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많이 들어서, 극에 대해 잘 알아서, 또는 성악에 대해 깊은 조예가 있어서도 아니고, 그저 좋은 것과 싫은 것에 대한 소박한 구별과 내심의 영역 구분짓기 밖에 못하지만, 감히 말하건대 나는 오페라라는 장르를 참 좋아한다. 그저 음악과 극이 함께 있어서 좋고, 한참 집중 될 사이 곡이 끝나버리는 교향곡이나 협주곡같지 않아 적당히 2시간 정도의 여흥을 가능하게 해 주어서 좋고, 음성과 악기가 함께 만나서 좋은 것이다. 하지만 오페라라고 해서 다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대학 시절 밤 지새우며 듣던 이탈리아 오페라에 대한 관심은 이제 완전히 없어졌다 해도 될 정도고, 귀도 짧아서 들은지 10분 이내에 감흥이 생기지 않는 오페라와는 웬만해서는 친구가 되지 못한다. 프랑스 그랜드 오페라나 슈트라우스의 작품들이 그러하다. 내가 좋아하는 영역은 러시아 오페라와 모짜르트의 작품군, 그리고 1년에 한번씩 찾아오는 감상 回期마다의 바그너 악극들, 오직 그 곳에만 머물러 있고 아마 앞으로도 당분간은 그러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내 관심 영역 중에서 가장 소중하게 꼽는 작품이 있다면 바로 모짜르트의 코지 판 투테이다.
>>>모짜르트의 음악은 두 말 할 것도 없이 천상의 경지 바로 그 자체이고 이에는 오페라도 예외가 아니다. 지고의 순결함과 그 무게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깊이가 있는 음악과 인간의 내면을 통찰한 극의 완벽한 조화, 그저 한 소절만 기억해내도 어서 전 곡을 듣고 감격에 젖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작품이 바로 모짜르트의 오페라들이다. 몇몇의 초기 작품을 제외하고는, 특히 이도메네오부터 꼽으면 도저히 논외로 칠 것들이 없다시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마땅히 첫번째 자리를 내 줘야 할 것이 있다면, 나에게 그것은 바로 코지 판 투테이다. 다른 작품들도 물론 좋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서는 오직 코지 판 투테만이 모짜르트의 다른 모든 위대한 오페라 작품을 능가하는 무궁의 특별함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된다.
>>>코지 판 투테. 일견 참 단순한 드라마에 고급스러운 음악을 붙인 별다른 특성이 없는 작품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다. 그럼 작품을 파고 들어가 보자. 6명의 주인공이 있다. 3명은 여자, 3명은 남자.. 배경은 이탈리아?. 그 외에 주어진 것은 무엇인가? 아무것도 없다. 정말이지 아무것도 없다. 모름지기 극은 갈등을 내포한 채로 시작되기 마련이고 모든 오페라도 이러한 공식을 벗어나지 않는다. 피가로의 결혼에서는 백작이 호색한이라는 전제 아래에서 오페라가 시작되고, 돈 죠반니는 악마적인 기질이 초장부터 발휘되며 막이 오른다. 아이다는 노예이고, 리골레또는 곱추이고, 미미는 백혈병 환자이고... 이러한 예는 수 없이 많고, 그러한 오페라들이 위대한 작품의 반열에 오른 이유는 음악이 극에 잘 따라주었기 때문이라고 하면 90% 이상 맞는 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코지 판 투테는 이러한 정형적 특성이 없다. 그저 여자와 남자, 밥 벌이에 신경쓸 일 없는 부자 나리들이 등장했다는 것, 그 외에 극에 대한 정보는 어디에도 없다. 돈 알폰소의 성격은 어떠한가? 장난기가 많은 가벼운 사람인가 아니면, 젊은이들에게 사랑의 기술을 신중히 가르쳐주는 현학적인 진지한 사람인가. 피오르딜리지는 고결하고 지조가 강한 여인인가? 아니면 동생처럼 약지 못해서 자기 감정 하나 제대로 파악 못하고 방황하는 쑥맥인가. 이 질문에 답을 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극에 붙여진 모짜르트의 음악도 답을 줄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모호성은 다른 인물에게도 마찬가지이고, 굳이 성격을 정형할 수 있는 인물이 있다면 데스피나 정도 뿐이다. 이것이 바로 코지 판 투테가 다른 모짜르트의 오페라와 다른 특징이다. 모든 역할은, 음역을 제외하고 그 표현면에서 철저히 개방되어 있다. 그리고 이것은 작품이 철저한 '자유로움'을 지니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코지 판 투테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무엇인가? 등장 인물 6명은 장장 3시간동안 각자 재잘거린다. 로렌조 다 폰테의 대중에 대한 친절한 배려로 각 장면마다 부파에 어울리는 코믹한 장면이 삽입되었지만, 이야기의 본질에 다가가는 것은 그러한 에피소드가 아니라, 주인공들의 '부지불식간'의 심경의 변화이다. '사랑이라는 것은 변화한다. 사랑을 구하는 자에게나, 사랑의 구함을 요구 당하는 자에게나..." 이것은 돈 알퐁소가 밝힌 극 시작의 서문이면서 극을 마무리짓는 결론이기도 하다. 시작의 씨앗이 결론에서 어떻게 꽃 피웠는가를 고려할 때, 엄밀히 말해서 코지 판 투테에는 '극'-갈등-이라는 것이 없다. 그저 등장인물들의 '심리의 변화' 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리고 모짜르트의 음악은 주인공들이 겪는 심리적 변화를 자연스럽게 그리고 있으나 이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청자에게 절대 강제하지 않는다. 코지 판 투테의 진정한 위대함은 여기서 탄생된다. 즉, 모짜르트는 이 단순한 줄거리에 대하여 철저히 가치 중립적인 음악을 붙임으로서 코지 판 투테가 천태만상으로 해석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것이다. 이제, 음악은 음악 나름으로 존재하되 공연/연주의 성패는 모두 연주자와 가수가 얼마나 등장인물에 자신을 동치시켜 심리를 해석해 내는가, 청자가 '사랑'을 이해하고 있는가에 달려있게 된다. 이러한 특징은 다른 오페라들도 지니고 있는 '연주자의 해석 여지'와 비슷하게 생각되지만, 그 유연함 - 분방함의 양이나 질 면에서 비교할 수 없는 차이가 있다. 가령, 코믹한 오텔로나 간악한 초초상, 또는 천성이 긍정적인 돈나 안나는 있을 수 없지만, 호색하고 사악한 페란도-데이비스 판의 게다-와 순결하고 진실된 페란도-마리너 판의 아라이자-, 똑똑하고 지조있는 피오르딜리지-카라얀 판의 슈바르츠코프-와 사물개념이 희박한 바보 피오르딜리지-데이비스 판의 카바예-는 충분히 공존이 가능하다. 돈 알퐁소는 지적이고 고상한 신사-래틀 판의 알렌-일 수도 있고, 꾀만 많은 입방정 가벼운 노신사-뵘 판의 배리-일 수도 있다. 코지 판 투테는 굳이 배경이 18세기의 이탈리아일 필요도 없다. 소비에트 혁명 직전의 러시아면 어떻고, 고대 중국이면 어떻고 잉카제국이면 뭐 어떻다는 건가. 이는 코지 판 투테가 어떠한 문화적 배경, 극적 갈등, 또는 역사적 특수함도 없는 '인류 공통의 순수 규범'만을 그리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고, 이것은 마술피리나 리골레또가 '현대판'으로 변신하는 것이 그러한 해석이 '논리적으로 가능'해서가 아니라 그저 한번 배경의 변화를 줘 보고 싶은 비연관적 '흥미'에 의한 것임과 비교할 때 그 본질을 잘 알 수 있다(리골레또의 경우 시대배경이 달라지면 가사가 개작된다.). 즉, 코지 판 투테는 '사랑'이라는 논제 아래서 청자에게나 연주자에게나 자신의 인생과, 사상, 철학을 무한히 펼칠 수 있는 여지를 주는 아주 독특한 작품이라는 것이다.
>>>청자에게 아무런 심리적 강제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모짜르트의 음악이 무질서하거나 지저분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가? 절대 그렇지 않다. 각 인물의 성격과 극의 흐름은 외부에 개방해 두었으나 극의 본질을 꿰뚫는 '사랑'이라는 감정은 높은 순도로 음악에 녹아있고 이에는 군더더기 하나 없다. 힘으로 강제하지는 않으나 자신도 모르게 음악 속에서 극에 마치 블랙홀처럼 빨려들 수 밖에 없는 것. 즉 외부적 동기에 의해 유발되지 않는 순수한 감동이 있는 것, 이것이 코지 판 투테가 보여주는 위대함의 결정체라 할 수 있다. 또한 피가로의 결혼과 돈 죠반니 이후에 탄생된 작품으로써 그간의 실험의 결과인 듯, 상당한 여유와 진지함이 돋보이면서도 코믹한 장면에서 분위기를 잘 살린 재치를 느끼는 재미도 상당하다. 3시간 내내 코지 판 투테의 음악은 무한하게 고급스럽고, 화려하고, 재미있고, 진중하고도 순수하다.
>>>코지 판 투테에서는 모든 것이 완벽하다. 청자(소비자)로서,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음악이 있다면 그것의 선두 주자는 물론 코지 판 투테이다. 인생의 진리를 알려주면서도 그에 대한 논리 판단과 심리적 변화에 의한 결론 도출을 청자 스스로 하도록 이끌어 주며, 녹음마다 색채가 다를 수 있고 연주의 분위기와 상황이 180도 다를 수 있다. 진정 발품 팔아 음반 컬렉팅을 할 만한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자유로우면서도 너무나도 아름다운 음악. 듣는 이는 찬란한 음악의 수혜를 입는 동시에, 그저 방관자로 '구경'하고 그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내면에서 나름대로의 해석을 통해 오페라 공연을 한편 만들어 낼 수도 있다. 순도 100%로 집약된 무한의 가능성을 펼치는 음악, 코지 판 투테 - 도대체 어디서 이런 오페라를 또 찾을 수 있단 말인가?
◀이거 5,000원짜리 브런치
6월 9일 (월) 10:50 오페라하우스앞 [Così fan tutte (코지 판 투테, 여자는 다그래)]
* 일시: 2008년 6월 9일 아침 10시 50분까지.....* 장소: 대구 오페라하우스 매표소 앞
* 회비: 오페라비 10,000원 + 점심식사대......... * 벙주: 이이토벤 010-6512-2670
* 6월 16일부터 3주간은 L'Elisir d'Amore (사랑의 묘약) 공연있습니다. 자유게시판 10번글 참조하세요, 브런치오페라관람입니다...
* 오페라 보고나서(100분) 점심은 여기서 묵지 말고 따로 식사하러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