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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욥 23:10-14)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욥기서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우스 땅에 욥이라 불리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 그에게 아들 일곱과 딸 셋이 태어나니라 그의 소유물은 양이 칠천 마리요 낙타가 삼천 마리요 소가 오백 겨리요 암나귀가 오백 마리이며 종도 많이 있었으니 이 사람은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훌륭한 자라”(욥 1:1-3)
욥기서는 이렇게 끝을 맺습니다.
“여호와께서 욥의 말년에 욥에게 처음보다 더 복을 주시니 그가 양 만 사천과 낙타 육천과 소 천 겨리와 암나귀 천을 두었고 또 아들 일곱과 딸 셋을 두었으며”(욥 42:12-13)
“그 후에 욥이 백사십 년을 살며 아들과 손자 사 대를 보았고 욥이 늙어 나이가 차서 죽었더라”(욥 42:16-17)
처음과 끝만 보면,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전 모든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욥 42:10)
욥은 얼마나 행복한 삶을 살았을까요?
늘 웃음이 있고, 기쁨이 넘치는 복된 삶을 살았을까요?
여러분!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욥기서를 처음 시작했을 때보다, 마지막에, 욥이 갑절의 복을 받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행복한 날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엄청난 시련과 고통이, 욥에게 있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 욥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욥은 아주 신실하면서도 철저한 신앙인이었습니다.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사람이었습니다. 자녀들에게도 신앙훈련을 잘 시켰습니다. 그는 부자였고, 다복했습니다. 아무 근심과 걱정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욥에게 불행이 찾아왔습니다. 모든 것이 하루아침에 무너졌습니다.
모든 재산이 다 사라졌습니다. 7남 3녀나 되는 자녀들이 모두 죽었습니다.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그의 온 몸에 종기가 났습니다. 그는 재에 앉아서 질그릇 조각으로 몸을 피가 나도록 긁었습니다.
욥의 아내는, 고통 받는 욥에게 “그래도 네가 온전함을 지키느냐? 차라리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고 욕을 퍼부었습니다. 욥의 친구들은 욥에게 찾아와서, “하나님께 죄를 지어서 형벌을 받는데, 죄를 회개하지 않는다.”고 욥을 책망하였습니다.
난데없이, 욥에게 찾아온 시련과 고통은, 견딜 수 없는 아픔을 주었습니다.
욥기 23:2절을 보면, “오늘도 내게 반항하는 마음과 근심이 있나니 내가 받는 재앙이 탄식보다 무거움이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반항하는 마음과 근심이 일어났다”고, 욥은 고백합니다.
사람들은 고난을 받을 때, 보통 이런 질문을 합니다.
“왜 나에게 이런 고통을 주십니까?”
“지금 하나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도대체 내가 무엇을 잘못했기에,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합니까?”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며, 저주하고, 하나님을 떠나기도 합니다.
욥도 질문을 했습니다.
“내가 어찌하면 하나님을 발견하고 그의 처소에 나아가랴”(욥 23:3)
욥은 고통 가운데, 몸부림쳤습니다. 하나님께 울부짖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만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찾아도,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는 현실 앞에 더욱 더 몸부림쳤습니다.
“그런데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그가 왼쪽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쪽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욥 23:8-9)
여러분! 욥은 지금 안타까운 심정으로 절규하고 있습니다.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울부짖고 있습니다.
“왜 하나님은 앞에도 안 계시고, 뒤에도 안 계십니까?”
“왜 하나님은 왼쪽에서도 만날 수 없고, 오른쪽에서도 만날 수 없습니까?”
“지금 하나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왜 만날 수 없습니까?”
욥은 쓰라린 가슴을 안고 울부짖었지만, 하나님을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욥은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며 기도하고, 아무리 찾아보아도, 앞뒤, 좌우, 어디에서도 하나님을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여기 있노라”고 속 시원하게, 욥에게 나타나시면 좋을 텐데, 그렇지 않습니다.
아버지 집을 도망치던 야곱에게는, 찾지 않아도, 하나님이 찾아 오셨거만 하나님을 찾고 있는 욥에게는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욥은 하나님을 찾았으나, 만나지 못했습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사 55:6)고 말씀하셨거만, 찾아도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욥은 하나님께 부르짖었으나, 대답을 듣지 못했습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3)고 말씀하셨거만, 욥은 하나님의 응답을 듣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욥은 몸부림치면, 하나님께 부르짖어 보았지만, 하나님을 만나지 못해도, 하나님의 대답을 듣지 못해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끈을 붙들었습니다. 그 끈을 절대로 놓지 않았습니다. 그 믿음의 끈을 끝까지 붙들었습니다. 믿음의 끈을 놓지 않고, 끝까지 붙들어야 합니다.
여러분! 욥은 엄청난 재앙과 고통, 쓰라린 아픔 속에서, 오히려 믿음의 확신을 가지고 아름다운 신앙고백을 했습니다.
첫째, 욥은 “내가 가는 길을 하나님은 알고 계십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10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아멘.
욥에게 왜 이런 어려움이 찾아왔을까요? 왜 재앙이 욥에게 폭포수처럼 쏟아졌을까요?
욥은 왜 이런 고통이 자기에게 찾아왔는지 알지 못하였습니다.
“왜 그 많던 재산을 모두 다 빼앗겨야 합니까? 왜 하루아침에 열 남매나 되는 자녀들이 죽어야 합니까? 왜 내 몸은 병들어야 합니까? 왜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난 것입니까?”
여러분! 욥은 형통할 때, 하나님을 경외했을 뿐 아니라, 자녀들을 위해서도 속죄의 제단을 쌓았습니다. 욥은 오직 믿음으로 살려고 애썼습니다. 악에서 떠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욥에게 고통이 찾아왔습니다. 왜 이런 고통이 그에게 찾아왔는지, 그는 알지 못하였지만, “내가 가는 길을 오직 하나님은 아신다.”고 욥은 고백했습니다.
욥은 “내가 가고 있는 이 길을, 아내도 모르고, 친구도 모르고, 이웃들도 모르지만, 하나님은 내가 가고 있는 이 길을 아신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알고 계십니다.
따라해 볼까요? “하나님은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나는 지금 하나님이 어디 계시는지 모릅니다. 나는 지금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살아온 나의 삶을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을 위한 삶, 교회를 위한 삶, 자녀들을 위한 삶, 다른 사람들을 위한 삶, 그 모든 것들을 하나님은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 하나님을 예배하는 마음, 하나님께 기도하는 마음, 그 모든 것들을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지나온 나의 삶을 다 알고 계십니다. 믿습니까?
하나님은 지금 나의 삶을 다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앞으로의 나의 삶을 다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나에 대하여 모르는 것이 없으십니다.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마음을 아십니다. 하나님의 나의 모든 형편을 다 아십니다. 하나님은 내가 가는 그 길을 다 알고 계십니다.
내가 지금껏 살아온 모든 일과 앞으로 되어질 모든 일들을 다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나에 대하여, 모르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십니다. 하나님은 모두 다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나를 살펴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늘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다윗도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 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 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시 139:1-4)라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은 알고 계십니다.”
저는 여러분을 모릅니다. 여러분도 저를 모릅니다.
지난 일주일 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지난 수십 년을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 수가 있겠습니까? 알 수가 없습니다.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십니다. 모르는 것이 없습니다. 숨길 수가 없습니다. 감출 수가 없습니다. 숨긴다고 숨길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알고 계십니다.”라는 말을 때, 어떤 느낌이십니까?
감시당한다는 느낌입니까?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 하나님이 나를 구석구석 살피신다.”는 이 사실이 부담되십니까? 하나님이 멀리 떨어져 있었으면 좋겠습니까? 하나님이 눈을 감고 있거나, 다른 데를 보고 계시면 좋겠습니까?
“하나님은 알고 계십니다.”라는 말을 들을 때, 큰 위로와 힘이 됩니까?
욥은 하나님을 찾지 못했을지라도,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을지라도, 하나님은 나의 모든 형편을 다 알고 계시리라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그 많던 재산과 사랑하는 자녀들, 그 모든 것들을 모두 다 잃었어도, 욥은 결코 믿음만은 잃지 않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형편이 조금씩 나아지기 보다는, 더 나빠진다 할지라도, 우리의 믿음을 잃어버려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간절히 기도함에도 불구하고, 기도응답이 오지 않아도, 우리의 믿음을 잃어버려서는 안됩니다.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예배함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형편이 어려워지고, 우리의 건강이 나빠지고, 우리의 자녀들이 말썽을 부린다 할지라도, 우리의 믿음을 잃어버려서는 안됩니다. 모든 일들이 우리의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한 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할지라도,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믿음을 버리면 안됩니다.
여러분! 요셉은 꿈을 꾸었습니다. 그는 꿈꾸는 자였습니다.
“우리가 밭에서 곡식 단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창 37:7)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창 37:10)
그러나 요셉은 노예로 팔려갔습니다. 그는 모함을 받았습니다. 그는 감옥에 갔습니다.
노예로 팔려갈 때, 요셉은 자기의 가는 길을 몰랐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 지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는 꿈을 꾸었으나,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보면, 꿈으로부터 점점 멀어지는 삶이었습니다. 형제들로부터 버림을 받았습니다. 형제들로부터 멀리 떨어졌습니다. 감옥에 갇혔습니다. 꿈은 실현 불가능했습니다. 도저히 이루어질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성실하고, 정직했습니다. 그는 순결했습니다. 그는 순종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가 가는 길을 다 알지 못했지만, 하나님은 다 알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와 함께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는 형통한 자가 되었습니다.(창 39:2)
요셉이 꿈을 해석하기 위하여, 바로 왕 앞에 섰을 때, 바로의 꿈 이야기를 다 듣고, “하나님이 그가 하실 일을 바로에게 보이심이니이다”(창 41:25)라고 말했습니다.
요셉은 감옥에 있을 때에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하십니다.”
“하나님은 알고 계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돌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길을 인도하십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힘이 되고, 위로가 되는 말씀입니다.
지금 욥은 고난의 터널을 통과하면서, 욥은 “내가 가는 길을 오직 하나님이 아신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여러분! 사람들은 내 마음을 몰라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의 모든 것을 아십니다. 하나님은 내 마음을 이해하여 주십니다. 내 마음을 알아 주십니다.
욥의 아내는 자기 남편 욥이 저주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욥의 친구들은 욥을 위선자라고 판단했습니다. 책망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욥이 하나님께 큰 죄를 지어서 벌을 받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은 욥을 몰랐습니다. 욥의 형편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의 마음을 알아주지 알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욥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을 붙들었습니다.
11-12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내 발이 그의 걸음을 바로 따랐으며 내가 그의 길을 지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내가 그의 입술의 명령을 어기지 아니하고 정한 음식보다 그의 입의 말씀을 귀히 여겼도다” 아멘.
욥이 지금껏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 수 있습니다.
욥이 고통 가운데 있으면서도,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욥은 하나님의 걸음을 바로 따랐습니다.
욥은 하나님의 길을 지켰습니다. 좌우로 치우치지 않았습니다. 똑바로 걸어왔습니다.
욥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지 않았습니다. 욥은 음식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귀하게 여겼습니다.
욥은 “하나님은 이 모든 것들을 다 알고 계신다.”고 믿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십니다.
여러분! 억울한 일을 당하셨습니까?
큰 재앙을 만나셨습니까?
하루 아침에 살던 집이 잿더미로 변했습니까?
일이 잘 풀리지 않습니까?
기도했는데도 응답이 없습니까?
열심히 건강 관리했는데, 아프십니까?
여러분! 억울한 일을 당하면, 어디에 가서, 누구에게 찾아가서, 도움을 요청하겠습니까?
큰 나무나 바위를 찾아가서, “비나이다. 비나이다.”라고 하소연하시겠습니까?
점쟁이에게 찾아가서,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라고 물으시겠습니까?
억울한 일을 당하면, 그때, 우리는 이런 고백을 해야 합니다.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신다.”
“하나님은 알고 계십니다.”
따라해 볼까요? “하나님은 알고 계십니다.”
여러분! 이 엄청난 재앙 앞에서,
둘째, 욥은 “하나님은 내게 작정하신 것을 이루실 것입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13-14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그는 뜻이 일정하시니 누가 능히 돌이키랴 그의 마음에 하고자 하시는 것이면 그것을 행하시나니 그런즉 내게 작정하신 것을 이루실 것이라 이런 일이 그에게 많이 있느니라” 아멘.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큰 그림을 그리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청사진을 가지고 계십니다.
아파트를 지어 분양하고자 할 때, 먼저 모델 하우스를 공개합니다. 사람들에게 앞으로 지어질 아파트의 모습을 미리 보여 주는 것입니다. 이 방, 저 방을 둘러보면서, 앞으로 어떻게 지어질 지를 살펴 볼 수 있습니다. 이대로만 지어진다면, “참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 마음을 가지고, 분양신청을 합니다.
아파트를 짓기 위하여, 첫 삽을 뜰 때, 허허벌판입니다. 아무 것도 없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집을 지을까?”
허허벌판을 보면, 걱정이 앞설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조금씩 조금씩 아파트 모습이 드러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집에 들어가 살게 됩니다.
여러분! 왜 아무 것도 없는데, 허허벌판인데, 사전에 아파트 분양을 신청하고, 돈을 지불합니까? 믿기 때문입니다. 아름다운 아파트가 지어질 것을 믿기 때문에, 기꺼이 돈을 지불하고, 기다리고 있다가, 마침내 그 집에 들어가 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껏 어떻게 살아왔습니까? 지금 어떻게 살고 계십니까?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시겠습니까?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대로 순종하면 됩니다. 믿고, 그 길을 따라가기만 하면,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우리를 인도하여 주실 것입니다. 생명의 길, 은혜의 길, 축복의 길로 인도하여 주실 것입니다. 믿고 따라가기만 하면 됩니다.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작정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작정하신 것을 이루십니다.”
“그러나 그분이 한번 뜻을 정하시면, 누가 그것을 돌이킬 수 있으랴? 한번 하려고 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고 마시는데,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 많은 계획 가운데, 나를 두고 세우신 계획이 있으면, 반드시 이루고야 마시겠기에 나는 그분 앞에서 떨리는구나”(욥 23:13-15절. 새번역)
바울 사도는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빌 1:7)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일을 작정하셨습니다.
잠언서를 보면, “제비는 사람이 뽑으나 모든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잠 16:33), “주권자에게 은혜를 구하는 자가 많으나 사람의 일의 작정은 여호와께로 말미암느니라”(잠 29:26)고 말씀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작정하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작정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 작정한 그 일을 이루어가십니다.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 많은 계획 가운데, 나를 두고 세우신 계획이 있으면, 반드시 이루고야 마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염려하거나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길을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순종함으로, 그 길을 따라가면 됩니다.
하나님의 작정하심을 믿는 자에게는 결코 두려움도, 장애도 있을 수 없습니다.
신명기 11:25절을 보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밟는 모든 땅 사람들에게 너희를 두려워하고 무서워하게 하시리니 너희를 능히 당할 사람이 없으리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예레미야 33:2절을 보면,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작정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작정하신 것을 이루십니다.”
여러분! 욥은 하나님께서 왜 자기에게 고통을 주셨는지를 알지 못했습니다.
욥은 그 이유를 알고자, 하나님께 부르짖었지만, 하나님의 대답을 듣지 못했습니다.
욥은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신다.”라고 고백했습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이 작정하셨다.”,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그 일을 반드시 이루실 것이다.”라고 믿었습니다.
역사 연구가인 토인비는, “역사를 연구해보니 세 가지를 알겠더라.”고 말했습니다.
“첫째, 아무리 수고하고 노력해도 사람 마음대로 안 되더라. 둘째, 모든 것이 하나님 마음대로더라. 셋째, 현실이란 하나님의 뜻 안에 있기에 의미 없는 시간은 없더라.”
참으로 예리한 통찰입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모든 것이 내 마음대로 되던가요? 내 마음대로, 내 계획대로, 그대로 되어진 일이 별로 없습니다. 모두 하나님 마음대로입니다.
지금껏 살아온 모든 삶에서 무의미한 것은 없습니다. 그 어느 것 하나, 의미 없는 것은 없습니다. 다 의미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세상사가 내 맘대로 안 된다”고 불평하고, 절망합니다.
세상 모든 일은 내 마음대로 안 됩니다. 오직 하나님이 작정하신 대로 됩니다.
여러분! 우리는 욥의 시작과 결말을 다 알고 있습니다. 중간도 다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작정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작정하신 것을 이루십니다.”
욥은 이러한 아름다운 신앙고백을 했습니다.
그가 형통할 때, 이런 고백을 했습니까? 아니면, 가장 고통스러울 때, 이런 고백을 했습니까?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통을 겪고 있을 때, 욥은 고백했습니다.
만약 욥이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불평했다면, 그리고 믿음을 버리고, 하나님을 떠났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결말은 달라졌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우리는 우리의 결말이 정해져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게 되어 있습니다.
결말을 안다면, 그 결말을 향하여 달려가야 합니다.
결말이 불행이요, 비극이라고 한다면, 그 결말을 바꾸려고 노력해야겠지만, 결말이 행복이요, 축복이라고 한다면, 그 결말을 바꾸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지금 가고 있는 이 길이, 힘들고 어렵다 할지라도, 끝까지 가야 합니다.
병들어 아프다 할지라도,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일이 풀리지 않아 답답하여도, “하나님은 아십니다.”라는 믿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염려와 걱정거리가 밀려와도, “하나님은 작정하셨습니다.”라는 믿음으로 그 모든 것들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작정하신 것을 이루십니다.”라는 믿음으로 나아갈 때, 하나님은 우리의 길을 활짝 열어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욥은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고 고백했습니다.
욥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약속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작정의 결과가 어떤 것임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고난이 지난 후에, 자신이 순금 같이 될 것을 믿었습니다.
그릇은 어떻게 만들까요? 흙을 준비합니다. 체로 고운 흙을 골라냅니다. 흙에 물을 붓고, 이겨서, 내리칩니다. 흙 속에 있는 공기를 다 빼낼 때까지, 내리칩니다. 공기를 다 빼내야 좋은 그릇을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릇을 빚은 다음, 그릇에 따라서 700도에서 1300도가 넘는 가마 불 속에 넣습니다. 그 불을 통과해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단단하고, 아름다운 광이 나는 명품이 됩니다.
여러분! 흙은 알고 있었을까요? 흙은 자기가 고려 청자가 되고, 조선 백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을까요? 흙은 몰랐을 것입니다. 흙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토기장이는 다 알았습니다. 토기장이는 깊은 산 속, 어둠 속에 갇혀 있던 흙으로 고려 청자를 만들기로 작정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토기장이는 고려청자를 만들었습니다.
미국 존 홉킨스 의대병원에 휠체어를 탄 한국인 의사 한 분이 있습니다. 한국 이름은 이승복입니다. 그는 “기적은 당신 안에 있습니다.”란 자서전을 썼고, 인간극장에 방영되어 한국에서도 유명인사가 되었습니다. 그는 미국에서 체조선수로 전도 유망한 기대주였습니다. 그는 재미 동포지만, 88서울올림픽에 한국 대표선수로 출전하여, 올림픽 메달을 따기 위하여, 열심히 훈련하고 있었습니다. 너무 꿈에 부푼 나머지 코치의 지시를 어기고, 코치가 없을 때, 운동을 하다가 떨어져서, 7-8번 경추사이의 신경이 손상을 입어서, 하반신 마비에, 상반신도 겨우 움직이는 중증 장애인이 되었습니다. 그는 그 때 하나님을 원망하며, 왜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분노를 품고 살았습니다. 그러던 중에 그는 새로운 꿈을 갖고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재활훈련에 열중하여, 휠체어를 타고 움직일 수 있게 되었고, 이후에 그는 뉴욕대를 거쳐, 콜럼비아대 공중보건학 석사를 마쳤으며, 명문 다트머스대에서 본격적인 의학공부를 시작하여 마치고, 하버드대에서 인턴과정을 수석으로 졸업하였습니다. 그리고 존 홉킨스 의대병원에서 재활의학과 의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는 다치고 나서 처음에는 하나님을 원망했는데, 이제는 자신의 실수로 다친 것을 인정하면서, 하나님은 자신이 다칠 때, 그 모습을 안타깝게 지켜보고 계셨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자기가 다치던 그날, 달려갈 때 하나님께서 왜 자기를 막지 않았느냐고 질문했습니다. 그는 그 질문에 대하여, 스스로 대답을 내 놓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은 자기가 다른 모습으로 사는 것을 보고 싶으셨기 때문”이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오직 올림픽 금메달을 따서, 성공하는 것만 바라보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다치고 나서, 그는 넓게 보면서, 전혀 새로운 아름다운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러분! 염려와 걱정거리가 있습니까?
일이 잘 풀리지 않습니까? 앞이 막혀 있습니까?
답이 안 나옵니까? 답답하기만 하십니까?
그럴 때, 욥의 고백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작정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내게 작정하신 것을 이루어 주십니다. 하나님이 나를 단련하신 후에, 내가 순금같이 되어 나올 것입니다.”
욥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가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자녀들과 함께 행복한 시간들을 보낼 때만 하나님을 믿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욥은 엄청난 고통을 겪었습니다. 사람으로서 겪을 수 있는 모든 고통을 다 겪었습니다. 그러나 욥은 끝까지 믿음을 지켰습니다. 고통 가운데에서, 믿음을 지켰습니다.
“주께서는 못 하실 일이 없사오며 무슨 계획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압니다.”(욥 42:2)
“주님께서는 못하시는 일이 없으시다는 것을, 이제 저는 알았습니다. 주님의 계획은 어김없이 이루어진다는 것도, 저는 깨달았습니다.”(욥 42:2, 새번역)
“주께서는 무슨 일이든지 다 하실 수 있는 분이시므로 주의 계획은 그 어느 것도 좌절될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압니다.”(욥 42:2, 현대인의 성경)
여러분! 욥은 승리했습니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욥 42:5)
“주님이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지금까지는 제가 귀로만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제가 제 눈으로 주님을 뵙습니다.”(욥 42:5, 새번역)
“내 마음 아시죠”라는 복음성가 가사입니다.
나를 지으신 주님 내 안에 계셔 처음부터 내 삶은 그의 손에 있었죠.
내 이름 아시죠. 내 모든 생각도. 내 흘린 눈물을 그가 닦아 주셨죠.
그는 내 아버지 난 그의 소유. 내가 어딜 가든지 날 떠나지 않죠 .
내 이름 아시죠. 내 모든 생각도. 아바라 부를 때 그가 들으시죠.
그는 내 아버지 난 그의 소유. 내가 어딜 가든지 날 떠나지 않죠.
기도합니다.
주여! 답답한 마음을 가지고 주님 앞에 나왔습니다.
염려와 걱정거리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모든 일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주님은 다 알고 계십니다.
주님은 나의 모든 일을 작정하셨습니다.
주님은 내게 작정하신 일을 이루어주십니다.
이 어려움을 통과하고 나면, 내가 순금같이 될 줄 믿습니다.
끝까지 이 믿음의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붙들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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