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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탁(禹倬)선생 묘소 및 나무화석지 구경.
가을의 끝자락에 선 이때 컴 동아리 팀과 함께 역동(易東) 우탁(禹倬) 선생과 안동에 있으면서 아직 개발되지 않은 나무 화석지를 볼 기회가 있어서 나름되로 값진 하루를 보냈다.
고등학교 동기 동창생이고 전 안동시의회 의장을 역임했던 이두환 친구가 맛 있는 점심을 한턱 낸다는 연락을 받고 모두들 현지로 갔다.
지난해에도 점심식사를 한턱 크게 쏜 친구가 이번에 또 점심을 내니 고맙기 그지없다. 토종닭에 감자랑 각종 야채와 양념을 넣어 만든 도리탕이 입맛을 내기엔 충분했다.
식사를 끝낸 일행들은 우탁 선생 묘소와 1억년전의 나무화석이 있는 개발되지 않는 곳으로 갔다.
700여년전 이 땅에 완고한 선비로 관리, 학자로 일세를 풍미했던 우탁 선생의 발자취를 더듬을 땐 고개가 숙여진다. 지난해에도 이 팀들이 이곳에 한번 들려 돌아본 일이 있었다.
<한손에 막대잡고 또 한손에 가시쥐고 늙은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白髮) 막대로 치렀더니 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라는 탄노가(嘆老歌)를 남긴 우탁 선생.
이 시(詩)는 고려 시가집 청구영언(靑丘永言)에 실린 우탁 선생의 탄노가 2수(首) 중 하나로 우리나라에 전해오는 시조중 가장 오래된 작품이며 시조문학의 백미로 꼽히고 있다.
우탁 선생은 1263년(원종4) 충북 단양군 적성면 현곡리 신원에서 문하시중(門下侍中) 천규(天珪)의 아들로 태어나 그후 각종 벼슬을 한후에 물러나서 안동 예안에 은거하면서 후진 교육에 전념하다가 1343년 예안에서 81세로 사망했으며 묘소는 지금에 있는 곳이다.
우탁 선생의 묘소를 뒤로 한체 정 시장이 가자는 안동 위리의 나무 화석지로 갔다. 이 부근엔 임하댐 건설이후 공사중이던 도로가 솟아나고 산에는 땅이 밑으로 꺼지는 이상한 현상이 발생, 공사의 어려움이 많아서 전문가의 조사 결과 임하댐 수압의 영향으로 이런 현상이 일어나고 있었다는 옛날 시장 시절 고충담을 털어 놓기도 했다.
안동 위리의 나무화석지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약 1억년전인 중생대 백악기 시대의 나무화석이 발견되어 보존을 위하여 조사가 진행되고 있은 지역으로 모든 사람들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는 곳이다.
하여튼 오늘은 안동에 살면서도 화석지가 코 밑 안동에 있는 것을 모르고 지내다가 정시장 때문에 이런 것을 처음 알았으니 아주 기분 좋은 날임에 틀림없다.
주진교에 있는 상징물.
예안에 유명한 사과와 고추를 선전.
주진교. 이 다리를 세우지 않았을 때는 배로 통행했었다.
이곳에서 전국 베스 낚시대회를 한다고 야단이다.
식당 앞에서 자라고 있는 나무.
대형 느티나무.
9명이 참석, 점심을 먹었다.
닭 탕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일행들.
감자와 무를 넣은 토종닭이 얼큰해서 맛 있었다.
일행들은 토종닭 맛이 있어서 2 그릇씩 뚝딱 해 치웠다.
역동(易東) 우탁(禹倬) 선생 안내판.
우탁 선생의 안내판을 읽고있는 일행들.
우탁 선생이 지은 시비(詩碑).
우탁 선생의 시조비.
삼의문(三宜門)
정정재(鼎井齋).
역동 우탁 선생 묘소 입구 표지석.
묘소 계단으로 올라가는 일행들.
우탁 선생의 묘소.
우탁 선생 묘소를 참배, 묵념하고 있는 일행들.
묘소 주변엔 아름드리 소나무가 빽빽하게 서 있다.
참배를 하고 내려가는 일행들.
정겨운 담장.
예안면 사무소.
친구의 상점.
나무화석 안내판.
나무화석 발견지의 출입통제 안내문.
이 부근의 땅이 꺼지고 도로가 솟는 당시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정 시장.
나무화석에 관해서도 상세히 설명.
탐스럽게 핀 햐얀억새가 지천으로 널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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