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대 무변함과 포용력 갖춘 바다를 수행대상으로 삼다 (세 번째 선지식, 해운 비구)
선재 동자는 일심으로 선지식의 가르침을 생각하며, 정념으로 지혜광명의 문을 관찰하면서
점점 남쪽으로 향해 가자 해문국에 이르렀다.
해운비구 처소에 가서 엎드려 절하고 오른쪽으로 돌고 나서 합장하고 물었다.
“성자시여, 저는 이미 최상의 보리심을 발했고, 최상의 지혜 바다에 들어가기를 소원합니다.
저는 보살이 어떻게 수행해야 세속의 집을 버리고, 여래의 집에 태어날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해야 생사 바다를 건너 지혜 바다에 들어가며, 어떻게 해야 범부세계를 떠나 여래의 경지에 들어가고, 어떻게 해야 생사의 흐름을 끊고 보살행의 흐름에 들어가며, 어떻게 해야 생사의 바퀴를 깨뜨리고 보살의 원력 바퀴를 굴릴 수 있습니까?
또 어떻게 해야 마의 경계를 없애고 부처님의 경계를 나타내며, 어떻게 해야 애욕의 바다를 말리고 큰 자비의 바다를 채우며, 어
떻게 해야 고난과 나쁜 길의 문을 닫고 큰 열반의 문을 열며, 어떻게 해야 삼계의 성에서 나와 온갖 지혜의 성에 들어가며,
어떻게 해야 모든 중생을 이롭게 할 수 있습니까?“
해운 비구가 선재에게 말했다.
“선남자여, 그대는 최상의 보리심을 발했는가?”
“네, 저는 이미 최상의 보리심을 발했습니다.”
“선남자여, 중생이 선근을 심지 않으면 최상의 보리심을 낼 수 없으니 보문의 선근 광명을 얻어야 한다. 또 진실한 도인 삼매의 광명을 갖추어야 하고, 청정한 법을 자라게 하는데 게으름이 없어야 하며, 선지식을 섬기는 일에 고달픈 생각을 내서는 안 된다. 또한 몸과 목숨을 돌보지 않고 정진하며, 인색한 마음으로 물건을 쌓아두지 말고, 평등한 마음을 대지처럼 하여 높고 낮음이 없어야 한다. 또 모든 중생을 사랑하고 가엾이 여겨야 하고, 생멸의 길이 싫다고 생명을 버리지 말며, 항상 여래의 경계를 관찰하는 것을 좋아해야 보리심을 발할 수 있다.
보리심을 발한다는 것은 대비심을 발하는 것이니, 모든 중생을 널리 구제하려는 마음이기 때문이다. 자비심을 내어 모든 세간을 복되게 해야 하고, 안락한 마음을 내어 모든 중생의 괴로움을 없애주어야 하며, 이롭게 하는 마음을 내어 모든 중생이 나쁜 법을 버리도록 하고, 애민심을 내어 두려워하는 이들을 수호해야 한다.
걸림없는 마음을 내어 모든 장애를 없애고, 광대한 마음을 내어 모든 법계에 가득 차게 하며, 무량한 마음을 내어 허공계처럼 가지 않는 데가 없고, 간절한 신심을 내어 모든 여래를 다 친견토록 하며, 청정심을 내어 삼세의 법에 지혜가 어그러지지 않도록 하고, 지혜의 마음을 내어 온갖 지혜 바다에 두루 들어가도록 해야 한다.
선남자여, 내가 이 해문국에 머문 지가 12년인데 항상 큰 바다로 수행의 대상을 삼았다.
이른바 큰 바다의 광대무변함을 염하고, 큰 바다가 매우 깊어 헤아리기 어려움을 염하며, 큰 바다가 점점 깊고 넓어짐을 염하고, 큰 바다에 한량없는 보물들이 기묘하게 장엄함을 염하며, 큰 바다에 한량없는 물이 가득차 있음을 수행의 대상으로 삼았다.
또한 큰 바다의 물빛이 같지 않아 헤아릴 수 없음을 염(수행의 대상)하고, 큰 바다에 한량없는 중생이 사는 곳임을 염하며, 큰 바다는 몸집이 큰 중생을 수용할 수 있음을 염하고, 큰 바다는 구름에서 내리는 비를 모두 받아들임을 염하며, 큰 바다는 물이 불지도 줄지도 않는다는 것을 수행의 대상으로 삼았다.
나는 또 이런 생각도 하였다. ‘이 세상에는 이 바다보다 더 넓은 곳이 있지 않을까? 이 바다보다 더 끝없는 곳이 있지 않을까? 이 바다보다 더 깊은 곳이 있지 않을까? 이 바다보다 더 특수한 곳이 있지 않을까?’
선남자여, 내가 이런 생각을 할 때, 연꽃이 솟아 나와 연꽃 위에 부처님이 앉아 계셨다. 부처님께서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보안법문을 말씀하시고 여래의 경계를 열어 보이셨다. 나는 다만 이 보안법문을 알 뿐이다. 저 보살은 모든 보살행의 바다에 깊이 들어가 원력에 따라 수행하기 때문이다.
선남자여, 여기서 남쪽으로 60유순을 가면 해안이라는 마을에 선주비구가 있으니, 그대는 그에게 가서 ‘보살이 어떻게 하여야 보살행을 청정하게 하느냐?’고 물어라.“
-제 34 입법계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