五 代 十 國 時 代
吳 越 王 朝 世 家
十國(십국)
吳越(오월) AD. 907∼AD. 978 위치: 저장성(浙江省, 절강성) 漢族(한족) 성: 錢(전)
代數 | 在位期間 | 位 | 姓名 | 關係 | 首都 | 現地名 |
|
| 弘聖王(홍성왕) | 錢沛(전패) |
| 杭州(항주) | 浙江省(절강성) |
|
| 建初王(건초왕) | 錢宙(전주) |
|
|
|
|
| 英顯王(영현왕) | 錢寬(전관) |
|
|
|
제 1대 | AD. 907∼AD. 932 | 武肅王(무숙왕) | 錢鏐(전류) | 영현왕의 아들 |
|
|
제 2대 | AD. 932∼AD. 941 | 文穆王(문목왕) | 錢元瓘(전원관) | 무숙왕의 5자 |
|
|
제 3대 | AD. 941∼AD. 947 | 忠獻王(충헌왕) | 錢弘佐(전홍좌) | 문목왕의 아들 |
|
|
제 4대 | AD. 947∼AD. 947 | 忠遜王(충손왕) | 錢弘倧(전홍종) | 문목왕의 아들 |
|
|
제 5대 | AD. 947∼AD. 978 | 忠懿王(충의왕) | 錢弘俶(전홍숙) | 충손왕의 아우 |
|
|
전류가 절강성 일대에 세웠던 왕국으로 수도는 항주며 제 2수도는 越州(월주. 紹興(소흥)였다. 오월은 전 류가 오대 왕조중 첫 번째인 후량에 칭신하여 오월왕으로 책봉을 받으면서 시작하였다.
해상 무역을 전개하여 고려. 후백제. 일본 등과도 교역을 하였으며 후백제 견훤에게는 작위를 내려주기도 하였다.
제 1대 무숙왕(AD. 852∼AD. 932)
당나라 말기 군벌 董昌(동창)의 부하로 들어가 부장이 되었으며 황소가 난을 일으켰을 때 임안을 성공적 으로 방어한 공로로 절도사로 임명받아 그곳을 지방 정부 세력으로 변화시켰다. 이후 자신의 상관인 동 창을 제거하고 그의 땅을 흡수한 다음 후량의 주전충으로부터 오월왕에 봉해졌다. 재위 기간동안 백성을 징발해 가뭄과 홍수에 대비하여 치수사업을 실시했으며 댐을 만들어 해당지역의 농업발전에 기여한 명군 이었다. 932년 81세로 사망하였다. 생전 신하들의 추천을 받은 5남 전원관이 오월왕 작위를 계승하였다.
제 2대 문목왕(AD. 887∼AD. 941)
전원관은 932년에 전류가 죽은 이후 즉위하긴 했지만 오대 조정으로부터 한동안 책봉을 받지 못하다가 뒤늦게 오월의 국왕으로 책봉되었다. 940년 민나라에 큰 혼란이 일어나자 전원관은 민나라를 공격했지만 실패한다. 이후 941년에 항주에서 큰 화재가 일어났는데 전원관은 이때 일어난 화재로 사망하였다. 전원 관은 오대 왕조들에 의해 문목왕으로 추서되었으며 이후에 즉위한 오월의 군주들은 모두 전원관의 아들 들이었다.
제 3대 충헌왕(AD. 928∼AD. 947)
941년 전원관이 사망한 이후 즉위하였다. 전홍좌는 즉위 초기 군인들의 추대를 받아 즉위했지만 군인들 이 점차 불법을 저지르자 전홍좌가 칼을 빼들어 이들을 처벌하면서 군인들을 장악해 나갔다.
전홍좌가 즉위할 당시 남쪽의 민나라는 왕심지 사후 내분이 발생하였다. 남당의 제2대 황제였던 이경이 민나라의 혼란을 틈타 민나라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민나라가 오월에 구원을 요청했지만 전홍좌는 오히 려 민나라를 공격하여 복주를 점령하였다. 전홍좌는 947년에 세상을 떠났는데 슬하의 아들들이 어려서 전홍좌의 아우인 전홍종이 오월의 군주로 즉위한다. 전홍좌는 충헌왕으로 추시되었다.
제 4대 충손왕(AD. 불명)
947년 전홍좌가 사망할 당시 전홍좌의 아들들이 어려서 아우인 전홍종이 뒤를 이어서 즉위하였다.
전홍좌가 즉위할 당시 오월의 무관들이 전횡을 부리고 있어서 전홍좌 사후 즉위한 전홍종은 이들을 억제 하려는 정책을 폈지만 이 개혁이 성급하게 진행되어 오월의 장수 중 한명인 胡進思(호진사)의 반발을 불 러왔다. 전홍종의 개혁에 위기감을 느긴 호진사는 밤중에 정변을 일으켰고 전홍종을 유폐시킨 다음 전홍 종의 아우인 전홍숙을 오월의 군주 자리에 앉혔다. 전홍숙은 호진사가 형을 해칠 것을 우려하여 전홍종 을 옮겨 보호하였고 호진사는 얼마 안가 병으로 사망하였다. 전숙홍은 형인 전홍종을 우대하여 그를 越 州(월주)에 옮겨 살도록 하였다. 전홍종은 이후 20여년 동안 월주에 거처하다가 AD. 968∼975에 세상을 떠났고 충손왕으로 추시되었다.
제 5대 충의왕(AD. 929∼AD. 988)
947년에 즉위한 제 4대 군주인 전홍종이 군인들을 장악하는데에 실패하여 퇴위 당했고 아우인 전홍숙이 즉위하였다. 전홍숙은 정변의 주동자인 호진사가 형을 해치려는 것을 우려하여 전홍종을 다른 곳으로 옮겨 그를 우대하였다. 전홍숙의 재위기에는 남당이 후주의 공격으로 약화되면서 오월은 평온했다. 남당 이 약화된 틈을 타서 오월에서도 남당에 대한 침공을 감행했지만 실패로 끝났다. AD.960년에 북송이 건국된 이후 AD. 975년에 전홍숙은 북송의 남당 정벌을 도와 남당을 멸망시켰다. 남당이 멸망한 이후 오월이 북송과 직접적으로 국경을 접하게 되자 결국 전홍숙은 AD. 978년에 나라를 바치며 오월의 종말 을 고했다. 북송의 태종은 전홍숙을 우대하여 회해국왕의 작위를 내렸다. 오월이 멸망한 이후 전홍숙은 이듬해에 북한 정벌에도 참가했으며 한남국왕. 남양국왕에 등의 작위를 받았다. 이후 전홍숙은 북송에서 안락한 여생을 보내다가 AD. 988년에 사망하였다. 진홍숙은 태종에 의해 진왕으로 추봉되었고 충의왕 으로 추시되었다.
사료 출처
曾先之(증선지)의 十八史略(십팔사략)과 司馬光(사마광)의 資治通鑑(자치통감) 그리고 인터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