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항구 삼천포
남해안에 자리 잡은 항구로서 살 만한 곳은 ‘한국의 나폴리’라고 불리는 통영과 여수를 꼽지만, 남해에 다리가 놓이고 대전-통영 간 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삼천포 역시 좋은 항구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3번 국도가 시작되는 삼천포는 사람들에게 “잘 나가다 삼천포로 빠진다”라는 말로 더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오밀조밀한 항구의 아름다운 모습에 반해서 한번 가본 사람들은 다시 가고 또 가는 곳이다. 원래 행정의 중심지로 발달한 것이 아니고 한갓진 포구에 지나지 않았다. 조선 후기에 들어서야 겨우 면이 된 곳이다. 그런 연유로 행정구역상 진주, 사천, 고성에 번갈아 소속되기도 했으나 1956년에 시로 승격되고 1966년 개항에까지 이른 삼천포시는 우리나라의 어느 항구도시보다 비린내가 많이 진동하는 곳이다. 선구동에 자리 잡은 어판장에서 갈치, 멸치, 삼치, 고등어, 전어 등의 여러 생선들이 내는 냄새이기도 하지만 삼천포의 명물인 쥐치를 가공하는 과정에서 풍기는 것이기도 하다. 지금은 남해 연안의 싱싱한 횟감 소문이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남해를 잇는 삼천포대교가 개설되면서 남해 금산이나 통영과 연계관광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다. 한려수도의 중심 항구이자 수산물의 집산지로 이름이 높은 삼천포는 기후가 온난하고 한려수도의 빼어난 경관이 감싸고 있어 새로운 관광지로 떠오른 것이다. 그중에서도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학섬이다.
삼천포와 남해도 사이의 한려수도국립공원에 자리 잡은 학섬(鶴島)은 늑도 동쪽에 있는 섬으로 백로와 왜가리의 서식지인 까닭에 붙은 이름이다. 하지만 그 모양이 바다에 헤엄쳐 다니는 물고기와 같다고 하여 ‘부어도(浮魚島)’ 또는 ‘헤에섬’이라고도 하고, 또 바다에서 ‘굴러 들어온 섬’이라고 하여서 구을섬이라 부르기도 한다. 울창한 송림이 분포하고 있는 데다 수많은 왜가리가 떼지어 살기 때문에 청송백학(靑松白鶴)의 장관을 이루는 곳이다. 그래서 학섬은 천연기념물 제208호로 보호되고 있다.
삼천포항우리 국토에서 바닷가 마을만큼 변화의 급물살을 탄 곳도 드물다. 19세기 후반에 부산, 목포 등이 개항하였고 죽변, 장생포, 통영 등 동남해안의 항구들은 어업으로 활기를 띠었다. 어허야 데야 갈방아야 이 방아가 뉘 방안고 경상도로 내려와서 삼천포 마도로 들어왔네 두미 욕지 큰 애기는 고구마 빼 때기로 살이 찌고 닭섬 새섬 머스마는 전어배 타고 다 늙는단다 마도의 노동요인 「갈방아타령」으로 전어잡이 어부들이 소나무 껍질을 방아에 넣고 찧으면서 부르는 노래다. 소나무 껍질의 가루는 전어잡이 그물에 먹이는 풀로 쓰였다고 한다. 이 「갈방아타령」보다 더 이름난 것이 삼천포 일대에서 나는 전어밤젓인데, 전어의 배알 중에 ‘밤’이라고 부르는 둥글둥글한 부위를 발라내어 담근 젓이다. 빛깔은 검지만 젓이 곰삭았을 때의 그 고소하고 쌉쌀한 감칠맛은 어느 젓갈도 따를 수 없는 독특한 맛을 자랑한다. 그래서 삼천포의 전어밤젓은 예로부터 전라도의 토하젓 만큼이나 알려져 있다. 동해안에는 울산, 포항, 강구, 묵호, 강릉 주문진, 원산, 함흥, 청진, 나진 등의 항구들이 발달해 있는데 그중 강릉 근처에 있는 주문진은 오대산 자락에 자리 잡은 항구로 퍽이나 아름다운 곳이다. 1927년 6월에 지정된 주문진항은 강릉의 외항이면서도 동해안에서는 손꼽는 어항이다. 부근 연해에는 한류와 난류가 교차하고 해안에서 인접한 곳일지라도 수심이 깊어 명태와 오징어, 정어리 등의 어족자원이 풍부하다. 서해안에는 신의주, 남포, 인천, 오천, 보령, 장항, 군산, 법성포, 목포 등이 있는데 부안의 곰소나 법성포와 같은 항구는 토사가 밀려들면서 항구의 기능이 쇠퇴해 버려서 굴비와 젓갈의 명산지로 그 명맥을 이어 가고 있을 뿐이다. 반면에 보령은 우리나라 5대 해수욕장의 하나인 대천 해수욕장을 끼고 발달한 항구로서 충청남도 중서부 해안의 거점도시로 중추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삼천포대교 © 사천시청“잘 나가다 삼천포로 빠진다”라는 우스갯소리가 회자되었던 삼천포는 현재 사천시로 이름이 바뀌었다. 하지만 기후가 온난하고 한려수도의 빼어난 경관이 감싸고 있어 한 번 가본 사람들이 다시 찾는 아름다운 도시다. 아름다운 항구 삼천포 (신정일의 새로 쓰는 택리지)
삼천포 [三千浦]
경상남도 사천 지역에 있었던 지명.내용
본래 행정의 중심지로 발전한 곳이 아니고 포구로서 성장한 곳이었다. 고려 성종 때 조세미를 수송하기 위하여 이곳에 통양창(通陽倉)을 설치하였다. 조창을 중심으로 사람과 물산이 집산하게 되니 여기에 삼천리라는 새로운 마을이 생기게 된 것이다. 통양창이 개성에서 수로 3,000리나 되는 먼 곳이라 하여 이러한 지명이 생겼으며, 여기가 삼천포의 근원이라고 전하여 왔다. 1488년(성종 19) 삼천진(三千鎭)을 설치하고 진성을 쌓아 방비를 강화하였다. 삼천진은 1619년(광해군 11) 고성현 산양면(지금의 경상남도 통영시 산양면) 영운리로 옮기고 진성을 축성하였다. 1895년 지방관제 개정으로 사천군이 되면서 삼천리는 삼천리면으로 승격되었다. 그리고 1914년 삼천리면을 수남면으로 개칭하고, 1918년 문선면과 수남면을 합하여 삼천포면으로 하였다가 1931년 읍으로 승격시켰다. 광복 후 1956년 삼천포읍이 남양면을 편입하여 시로 승격하여 삼천포시가 되었다. 1988년 당시 삼천포시의 면적은 58.81㎢, 인구는 6만 4464명, 27개 동이 있었으며, 시청소재지는 벌리동이었다. 삼천포와 관련하여 ‘잘 나가다 삼천포로 빠진다’는 부정적 의미의 속담이 있다. 삼천포시는 1995년 5월 10일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당시 사천군과 통합되어 사천시가 되었다.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22-06-26 작성자 명사십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