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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리만자로 산행기
누가이에 누가이!!!
그 곳 마사이들의 말로 “신의 집”이라는 뜻이다. 해발 5,895m의 아프리카 최고봉, 빛나는 산 킬리만자로! 나는 바로 그 “신의 집“에 발을 들여놓은 60,386번(증명서 발급 기준)째 인간이 되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새로운 세상, 신비로운 자연, 그리고 광활한 우주를 보았다.
1. 출발 전
국내의 산이란 산은 안다녀본 곳이 없다고 자부하는 내가 해외로 눈길을 돌린 지 3년여, 어느 순간부턴가, 킬리만자로라는 이름이 머릿속에서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마치 운명처럼, 킬리만자로가 나를 애타게 부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그때부터 주변 사람들에게 나의 킬리만자로 등반은 기정사실이 되었고, 그런 내게 전염이라도 된듯이 함께 동행 하겠다는 뜻을 밝힌 사람들도 몇 명 생겼다. 하지만 동행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혼자서라도 가겠다는 결심이 선 김에 서둘러 트래킹 전문 여행사를 찾아 예약을 하고, 황열병 예방접종을 하고, 말라리아 예방을 위한 복용약을 준비하는 등 내 나름대로 주도면밀하게 킬리만자로행에 필요한 준비를 해나갔다.
2. 8월13일~14일 드디어 출발하다 (인천~방콕~케냐나이로비~탄자니아)
어제까지 억수같이 퍼붓던 장마가 오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전형적인 여름 복더위로 바뀌었다. 처음에는 함께 가자던 친구들도 이런저런 사정으로 하나 둘 떨어져 나가더니 결국은 나 홀로 출발이다. 그래서인지 집을 나서는 순간 갑자기 고독하다는 것이 이런 기분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와서 번복할 수도없는 일이고, 그럴 마음도 없기에 다시 한 번 각오를 다지고 공항으로 가는 길을 재촉해보지만 그래도 아프리카까지의 먼길을 혼자라는 외로움은 어쩔 수가 없는 모양이다.
인천국제공항에서 처음으로 만나게 된 우리 팀은 나를 포함해 모두 12명.
산악회 회원일행이 5명, 부부 1쌍에 대구에서 왔다는 일행 2명, 그리고 나와 같은 개인자격 참여자가 2명... 흥미로운 것은 60대 초반의 나이가 2명에 70대 참여자도 1명 있었다는 점이다. 내 나이 운운하며 이번 산행에 부정적이던 아내에게 보여주고 싶은 장면이다. 나머지 팀원들의 나이는 50대 초반에서 후반대로 골고루 나뉘어져 있다.. 남자가 7명 여자가 5명.생면부지의 사람들... 하지만 서로 같은 취미를 가진 인연들, 그리고 지금부터는 죽으나 사나 함께 해야 할 동반자들이다. 모두들 산꾼 냄새가 물신 풍긴다.
17:35분 비행기가 인천공항을 이륙하면서 킬리만자로에 대한 기대와 고소증세에 대한 걱정들로 머릿속이 가득하다. 말 그대로 설렘 반, 걱정 반이다.
20:45분(한국시간 22:45) 방콕 도착.
나이로비행 비행기 탑승을 위해서는 황열병 예방주사 확인증이 반드시 필요하다.
14일 00:30(한국시간 02:30) 방콕을 출발, 길다 못해 지루하기 짝이 없는 비행 끝에 06:20(한국시간 12:20분) 아프리카 나이로비 공항에 도착했다. 장시간의 비행 탓인지 입국수속부터 짐을 찾는 과정까지의 과정이 무질서한 탓인지 짜증이 가실 줄을 모른다.
날씨는 의외로 덥지 않았다. 아프리카는 무조건 뜨거운 날씨만을 떠올렸던 내 선입견이 살짝 빗나갔다.
나이로비가 케냐의 수도라고는 하지만 허름해 보이는 빌딩들, 사람들의 남루한 옷차림, 인도와 중앙선의 구분조차 없는 도로에 자욱한 흙먼지와 눈이 어지러울 정도로 난립해있는 간판들 그리고 낡은 자동차들......
07:50 나이로비공항에 내린지 1시간이 더 지나서야 대기 중이던 20인승 버스에 올라탈 수 있었다. 킬리만자로가 기다리고 있는 탄자니아를 향해 사막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국도 위를 하염없이 달리기 시작했다. 국도라고 하지만 중앙선도 없고, 포장도로 비율도 50%밖에 되지 않는다. 국도 옆으로 띄엄띄엄 지어져있는 집들은 흙먼지를 잔뜩 뒤집어쓰고 있다. 반나절만 지내보래도 견디기 힘들 것만 같은 자동차 매연과 흙먼지 속 도로가에 앉은 사람들은 뭔지 모를 음식들을 먹고 있다. 전후 우리나라 60년대의 모습을 보는듯하여 마음이 아프다. 언제쯤 저들도 우리만큼 잘 살 수 있을까.
키는 크지만 홀쭉하게 마른 사람들은 남녀 모두 망토 같은 것을 입고 가늘고 긴 지팡이를 들고 다닌다. 말로만 듣던 마사이족인가 보다.
11:00 끝없이 펼쳐진 것만 같던 사막을 가로질러 케냐와 탄자니아 양국 간 국경에 도착했다. 국경이라고는 하지만 이건 마치 시골장터 같다. 평소 알고 있던 국경의 이미지와 사뭇 다른 모습이 흥미로워 사진 몇 장을 찍었다가 경비대에 의해 바로 삭제할 수밖에 없었다. 보는 사람의 느낌이 어쨌거나 국경인지라 보안 상 사진촬영은 할 수 없는 모양이다.
망망대해처럼 끝이 없어 보이는 사막은 최근 들어 특히나 비가 오지않아 초원은 메마르고 사람은 물론 야생동물들조차 고생이 심한 듯하다.
길고도 먼 길... 흙먼지 속을 달리고 또 달린지 7시간여...
16:00 겨우 숙소인 모시호텔에 도착했다. 황량한 벌판 한가운데 서있는 2층 건물인데, 호텔이라기보다는 우리나라의 펜션 정도의 시설이다. 호텔 울타리 안은 오아시스와도 같이 많은 나무숲에 수영장까지 있는 반면 울타리 밖은 곧바로 사막과 다름없다. 간간히 부는 바람에 일어나는 흙먼지는 울타리 안까지 밀려들어올 지경이다.
아프리카에서의 첫날밤이라 그런지 감회가 새롭다.
3. 8월15일(토) 등산1일차 (마랑구 게이트(1980m)~ 만다라 산장(2720m)까지)
건조한 기후와 여독 탓인지..목과 입안이 바짝 말라 들어가 물을 마시기 위해 밤새 일어났다 누웠다를 반복해야했다.
여유 있는 발걸음으로 호텔을 나서서 11:00 경 그토록 그리던 킬리만자로의 입구인 마랑구 게이트에 도착했다. 입구라고 하지만 이미 해발 1,980m, 집을 출발해서 52시간만에 이제 겨우 출발선에 서게 된 셈이다.
포터들과 상견례를 마친 뒤 짐을 맡겼다. 각자 1인당 배정된 포터들에게 맏길 수 있는 카고 백의 무게는 최대 15kg이다. 포터들은 단순한 짐꾼이 아닌 엄연한 동반자의 개념이기 때문에 무작정 많은 짐을 지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의 배낭 무게는 줄이고 또 줄인 결과 대략 10kg 정도... 포터들까지 가세하고 나니 어느새 50여명 가까이 되는 대 행렬이 되었다. 우리를 도와줄 가이드인 셀파가 3명, 쿠크 4명, 포터가 30여명...그리고 우리 대원 12명과 국내 가이드 1명까지...
아프리카의 열대우림 탓인지 추위가 느껴진다. 입산신고 준비를 하는 동안 모두들 윈터자켓을 입고 신발끈을 새로 매고, 스틱을 꺼내 준비하는 등 모두들 긴장한 모습이 사뭇 비장해보이기까지 하다. 약간의 구름이 낀 것이 등산하기에는 아주 제격이다. 모두 한 자리에 모여 등정의 성공을 위해 파이팅을 외치고 11:40, 드디어 마랑구 게이트를 통과하면서 비로소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었다.
오늘의 목적지는 해발 2,720m에 위치한 만다라 산장.
열대 관목림 사이로 이름 모를 새들의 지저귐 소리와 바람에 하늘거리는 꽃들의 향기 속에 약간은 촉촉하고 이슬이 맺힌 수풀 속을 걷다보면 마치 삼림욕이라도 하듯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상으로나 인원, 물자 상으로 보나 충분히 여유있는 산행임에도 불구하고 대원들 12명 모두 서로간의 간격이 조금이라도 벌어질까 한 덩어리가 되어 종종걸음을 걷고 있는 모습을 보면 역시나 다들 불안감과 긴장감은 숨길 수가 없는 모양이다. 완만한 경사길을 2시간여쯤 걸어 해발 2,360m 위치에 도착, 준비해간 도시락으로 점심을 해결하고서야 조금씩 적응들이 되는 듯 얼굴에 생기가 돈다.
점심을 먹고 잠시 휴식을 취한 뒤 현지 셀파들의 뽈래~뽈래~ 소리와 함께 너무 느려 답답하다 싶을 정도의 속도로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뽈래~는 천천히 라는 뜻이라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의 빨리빨리와 비슷한 발음이면서도 뜻은 전혀 다르다는 점이 재미있다. 고소증세에 대한 적응에다가 오랜 시간을 걸어가야 하는 일정에 신체를 무리없이 적응시켜 등정의 성공률을 높이기 위한 배려라고 한다.
현지 가이드 한명이 일행 후미에서 걷고 있는 내게 다가와 말을 걸어왔다. 이름이 ‘하비부’라고 소개한 그는 자신이 친구가 되고 싶다며 킬리만자로의 노래를 가르쳐주었다.
쟘보~ 쟘보 바나~
하바리 가니 인수리 사나~
바게니~ 와까리 비샤~
킬릴만자로
하꾸나마 따따
랜다~ 뽈래 뽈래
하꾸나마 따따
킬리만자로 킬리만자로
리마~ 래뿌사나
애왼 요까 애왼 요까
보나와니 중구까
와따까 곤니라 야마
와니 중구까
와따까꾸 릴라 야마
단순한 음절이다. 환영의 뜻임과 동시에 마치 큰 뱀이 똬리를 틀듯 굽이굽이 자리잡은 킬리만자로지만 천천히 오르면 문제없다는 내용인 모양이다. 3번이고 4번이고 반복해서 노래를 배우며 걸음을 계속 옮기기를 4시간여, 16:15 해발 2,720m 높이에 위치한 만다라 산장에 무사히 도착함으로써 첫날 산행을 마감했다.
정글 속이긴 하지만 만다라 산장이 있는 자리는 하늘이 뻥 뚫려있다. 산장은 총 20여 채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데 각 산장은 방 한가운데를 막아서 3인 1실로, 총 6명이 한 채를 사용하게끔 만들어져있다. 다소 비좁긴 하지만 텐트에서 자는 것보다야 훨씬 깨끗하고 여유가 있다. 태양광을 이용한 축전지로 형광등을 밝혀 어두워서 불편할 일도 없다. 쿠크들이 만들어준 한국식 밥에 김치찌개로 식사를 마쳤다.
좋았던 일기가 저녁부터 옅은 안개에 휩싸이는가 싶더니 어느새 약한 가랑비까지 내리면서 영하의 날씨로 변해 제법 쌀쌀하게 느껴졌다. 여름 복장에서 가을 옷, 바지로 갈아입은 뒤 상체에 겨울 파카를 걸치고 바라크라바로 모자를 대용해서 최대한 열손실이 없도록 해 고산증세에 대비했다.
어느새 시각은 21:00, 일행들 모두 하나, 둘 씩 킬리만자로의 품속에서 잠을 청하고 있다.
8월16일(일) 등산 2일차 (만다라~ 호롬보 산장3780m)까지)
물이 바뀐 탓인지 간밤에는 배가 아파 잠을 설쳤다.
긴 여행으로 인한 피곤함에 입속도 계속 바짝 말라붙어 입안이 까칠하다.
다행히 아직은 고소증세는 느껴지지 않는다. 긴 기지개와 함께 간단한 스트레칭을 통해 몸을 추스르고 식사를 한 뒤 08:10분경, 호롬보 산장을 향해 출발했다
30분정도 걸어가니 밀림지대에서 서서히 너덜 지대로 바뀌기 시작하며 눈 앞으로 하늘이 열린다. 마운디 분화구를 지나자 허리춤 높이의 이름 모를 작은 나무들과 꽃들, 그리고 그 너머로 앞이 탁 트인 산 구릉들이 시원하게 다가온다. 첫날과 같이 완만한 경사면을 따라 느릿느릿 “뽈래~ 뽈래~”를 외치며 여유 있는 산행...
화산재로 이루어진 산이라 올라가는 길이 온통 먼지투성이다. 앞사람이 걸어가면서 일으키는 먼지가 얼마나 심하게 피어오르는지 뒷사람은 뒤따라 걷기에도 불편할 정도이다. 그나마옆쪽에서 바람이 불어주면 먼지가 무릎 아래로 깔리면서 숨이라도 좀 쉬지만, 그렇지 않을 때에는 먼지와의 사투를 벌여야 한다.
흙먼지를 헤치고 겨우 너덜지대에 올라서니 저 멀리 희미하게 머리에 흰 눈을 뒤집어 쓴 킬리만자로의 모습이 잠시 보인다 싶더니 이내 수줍은 듯 구름 속으로 자취를 감추어 버린다.
킬리만자로는 스와힐리어의kiliman(산)과 마사이어의 jaro(물의 원천)의 합성어이다.
1889년 독일의 지리학자 한스마이어가 처음으로 정상에 오르고 난 뒤 어느새 20여년, 지금도 오르기가 만만치 않은데 그 당시의 열악한 상황을 짐작해보면 그의 도전이 존경스럽지 않을 수 없다.
12시가 넘어가면서 조금씩 피로가 쌓임을 느끼기 시작했다. 4시간을 넘게 걸었음에도 아직 보이지 않는 호롬보산장은 얼마나 더 가야 할지조차 알 수가 없다.
13시경 높이 해발3300m 에 있는 점심 장소에 도착, 샌드위치와 빵, 토마토 한쪽, 탄자니아 스프로 대충 점심을 해결했다. 가끔씩 작은 구름들이 햇빛을 가린다. 바람도 살랑거리면서 기온이 약간씩 떨어짐이 느껴진다.
서서히 고소증세가 오려는지 머리가 조금 어지럽고 식욕도 점점 잃어가는 듯해서 기분이 별로 좋지 않다.
식사를 마치자 다시 같은 패턴의 길을 하염없이 걸어 올라간다.
배낭 끈이 내 어깨를 조이기 시작한다. 조금만 긴장을 풀면 뒤로 넘어가버릴 것만 같다. 뽈래~ 뽈래 하면서 느린 속도로 걷는 것도 이제 조금씩 힘들어진다. 이젠 대열도 한 덩어리로 모여서 걷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의 컨디션에 따라 200m에서 300m 까지 떨어져 삼삼오오 걷고 있다. 이 넓은 산 속에서 걸음을 옮기고 있는 사람은 오로지 우리들뿐이다.
16:00시경 그다지 높지 않은 산 등성이를 올라서자 눈 아래로 호롬보 산장(3780m)이 펼쳐졌다. 호롬보산장 주위의 "세네시오킬리만자로"의 군락, 저멀리 하얀 눈을 보석처럼 뒤집어 쓴 킬리만자로의 선명한 모습과 마웬지봉, 그리고 발 아래로 펼쳐진 환상적인 운무들을 보는 순간 모든 피로가 씻기듯이 사라지는 것만 같다.
어느 틈에 이렇게 높은 곳을 올라왔는지 한발자국, 한발자국의 땀과 노력으로 이루어낸 성과이기에 나 자신이 자랑스럽고 대견스럽기만 하다.
이런 끈기와 열정이면 할 수 없는 일이 없을 것이라는 용기와 힘이 새롭게 생기는 것 같다.
모두들 주위의 환상적인 경관에 탄성을 지르며 즐거워하는 것이 흡사 축제분위기이다.
저녁식사는 탄자니아 스프에 카레라이스이다. 탄자니아 스프는 먹을 만한 듯 보이지만 고소증세가 조금씩 오는 탓인지 카레는 영~ 맛을 느낄 수 없다. 그래도 먹지 않으면 버틸 힘이 없을 것임을 알기에 밑반찬과 함께 억지로 조금 먹은 뒤, 고소를 이기기 위해 다이나막스 반 알을 먹었다.
시간이 갈수록 고소증세가 심해지는 것 같아 고소 체크 테스트기로 측정했더니 역시나 수치가 60대로 나온다. 그다지 좋지 않은 상태이다. (50대 수치는 하산 권장수치, 70대 수치는 거의 정상)
갑자기 모두들 탄성을 연발한다. 나도 모르게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순간 그렇게나 많은 빛나는 별들이 있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은하수가 선명히 보이는 하늘은 보면 볼수록 더 많은 은하수가 다가온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하늘엔 별이 없는 공간이 없다.
한마디로 하늘에 온통 별들의 光잔치 라고나 할까?
쏟아지는 별들의 모습을 소중히 간직 하고픈 마음에 카메라에 담아 보려하였지만 실력이 없는지 카메라가 시원찮은지 도통 잡히질 않는다. 한참 카메라를 들고 실랑이를 벌이다가 결국 아까운 밤하늘을 두고 잠자리에 들었다.
8월17일(월) 3일차 고소적응일(호롬보 산장~제브라록 근처(4200m)까지)
느즈막히 식사를 마친 뒤, 09:00 마웬지봉(해발 5,180m) 쪽으로 방향을 잡고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한다. 고소적응을 위해서라고 한다.
킬리만자로의 노래 속에 뱀이 하늘을 삼킬 듯 입을 벌리는 형상의 산세, 특히 산의 정상인 우후르피크봉과 마웬지봉은 뱀의 위턱과 아래턱을 상징한다. 마웬지봉은 여러 개의 봉우리가 날카롭게 솟아 있는 것이 마치 뱀의 날카로운 이 같다. 높은 구름들이 오가는 사이로 봉우리가 나타났다 사라지는 순간순간의 모습들이 장엄하고 경이로울 뿐이다.
이틀째 계속되는 산행은 느린 속도 덕분에 부담이 덜하긴 하지만 지루하기는 첫날과 다를 바 없다. 11시가 되면서 조금 힘들다 싶더니 어느새 해발 4,000m 높이의 제브라록이다. 제브라록은 얼룩말 무뉘와 같다고 하는데 신기하게도 큰 바위 일부분이 완전히 얼룩말 뒷다리와 너무나 닮았다....
잠시 쉬었다가 제브라록을 돌아 제법 경사가 가파른 길로 접어든다. 상당한 급경사인 탓에
곧장 오르는 것을 포기하고 좌우로 지그재그 걸어야 했다. 킬리만자로의 정상에 오를 때 코스의 축소판이라고 한다.
한낮시간인데다 햇빛도 제법 강렬하여 뽈래 뽈래 걸음걸이가 딱 알맞다. 쉬는 틈에 간식을 먹은 때문인지 오르는 걸음걸이가 제법 힘이 든다. 내일은 이런 길을 7~8시간 정도 더 걸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살짝 겁도 난다.
30~40분정도를 더 걷고 나서야 비로소 능선(해발 4200m)에 올라설 수 있었다. 멀리 킬리만자로 정상 우후르피크봉이 보여야 하나 지금은 완전히 구름속으로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주로 낮 시간에는 구름 사이로 모습을 감추고 있다가 이른 새벽에야 겨우 모습을 보이는 모양이다. 비록 킬리만자로와 마웬지봉 주위는 하얀 구름으로 살짝 가려져 있지만 그 위로 보이는 하늘은 우리나라의 높은 가을 하늘처럼 청명하기만 하다.
멀리 발아래로 낮은 구름이 솜털처럼 깔려 있고 우리 주위는 허리정도 높이의 낮은 나무들이 각기 다른 모습들을 하고 적당히 배열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이름 모를 새소리 까지 어우러져 마치 무릉도원이 있다면 이 곳이 아닐까 싶을만큼 환상적인 분위기이다.
주위에 사람이라고는 우리 일행들 밖에 없는데다 오늘 산행의 마지막 코스라고 생각하니 마음의 여유까지 생겨 춤을 추듯 나긋나긋한 발걸음을 옮기니 어느새 호롬보에 도착, 시각은 어느새 13:00, 라면과 밥으로 점심을 해결했다.
우려했던 고소증세도 사라지고 간밤에 잠을 설치게 했던 배탈도, 어깨를 천근만근 누르던 피로도 어느 정도 회복된 것이 오늘은 기분이 좋다.
8월18일(화) 4일차 긴장되는 날 (호롬보산장~ 키보 산장(4700m)까지)
오늘도 어김없이 배탈과 고소증을 이기기 위해 지사제와 다이나막스 반쪽을 먹은 뒤, 08:10 목적지인 키보 산장(해발 4700m)을 향해 출발한다.
입이 마르는 것 외에는 다행히 컨디션에 별다른 문제가 없다. 오늘과 내일 이틀 동안 연이어 장시간 산행해야 하므로 한발 한발에 정성을 다 한다는 각오를 다진다.
올라가는 속도는 역시나 뽈래 뽈래..
저 멀리 하얀 눈을 뒤집어쓰고 그 뒤로는 하얀 구름을 휘날리고 있는 킬리만자로의 선명한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마치 사자가 용맹스럽게 내달리는 모습처럼 보인다.
앞으로 15시간여를 더 걸어야 저 하얀 눈 위를 밟아볼 수 있다. 과연 성공적으로 등정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에 긴장감이 가슴을 조여온다.
09:30 물이 있는 곳으로는 이제 마지막이라는 라스트 워트 포인트(해발4030m)에 도착했다.
주위는 황량하기 이를 때 없는 산악사막지대로 높은 구름까지 오락가락하며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조금씩 추위를 느끼게 만든다.
고소적응기간도 없이 어제 산을 올라갔던 경찰대 학생 2명이 등정에 성공하고 내려온다. 완전 녹초가 되었다지만 만면에 웃음이 가득한 채 자신들의 성공을 자랑하는 모습이 부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과연 내가 성공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에 마음이 어지럽다.
10:40 해발 4120m 높이의 마웬지 리지(mawenzi ridge), 낮은 구름으로 인해 시계도 좋지 않고 주위의 분위기마저 음산하게 바뀌면서 기온이 뚝 떨어지는 것을 느낀다.
윈터 자켓을 꺼내어 입고 몸을 움츠린 채 계속 걷는다.
12:00 찬바람을 막아 줄 수 있는 바위가 많은 곳을 찾아 바위를 등지고 차갑게 식은 도시락으로 점심을 해결한다...영하의 날씨는 아니지만 그래도 대략 영상 5도 내외의 낮은 기온......주위도 이제는 나무도 없고 풀밖에 없는 황량한 분위기에 사방이 온톤 단단한 모래사막 뿐이다.
피로와 고소증세로 식욕이 없을 뿐만 아니라 날씨도 춥고 주변 경관도 황량하여 모두들 허겁지급 대충 허기만 지운다. 하늘에서는 어린아이 하나쯤은 거뜬히 채갈 수 있을만큼 덩치 큰 까마귀가 주위를 맴돌며 사람들이 남기고 갈 지 모르는 음식 찌꺼기를 노리고 있다. 찬밥을 먹은 탓인지 몸은 더욱 떨려오고 급기야 손까지 시려온다.
모두들 긴장감과 음산한 분위기에 압도 된 탓인지 묵묵히 산행을 계속한다.
산을 오르는 동안에도 계속 날씨는 추워져 아웃도어를 꺼내 입고 동절기 장갑으로 무장했는데도 한 번씩 바람이 불어올 때면 얼굴이 얼얼하다. 고산에서는 일기의 변화가 급격하다고 하더니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이었나 싶다. 이럴 때 보온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심한 고소증세에 시달리게 되고 부득이 하산을 해야만 하는 경우도 생기게 마련이다.
이젠 정말 풀 한포기도 보이지 않는 사막 길, 모두들 누적된 피로 탓에 뿔뿔이 흩어진 채 말없이 발걸음을 옮긴다. 시각은 어느덧 14:00, 6시간이 넘게 걸었으니 지겹다고 느낄만한 시간이다. 그 때 드디어 저 먼 구름 사이로 희미한 모습으로 다가오는 키보산장(해발4700m)의 모습......
모두들 키보산장의 모습이 반갑기 그지없지만 너무 지친 탓인지 웃음을 보일 여유는 없는 모양이다. 그래도 예상했던 것보다 일찍 도착한 덕분에 밤12시부터 시작될 마지막 산행을 위한 회복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게 되어 다행이다.
그리 늦은 시간은 아님에도 눈 앞 가득한 안개와 추위 탓에 한밤중인 것만 같다. 조금 이따
24시부터 올라가야하는 길을 올려다보니 가파른 경사에 무너진 화산재로 이루어진 길이라 결코 쉽지 않겠다는 느낌에 다시금 긴장이 된다.
산장 내부에 들어 가보니 4개정도의 방이 있고 방마다 여러 개의 2층 침대가 있다. 방이 제법 커서 방 하나에 우리 일행이 다 들어갔다. 침대 2층의 높이가 무척 높은 편이라 각자 편안한 아래층을 차지하려고 잠시 침대 쟁탈전을 벌이느라 어수선 하더니 이내 모두들 자리를 잡았다. 나는 키가 크다는 이유로 2층으로 올라갔다.
물론 난방이 되지 않는 산장이라 추워서 얼른 동절기 내복을 위아래로 입고, 겨울 남방에 우모복까지 걸치고 따뜻한 차를 한 잔 마신 후 주위를 돌아보니 모두들 야간산행 준비로 부산을 떤다.
고소증세가 다시 시작되려는지 온 몸에 힘이 빠지고 맥이 없다. 급하게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고소 증세가 심하게 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얼른 침낭에 누워 잠을 청한다.
보기에도 아찔할 정도의 가파른 경사면을 올라야 한다는 압박감과 제법 매서운 추위 탓에 잠이 쉽게 들지 않을듯했지만 워낙 몸이 피곤한 탓인지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17:00 저녁식사 시간.. 잔뜩 껴입고 잔 것 같은데 이제 막 자다가 일어난 탓인지 한기가 몸속까지 느껴진다. 건조한 날씨 탓에 코가 계속 막혀 입으로 숨을 쉬어야 해서 식사를 하는 것이 힘들다.
고소증세로 입맛도 없지만 등정성공을 위해서는 억지로라도 먹어야 한다는 생각에 꾸역꾸역 입속으로 밀어넣는다. 이럴 땐 먹는 것도 고역이다. 결국 한 그릇을 다 비웠다.
그나마 우리일행 중 먹었던 음식을 되새기는 사람은 없으니 다행이다.
일행 중에는 자신은 체력이 많이 떨어진 상태라 더 이상 무리하여 산에 오르지는 않겠다며 마음을 비운 사람도 나타났다. 가파른 급경사면을, 그것도 밟으면 밟는 족족 미끄러지는 토사면을 지그재그로 몇 시간씩 올라야한다는 생각에 사람들의 분위기는 날씨만큼이나 무겁기만 하다.
대충 장비 점검이 끝나자 체력회복을 위해 모두들 침낭 속으로 다시 들어가 조금이라도 더 편하게 휴식을 취한다.
23:00 몸을 일으켜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 24시가 되자 마지막 정상을 향한 도전을 시작한다...... 역시 모두 말들이 없다. 낙오자가 되지 않기만을 마음속으로 비는 것일까?
8월19일(수) 5일차 정상을 향하여(키보산장~ 우후르피크(5895m)~ 키보산장~ 호롬보산장)
칠흑 같은 어두운 밤 속으로 모두들 각자의 랜턴에 의지한 채 찬 바람속으로 내몰렸다......
드디어 신비의 세계, 1년을 꿈꾸어 왔던 킬리만자로의 정상에 도전하는 날이다.
처음부터 급경사면을 오르기 시작한다..
옷을 잔뜩 껴 입은데다 벙어리장갑 안에 일회용 손난로를 하나씩 넣어 채비를 한 덕분인지 추위는 거의 느낄 수 없다.
뽈래..뽈래.. 설악산 오색에서 정상으로 오르는 듯한 경사면에..화산재로 부스러진 돌과 먼지를 딛고 생각했던 것보다는 짧게 느껴지는 지그재그 길을 랜턴 불빛에 의지하여 앞사람의 발만 보고 줄지어 오른다..
끝도 없는 급경사면을 오른다.
후(내쉬고)~아(마시고)~ 후~ 아~ 할 때마다 한발자국씩 진행한다. 여지껏 살아오면서 올랐던 다른 산행과는 차원이 다르다. 다른 팀들이 있어 함께 어울리는 것도, 뒤섞여 어지러운 것도 아니다. 저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또 다른 불빛들을 제외하면 지금 이 주변에서 산을 오르고 있는 것은 오직 우리 팀뿐이다.
먼지 냄새가 난다. 거친 숨은 턱까지 차오른다. 이따금 발이 미끄러질 때면 온 몸에 힘이 쑥 빠진다. 휴식을 취하는 간격이 점점 짧아진다. 50분 걷다가 5분 휴식이 어느새 40분에 5분 휴식이 되더니 이내 30분에 5분휴식......
4시간여를 걸어 최초로 킬리만자로의 정상에 오른 등산가의 이름을 딴 한스마이어 동굴에 도착했다. 이제 시계를 보는 것조차 힘들고 귀찮다.
체력의 차이를 감안하여 잘 갈수 있는 조, 중간 조, 마지막 조로 구성했다.
내 페이스를 유지하기 위해 마지막 조에서도 제일 뒤에 섰다. 또 다시 랜턴의 대열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같은 팀원들 모두 기력들이 대단하다. 먼저 출발한 1번조의 랜턴이 점점 멀어진다.
그런데 나는 점점 더 힘들어 진다. 숨 쉬는 방법을 달리 해야 했다. 후 아 후~ 에 겨우 한발 전진이다.
웬 놈의 꼭대기가 그리도 먼지, 머리를 들어보니 1번조의 것으로 보이는 랜턴 불빛의 높이가 까마득하다.
호흡과 발만 잘 맞추면 중도포기할 일은 없겠지 생각하면서도 평소에 열심히 훈련한 호흡법이 흐트러질 정도로 힘들다. 이따금 호흡이 흐트러질 때면 숨을 다시 고르기에도 많은 시간을 빼앗겨야 했다.
몇 시간이나 걸었는지...... 어느 틈엔가 주위가 서서히 밝아지기 시작했다...... 벌써 1,2조는 사라지고 마지막 조 두세 사람만 내 앞에서 걷고 있다.
06:30 킬리만자로 분화구 끝자락인 길만스포인트(해발 5,685m) 바로 아래에 도착, 문득 뒤를 돌아보니 붉은 해가 구름위로 솟아오르고 있다. 숨도 고를 겸 카메라를 꺼내 몇 장 담아봤지만 구름위로 비추는 햇살이 너무 강렬해 눈이 부신데다 사진도 설악산에서의 일출만 못하다.
길만스포인트에 가까스로 올라선 뒤에는 완전 그로기 상태다. 한발작도 움직일 수 없을 것만 같다. 주위의 경관을 둘러볼 여유는 어디쯤에 흘리고 왔는지 알 수가 없다.
마지막 조에서 내 앞을 걷던 여자 3명은 여기까지의 산행에 만족하고 미련 없이 하산하기로 결정했다. 나도 함께 하산하고픈 유혹을 느꼈지만 그래도 주위 사람들에게 큰소리 친 것이 있는데...... 등정을 성공해야 한다는 마음이 더 강렬했다.
사진 몇 장 찍고는 도저히 떨어지지 않을것만 같은 발걸음을 억지로 옮긴다.
선두는 물론 이제 내 앞에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현지 셀파 1명만이 내 뒤를 따라오고 있다. 그나마 그 뒤 역시 아무도 없다.
앞으로 200m의 고지를 더 올라야 한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하다. 사투! 이럴 때 사용하는 말인가?
구름 속이라 바로 코앞도 잘 보이지 않는다. 다행히 지금부터는 평지에 가까우리만치 완만한 오름세라 조금 더 힘을 내서 발걸음을 내딛는다.
바람이 더욱 차가워졌다. 분화구 가장자리를 돌아서 올라가는 관계로 바람을 막아줄 만한 것이 전혀 없다. 쌀쌀한 날씨 탓으로 서리가 내려 주위가 온통 하얗다.
우모복을 뒤집어쓰고 뿌연 구름 속을 하염없이 걷는다.
금방 도착 할 것 같더니 오르고 또 올라도 끊임없는 오름의 연속이다. 200m 고지라더니 2,000m 느낌이다. 앉아서 쉴 곳도 없다. 그 자리에 바로 주저 않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걷기를 멈추고 서서 몇 번이고 숨 고르기를 하면서 다음엔 죽어도 오지 않겠다는 다짐도 해본다. 하지만 그 다짐은 지금 뿐 이란 것은 누구보다 내가 더 잘 안다.
산도 마약처럼 중독성이 있다.
지난 번 힘들었던 키나바루(해발4,095m)와 앨버로즈(해발5,640m)를 생각하면 이 곳 킬리만자로는 절대 와서는 안되는 곳이었다. 하지만 지금 나는 어디에 있는가? 결국 또 다시 오르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40~50m 앞만 겨우 보이는 구름 속을 얼마나 더 가야하는지도 모른 채 꾸역꾸역 걸어 올라간다. 앞서간 1진이 옆을 지나쳐 내려간다. 등정에 성공했음에도 모두들 기진맥진한 탓인지 그 흔한 인사말들도 없다. 곧이어 2진도 내려왔다. 상태는 1진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이젠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면서도 멀어도 너무 멀다는 생각에 짜증이 난다.
희미한 구름 속에서 희망이 아스라이 보이는 것 같다.
마지막 안간힘을 써본다. 말 그대로 젖 먹던 힘까지 내서 걸음을 재촉한다.
오로지 시간과의 사투.......
8시경 저 앞쪽에서 두런두런 사람소리가 들린다. 순간 정상에 다 왔구나하는 생각에 가슴이 설랜다. 킬리만자로의 정상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우습게도 분명 가까이에서 들리는 것 같았는데 정상은 아직이다.
마지막 짧은 깔딱 고개를 올라서자 희미하게 두 사람의 모습이 보이는가 싶더니 곧 정상을 표시하는 팻말이 보였다.
여기다! 올라왔다! 드디어 끝이다! 만세!
사방이 온통 구름속이라 주위의 모습을 정확히 볼 수 없지만 세상 모두가 내 발아래로 내려다 보이는듯한 느낌에 가슴이 벅차다. 더 오를곳이 없다.
높이 해발 5,895m! 아프리카의 영산 킬리만자로의 최고봉 우후르피크!
몸은 비록 만신창이가 되었어도 결국 해냈다는 생각에 정상의 팻말을 붙들고 스스로를 칭찬하며 마음속으로 만세를 수십 번 불렀다. 마음이 울컥했다.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전문 산악인들이 정상에 올랐을 때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이유를 이제 나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정상 팻말에는 "축하합니다.. 당신은 아프리카 최고봉 우후르피크 5895m에 있습니다" 라고 씌어 있다
주위가 온통 하얀 서리로 뒤덮힌 정상의 모습!
불과 2주 전에 올랐던 사람들은 손발에 동상이 걸릴 정도로 추위 때문에 어려움을 겪은 모양인데, 오늘은 다행히 칼날처럼 매섭고 날카로운 바람이 어디 휴가라도 갔는지 덕분에 정상에서도 여유 있는 시간을 보냈다.
내가 제일 마지막인 모양이다. 정상에서 제법 오랜 시간을 보냈는데 이후 올라오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
이제 하산길..
얼마나 힘이 빠졌는지 몸을 날려 굴러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배도 고프고 산소가 부족한 것인지 의식이 몽롱하다.
양지 바른 곳에 잠시 자리잡고 쉬는 시간....... 킬리만자로의 분화구를 감상하며 홍삼 봉지 몇 개로 허기를 지우고 급경사면을 흡사 야구 선수가 베이스에 슬라이딩이라도 하는 것처럼 몇 번이고 앉았다 일어서기를 반복하며 내려간다. 수차례 엉덩방아도 찧고 가끔은 온 몸으로 뒹굴어 먼지를 뒤집어쓰기도 하면서......
11:30 어떻게 내려왔는지도 모를 무아지경 상태로 키보산장에 복귀했다.
산장에 들어가 간단히 탄자니아 스프를 한 그릇 먹고는 다시 산장을 나섰다. 오래 올라간 만큼 하산길도 결코 만만치않다. 오후 4시가 다 되어서야 호롬보산장에 도착할 수 있었는데 그 때는 이미 녹초가 된 상태였다.
나뿐만 아니라 앞서 출발했던 팀들 모두 기진맥진하여 빈자리를 찾아 드러눕기 바쁘다.
지쳐서 쓰러진 것도 잠시, 그토록 갈망하던 킬리만자로 등정에 성공했다는 자부심으로 다들 이내 활기를 되찾는다.
특히나 내일 정상에 도전하기 위해 식당에 모인 여러 나라 사람들의 부러운 눈초리를 느끼는 순간 절로 힘이 나고 신바람이 난다.
8월 20일 (목) 6일차 하산하는 날 (호롬보 산장~ 마랑구게이트)
새벽 3시 기상..
몸은 천근만근 무겁지만 지금 출발하지 않으면 사파리 관람이 계획되어있는 암보셀리 국립공원까지 제 시간에 갈 수가 없다고 한다. 누룽지로 대충 배를 채우고 04시경에 출발.
여전히 칠흑같이 어두운 밤, 밤잠을 자지 않고 빛나는 별들만이 하늘에서 우릴 배웅한다.
이제는 경건하게까지 느껴지는 킬리만자로의 품에서 조용히 벗어나기 위해 랜턴 불빛에 의지하여 말없이, 그리고 조심스레 걷기 시작한다.
포터들은 랜턴도 없는데 거의 내달리다시피 빠른 속도로 하산한다.
그들은 매일 다니는 곳이라고 말하지만 주위가 워낙 어두워 우리는 랜턴 불빛이 있어도 걷기조차 힘든데 그들은 어둠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모양이다.
6시30분쯤 떠오르기 시작한 태양의 높이가 오히려 우리 눈 아래쪽이어서 모자를 푹 눌러 썼는데도 콧잔등에 햇빛이 비친다. 역광으로 펼쳐지는 드넓은 산야는 신선이 내려오기 직전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너무나 찬란하고 평화로우면서 맑고 맑아 무엇이라 표현하기가 어렵다.
하산을 시작한지 거의 3시간, 해발 3130m 지점까지 내려왔다. 이제는 안에 든 것도 없는 배낭의 무게가 또다시 무거워지기 시작한다.
07:45 하산을 시작한지 4번째 휴식, 해발2880m 지점. 내리쬐는 태양 빛이 강렬하다. 모두들 더워서 아웃도어를 벗고 춘추복만 입은 채 내려가는 길을 재촉한다.
정글지대에 들어오니 걸음마다 날리는 먼지가 없어 한결 걷기가 편하다.
출발 4시간만인 08:00 경에 드디어 베이스캠프인 만다라 산장에 도착.
산 정상에서조차 금방 쓰러질 것처럼 지쳐있던 이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의기양양해하는 우리대원들의 모습이 처음 이 곳에 와서 킬리만자로를 향해 출발하기 전보다도 더욱 활기차게 보인다.
정글사이를 걷는 것은 너무나 상쾌하고 기분이 좋다. 촉촉한 대지. 싱그러운 공기, 귓가 바로 옆에서 흐르는듯한 물소리, 새들의 지저귐소리 이 모두가 조화롭고 이상적이다.
꽃들도 만개하여 우리의 복귀를 반기고 등정 성공을 축하해 주는듯하다.
정글사이로 비치는 햇살도 예외가 아니다.
기분좋게 걷기는 하지만 솔직히 마랑구게이트 까지도 멀긴 끔찍이도 멀다. 여전히 몸은 힘들다.
10:30 마침내 처음 킬리만자로를 향한 희망을 품고 출발했던 바로 그 자리, 마랑구 게이트에 도착했다. 40여명의 포터들 중에 먼저 도착한 20여명이 성공적인 등정을 축하하며 노래를 부른다.
킬리만자로 킬리만자로 킬리만자로
킬리만자로 리맘매 푸사나
남마웨지 남마웨지 남마웨지
남마웨지 리맘매 푸사나
애왼요까 애왼요까 애왼요까
애왼요까 모나와니 중구까
와니중구까 와니중구까 와니중구까
와니중구까 모따까꾸니 라야마.
킬리만자로의 봉우리 중 우후르피키와 웬지봉이 제일 높고, 그 형상이 마치 뱀의 위턱과 아래턱처럼 하늘을 향해 벌리고 있는 거대한 뱀의 형상을 가졌다는 뜻 인듯하다
모두들 춤추며 박수치며 아쉬운 작별인사를 대신 한다.
그리고 등정 확인증을 받는다.
등정확인서를 받는 순간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번져났다.
"..................., 나는 행하고 이해한다"
고대중국의 한 격언처럼 고된 경험을 통해 킬리만자로의 모든 것이 나의 몸속 깊숙이 각인되고 내 마음 한 곳에 자리 잡았다.
건강한 체력과 결코 서둘지 않는 여유와 성공하겠다는 강한 의지의 끈기가 이번 등정의 성공 비결이었다고 생각된다.
모든 삶에 필요한 큰 교훈 이었다
내년엔 또 어떤 산이 나를 반겨줄까...?
첫댓글 백두대간 종주산행을 완주하고 하늘개미산우회도 함께 킬리만자로의 등정을 계획하고자 산행기를 올렸습니다. 고대중국의 격언,,,,,,,,,,,,나는 행하고 이행한다" 공감을 하면서,,,,,,,,,,,,,,,,,,
과연5895봉을오을수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