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하순 충북 괴산 소재 도명산(643m) 산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버스 안,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한 여성회원 마이크만 잡았다 하면 ‘안동역에서’라는 제목의 노래를 여러 번 반복해서 불러 차 안의 모든 회원들을 아주 유쾌하게 했다. 당연히 처음 듣는 노래, 왜냐하면 나는 노래에 대하여 특히 전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며칠 전 친구들로부터 이 노래는 '진성'이라는 중년의 남자 가수가 부르는 트로트 곡으로 요즘 많은 중장년층에서 애창하는 노래라는 사실과 그들도 이 노래를 배우고 있는 중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버스 안, 그날 내 귀에 남은 가사 내용으로 떠오르는 생각은 다음과 같다.
무슨 사연으로 인지는 모르지만 이별한 첫사랑, 그래도 청춘시절 죽어라 가슴에 두었던 님이었기에 일생에 한 번쯤은 만나보고 싶은 사람, 아니 평생에 꼭 한 번만은 만나야만 될 것 같은 사람, 그래서 작별할 즈음 첫눈이 오는 날로 약속을 부탁했다.
그가 분명히 기억하고 있으리라는 믿음과 그 사람도 같은 마음일 것이란 생각, 어느덧 수 십 년이 흘렀다. 가슴 한편에 간직한 채, 장소는 서로가 가장 기억하기 쉽다고 생각되는 안동역(앞)에서, 고교시절 우리들은 이 역을 통해 학교를 다니는 열차 통학생이었기 때문이다.
마침내 새벽부터 누가 봐도 혼동되지 않을 만큼의 첫눈이 내렸다. 다행이다 싶은 마음, 그리고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늦은 밤, 그날의 마지막 열차인 청량리역 발 부산행 완행열차가 안동역에서 점점 희미하게 사라져만 갔다. 기다렸던 시간만큼이나 무거워졌던 마음, 그러나 쌓인 눈은 달빛으로 자신의 마음과는 달리 환하게 빛났다.
돌아서는 발길,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흰 눈빛이 다시 가슴에 반사되면서 말하는 듯했다. 그냥 아름다운 추억으로, 이제 가슴에서 지우고 웃으라고, 한 곡의 유행가처럼 생각하라고, 그래서 즐겁게 부르라고 ‘안동역에서’를.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 왜 그녀가 같은 노래를 반복해서 불렀을까 추측해 본다.
여러 가지로 생각되지만 아마도 가사 내용이 가슴에 너무나 간절히 닿았기 때문은 아닐까. 사춘기 여고시절이 너무나 그리워졌기 때문은 아닐까.
누구에게나 한 번쯤 있을 법한 '안동역(앞)에서', 그리고 이 나이에 노래가 좋다고 배우는 친구들의 열정 또한 재미있게 느껴진다.
조용한 카페, 진토닉 한 잔, 그리고 안주는 오로지 서비스로 무한 제공되는 팝콘뿐. 내 월급쟁이 35년 동안 최고로 멋졌다고기억되는 분, 물론 지금은 고인이 되셨다.
과거 체신부 고위직 관료였던 그분, 어느 날 저녁 함께한 자리, 이런저런 이야기 중 주머니에서 조그마한 수첩을 꺼내, "김군" 하시면서 수첩 마지막 장에 연필로 쓴 유행가 가사를 보여 주셨다. 그분의 연세와 외모 등 모든 면에서 유행가, 도저히 어울리지 않았다. 내가 갑자기 죽으면 자식들 이걸 보고 어떻게 생각할까.
첫댓글 혹여 마음속 한번은 만나고 싶은 사람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