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은행장의 죽음 앞에서

[나무의자]

어느 은행장의 죽음 앞에서

  어제는 제가 이사로 있는 복지 법인 회의가 있었습니다. 노인 복지관과 장애인 복지관 등을 운영하는 대표 10명과 함께하는 회의입니다. 나라에서 해야 될 일들을 위탁받아서 하는 사업들인데, 예산을 지원 받아서 그런지 몰라도 감사와 감독을 받아야 해서 힘들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또 평가를 매년 받아야 해서 그 기준을 맞추는 것도 쉽지 않고 성과를 내야 하는 부담도 상당하고, 윤석열 정부 들어서서 사회복지 예산이 삭감되어서 여렵다는 말들을 많이 합니다. 복지현장에서 수고하는 종사자들이 조금 더 편하고 즐겁게 일하고 보람을 느낄 수 있도록 나라에서 뒷받침해주었으면 하는 생각과 함께 답답한 마음으로 회의를 마쳤습니다.

  이른 아침 일어나 묵상과 기도의 시간을 가지고 신문을 펼쳤더니, 어느 은행장의 죽음을 알리는 기사와 함께 그분의 삶을 조명하고 추모하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그분이 세운 은행은 돈이 없는 은행, 이자놀이를 하는 은행은 더욱 아니고, 문턱은 없지만 아무나에게 돈을 꿔주는 은행도 아닙니다. 누가 돈을 빌릴 수 있는가 하면, ‘장발장들’입니다. 그래서 은행 이름이 장발장입니다. 장발장은행은 경범죄 등으로 벌금형을 선고 받았지만 생활고 등 어려운 형편으로 벌금을 낼 수 없는 빈곤 취약 계층을 돕기 위해 2015년 3월에 출범한 은행입니다. 현행법상 벌금 판결을 받고 30일 내에 한꺼번에 내지 않으면 감옥살이를 하면서 일을 해야 하는 것인데, 이런 어려운 형편의 사람들에게 벌금을 대출해주는 은행입니다.

  9년 전 이 은행을 만드신 분이 홍세화 선생인데, 어제 향년 77세로 별세했습니다. 오랫동안 프랑스에서 망명생활을 했던 실천적 행동가였습니다. 그분의 어록 중에 “진보나 좌파를 말하는 것과 진보나 좌파로 사는 것은 다르다”하면서 사셨던 분이고, “소유에서 관계로, 성장에서 성숙으로”라고 하면서 그렇게 사셨던 분입니다. “모든 인간은 존재 그 자체로 삶을 존엄하게 영위할 권리를 가진다. 그러므로 모든 국민에게 기본 소득을 보장해야 한다”면서 본인 스스로를 소박한 자유인이라고 했습니다.

신문기사를 읽으면서 머리가 절로 숙여지고, 어제 저녁 회의하면서 가졌던 답답한 생각들이 정리되고 깨끗하게 씻겨 내려갔습니다. 생각에서 머물지 않고 살다 보면 생각이 길이 된다는 것을 선생을 통해 보았기 때문입니다. 추모의 마음을 이렇게나마 편지로 대신합니다.

(장발장: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미제라블>의 주인공 이름. 그는 생계를 위해 빵 몇 개를 훔쳤다는 죄로 5년 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영화배우]

장발장은행이 선생님 죽음이후에도 계속 되면 좋겠습니다

[로제]

아주 오래 전.
홍세화 형님께서 아직 빠리에 살고 계시던 시절,
마침내 첫 귀국하셨다가 파리로 돌아가신다고 하여 공항에 나갔습니다.
그로 부터 며칠 전,
제가 진행하고 있었던 '김정식이 전하는 맑은 이야기' 라는 방송 프로그램에서
참사람 '홍세화'를 주제로 나눈 내용과,
그분이 좋아하신다고 했던 노래들을 녹음해서 카세트에 담아 드렸습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눈물이 날만큼 가슴이 벅차올랐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그런 분과 동시대에 태어나 지구별에 살고있다는 사실이
행운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77세로 가시다니 안타깝습니다.
왜 그리 빨리 가셨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