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이 말하는 동일여고 교육과정 “배우고 싶어도 사라지는 과목, 이제는 없어요”
동일여고의 정규 수업과 평가, 학교 프로그램만의 특징이 있다면?
2학년 송정인 수행평가를 유의미하게 진행하는 점이 특히 좋다. 다른 학교 친구들 얘기를 들어보면 미니 지필평가처럼 하는 수행이 많다고 하는데, 우리 학교는 그런 수행평가는 거의 없다.
역사 과목 수행평가를 한다면 한 인물을 깊이 탐구하거나, 역사적 사건들을 정확하게 표현하기 위해 UCC로 제작하는 식이다. 수학에서도 단지 문제 풀이를 하는 게 아니라 수학 도서를 읽고 심도 있게 탐구해보거나 개념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수학 기호나 새로운 창작물을 만들어본다. 그런 점이 독특하게 다가왔다. 학교에서 창의성을 키우는 연습을 해보는 느낌이다.
정치외교학과에 진학하고 싶은 내게 인상적인 수행평가가 있었다. <통계의 미학>이라는 책을 읽었는데 국정운영 등 정치권에서 진행하는 각종 설문조사의 이면에 숨겨진 통계적 모순이 인상 깊었다. 3학년 때 배울 <확률과 통계>에 나오는 개념도 미리 찾아볼 수 있었다. 수행평가가 아니었다면 고르기 쉽지 않았을 책이었다. 하하. 읽고 보니 사실 그렇게 어려운 책은 아니었는데, 수행평가를 통해 폭넓은 독서에 도전해볼 수 있었다.
2학년 차민지 자율성을 보장해주는 학교라고 생각한다. 원한다면 친구들과 자율동아리도 자유롭게 만들 수 있고, 자기 주도 학습도 자율적으로 할 수 있다. 학교생활을 열심히 해야겠다는 동기부여가 된다. 내 경우 정치외교학이나 교육 쪽 전공을 생각하는 친구들과 자율동아리를 만들어 초등학교 교육 봉사를 진행했다. 세계 여러 나라들의 정치 제도나 문화를 친근하게 소개해주는 활동으로 기획했는데, 우리도 미래 세대지만 어린 친구들이 잘 커갈 수 있도록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2학년 박지우 영어 수업에 특히 만족한다. 재미있는 시트콤을 자막 없이 보거나, 영어로 감상문을 쓰는 등 단순한 문법, 독해, 문제 풀이 중심의 수업이 아니다. 교내 영어 대회 역시 에세이를 써서 발표하거나, 원서를 읽고 퀴즈 대회 형식으로 진행하는 등 영어를 언어 그 자체로 배울 수 있다. 수능 공부 역시 병행하기 때문에 별도로 준비하지 않아도 돼 좋다.
2학년 강민채 수능에 대비할 수 있는 교육은 방과 후 수업으로 보충할 수 있다. 방과 후 수업도 수능형 외에 토론이나 조사, 발표 수업 등으로 다양한 데다 학생들의 의견을 설문 조사를 통해 반영하기 때문에 만족도가 높은 편이다.
2학년 오보화 수업 안에서 수능에 도움이 되는 활동 한 가지를 꼽자면 일주일에 200개씩 단어를 외우는 것이다. 정말 힘든 활동이긴 하지만, 외국어에서 어휘 습득은 기본이다. 한 학기에 1천600개 정도의 어휘가 쌓이고 다음 학기에 다시 반복하다 보면 머릿속에 잘 남는다.
2학년 조혜민 우리 학교 프로그램은 대부분 면접을 통해 선발한다. 동아리는 물론, 영재학급이나 학교 홍보대사도 모두 면접 관문을 거쳐야 한다. 고등학생 때 면접을 경험할 기회가 흔치 않은데, 이를 통해 면접이 있는 대입 전형도 자연스럽게 대비하는 느낌이다.
1학년은 새 교육과정을 적용받기 때문에 최근에 2학년 이후 배울 과목을 선택했을 것이다. 결정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
1학년 김채린 PD라는 꿈을 이루려면 어떤 과목을 들어야 할까 고민해봤다. 과목이 다양해서 선택하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지만, 사회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을 키워야 할 것 같아 <사회문제탐구>와 <정치와 법>을 선택했다. <경제>를 배우고 싶었지만, 성적에 대한 부담이 커서 결국 고르지 못했다. 또 2학년 때 사회, 과학, 예술 교과 중 세 가지를 고를 수 있는데 그중 하나는 예술 교과 중
<미술창작>을 택했다.
1학년 홍서연 처음 선생님께서 설문지를 나눠주실 때 당황스러웠다. 선택 과목에 대해 잘 몰랐기 때문이다. 찬찬히 들여다보니 내가 원하는 진로인 교육 분야와 관련해 교양 과목으로 <교육학>이 있더라. 굉장히 반가웠다. 교육 분야는 인문, 자연 분야가 모두 중요할 것 같아 사회와 과학 과목 중 어느 쪽을 많이 골라야 할지 고민이었는데, 사회 과목을 주로 택하는 쪽으로 결정했다. 사회 중에서는 <사회문화> <정치와 법> <한국지리>를, 과학 과목에서는 <지구과학 Ⅰ>과 <생명과학 Ⅰ>을 선택했다.
1학년 윤영은 설문지를 받고 나서 좋기도 하고, 어렵기도 했던 게 교과마다 굉장히 세분화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처음에는 선택의 폭은 넓은데 과목마다 무엇을 배우는지 정확한 내용을 알지 못해 곤란했다. 산업공학과에 가서 마케팅을 전문적으로 배우고 싶은데, 전공은 자연 계열 쪽이고 분야는 인문·사회와 관련이 높기 때문에 제한된 선택 안에서 어떤 과목을 골라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다.
결국 <물리 Ⅰ> <화학 Ⅰ> <생명과학 Ⅰ> <지구과학 Ⅰ>은 학기별로 두 과목씩 모두 선택했고, 사회에서는 역사를 좋아해 <세계사>와 <생활과 윤리>를 골랐다. 2학년이 되면 수학, 과학 과목을 본격적으로 공부할 텐데, 특히 좋아하는 <세계사>는 공부하면서 힘들 때 ‘인생의 낙’이 될 것 같기도 했다. 하하.
1학년 김민진 중학교 친구들 얘기를 들어보니 선택 과목의 개념도 잘 모르는 경우가 있었다. 그에 반해 우리 학교는 선택의 폭을 굉장히 넓혀줬다는 걸 알게 됐다. 아직 진로를 명확히 결정하지 못한 내게는 더 고민스러운 일이었지만, 학교에서 최종 결정 전 6차에 걸쳐 설문 조사를 했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오히려 진로를 더 많이 생각해보게 됐다.
지금은 어느 정도 진로의 틀이 잡혔다. 생명공학에 흥미가 생겨 일단 과학 과목은 모두 신청했다. 사회는 1학년 때 공부하면서 정치, 법 쪽에 흥미가 생겨 <정치와 법> <사회문화>를 선택했다.
1학년 최지혜 만약 과목을 선택할 수 있는 교육과정이 아니었다면 경제학과에 가고 싶은 내가 <경제>를 배우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선택하는 학생이 적어 폐강됐을 테니까. 1등급이 한 명밖에 안 나온다는 얘기도 있었지만, 부담되더라도 내신보다는 내가 원하는 꿈을 위주로 선택하려고 했다. 혼란스럽기도 했지만, 내가 가야 할 길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 같아 뿌듯함이 더 컸다.
2학년이 보기에 1학년 후배들의 얘기는 완전히 다른 세계로 느껴질 것 같다. 과목을 선택한다는 것에 대해 어떤 느낌이 드는지 궁금하다.
2학년 차민지 사실 이 주제를 놓고 학생 토론을 진행한 적 있다. 반대 측 주장을 맡았음에도 정말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1학년들은 자신의 의지대로 과목을 선택할 수 있지만, 내신 등급에 대한 부담이 지금 1학년보다 더 컸던 우리 때는 <세계사>를 배우고 싶다는 친구들이 꽤 모였지만 결국 사라지게 됐다.
2학년 이채은 나는 인문 과정이지만 수학을 좋아한다. 초등교육과에 진학하고 싶은데 2015 개정 교육과정의 교양 교과 중 <교육학>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게 무척 부럽다. 수학과 사회를 좋아하지만 과학은 별로 좋아하지 않아 인문 과정을 택했다. 수학을 더 깊이, 어렵게 배우고 싶어도 문·이과의 장벽 때문에 현실적으로 어렵다. 당장은 힘들더라도 대학에 입학하고 나면 <미적분>이나 <기하와 벡터>를 심화해 배우고 싶은 욕심이 있다. 정해진 틀이 아니라 학생들의 선택과 개성을 존중하는 교육과정은 이제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