 또한 항간에는 명성황후의 죽음에 대하여 시해라는 용어가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먼저 아래 신문기사를 보기로 한다.
(신문기사 인용) 명성황후 암살 사건을 우리는 왜 시해(弑害)라고 부르게 되었는가? 시해란 단어의 사전적 정의는 ‘신하가 임금을 죽이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 사건은 일본인에 의해 조선의 국모가 살해된 사건이므로 시해라고 정의할 수는 없고, 살해 혹은 암살이라고 명명하는 것이 정확한 일일 것이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우리의 머릿속에 ‘시해사건’이란 단어가 널리 유통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시해’라고 부르는 사건명에는 암암리에 ‘조선 사람이 조선의 왕비를 살해한 것'이란 저의가 깔려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현재 우리에게 익숙한 ‘시해’라는 용어는 ‘조선사람 이주회’가 사건의 진범이라는 고바야카와의 주장을 생각나게 한다. 일본인들이 의도적으로 시해사건이란 말을 유포시켰을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다면,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명성황후 시해’란 용어는 분명히 재고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낭인배들에 의해 명성황후가 ‘시해弑害’되었다”는 통념은 “일본의 계획에 의해 일본인이 명성황후를 ‘살해’했다”로 수정해야 한다. (인용 끝)
위 지적은 상당히 일리 있는 이론으로 들리지 모르겠으나, ‘시해’라는 용어가 그런 문제점이 있다고 ‘살해’로 써야 한다는 것은 대단히 잘못된 의견으로 보인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살해라는 용어를 쓰면 범죄자 일본의 시각으로 명성황후의 죽음을 해석하는 것이기 때문에 더 큰 잘못이라 하겠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천황'이라는 용어를 썼다고 네티즌들은 아고라에서 엄청난 항의성 댓글을 달고 있다. 왜 그럴까? 이유는 간단하다. 아직도 자신들의 과거사에 대해 아무런 반성 없는 일본이 쓰는 자체용어인 ‘천황’을 그대로 한국에서 부르겠다해서이다. 그것과 같은 이치로 ‘명성황후’를 죽임을 살해(殺害)했다는 것은 일본의 입장에서 사건을 본 것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1909년 당시 일본 신문들은 총리 이토오 히로부미가 안중근 장군에서 사살 당하자 "이토오 공이 조선 청년에게 시해당했다"라고 썼다.
위 신문기사에는 ‘시해’란 단어의 사전적 정의는 ‘신하가 임금을 죽이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그런데 사전마다 해설이 약간 다르게 되어 있다. 두 글자 다 뜻은 다 죽일 시(弑) 죽일 살(殺)로 같다. 그런데 죽인다는 글자가 왜 둘이겠는가? 2,500 페이지짜리 옥편에서 찾아보기로 한다.
弑 : 죽일 시,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죽임. 시살(弑殺)=시해(弑害) 부모나 임금을 죽임 시역(弑逆)=시장(弑戕)=시학(弑虐) 부모나 임금을 죽이는 대역행위
殺 : 죽일 살, 죽을 살, (풀을) 벨 살, 지울 살, 멸할 살, 깰 살, 마를 살, 다스릴 살, 어조사 살 (쇄라고도 읽는다. 덜 쇄, 빠를 쇄, 매우 쇄) 살육(殺戮) 사람을 무찔러 죽임, 살인(殺人) 사람을 죽임, 살충(殺蟲) 벌레를 죽임 살해(殺害) 사람을 죽임, 도살(屠殺) 짐승을 죽임
즉 살(殺)은 동물을 죽이는 것에 전체적으로 쓰는 용어이고, 시(弑)는 부모나 임금을 죽이는 경우에 한해서 쓰는 용어이다. 인륜상 있어서는 안되는 죽임 즉 패륜이나 역모로 윗사람을 죽일 경우에는 시(弑)를 쓴다. 그 이유는 시(弑)를 쓰는 죽임은 어떠한 경우에도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기 때문에 교훈적 의미에서 살(殺)과 다른 글자를 쓰는 옛 성현들의 깊은 뜻으로 봐야 한다.
따라서 명성황후의 죽임은 시(弑)로 써야 맞는 것이다. 즉 명성황후를 살해(殺害)라 씀은 일본 입장에서 비하해 쓴 표현인 ‘민비살해’처럼 명성황후를 일반인으로 본 것이고, 시해(弑害)라 함은 우리 입장에서 쓴 표현으로 명성황후를 우리의 부모나 임금으로 보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명성황후 살해’란 글자를 쓴다는 것은 '노무현 대통령 죽었다' 나 '김대중 대통령 별세'로 쓰는 것과 같은 이치로 봐야 한다. 국모가 돌아가시면 당연히 승하(昇遐)이지 일반인처럼 별세(別世)나 졸(卒)을 쓸 수는 없다. 대통령이 돌아가시면 당연히 서거(逝去)로 써야 예법에 맞는 것이다.
명성황후의 죽임은 세계 인류사에서 그 유래가 없는 만행이기에 정확한 한자 용어를 지금까지 찾지 못했다. 그나마 가장 가까운 것이 ‘시해’라는 용어이다. ‘시해’란 단어를 쓰면 신하가 임금을 죽인 뜻이기에 조선인이 국모를 죽였다고 해석하는 것은 일리는 있으나 너무 지나친 해석이다. 그런 단어는 시역(弑逆)이나 시장(弑戕)이라는 것이 따로 있다.
간단히 똑같이 ‘죽일’이란 뜻이나, 살해(사람, 동물) > 시해(부모,임금) > 시역(역모로 임금을 죽임)로 보면 된다. 그러함에도 시해는 조선인이 죽였다는 뜻이 있다는 이유로 명성황후에게 일반인에게 쓰는 살(殺)을 써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잘못된 견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명성황후는 일반인이나 동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명성황후는 국모이므로 일반인을 죽일 때 쓰는 용어인 살해라는 용어보다는 시해라는 용어를 씌되 “명성황후는 일본에게 시해당했다.”라고 ‘일본에게’를 시해 앞에 반드시 붙이면 된다. 그리고 단재신채호선생의 말대로 “역사란 아(我)와 비아(非我 나 아닌)의 투쟁의 기록”이므로 한 사건을 놓고 서로가 쓰는 역사용어가 다를 수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냉정하게 역사적으로 말하자면, 임진왜란 때 일본은 ‘조선에 진출(進出)’했고 우리는 ‘일본에게 침략(侵略) 당한 것’이다. 같은 이치로 을미사변의 경우 일본에서는 '민비를 죽였다(閔妃殺害)'로 쓴다. 우리 입장에서는 당연히 '명성황후는 일제에게 시해당했다(明成皇后弑害)'고 써야 한다.
물론 위 신문기사의 지적도 일리가 있다. 교활한 일본인들은 시해(弑害)라는 용어의 뜻을 악용해 “민비는 조선인이 죽였다.”고 주장하는 기록을 많이 남겨 놓았다. 심지어는 우리 실록에도 진범은 이주회로 기록되어 있다. 일본인은 언급도 안되어 있다. 그래서 ‘명성황후 죽임’의 경우 새로운 용어를 만들 필요가 있다.
명성황후의 죽임을 정확하게 한자로 표현하려면 적해(賊害) 또는 적시(賊弑)라는 용어로 바꿔야 한다. 적은 도적 적(賊)자이고, 시는 임금을 죽일 시(弑)이다. <삼국사기>의 기록에 따르면, 적국에서 와서 왕을 죽인 경우에 적해(賊害)란 용어로 적었음을 알 수 있다.
1) 고구려 모본왕 6년 (a.d 53년) 두로는 칼을 빼어 (모본)왕을 해하였다(拔刀害之) : 그냥 해(害)를 썼다.
2) 고구려 차대왕 20년 (a.d 165년) 겨울 10월 백성들이 견디어 내지 못함을 이유로 왕을 시해하니 (因民不忍弑王)
3) 고구려 영류왕 25년 (a.d 642년) 겨울 10월 개소문이 왕을 죽였다. (冬十月蓋蘇文弑王)
4) 백제 동성왕 23년 (a.d 501년) 백가가 “사람을 시켜 왕을 칼로 찌르게 하여 12월에 이르러 왕이 죽었다.(使人刺王至十二月王薨)
고구려는 전부 내부쿠데타로 왕을 죽인 경우라 시(弑)를 썼다. 백제 동성왕은 백가(신하)가 보낸 자객의 칼에 찔렸다가 나중에 죽었기에 자왕(刺王)이란 표현을 썼다. 보통 왕이 죽을 때는 전쟁에서 패해 죽는 전사 또는 내부쿠데타 때문이지, 명성황후의 경우처럼 전쟁 상황도 아닌데 외국에서 깡패들이 와서 죽인 경우가 없다.
외부에서 와서 왕을 죽인 경우가 백제에 있었다. 이것이 명성황후와 가장 비슷한 경우일 것이다. 9대 분서왕(汾西王) 7년 (a.d 304년) “겨울 왕은 낙랑태수가 보낸 자객에게 해를 입어 죽었다. (冬十月 王爲樂浪太守所遺刺客賊害薨)”
따라서 명성황후는 시해(弑害)나 살해(殺害)라는 용어보다는 적해(賊害)라는 용어를 쓰는 것이 좋으나, 적해라는 민밋한 용어보다는 적시(賊弑)라는 용어가 명성황후에게는 더 적합한 용어로 보인다.
시해를 쓰면 자국인이 임금을 죽인 뜻이 있기 때문에 살해로 써야 한다는 주장은 일리는 있지만 잘못된 의견이다. 결국 그러한 화두가 던져지면서 ‘적시(賊弑)’라는 적합한 용어를 찾아내게 된 것이다. 우리 역사를 재정립하고 민족정기를 세우려면 적합한 용어를 찾아 써야 할 것이다.
‘을미사변(乙未事變)’이란 역사적 용어는 ‘을미적시(乙未賊弑)’나 ‘을미참변(乙未慘變)’으로 바뀌어야 한다. 사변이란 용어는 일본인들이 쓰던 용어이고, 일국의 왕후에게 ‘일 사(事)’자를 쓰면 예법상 안되기 때문이다. 을미사변이란 용어를 계속 쓴 것은 이병도가 심어놓은 일제의 식민사학이 아직도 이 땅에 깊숙이 뿌리박혀 있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