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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합장하시기 바랍니다.
행복 시작 불행 끝
성공 시작 실패 끝
신해행증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아미타불~~~
이제 신해행증 강의가 막바지로 가는데 104회중 90회 후반대를 가는데 우리가 마무리 해야할 시간들이 가까이 오는 것 같애요.
그동안 신해행증 이렇게 공부를 했고 현재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은 세 번째 단계 행(行)=우리가 무엇을 실천 할 것인가하는 실천 부분에 대해서 공부를 하는데 지난 시간에는 네가지 무량한 마음, 그래서 사무량심(四無量心)이라고 하는 우리가 마음을 쓰는 방법을
공부했어요.
그래서 사무량심은 우리가 살면서 자기 자신과 남을 위해서 내가 어떻게 마음을 쓰면 가장 행복하고 성공적으로 살수 있을까
이런 마음 중에서 최고의 마음인데 쉽지는 않아요.
그래서 인제 네가지 마음이라고 그랬으니까 앞에만 줄이면 자비희사 이렇게 표현을 해요.
자무량심(慈無量心), 비무량심,(悲無量心), 희무량심(喜無量心), 사무량심(捨無量心).
그래서 우리가 이런 마음으로 살면 가장 좋은데 되지않아요.
되지않으니까 요 사무량심을 공부하게 되면 이 마음을 철저하게 공부하게 되면 복덕과 지혜가 충만한 세계인 색계천에 태어난다.
이건 선정을 익히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 마음 자체가 복과 광명이 넘치는 지혜가 넘치는 색계천에 가서 태어날 수 있다.
이렇게 표현했어요.
그래서 자비희사(慈悲喜捨)를 지난 시간에 뭐라고 정의 했냐 하면 자(慈)는 무연대자(無緣大慈), 그랬단 말이예요.
그러니까 인연이 없는 속에서도 우리가 사랑을 베푸는 것이 큰 사랑, 무연대자 이렇게 표현해요.
불자들은 이런 부분에서 우리가 인제 조금씩 조금씩 공부를 해나가야 되요.
여태까지 부부간에 또는 부모 자녀간에 또는 형제 간에 이런 인연 속에서도 우리는 전부 다 원수를 만들고 살아요.그죠?
오늘날 한국사회는 재물속에서 형제든 부모자녀든 전부 다 웬수가 되어있어요. 그죠?
근데 그런 부분들을 우리가 뛰어넘는 것이 우리 사회가 선진국으로 가는 지름길이 되는 것인데 하물며 형제, 육친간에도 재물이라고 하는 유한한 것을 놓구서 목숨 걸고 싸우는 것이 이게 굉장히 불쌍한 것이란 말이예요.
근데 부처님께서 무연대자(無緣大慈), 아무런 인연이 없는 속에서도 우리가 자비를 베풀수 있어야 진정한 자비가 된다~ 이렇게 표현을 하신거예요.
쉽지않지만 우리 불자들이 조금씩이라도 실천을 해 보는게 필요해요.
그렇게 되면 여러분들이 행복하고 사회가 행복해지고 전체적으로 되니까.
그래서 무연대자(無緣大慈).아무런 인연이 없어도 우리가 자비를 베푼다면 그걸 우리가 큰 사랑이라고 표현한다.
또 이거는 여민동락(與民同樂)이라고 함께 모든 사람이 즐겁게 즐거움을 준다~이런 뜻이 되겠죠.
그래서 자비라는게 이런것인데 집에서도 여러분들이 두가지 방법이 있어요.
하나는 하루하루 살면서 가족간에 내가 좀 더 노력해서 가족들을 즐겁게 만들어주는 방법이 있고, 하나는 내가 가족이든 사회를 위해서 한가지라도 손해 볼수 있는게 뭐가 있을까 요걸 찾게 되면 여러분들 마음이 저절로 생기게 되요.
그래서 무연대자(無緣大慈).
비(悲)라고 하는 것은 동체대비(同體大悲). 그렇게 표현해요.
저사람이 아픈데 그걸 내아픔으로 느낄수 있다면 그걸 우리가 연민의 마음이 된다.
그래서 너는 너고 나는 나고가 아니고.
근데 우리 인간들이 어느때부터 세부적으로 나누어지기 시작하는거예요.
한 아파트 단지에서도 자기네 라인만~ 하는 요런 쪽으로 전부 분리를 하는거예요.
그래서 <붓다스 브레인>이란 책을 보니까 자기 자신을 유지할려고 하는 방법중의 하나가 분리를 하는거드만요.
남과 나를 분리해서 보는 것.
근데 이것이 항상 뭘 만들어주냐 하면 불안정한 상태를 이끌어 간대는거예요.
그러니까 내가 나와 남이 분리 된 존재가 아니라 점차적으로 같이, 어떤 소중한 인연의 존재라고 생각을 하게 되면 나는 잘나고 너는 못나고 이런 분리의 마음이 마음들이 사라지게 되는데 지금 우리는 인제 아주 세부적으로 전부 분리가 돼 있으니까 불안한거예요.
그러니까 조금만 잘 나가면 갑질을 해대고 조금만 자기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면 분노로 부글부글 끓고 그러면서 계속 분리를 시키는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불안할 수밖에 없는데, 불교에선 그때도 동체(同體), 한몸이라고 생각 하구서 안타까운 마음을 가져봐라.
이것두 안돼. 그지?
그래서 우리 불자들은 자꾸 분리를 해서 불안정한 상태로 몰고 가는게 아니라 가족이 한 공동체고, 사회가 공동체고, 국가가 공동체고, 세계가 공동체고, 더 나아가서 육도가 전부 공동체라는 마음을 갖게 되면 그때부터 여러분들의 생각들이 조금씩 달라지게 되겠지요.
행복과 성공쪽으로 가게 되는 거예요.다른 쪽으로 가는게 아니라~~
즐거움이라고 하는건 뭐냐하면 진정한 즐거움은 부동(不動)=움직이지 않는 것.
부동대희(不動大喜)
조금만 좋으면 헤헤 좋다고 깔딱거리다가 조금만 싫으면 또 그냥 확 바뀌어가지구 너죽고 나살자 하면 그런 비위를 어떻게 맞춰.
그지?
부부간에도 그런 분들이 생각보다 굉장히 많더라구요. 얘기 들어보니까.
그런데 소중한 존재라고 하는 거를 자기 자신이 소중한 존재라는걸 느끼게 되면 남도 당연히 소중한 존재가 되고 내가 기쁘기 위해서 남을 괴롭히는게 아니라 남과 내가 동체로 같이 그래서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않는 것을 우리가 크게 기쁘다고 하는 것이다.
이런 마음들을 차곡차곡 여러분들이 처음부터 첫 숟갈에 배부르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지?
근데 그게 안되니까 하루에 1%씩만 하면 100일 되면 100%가 된단 말이예요.
그 다음에 이게 버릴사(捨)자니까 뭔가를 버려라 그렇게 착각하면 안돼요.
이거는 평정심(平靜心)을 갖는다는거예요.
부동심이나 평정심이나 크게 차이는 나지않아요. 그죠?
평정대사(平靜大捨)
그러니까 기쁜 환경에도, 괴롭고 힘든 환경에도 우리가 움직이지않고 평정을 유지할수 있다면 굉장히 좋은건데,
그리스 철학에서는 이런 평정심을 아타락시아(ataraxia)라고 하고 부동심을 아파테이아(apatheia)라고 그래가지구
삼~사천년전에도 이런 마음들을 그리스 철학에서 추구를 했더라구요.
근데 불교에서 부처님께서 우리가 인간으로서 천상생활을 할려면 이 네가지 마음(사무량심)을 가지면 가장 좋다~ 이렇게
표현 하셨으니까 여러분들이 지금 육도에서 지옥을 살기는 살지만 그래도 우리가 현재 이 육신을 가지고 천상세계를 사는 방법은 사무량심이 된다.
그래서 불자들은 실천하는 부분에선 반드시 작든 크든 간에 끊임없이 실행을 해보게 되면 이것이 어느 순간에 체질이 되게 된다.
불자들은 늘 ‘마음에 달렸어’ 그러는데 마음에 달렸다고 거까지는 아는데 그런 마음이 뭔데, 어떻게 써야 되는데 그러면 그냥 생각나는대로 막 쓰면 돼~
그러다보니까 불자들은 하나같이 무식하고, 무식하기만 하면 괜찮은데 무식한데다 교만하기까지 해 가지고 도대체 가르칠수가 없어.
내가 어느 절 댕기는데~~그래서 어떻다고? 그러면 나 그렇다니까~~그런단 말여. 그지?
<트로이의 거위>라고 하는 글에 보면 나오는거예요.
‘너 잘난게 뭐야?’ 그랬더니
‘아 나는 우리 7대 할아버지가 충청감사이셨어.’
‘아니 7대 할아버지 말고 너!’ 그러니까
‘내가 그 자손이라니까~’
‘아니 지금 니가 잘난거 뭐냐니까?’
‘아니 감사할아버지의 7대손이라고’
그래서 어쩌라고? 우리 불자들이 그러고 살아요.
무식한데다 교만해 가지고 찬바람이 쌩쌩 돌아. 큰 절일수록 더 그래. 큰 절 댕겨서 어쨌다고?
대오각성(大悟覺醒)은 뭘 해야 되냐 하면 큰 절 댕기는게 중요한게 아니라 큰 마음을 잘 쓰는게 주요한거예요. 그지?
전부 큰 대자(大가) 붙었잖아요. 대자, 대비, 대희, 대사 이렇게 살아야지.
쥐뿔도 개뿔도 책으로 머리를 치면 텅텅 소리는 나는데 어느쪽에서 나는지 확인해 봐야 된다니까요.
책에서 나는게 아닐수 있어요. 머리에서 나는 것일수도 있어.
머리에서 나면 가가지고 심각하게 정말 부처님이 나한테 오셔가지고 뭘 가르치실려고 했나 이걸 심각하게 생각해서 부처님 가르침에 철저할라고 해야지, 절 규모 크고 작고 아무 의미 없어요. 죽을 때 그거 가져갈거여? 못 가져가.
제발 신해행증 공부하는 분들은 그런 분들이 없지만 안하니까 무식해가지고 본인이 뭘 모르는지도 모르고
나한테 와서 불교학박사가 뭘 안다고 하세요? 그러는거여.
불교학박사가 불교학박사 아닌 사람보단 더 잘 알겠지.
내 상식이 틀렸나? (아뇨!!!)
답답한거예요. 대오각성은 불자들이 해야 되는데
어느 법우가 글을 올렸어요.
“어찌해야 하는지요?
전생에 지은 복이 없어서인지 외롭고 파란만장한 인생을 보내던 중 유튜브 법안 스님 법문에 인연되어 지장경 기도를 정식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 전에 잠깐 인연 되었던 스님들 지도로 광명진언 츰부다라니 진언만 하고 있었는데
법안 스님 법문에 심취에 되어 그냥 지장경 독경기도로만 바꿔서 하게 되었지요.
광명진언 츰부다라니 49일 기도 도중 그냥 지장경 독경기도로 바꿔서 기도를 드렸어요.
그리고 49일 회향 후 100일 기도 입재쯤에 저에게 작은 변화가 생겼어요.
연인과 이별, 사업실패 후 10년간 생활고로 인해 여기저기 떠돌며 살았는데
귀국 후 한국에서도 삶이 만만치 않았어요. 우울증과 자포자기였었죠.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하루하루 일당 벌러 여기저기 길거리 생활로 생계를 이어갔지요.
10대 소원문엔 올리지 않았는데 100일 기도 입재 전후에 하루살이 길거리 생활을 청산하는 일이 생겼어요.
우연히 보게 된 광고로 면접을 봤는데 60~70년대 유명했던 연예인 가게 지배인으로 들어가게 되었어요.
저는 그 분이 유명한 분인 줄도 몰랐고 그냥 인상이 너무 좋고 품위가 있어 저 사장님이랑 같이 일하면 정말 좋겠다고만
생각 했었죠.
모든 건 내가 지은 복 대로~
지장보살님이 알아서 인연을 맺어 주실꺼란 믿음으로
그런데 정말 합격했어요.
15일만 기다려 달라고~지금 지배인이 나가고 나면 5월 초부터 와서 일하라고
가게 입사 후 저희 사장님이 60~70대 유명한 연예인이였다는 걸 알았어요.
그렇게 싫었던 길거리를 헤매며 하루하루 일당생활을 정말 생각지도 않게 청산할 수 있게 되었어요.
정말 서서히 그리고 돌이켜 보면 하나씩 정리해 주시고 보호해 주셨다는 걸 느끼고 있어요.
그런데 여쭤 보고 싶은 것은 제가 100일 기도 입재랑 가게 입사 후 인시 기도를 잘 못 지키고 있어요.
그 전엔 제 자의로 일을 끊을 수 있어 새벽 2시까지는 집에 들어와 기도 하고 잤는데...
새 가게 지배인 입사 후 마무리가 새벽 5~6시가 될 때도 있네요.
물론 2시 경에 마칠 때 인시 기도 올릴 수 있지만 부득이 늦게 마쳐 새벽 5~6시경에 집에 올 때 그냥 지쳐 쓰러져 자 버리네요.
첫 번째 질문 이럴 경우 어떻게 해야 하나요?
지장 보살님께 고하고 자기 전이랑 자고 나서 바로 기도 올릴께요. 하면 되나요?
그리고 기도 시간을 지킬 수 있게 일찍 손님 오고 일찍 마치게 해 달라고 기도 드리면 될까요?“
지혜가 굉장히 대단한 분인거 같애요. 그지?
두 개 다 질문에 정답이 들어있어요.
여기서 말하는 인시라고 하는 것은 우리나라도 지역마다 조금씩 다른데 울릉도 하고 연평도 하고 시차가 제법 나요.
왜 많이 나냐하면 태양이 남중하는 시간을 중심으로 해서 정오라고 표시하는데 서울 같은 경우는 일반적으로 시간으로 12시 32분에 정오가 돼요.
태양이 서울 하늘 정확하게 남쪽에 온다는 뜻이예요.
부산은 12시 24분, 그다음에 인천은 12시 34분 요렇게 차이나니까.
그러면 인시(寅時)라고 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03시 31분부터 05시 30분까지다. 요렇게 되는거예요.
그래서 인제 새벽시간에 기도를 하게 되면 여러분들이 하루 생활하는데 시간이 길어져요.
처음에는 내가 할수 있을까없을까 고민하는데 일단은 자신감이 생기게 되고 또 내가 했다는 뿌듯한 감 때문에 여러분들이 의욕이
넘치게 돼요.
근데 이시간에 태어난 사람은 전세계에서 누구도 못사는 사람이 없대요.
우주의 기운이 가장 인간에게 좋은 시간이예요.
그래서 자시(子時)에는 하늘이 열리고. 축시(丑時)에는 땅이 열리고, 인시(寅時)에는 사람이 깨어나는, 사람의 복이 깨어나는 시간이다~ 이렇게 표현해요.
그래서 인제 이법우님은 10년동안 길거리를 헤메며 일당 생활을 하다가 지장기도를 하구서 그거를 청산하고 드디어 안정된 직장이 잡아진거예요.
그런데 직장을 잡간 잡았는데 새벽기도 할수 있는 시간이 없으니까 현실적으로 고민 하는거예요.
결론적으로 두가지 방법 다 맞아요.
근데 이제 우리 불자들이 머리가 워낙 뛰어나다보니까 ‘오늘은 제가 쉴테니까 지장보살님 제 대신 기도 좀 하구 주무세요’이런 경우들 많아요. 그지? 많데니까.
‘나 오늘은 바쁘니까 지장보살님 알아서 기도 좀 해 놓으세요.’
우리 불자들 진짜 대단한 불자들 많아요.
한번은 80노인네가 정초에 저를 보자고 왔어요.
왜 그런데요? 했더니 자기가 한 40년 절에 댕겼는데 되는게 없더라는거예요.
절에 어찌 댕겼수? 그랬더니 일년에 두 번은 갔지유~ 그러는거여.
두 번씩이나!! 언제언제 갔수? 그랬더니 정월달하고 7월달은 갔지유~ 그러는거여.
그래 지금은 어디 댕기는데? 그랬더니 천주교 댕긴대.
천주교는 일년에 몇 번이나 가시유? 그랬더니 일주일에 두세번은 간다대.
40년 절에 댕긴 것이 1년동안 교회 댕긴 숫자도 안돼.
그러면서 불자들은 안되면 안된다고 난리를 쳐요.
부처님이 기억이 안나서 도와줄 방법이 없어.
일년에 두 번씩 그것도 제일 바쁠때 잠깐 와서 눈도장도 찍을새 없이 가는데 언제 소원성취를 해줘.
신앙태도가 잘못 됐다는거잖아요.
내가 열심히 하고 지성이면 감천인것이지.하늘도 내가 지극정성으로 할 때 감응을 하시는 것이지.
그냥 나 바쁘고 힘들고 피곤하니까 부처님 알아서 내 소원 좀 다 알아서 성취시켜 놓으슈~~
베짱도 좋아. 그지? 그건 안되는거예요.
인제 여러분들이 기도를 하면서 다시 마무리 시점에 정리를 하게 되면,
기도에는 우리가 모든 부분에선 두가지인데, 우리가 기도 하는 것은 뭘로 하냐하면 신구의(身口意)로 하는거여. 그지?
몸과 입과 뜻으로 하는거예요.
불교는 쉬운게 요 세가지만 잘 잡으면 되요.
몸뚱이도 자기꺼, 충청도 말로 주댕이라고 표현하는데 입도 자기꺼, 생각도 자기꺼네.
자기꺼 쓰는데 문제 될거 없잖아요.
남의꺼 빌려다 쓸려면 그게 힘든 것인데 자기꺼 쓰는거니깐 쉬운건데 불자들은 이거 어렵다고 못하겠대네.
왜 사나몰라. 그지?
그래서 인제 몸은 어떻게 하냐 하면 기도 하는 자세에 필요한거예요.
‘스님 제가 좀 피곤하니까 누워서 하면 안될까요?’ 안될거야 없지. 근데 그래도 기본은 지켜야지.
그래서 기본이 뭐냐면 단신정좌(端身正座)=몸을 단정히 하고 반듯이 앉는다.
이왕에 우주의 아버지, 위대한 영혼이신 부처님전에 하는건데 단신정좌를 하고 해야지요.
단신정좌(端身正座)라고 하는 것은 새벽에 일어나면 양치질 하고 손 씻고 세수하고 옷도 좀 잘 갖춰 입고~ 이런걸 단신이라고
하는거여.단정하게~ 어려운거 아니지?
제가 말씀드리는건 어려운게 하나도 없어요.그지? 여러분들이 못할건 내가 절대 안일러줘.
그리고 반듯이 앉는것.이거 못할 방법이 없네. 그지?
몸으로는 단신정좌를 해야되고,
입으로는 구무잡언(口無雜言)=입으로는 잡된 말은 하지 않는다.
근데 절에 오면 특히 여법우님들 무슨 할 얘기가 많은지 공양간 가서 하다가, 여기저기 가서 하다가 인제 집에 가서 전화할께~하구서 집에 가서 또 전화기 몇시간 붙잡고 있다가 내일 만나서 또 하자~
그 시간에 염불을 해야지. 그 영양가도 없는 얘기를 하느라고~ 인생을 허비하는거여.
그 시간에 독경하고 염불 하게 되먼 성불(成佛)의 인연을 심잖아요.그지?
하는 얘기가 뭐예요? 전부 잡된 얘기여.
남 어쨌다더라 뭐 했다더라 어느 연예인 옷이 어쨌다더라~
근데 염불독경하면 먹을것도 나오고 입을것도 나오고 다 나온대니까.
많은 분들이 절에 가면 먹을거 나오냐고 묻는데 나온대니까요.
절에 가면 비빔밥도 주고 다 주잖아요. 요즘은 국수도 주고 그러대.
그것뿐만 아니라 본인의 요러한 자비희사의 마음을 기르니까 당연히 세상이 좋아지게 되고,
본인 운명이 업그레이드 될수밖에 없단 말이예요.
앞으로는 절에 가서 한국 불자들은 제발 절에 오면 절에 가서 뭘 좀 해보면 좋을까~해가지고,
근데 자기 복 자기가 짓는게 맞는거 같더라구요.
우리 논산 절에가면 어느 분이 꼭 오면은 작업복으로 싹 갈아입고 화장실부터 돌아다니면서부터 싹 치우는거예요.
근데 그 분이 못난 분도 아니고 생기기도 굉장히 잘 생겼는데 또 집안도 굉장히 훌륭한 집안이고 남들 저리가라 하는 분인데
본인이 들어가서 전부 다 하는거여.
그러니까 아~ 저렇게 본인 복을 짓는구나.
제가 서울에 있는 포교당 와가지고 신발장까지 물걸레로 닦는 분 딱 한분 봤거든요.
근데 그분이 누구냐하면 200억대 부자마나님이여.
200억대 부자로 살려면 절에가서 신발장 닦으면 되겠다. 그럼 된다.
내가 여러분 신발장 닦게 할라고 하는게 아니고 그러한 복을 지어가지고 200억대 부잣집 마나님이 신발장을 왜 닦어~ 절에 가면 대우 받을텐데~근데 그런 내색 안하고 가서 닦는거여.
인격적으로 됐다.그 복을 누릴만하다~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중요한거예요.
그래서 쓸데없는 이야기 하는 대신에 절에 가서 조용히 청소하고 봉사할수 있는게 있으면
하고 조용히 법당에 가서 독경염불 하게되면 복덕과 지혜를 연마하는데 최고 좋으니까 그렇게들 하셔야 돼요.
삼삼오오 모여가지고 누구 욕하고 이 신도는 뭐가 맘에 안들고~ 맘에 들고안들고는 지맘이지 그지?
이런 불필요한 것들을 안하는 것이 기도의 자세예요.
그 다음에 우리가 생각은 어떻게 해야 되냐.
의불산란(意不散亂)=생각은 산란하게 쓰지말고 고요하게 쓰라는거예요.
생각을 어지럽히지 말래는거예요.
근데 학교에서 공부하다 십분동안 쉬잖아요.공부하다보면 강의만 시작하면 졸릴때가 있어요.
실컷 자다가 따르릉하면 그때부터 초롱초롱 해갖고 옆에 친구하고 십분동안 열심히 얘기한단 말이예요. 또 수업시간만 되면 또 자.
그러잖으면 십분동안 얘기했던 그 얘기를 한시간내내 생각만 하는거예요.그지?
뜻이 산란하게 되면 당연히 집중도 안되고 성적이 안나오게 되겠지요.
그래서 기도도 마찬가지예요.
단신정좌(端身正座)=손 씻고 양치질하고 얼굴 닦고 옷 단정하게 입고 반듯이 앉아서
그 다음에 구무잡언(口無雜言)=잡된 얘기 할거없이 독경염불 하고 그러면서
의불산란(意不散亂)=생각을 고요하게 하면 이게 몸과 입과 뜻으로 육체적으로 여러분들이 기도하는 자세가 된다.
삼업을 청정하게 하는 방법이예요.
그러니까 단신정좌 한다고해서 사우나 가서 엄청나게 씻어야 되는게 아니고 이렇게 한단 말이예요.
그러니까 불교는 쉬운거예요. 쉬운거.
이런 몸의 자세를 갖췄다면 마음자세도 갖춰야 된단 말이예요.
마음의 자세는 의불산란(意不散亂)에 해당 하는거니까 신구의(身口意)중에서 다시 뜻을 어떻게 가질까 요런걸 여러분들이
하나씩 하나씩 공부해 나가는거예요.
다시 점검을 하는거예요. 전에 안했던게 아니고 했던거 다시 리바이벌 하는거예요.
그래서 인제 불교는 원래 마음=생각을 중요시하는 종교니까 의불산란(意不散亂)=뜻을 산란하지 않게 하라.
그게 무슨 뜻인데요? 그러면
첫번째는 마음을 청정하게 가져라=청정일념(淸淨一念) 청정하다고 하는것은 무슨 뜻이냐하면
근본적으로 나도 좋고 남도 좋은 생각을 우리가 청정하다고 할수있어요.
나만 좋고 다른 사람은 폭삭 망해라~ 이렇게 하면 그것은 청정한 뜻이 안되는거에요.
우리 불교에서는 그렇게 가르치진 않는데 불자들이 하는 행동 보면 나만 잘되고 옆집은 안됐으면 좋겠다~
특히 불자들은 남 잘되는 꼴을 못봐.
같이 평생 절에 댕기고 하나는 성취하고 하나는 못하면 속 아파갖고 몇년 앓어. 그지?
기뻐해줘야 되는데 그게 안되는거여. 그지? 요런 부분들을 우리가 고쳐야돼요.
그러니까 아주 다른 종교에서는 부산에 있는 어느절 어느절 다 무너지게해주세요~막 기도하대. 그건 청정한 마음이 아녀.
그분들은 대놓고 하니까 좀 개운한데 우리 불자들은 표현은 안하지만 그래도 같이 똑같이 우리 아들하고 저집 아들하고 대입시험
보니까 가능하면 우리집 아들은 합격하드래도 저집 아들은 떨어져도 괜찮겠다고 이렇게~ 그런 마음은 청정한 마음이 아닌거예요.
그지? 같이 잘되야지.같이 잘돼야 되는거예요.
그래도 어느 불자는 솔직하기는 하대. 똑같이 우리 아들하고 저집 아들하고 공인회계사 시험을 봤는데 저집 아들만 되고 우리집 아들은 안되니까 선뜻 즐겁게 축하해 준다는 얘기가 안나옵디다~
그건 당연한거예요.그지? 인간이기때문에 그건 당연한거예요.
그 다음날 사과하면서 축하를 해줬대요. 아! 불자답다. 그러면 올해는 니아들도 되겠다.
그 마음 가져야돼요.근데 그마음 내기가 쉽지는 않다.
그래서 청정일념(淸淨一念)은 세상이 맑고 밝게,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다 행복하기를 바라는 이런 마음이 의불산란 이다.
두번째는 내가 피곤하니까 오늘은 쉬었다가 바쁘니까 쉬었다가 오늘은 마음이 불편하니까
쉬었다가 ~~그럼 평생 할 날이 있어요 없어요? 없어.
중국의 어느 도인스님한테 동네 사람들이 한참동안 비가 안와서 기물었어요.
그래서 인제 “스님 비 좀 오게 해주면 안될까요?”
그래 그럼 몇일날 비 오게 하면 될까? 동네사람들 의견을 모아가지고 와라 그랬더니 십년 되도 못모으는거여.
이날 할라면 우리집 뭐 있는데요~ 전부 자기일이 제일 큰 문제잖아요. 그지? 그러니까 안되는거여.
그래서 인제 두 번째는 정성일념(情性一念)=여러분들 기도하는 마음은 지극한 정성이면 늘 일념으로 바꿔야된다는거예요.
근데 인제 일념으로 바꾸라고 하니까 착각을 하는 경우가 있어요.
아~한일(一)자니까 하나만 해야 되나보다~ 이렇게 착각을 하는 경우가 있어요.
저는 저하고 기도할라면 소원은 무조건 10개 이상 적어라 해서 10대 소원표예요.
욕심 아닐까요?하고 묻는데 이게 고도의 심리작전인데 소원이 하나 있을때하고 10개 있을때하고 어느쪽이 기도하기 편하냐 하면
10개 있을 때 편해요.
왜 그런줄 아세요?
하나 있을때는 늘 기도가 뭐냐하면 이거 안되면 안되는데 되냐 되는데~
기도는 집중이 안되고 그 생각만 계속 드는거여.
그러면 되야되는데 안되면 어쩌나~ 그러니까 그건 기도 안되라 안되라 하는거여.
근데 10개를 가지고 있으면 일단은 포커스가 안맞춰져. 그지?
10개나 되니까 그때는 어디에 맞춰지냐하면 생각에 맞춰지는거여.
기도하는 마음에 맞춰지는거예요.
그러니까 10개 소원표를 가진 사람은 소원성취가 되는데 한 개 가진 사람은 안될 확률이 훨씬 높은거여.
하나에다 집중해야 되는거 아니예요? 아니예요.
전세계 어느 뛰어난 사람도 하나에 집중하는게 없어요.
소원은 하나에 집중하는 사람은 반드시 실패를 해요.
하나 세웠다 하나 안되면 100% 안되는거여.
근데 열 개 세웠다 9개 되고 한 개 안되면 90%는 되는거고~ 그러면 어! 나머지것도 되겠다는 자신감이 생기는거예요.
심리적으로 굉장히 중요한거예요.
그래서 오늘날 자기계발 학자들, 성공한 학자들이 전부 다 뭐라고 하냐하면 소원은 많을수록 좋다.
인생이 풍요로워지고 하나씩 하나씩 성취되는 기쁨이 있고~~
근데 우리나라만 소원 꼭 하나만 하라고 하는거여. 그러니까 그 소원 하나 하다가 쥐나는거여.
이건 더 급한데 저건 더 급한데~ 급하단 마음이 들어가니까 뭐예요?
정신일도하사불성(精神一道 何事不成)인데 정신일도가 안되는거여. 절대 안되는거여.
그래서 심리학자들 최고의 지성인들이 그렇게 얘기를 하는거여.
중요한거예요.
그래서 정성일념(情性一念)이라고 하는 것은 소원표가 많을수록 좋다.
그 다음에 세상이 전부 다 함께 잘살았으면 좋겠다~그게 봉공일념(捧供一念)
처음부터 이렇게 되지는않아요.
기도에는 순서가 있는데 청정일념(淸淨), 우선 내소원을 이루기위해서 기도하는거여.
내소원 이루어서 잘되면 야!신해힝증 보구서 내가 기도했더니 엄청 잘되드라.너두 한번 해봐라~ 그러면 거기서부터 봉공(捧供)하는 마음이 생기는거여.
나만 좋은게 아니라 남도 좋게 만들어줘야 되겠네.
어떻게 하면 돼? 신해행증 보구서 하니까 되대.~ 이렇게 해야 돼.
처음부터 쥐뿔도 개뿔도 없으면서 남을 위해 기도 한다고 이리 특 받고 저리 툭 받고 밤새도록 해봐야 집중이 되나?
생각은 엉뚱한데 가 있는데~
현실적으로 여러분들 소원성취 해가면서 점차적으로 나아가는거여.
처음에는 내가 확실하게 좋아졌네~ 그러면 내 주위사람들을 하나씩 하나씩 넓혀가면서 좋아지게 만들면 되잖아요.
근데 처음부터 아무것두 모르고 남을 위해서 기도해야 된대! 육바라밀이 다 그거예요.
근데 부처님은 처음부터 남을 위해 기도 하라고 한게 아니라 너 자신의 수명을 늘리고 재물을 늘리기 위해서 기도해라~ 이렇게 말씀 하신거예요.
그렇게 해서 니가 수명이 늘어나고 재물이 늘어나면 남들 한테 권해라.
그게 보시바라밀이고 지계바라밀이고 복 짓는거다.
현실적으로 이렇게 해야 돼. 이렇게~~
여러분들 처지에 맞게 일단 하구서 내가 이룬 것을 내가 행복해진 방법, 내가 성공한 방법을 나누면 되요.
그래서 의불산란(意不散亂)=마음이 흐트러지지않는다는 것은 청정한 일념으로 하는 것이고 정성스런 마음으로 하는것이고
더 나아가서 세상이 모두 다 맑아지고 밝아졌으면 좋겠다~
이런 마음을 갖게 되면 당연히 좋아지게 되겠지요.
제 인생에서 아주 멋진 질문을 두 개 받은적이 있었는데
하나는 지장경을 읽는 18살 먹은 여학생이 저한테 질문을 하는거여.
“염라대왕과 옥졸들은 무슨 권한으로 죄인들을 벌 할까요?”그 질문을 하는거여.
제인생에서 멋진 질문을 받아본거예요. 18살 먹은 고등학교 2학년 여학생 한테~~
그리고 또 하나는 서울대 법대를 나와서 평생 법조계에 계셨던 80세 드신 노인 양반이
“금생에 받은 복을 다음생에도 누릴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제가 받은 질문중에 최고 멋진 두 개예요.
요 질문을 오늘 이 자리에 배석해 주신 철학과 교수이신 이종국 박사가 얼마전에 귀국했는데 저한테 한 질문을 똑같이 하는 학생이 있더래요. 그 학생은 천재야~~
도대체 염라대왕과 지옥에 있는 모든 판관들이나 집행관들은 무슨 권한으로 죄인들을 벌 하냐~
요거 아주 기발한 질문이예요.
내가 짓고 내가 받는다는건 알겠는데 내가 지은걸 왜 염라대왕이 판단을 하냐고.
하여튼 60평생에 정말 기발한 질문을 받은거예요.
그래 그러면 불교에서는 자기가 짓고 자기가 받는댔으니까 만약에 천당으로 가라 지옥으로 가라 하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하나님은 누구냐 물어볼 필요가 있어요. 그지요?
똑같이 염라대왕하고 하나님하고 역할이 똑같은 거예요.
그래서 그래 정말 멋진 질문을 했다.
불교에서는 복이든 업이든 자기가 짓는것이니까 그건 어떻게 되냐하면 지옥이라고 하는 것은 니 마음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니 업이 형상화 된 것이 지옥이다.
염라대왕은 누구냐하면 원래는 인도의 고전(베다)에 보면 우주가 생기고 첫 번째 악업을 지은 사람이 염라대왕이래요.
거기가서 고참으로 왕 된거여.
원래는 지옥에 죄인이 오게 되면 혀를 뽑아야 되는 형벌을 받아야 되면 먼저 염라대왕 혀를 뽑아서 밭을 갈고 다하고 나서(시범을 보이고 나서~) 그 다음에 죄인의 혀를 뽑는거여.
그래서 염라대왕이 열 받아가지고 내가 너 때문에 이렇게 당하니까 너두 죽어봐~ 그러면서 똑같이 지지고 볶고 하는거여.
바로 염라대왕이 누구냐 하면 자기 업이예요. 옥졸도 자기 업이고.
그러니까 자기 업이 자기를 벌하는거여. 어떤 권한이 있어서 하는게 아니라.
그러면 여러분들이 선한 일을 많이 해서 천상으로 가라고 하는 하나님은 누구냐하면 그것도 여러분의 업이 형상화된거예요.
그래서 불교는 철저하게 누가 내운명을 좌우해서 지옥으로 가~ 천상으로 가~ 이렇게 구분해 주는게 아니라 자기 업이 자기를 천상으로 데려가고 지옥으로도 가게 된단말이예요.
자기 업이 형상화가 되면 천상, 인간, 아수라, 지옥, 아귀, 축생이 된단 말이예요.
우리가 사는 이 세계도 우리 업으로 보는거예요.
저렇게 추녀하고 어떻게 살아?~ 그러는데 그 남편은 좋아가지고 미치고 팔짝 뛰잖아요. 그지?
왜? 업이 끌어 댕기니까.
우리 대학때도 그랬는데 쟤는 누가 데리고 갈라나 했는데 시집 엄청 잘가서 지금은 진짜 잘살아.
자기가 선업을 지었던 파트너를 금생에 찾은거니까. 그러니까 눈에 넣어도 안시리대.
내가 물어봤어. 재미있냐고~~좋대~~
그래서 지옥도 내 업의 형상화, 천상도 내 업의 형상화~ 이렇게 된단 말이예요.
근데 지장경에 보면 전부 다 지옥은 철옹성으로 되어있다~그래요.
그러니까 우리가 의식수준이 낮을수록 고정화가 되는거예요.
그게 전부라고 믿는거예요.
근데 의식수준이 높아지면 그럴수도 있지~.
황희정승한테 물었잖아요.
종이 다른 종하고 다투고 와서 쟤가 나쁜짓 했는데요.하니까 니 말이 옳다.
다른 종이 와서 얘기 하니까 그래 니말도 옳다.
옆에 있던 마나님이 우째 대답이 그래요? 하니까 당신 말도 옳소~(하하)
의식수준이 높아지면 그렇게 바뀐단 말이예요.
그러니까 이거 하나 아니면 안된다가 아니라 전부 확대가 되는거예요.
불교는 아무리 봐도 어려운 부분이 없어.
그런데 인생이 어려운거여. 인생이~`
일단 여러분들이 지어놓은 업에 들어가면 그게 형상화가 돼서 여러분들의 육친=부모, 형제, 처자. 이게 전부 고정된걸로 나와버리는거예요.
그러니까 어떻게 움직일 방법이 없는거예요.
그래서 한사람이 들어가도 꽉차고 여러사람이 들어가도 꽉 찬다는 뜻은 여러분들이 일단 환경이라든지 가족이라든지 형성이 되면
움직여지질 않아요.
엄마 아빠 맘에 안드니까 오늘부터 바꾸겠습니다. 돼요 안돼요? 안돼요.
자녀도 안돼.
내가 저걸 왜 낳았지? 하는데 어쨌거나 안돼.
그렇게 형상화 고착화가 되는거예요.
이게 업이 나오는거예요.
그래서 불교는 자기가 짓고 자기가 받는다는 것이 이런 의미예요.
그런데 내가 지금 착한마음을 먹었어도 그전에 지었던 그 업이 작용하는 동안은 그 환경이 철옹성으로 작용할때가 있는거예요.
그러거나 말거나 여러분들이 꾸준히 오로지 하게 되면 그것도 바뀌게 되는거예요.
요 법우님이 아주 멋진 얘기를 했는데 다른쪽으로 빠지다보니까 얘기를 못했네.
이분이 채식한 이야기는 다음에 기회가 되면 해드릴께요.
그러니까 우리가 기도하는 방법은 몸은 단신정좌, 입은 구무잡언=쓸데없는 얘기하지말고 염불독경 해라.
그리고 의불산란=뜻은 산란하게 하지않는다.
청정한 마음을 갖게 되고 정성스런 마음을 갖게 되고 나 뿐만 아니라 모든 세상이 밝아지기를 원하는 그런 일념으로 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여러분들 운명이 이미 엄청나게 바뀌어 있는걸 느끼게 되는거예요.
그래서 바뀌나 안바뀌나 맨날 그거 점검할 필요없이 꾸준히 오로지 하면 어느날 자고 일어나니까 떠 있는거예요.
정말 세상이 좋아져있고 완전히 바뀌어지는거예요.
이 고착화 되어있는 사대가 바뀌는게 아니라 생각에 의해서 내가 느끼는 업의 감이 달라지는거예요.
그래서 불교에서 지장경이나 모든 경전에서는 업에 의해서 감응하는 세계가 달라진다고 해서 업감(業感) 이렇게 표현하는거예요.
업으로 감응하는 세계가 달라진다.
이거 바꾸는게 굉장히 쉬우면서도 마음 바꾸기가 어려워요.
의식수준이 낮을수록 절대 고정불변으로 지장경에 나오는 것처럼 철옹성이 되는거예요.
그래서 여러분들은 항상 무연대자, 동체대비, 부동대희, 평정대사.
자비희사의 사무량심으로 실천해 나간다면 여러분들이 가는 곳이 어디든지 살아서는 천상락, 죽어서는 극락을 누릴수가 있는거예요.
그래서 많은 불자들이 하루아침에 첫숟가락에 배부를수 없지만 조금씩 조금씩 발전 시켜 나가서 여러분들도 행복하고 성공하고
세상도 행복하고 성공적인 지구 법계를 만드시길 축원합니다.
고맙습니다.
아미타불~~~
그리고 여러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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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나무아미타불()
햇살 법우님의
법보시에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좋은 일이
이어지기를 발원합니다.
아미타불
감사합니다
아미타불()
감사드립니다.
아미타불()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아미타불()
이렇게 눈으로 직접 읽을수 있게 해 주신 햇살님 감사 합니다..
아미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