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명기가옥 평면
어명기 가옥 전경
강원도 고성 어명기魚命驥 가옥 (중요민속 자료 131호)
집은 지역에 따라 그 형태가 다른 이유는 집이 그 지역환경에 맞추어 지어지기 때문이다. 우리 한반도 내에서도 각 지역마다 집의 구조에서 조금씩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차이 가 두드러진 지역이 태백산맥 지역이다. 태백산맥 지역의 집은 기본적으로 겹집의 구조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구조는 이 지역의 자연적 환경에 때문이다. 방이 田자 형태로 배치되는 겹집의 구조는 추운 지방에서부터 발달된 구조이다. 이 겹집이 나타나는 곳 중 대표적인 곳은 함경도 지역이다. 함경도지역처럼 추운 기후를 보이는 곳에서는 집이 외기에 면하는 면적을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
이렇게 외기에 면하는 면적을 줄이기 위한 방책 중하나가 바로 방을 서로 붙여 田형태로 배치하는 것이다. 이렇게 함경도 지방에서 발전한 겹집구조는 사람의 이동에 따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갔다. 만주지역에서 사는 한국인들의 집도 바로 이러한 겹집을 하고 있으며 남쪽에서는 기후가 상대적으로 추운 태백산맥 동쪽지역의 집들이 이러한 겹집구조를 하고 있다. 이러한 겹집구조는 태백산맥 동해안 쪽을 따라 남하하여 울진 영덕지방까지 퍼져있다. 이러한 겹집구조의 집의 전파 방향을 살펴보면 지역의 문화가 어떻게 퍼져나갔는지 알 수 있다.
남한의 최북단 지역인 고성에 있는 어명기 가옥도 바로 전형적인 겹집구조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같은 겹집구조도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고성, 속초, 삼척, 양양 지역의 집은 방을 이중으로 배치한 뒤 한 쪽에 부엌을 치우쳐 두고 부엌 앞쪽으로 한 칸을 덧달아 전체적으로는 ㄱ자 모양의 구조를 하고 있다. 앞쪽으로 내어 달은 한 칸은 소를 위한 외양간으로 사용하고 있다. 어명기가옥도 이 지역의 특징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단 하나 차이라고 한다면 겹집구조에서 집의 쓰임새를 좋게하고 규모를 늘리기 위하여 앞에 마루 한 칸을 덧달아 세줄겹집의 구조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세줄겹집으로 된 예는 이곳 어명기가옥이 유일하다고 할 수 있다.
어명기가옥을 포함한 이곳 영동지방의 집에는 다른 곳에 찾아볼 수 없는 몇 가지 특성이 있는데 그것은 이곳의 자연환경에 때문이다. 우선 산간 지역으로서 겨울추위와 야생동물의 피해에 대한 방비가 집에 반영되어 있다. 우선 추위에 대한 대비가 매우 세심하게 배려되었다. 앞서 말한 겹집구조가 바로 그러한 점을 반영하는 대표적인 예이지만 이러한 점 외에도 집구조에 추위를 피하려는 많은 장치가 되어 있다.
사랑방 퇴간(천정이 흙으로 발라져 있음)
우선 방의 천장이 다른 곳과는 전혀 다른 구조로 되어 있다. 다른 곳의 집에서는 방의 천장을 간단하게 천장틀을 만든 뒤 종이로만 발라 만들지만 이곳에서는 단열을 위하여 나무로 천장틀을 튼튼하게 짜고 산자를 올린 후 흙으로 덮어 만든다. 이렇게 하면 종이천장보다는 단열효과면에서 훨씬 탁월하게 된다. 또한 이러한 처리로 천장 위쪽은 일반집에서의 천장과는 달리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긴다. 이렇게 생긴 지붕과 천장사이의 공간을 "더그매"라고 하는데 일반집에서는 물건을 올리기 위하여 마루를 깔아 더그매를 만들지만 이 지역에서는 단열을 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생긴다. 이 어명기가옥에서는 이러한 더그매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마루에 면한 벽의 상부를 막지 않고 뚫어 두어 자연스럽게 더그매로 활용할 수 있도록 처리하였다.
대청 상부 (막지 않고 트여있음/문화재청자료)
보온을 위한 다른 위한 방법으로 열기를 모으기 위하여 부엌에도 거의 창을 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불을 땔 때 나오는 연기의 열기조차도 쉽게 빠져나가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다른 지역의 집에서는 불을 땔 때 나오는 연기를 배출하고 음식이 상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부엌의 통풍에 많은 배려를 하고 있다. 그러므로 다른 지역에서 부엌은 개구부가 매우 많다. 그러나 이 지역에서의 집은 연기열기조차 가두어 두려한다. 부엌의 벽에 개구부를 설치하지 않음으로서 벽으로 연기가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고 모든 연기가 지붕 쪽에서 빠져나가도록 하였다. 이러한 연기를 빼기 위하여 팔작지붕 합각 부분에 배출구를 만들어 놓았는데 이것을 마치 '까치가 드나드는 구멍처럼 보인다.'고 하여 <까치구멍>으로 불린다. 따라서 이렇게 합각 부분에 연기 배출구를 만들어놓은 집을 <까치구멍집>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합각부분의 까치구멍
야생동물에 대한 대비는 집의 배치에서 나타난다. 우선 소를 키우는 외양간이 건물 내에 설치되며 외양간 외부도 완전히 판장벽으로 둘러싼다. 이렇게 건물 내에 외양간을 설치하는 것은 일차적으로는 추운 기후로부터 소를 보호하기 위함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소를 맹수로부터 보호하기 위함이다. 대부분의 경우 소의 외양간의 상부는 다락을 들여 창고로 사용하고 있다. 또한 집 주위를 담으로 완전하게 둘러싼다. 특히 부엌의 생활과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는 뒷마당은 완벽하게 담으로 둘러싸여 보호된다. 이렇게 담으로 둘러싸지 않으면 야생동물로부터 뒷마당에 있는 장독대나 창고를 보호할 수 없게 된다.
어명기 가옥은 이러한 지역적 특성이 잘 나타나 있다. 그러나 어명기 가옥은 단순히 지역적 특성을 보여주는 건물만은 아니다. 어명기가옥은 터를 잡기 위해서 세심한 배려가 있었든 듯하다. 남서향을 한 배치는 시원한 조망을 보여주고 있다. 뒤쪽으로 나지막한 언덕을 배경으로 멀리 운봉산을 바라보고 배치하였다. 이곳에서는 설악산의 울산바위도 바라볼 수 있다. 어명기가옥은 모두 3동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몸채와 방앗간채, 뒷마당에 헛간채를 두었다. 원래 방앗간채는 건물의 좌측에 있었던 것으로 1996년 고성화재 때 소실되었다가 그 후 현 위치에 옮겨 재건한 것이다.
어명기 가옥 뒷마당
어명기가옥은 이 근처에 지어진 집중에서도 가장 잘 지어진 집이다. 재목도 넉넉하게 사용하였고 재목을 다룬 목수의 솜씨도 만만치 않다. 기단도 다듬은 돌로 사용되었다. 주변에 이러한 정도로 지은 집을 찾아보기 힘들다. 집을 지은 목수와 재목의 수준만을 놓고 굳이 비교한다면 강릉의 시내에 있는 선교장 등과도 격을 이야기할 정도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기단을 다듬은 돌을 사용하여 세벌대로 쌓아 집을 높인 것은 이 집의 격을 보여주는 것이다. 다듬은 돌로 기단을 만든 다는 것은 일반인들의 집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것이 가능한 것은 이곳에 중앙정부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중앙정부의 행정력이 미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어명기가옥이 이곳에 자리잡은 것은 400년 정도 되었다고 한다. 1750년에 화재로 소실된 것을 어태준(1705 -1758)이 새로 옛 모습대로 복원하였다고 한다. 현 주인인 어명기의 할아버지가 1860년 농토3000평을 구입하고 팔지 말라는 유언이 있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건물 앞에 새워 놓은 돌에는 가옥에 대한 간단한 이력과 함께 다음과 같은 글이 새겨져 있다. "나는 조상의 유업을 찬미하고, 후세의 교육목적의 보탬이 되고자 보수와 조경공사를 하였다. 대대손손 성실하게 영구보존되기를 기원한다." 집주인 자신의 유산에 대한 자긍심이 우러나오는 글이다. 이러한 생각이 집의 보전에도 잘 반영되어 어명기 가옥은 다른 집에 비하여 매우 잘 보존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의 보존에 대하여 아쉬운 점이 남는다. 집은 사람이 살기 위한 도구이다. 그러므로 집에는 생활이 담겨져 있다. 집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 지역의 생활상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므로 집을 다시 고칠 때에도 이러한 점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 외형을 잘 보존하였다고 하여 곧 집을 보전하는 하는 것은 아니다. 생활이 담겨져 있는 집으로 보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한 점에서 집을 개수하는 과정에서 제대로 복원되었는가에 대하여는 의문이 간다. 특히 외양간 부분은 많은 변형이 있었다. 이러한 변형은 주변의 다른 집도 마찬가지이었다. 앞으로 문화재를 보수할 때는 삶이 담겨져 있는 집으로 보수 유지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첫댓글 까치구멍집 너무 멋집니다. 혹시 이 집 말고 다른 집에서는 못 보셨나요? 참, 한옥 보러가실때 따라가고싶습니다.
강원도 산간지역에는 까치구멍집이 많이 있습니다. 신리의 너와집도 까치구멍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