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간 여행
(2024년 9월 13일, 10월 14일 퇴고 용은중)
나는 지하철보다 버스를 선호한다. 10년 전쯤 무릎에 근막염이 생긴 후로 층계를 내려갔다 올라갔다 여간 번잡스러운 게 아니다. 미리 어르신들의 고충을 경험한다고 생각한다. 수많은 계단을 통과해 지하로 한참 내려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 바깥의 풍경을 볼 수 있다는 것이 버스의 큰 장점이다.
지난달, 중3 둘째 딸아이와 밤에 운동 겸 산책하러 밤 9시쯤 집을 나섰다. 평소와 다르게 아이는 버스를 타고 좀 멀리 갔다 오면 안 되겠냐고 이야기한다. 소소한 일탈을 좋아하는 나에게 아이가 먼저 이렇게 제안 하니 마다할 이유가 없다. 목적지는 특별히 정하지 않은 채로 가장 가까운 버스정류장에서 110번 버스에 올랐다. 슬리퍼 차림인 우리와 다르게 버스 안에는 퇴근하는 것으로 보이는 직장인, 학생들이 대부분이다. 무거운 가방을 이고 지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우리만 손에 핸드폰 하나 달랑 들려있다.
몇 정거장을 지나 버스는 삼각지역 앞 국방부 정류장에 선다. 버스 문이 열릴 때마다 훅 늦여름의 더운 기운이 들어온다. 삼각지역이 4, 6호선 환승역이어서인지 사람들이 꽤 내리고 아이와 함께 앉을 수 있는 자리가 났다. 시원한 에어컨과 함께 밖의 밤 풍경을 볼 수 있으니, 여기가 극락이다. 하지만 바깥은 이 더운 밤에도 경찰이 쫙 깔려있고 전에는 없던 바리케이드가 튼튼하게 둘러쳐져 있다. 대신 각종 현수막과 피켓들이 대통령을 향한 자기주장을 하고 있다. 대형 건설사의 살인철거 억울함을 풀어달라, 자칭 채상병 사건 보다 중한 모녀의 억울함을 대통령이 풀어달라는 메시지도 있는데 그것들은 마치 조선시대 일반 백성이 왕에게 하던 '격쟁'같이 보인다. 그런데 이상하리만치 한 개라도 있을 법한 대통령 및 대통령 배우자를 향한 직접적인 메시지는 눈에 띄지 않는다. 예전에 경험했던 장면 하나가 떠오른다. 2022년 겨울 나는 지역의 활동가들과 함께 이태원 광장에 차려졌던 10.29 참사 추모 부스를 지키며 해결촉구 서명을 받았다. 그곳에서 만난 어떤 가족은 서명을 하면서도 남편이 아내에게 '요즘 같은 때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자신만 서명하겠다.'고 했더랬다. 당시에는 걱정이 많으시구나, 싶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럴만하다 싶다. 얼마 전에는 정권 퇴진 촛불행동을 압수 수색하여 (내 이름도 포함되어 있는) 후원자들의 명단을 가져가기도 했다. 일부 사람은 이 일로 핸드폰을 바꿔야 했다. 2024년에 이런 일이 벌어진다는 게 참 놀랍다.
버스는 두 정거장 후 이태원역 앞을 지난다. 버스가 정차하는 동안 나와 둘째 아이는 말없이 해밀턴 호텔 옆 골목 10.29 참사 장소를 지켜봤다. 아무 계획 없이 올라탄 버스지만 기억해야 할 것들을 마주친다. 한동안은 꽃과 포스트잇 메시지가 있었지만, 지금은 쇠와 유리로 만들어진 세 개의 '10·29 기억과 안전의 길' 표지판이 그 장소임을 알려주고 있다. 2022년 10월 29일 나는 가족과 함께 반포대교 물 분수 구경 후 버스를 타고 귀가하던 중 이태원 옆을 지나갈 때 유난히 사람이 많아 무슨 일인가 의아했었다. 그렇게 사람 많은 건 처음이었다. 그날 밤 참사 후 이태원은 침잠했다. 해당 골목뿐 아니라 주변의 가게들도 문을 닫는 날이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우리 동네에 살면서 이태원에서 큰 옷 가게를 하는 서준(가명)이 엄마도 한동안 일손을 놓아야 했다. 특히 그 골목의 가게는 아직도 대부분 문이 닫혀 있는데 표지판 바로 앞의 건물에 이마트24가 입점했다. 내가 얼마 전 볼일 보러 이태원에 갔을 때 그 편의점에는 물을 사는 사람, 담배를 사는 사람, 젊은이들, 편의점 점원으로 북적였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다는 말이 떠오르며 슬픔과 다행이라는 모순된 감정이 부딪쳤다.
이후 이태원을 출발하여 한강진역으로 향하는 길가에는 이태원역 인근과는 분위기가 살짝 다르게 세련되고 트렌디한 건물과 상점들이 있다. 그사이 우리는 목적지를 한강진역 앞 블루스퀘어로 정했다. 내려서 매점 아이스크림도 먹고 건물 안도 들어가 보고 싶었다. 도착하니 생각과는 다르게 건물의 문은 닫히고 불은 꺼져있다. 너무 늦은 시간에 오긴 했다. 특히 아이스크림이 아쉽다. 하지만, 이제야 비로소 우리의 목적인 산책을 시작한다. 둘러보니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 담소를 나누는 동네 주민들, 한강진역을 드나드는 사람들, 눈을 돌리는 어느 곳에나 사람이 있다. 아이와 천천히 걸으며 이야기를 나눈다.
아이는 한 달 전 전과목을 지도하던 학원을 그만둔 후 혼자 공부가 잘 안돼 힘들어했다. 도서관에도 가고 스터디 카페도 가봤지만, 집중하는 것부터 쉽지 않은가 보다. 학원은 모르는 것을 짚어 채워주는데 혼자 하려니 모르는 것도 모르고 있을까 불안하기도 하다. 나는 공부는 세상을 알아가는 데 꼭 필요하니 열심히 하라고 하면서도 성적에는 연연하지 말라고 늘 이야기했다. 배우는 것 자체가 즐거운 일이니 재미있게 하라고 말이다. 하지만 이런 말이 아이에게는 이해도 안 되고 모순되게 들렸다고 한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공부는 너무 먼 이야기인데, 학원에서 듣는 말, 엄마 아닌 주변 어른들에게 듣는 좋은 대학 못 가면 인생 나락이라는 말은 좀 더 직접적이고 가까운 이야기로 느껴진다고 한다. 할머니 할아버지도 만날 때마다 공부에 대해서만 주로 물어보시는데, 자기가 그 기대에 모두 부응할 거라는 자신이 없어 부담이 크단다. 아이는 성적에 연연하지 않으면서 공부하는 것 자체가 모순 아니냐며 반문한다. 심지어 자기의 공부 목표는 오로지 대학에 있다고 말한다. 딱히 답도 없는 말을 하는 엄마에 대한 반감이다. 그럼에도 학원에서 듣는 말들이 견디기 힘들어 혼자 공부하겠다며 그만두었다. 00대학 이상이 아니면 사람 취급 안 한다, 너는 지금 부모님에게 불효하고 있다는 둥 자기가 듣는 말도 스트레스지만, 다른 학생들에게 하는 말들도 견디기 힘들었단다. 그런데 막상 학원을 그만두어도 대안이 없으니 더 불안한 것이다. 나는 아이에게 어떤 말을 해줄 것인가, 마음이 복잡하다. 그리곤 좀 더 걷는다.
블루스퀘어 옆 큰길을 따라 조금 아래쪽으로 가다 보면 건너편에는 한남초등학교가 있고, 그 뒤쪽에는 현 대통령 관저가 있다. 전에는 저기가 외교부 관저였는데 정권 바뀌며 대통령 관저가 되었고, 덕분에 대통령이 출퇴근할 때마다 이 길이 얼마나 통제되고 복잡해지는지 나는 아이는 크게 관심도 없는 말을 늘어놓았다. 다행히 그냥 들어주는 듯하다. 아이는 슬그머니 나에게 깍지 손을 낀다. 이런 손은 나중에 남자 친구와 잡을 때나 하라니까 딸이랑 손잡는데 유난이라며 엄마가 이상하다고 한다. 괜히 머쓱해진다. 벌써 10시를 넘긴 시간, 이제 슬슬 돌아가야겠다. 반대편으로 가는 버스정류장 근처 편의점에서 이온 음료를 사 마신 후 110 버스에 오른다.
다행히 바로 자리가 난다. 밤이 늦어 그런 건지, 고것도 좀 멀리 나왔다고 피곤했던 건지 아이의 이어폰을 나누어 끼고 말없이 돌아왔다. 아이는 눈을 감고 내 어깨에 기대는데 내가 아이보다 키가 작아서인지 기대는 게 영 불편해 보인다. 그럼에도 아이는 기대어 오고 나는 허리를 바로 세우고 최대한 높이를 높여본다.
첫댓글 에필로그 : 아이는 학원을 그만두고 거의 3달이 되어 가고 있는데, 이제 좀 자리를 잡고 있어요. 물론, 아직 그만둔 학원에서는 고등과정 준비해야 하는데 시기를 놓쳤다는 말을 하고 있긴 해요. 영어만 개인 과외를 하고 나머지 과목은 인강 들으면서 공부하고 있어요. 다행히 학교 수학 선생님이 모르는 것 있을 때 (배우겠다고 찾아오는 아이들에게) 가르쳐 주시기도 하구요. 아직 결과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아이는 학원으로 돌아가느니 혼자 하겠다고 아직 그러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