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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이야기
김 유 정
암만 때렸단대도 내 계집을 내가 쳤는데야 네가 하고 덤비면 나는 참으로 할 말이 없다. 허지만 아무리 제 계집이기로 개 잡는 소리를 가끔 치게 해가지고 옆집 사람까지 불안스럽게 구는 이것은 넉넉히 내가 꾸짖을 수 있다는 말이다. 그것도 일테면 내가 아내를 가졌다 하고 그리고 나도 저와 같이 아내와 특축거릴 수 있다면 혹 모르겠다. 장가를 들었어도 얼마든지 좋을 수 있을 만치 나이가 그토록 지났는데도 어쩌는 수 없이 사글세 방에서 이렇게 홀로 둥글둥글 지내는 놈을 옆방에다 두고 저희끼리만 내외가 투닥투닥 하고 또 끼익끼익 하고 이러는 것은 썩 잘못된 생각이다. 요즈음 같은 쓸쓸한 가을철에는 웬 셈인지 자꾸만 슬퍼지고 외로워지고 이래서 밤잠이 제대로 와주지 않는 것이 결코 나의 죄는 아니다. 자정을 넘어서 새로 두점이나 바라보련만도 그대로
고생 하다가 이제야 겨우 눈꺼풀이 어지간히 맞아 들어오려 하는데다 갑작스레 쿵 하고 방이 울리는 서슬에 잠을 고만 놓치고 마는 것이다. 이것은 재론할 필요없이 요 뒷집의 건넌방과 세들어 있는 이 내 방과를 구분하기 위하여 떡 막아논 벽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울섶으로 보아 좋을 듯 싶은 그 벽에 필연 육중한 몸이 되는대로 들이받고 나가떨어지는 소리일 것이 분명하다. 이렇게 벽을 들이받고 떨어지고, 하는 것은 일상 맡아놓고 그 아내가 해주므로 이번에도 그랬었음에 별로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기에 들릴까 말까한 나직한, 그러 면서도 잡아먹을 듯이 앙크러뜯는 소리로 그 남편이 중얼거리다 퍽하는 이것은 발길이 허구리로 들어온 게고, 그래 아내가 어구구 하니까 그 바람에 옆에서 자던 세 살짜리 아들이 어아 하고 놀라 깨는 것이 두루 불안스럽다. 허 이놈 또 했구나 싶어서 나는 약이 안 오를 수 없으니까 벌떡 일어나서 큰일을 칠 거라도 같이 제법 눈을 부라린 것만은 됐으나 그렇다고 벽 너머 저쪽을 향하여 꾸중을 한다든가 하는 것이 점잖은 나의 체면을 상하는 것쯤은 모를 리 없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잠자기는 영 글른 공사인 고로 궐련 하나를 피워 물었던 것이나 아무리 생각하여도 놈의 소행이 괘씸하여 그냥 배기기 어려우므로 케액하고 요강 뚜껑을 괜스리 열었다가 깨지지 않을 만큼 아무렇게나 내리닫으며 역정을 내본단대도 저놈이 이것쯤으로 끄뻑할 놈이 아닌 것은 전에 여러 번 겪었으니 소용없다. 마땅치 않게 골피를 접고 혼자서 끙끙거리고 앉아 있자니까 아이놈이 깬 듯 싶어서 점점 더하는 것이 급기야엔 아내가 아마 옷 궤짝에나 혹은 책상 모서리에나 그런데다 머리를 부딪는 것 같더니 얼마든지 마냥 울 수 있는 그 설움이 남의 이목에 걸리어 겨우 목젖 밑에서만 꼭꼭 하도록 만들어놓았다. 이놈이 사람을 잡을 작정인가, 하고 그대로 있기가 안심치가 않아서 내가 역정난 몸을 불쑥 일으키어 가지고 벽과 기둥이 맞붙은 쪽으로 한지 오래된 도배지가 너털너털 쪼개지고, 그래서 어쩌다 뽕 뚫린 하잘것없는 구멍으로 내외간의 싸움을 들여다보는 것은 좀 나의 실수도 되겠지만 이놈과 나와 예의니 뭐니 하고 찾기에는 제가 다 치신은 잃어 놨거니와 그건 말고라도 이렇게 남 자는 걸 깨놓았으니까 나 좀 보는데 누가 뭐랄 테냐. 너털대는 벽지를 가만히 떠들고 들여다보니까 외양이 불밤송이같이 단작맞게 생긴 놈이 전기 회사의 양복을 입은 채 또는 모자도 벗는 법 없이 그대로 쪼그리고 앉아서 저보담 엄장도 훨씬 크고 투실투실히 벌은 아내의 머리를 어떻게 하다 그리도 묘하게스레 좁은 책상 밑구멍 에다 틀어박았는지 궁둥이만이 위로 불끈 솟은 이걸 노리고 미리 쥐고 있었던 황밤주먹으로 한번 콕 쥐어박고는, 이년아 네가 어쩌구 중얼거리다 또 한 번 쿡 쥐어박고는 이년아 네가 어쩌구 중얼거리다 또 한 번 쿡 쥐어박고 하는 것이다. 아내로 논지면 울려 들었다면 벌써도 꽤 많이 울어 두었겠지만 아마 시골서 조촐히 자란 계집인 듯싶어 여필종부의 매운 절개를 변치 않으려고 애초부터 남편 노는 대로만 맡겨두고 다만 가끔가다 조금씩 끽끽 할 뿐이었으나 한편에 울릉이 놀래 앉았는 어린 아들은 저의 아버지가 어머니를 잡는 줄 알고 때릴 때마다 빽빽 질러 우는 것이다. 그러면 놈은 송구스러운 그 악정에 다른 사람들이 깰까봐 겁 집어먹은 눈을 이리로 돌리어 아들을 된통 쏘아보고는 이 자식 울면 죽인다 하고 제깐에는 위협을 하는 것이나 그래 조금 있으면 또 끼익 하는데는 어쩔 수 없이 입을 막고서 따귀 한 대를 먹여놓았던 것이 그 반대로 더욱 난장판이 되니까 저도 어처구니 없는지 멀거니 바라보며 뒤통수를 긁는다. 놈이 워낙 대담치가 못해서 낯 같은 때 여러 사람이 있는 앞에서는 감히 아내를 치기는커녕 외출에서 들어올 적마다 가장 금슬이나 두터운 듯이 애기 엄마 저녁 자셨소 어쩌오 하고 낯간지러운 소리를 해두었다가, 다들 자고 난 뒤 잠잠한 꼭 요맘 때 야근에서 돌아와서는 무슨 대천지 원수나 품은 듯이 울지 못하도록 미리 위협해 놓고는 은근히 치고, 차고, 이러는 이놈이다. 하기야 제 아내 제가 잡아먹는데 그야 뭐랄 게 아니겠지. 그렇지만 놈이 주먹으로 얼마고 콕콕 쥐어박아도 아내의 살 잘찐 투실투실한 궁둥이에는 좀처럼 아플 성 싶지 않으니까 이번에는 두 손가락을 집게같이 꼬부려 가지고 그 허구리를 꼬집기 시작하는 것인데 아픈 것은 참아왔더라도 치신이 없이 요렇게 꼬집어 뜯는데 있어서야 제아무리 춘향이기로 간지럼을 아니 타는 법은 없을 게다. 손가락이 들어올 적마다 구부려 있던 커단 몸집이 우지끈 하고 노는 바람에 머리 위에 거반 얹히다시피 된 조그만 책상마저 들먹들먹하는 걸 보면 저 괴로워도 요만조만한 괴로움이 아닐 텐데 저런 저런 계집을 친다기로 숫째 뺨 한 번을 보기좋게 쩔꺽 하고 치면 쳤지 나는 참으로 저럴 수는 없으리라고, 아아 나쁜 놈, 하고 남의 일 같지 않게 울화가 터지려고 하였던 것이다. 그보다도 우선 아무리 남편이란대도 이토록 되면 그 뭐 낼쯤 두고보아 괜찮으니까 그까짓 거 실팍한 살집에다 근력 좋겠다 달랑 들고 나와서 뒷간 같은 데다 틀어박고는 되는 태로 투그려주어도 아내가 두려워서 제가 감히 찍 소리 한 번 못할 텐데 그걸 못하고 저런저런, 에이 분하다. 그럼 그것은 내외간의 찌들은 정이 막는다 하기로니 당장 그 무서운 궁둥이만 위로 번쩍 들 지경이면 그 통에 놈의 턱주가리가 치받쳐서 뒤로 벌렁 나가떨어지는 꼴이 그런 대로 해롭지 않을 텐데 글쎄 어쩌자고, 그러나 좀 더 분을 돋워놓으면 혹 그럴는지도 모를 듯 해서 놈의 무참한 꼴을 상상하며 이제나 저제나 하고 조를 비볐던 것이 이내 경만 치고 말므로 저런, 저런 하다가 부지중 주먹이 불끈 쥐어졌던 것이나 놈이 휘둥그런 눈을 들어 이쪽을 바라볼 때에 비로소 내 주먹이 벽을 올려친 걸 알고 깜짝 놀랐다. 허물 벗겨진 주먹을 황망히 입에 들이대고 엉거주춤히 입김을 쏘이고 섰느라니까 잠 안 자고 게 서서 뭘 하오, 하고 변소에를 다녀가는 듯 싶은 심술궂은 쥔 노파가 긴치 않게 바라보더니 내 방 앞으로 주춤주춤 다가와서 눈을 찌긋 하고 하는 소리가 왜 남의 계집을 자꾸 들여다보고 그류, 괜히 맘이 동하면 잠도 못 자고, 하고 거지반 비웃는 것이 아닌가. 내가 나이찬 홀몸이고 또 저쪽이 남편에게 소박받는 계집이고 하니까 이런 경우에는 남모르게 이러구 저러구 하는 것이 사차불피의 일이라고 제멋대로 이렇게 생각한 그는 요즘으로 들어서 나의 일거 일동, 일테면 뒷간에서 뒤를 보고 나온다든가 하는 쓸데 적은 그런 행동에나마 유난히 주목하여 두는 버릇이 생겨서 가끔 내가 어마어마하게 눈총을 겨누는 것도
운 줄 모르고 나중에는 심지어 저놈이 계집을 떼 던지려고 저렇게 못 살게 구는 거라우, 이혼만 하거든 그저 두말 말고 떼꺽 꿰차면 고만 아니오, 하며 그러니 얼마나 좋으냐고 나는 별로 좋을 것이 없는 것 같은데 아주 좋다고 깔깔 웃는 것이다. 이 노파의 말을 들어보면 저놈이 십삼 년 동안이나 전차 운전수로 있다가 올에서야 겨우 감독이 된 것이라는데 그까짓 걸 바로 무슨 정승 판서나 한 것같이 곤댓질을 하며 동리로 돌아치는 건 그런대로 봐 준다 하더라도 갑작스레 무슨 지랄병이 났는지 여학생 장가 좀 들겠다고 아내보고 너 같은 시골뜨기하고 살면 내 낯이 깍인다, 하며 어서 친정으로 가라고 줄창같이 들볶는 모양이니 이건 짜장 괘씸하다. 제가 시골서 처음 올라와서 전차 운전수가 되어가지고, 지금 사람이 원체 착실해서 돈도 무던히 모였다고 요통안서 ㅗ문이 자자하게 난 그 저금 팔백 원이라나 얼마나를 모으기 시작할 때 어떻게 생각하면 밤일에서 늦게 돌아오다가 속이 후출하여 다른 동무들은 냉면을 먹고, 설렁탕을 먹고, 하는 것을 놈은 홀로 집으로 돌아와 이불 속에서 언제나 잊지 않고 꼭 대추 두 개로만 요기를 하고는 그대로 자고자고 한 그 덕도 있거니와 엄동에 목도리, 장갑, 하나 없이 그리고 겹저고리로 떨면서 아침 저녁 겨끔내기로 벤또를 붙이러 다니던 그 아내의 피땀이 안 들고야 그 칠팔백 원 돈이 어디서 떨어지는가. 그런 공로를 모르고 똥깨 떨거 다 떨고 나니까 놈이 계집을 내차는 것이지만 그렇게 되면 제놈 신세는 볼일 다 볼 게라고 입을 삐쭉이다가 아무튼 이혼만 하였다면야 내가 새에서 중신을 서주기라도 할 게니 어디 한 번 데리구 살아보구려, 하며 그 아내의 얼마큼이든지 남편에게 충실할 수 있는 미점을 들기에 야윈 손가락이 부질없이 펐다 접었다, 이리 수선이다. 이 신당리라는 데는 본시가 푼푼치 못한 잡동사니만이 옹기종기 몰린 곳으로 점잔한 짓이라고는 전에 한 번도 해본 일 없이 오직 저 잘난 놈이 태반일진댄 감독됐으니까, 여학생 장가 좀 들어보자고 본처더러 물러서 달라는 것이 이상할 게 없고, 또 한편 거리에서 말똥만 굴러도 동리로 돌아다니며 말을 만드는 수다쟁이들이 매 밤마다 내가 벽 틈으로 눈을 들여놓고 정신없이 서 있어서 저 남의 계집보고 조갈이 나서 저런다는 것쯤 노해서는 아니되겠지만 그래도 조금 심한 것 같다. 이놈의 늙은이가 남 곧잘 있는 놈 바람맞히지 않나 싶어서 할머니나 그리루 장가가시구려, 하고 소리를 빽 질렀던 것이나 실상은 밤낮 남편에게 주리경을 치는 그 아내가 가엾은 생각이 들길래 그런 양이면 애초에 갈라서는 것이 좋지 않을까보냐. 마는 부부간의 정이란 그 무언지 짧지 않은 세월에 찔기둥 찔기둥이 맺어진 정은 일조일석에는 못 끊는 듯 싶어 저러고 있는 것을 요즈음에는 그 동생으로 말미암아 더 매를 맞는다는 소문이었다. 한편에다 여학생 신가정을 꿈꾸는 놈에게 본처라는 것이 눈의 가시만치나 미운데다가 한 열흘 전에는 시골 처가에서 처남이 올라와서 농사 못 짓겠으니 나 월급자리에 좀 넣어달라고 언내 알라 세 사람을 재우기에도 옹색한 셋방에 깍짓동 같은 커단 몸집이 널찍하게 터를 잡고는 늘큰히 묵새기고 있다면 그야 화도 조금 나겠지. 허지만 놈에게는 그게 아니라 하루에 세 그릇씩 없어지는 그 밥쌀에 필연 겁 이 더럭 났을 것이다. 그렇다고 처남을 면 대놓고 밥쌀이 아까우니 너 갈 데로 가라고 내쫓을 수는 없을 만큼 놈도 소견이 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적실히 놈의 불행이라 안 할 수 없는 것으로 상 앞에서는 아 여보게 고만 자시나, 물에 말아서 찬찬히 더 들어봐, 하고 겉면을 꾸리다가 밤에 들어와서는 이러면 저두 생각이 있으려니, 확신하고 아내를 생트집으로 뚜드려 패자니 몇 푼어치 못 되는 근력에 허덕허덕 고만 지고 마는 것이다. 그러면 처남은 누이 맞는 것이 가엾기는 하나 그렇다고 어쩌는 수는 없는 고로 무색하여 밖으로 비슬비슬 피해나가는 것이다. 이래도 맞고 저래도 맞는 그 아내의 처지는 실로 딱한 것으로 이대로 내가 두고 보는 것은 인륜에 벗어나는 일이라 생각하고, 그 담날 부리나케 찾아가 놈을 꾸짖었단대도 그리 어줍잖은 일은 아닐 것이다. 내가 대문간에 가 서서 그 집 아이에게 건넌방에 세들은 키 쪼꼬만 감독 좀 나오래라, 해가지고, 그 동안 곁방에서 살았고 또 전자부터 잘났다는 성식은 익히 들었건만 내가 못나서 인사가 이렇게 늦었다고 나의 이름을 대니까 놈도 좋은 낯으로 피차 없노라고 달랑달랑 쏟으며 멋 없이 빙긋 웃는 양이 내 무슨 저에게 소청이라도 있어 간 것같이 생각하는 듯하여 불쾌한 마음으로 나는 뭐 전기 회사에서 오란대두 안 갈 사람이라고 오해를 풀어주고는 그 면상판을 이윽히 들여다보며, 오 네가 매밤의 대추 두 개로 돈 팔백 원을 모은 놈이냐, 하고는 그 지극한 정성에 다시금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비록 낯짝이 쪼그라들어 코, 눈, 입이 번뜻하게 제자리에 못 뇌고는 넝마전 물건같이 시들번히 게 붙고 게 붙고 하였을망정 제법 총기 있어 보이는 맑은 두 눈이며 깝진깝진 굴러나오는 쇠명된 그 음성, 아하 돈은 결국 이런 사람이 갖는 게로구나, 하고 고개를 끄떡거리다 그럼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하는 바람에 그제서야 나의 이 심방의 목적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허나 그대로 네 계집 치지 말라고 할 수는 없는 게니까 아 참 전기, 회사의 감독되기가 무척 힘드나 보던데, 하며 그걸 어떻게 그다지도 쉽사리 네가 영예를 얻었느냐고 놈을 한창 구슬리다가, 뭐 그야 노력하면 될 수 있겠지요, 하며 흥청흥청 뻐기는 이때가 좋을 듯 싶어서 그렇지만 그런 감독님의 체면으로 부인을 콕콕 쥐어박는 것은 좀 덜된 생각이니까 아예 그러지 마슈, 하니까 놈이 남의 충고는 듣는 법없이 대번에 낯을 붉히더니 댁이 누굴 교훈하는 거요, 하고 볼멘소리를 치며 나를 얼마간 노리다가 남의 내간사에 웬 참견이요, 하는 데는 고만 어이가 없어서 벙벙히 서 있었던 것이나 암만해도 놈에게 호령을 당한 것은 분한 듯싶어 그럼 계집을 처서 개잡는 소리를 끼익끼익 내게 해가지고 옆집 사람도 못 자게 하는 것이 잘 했소. 하고 놈보다 좀 더 크게 질렀다. 그랬더니 놈이 빠안히 쳐다보다가 이건 또 무슨 의미인지 잠자코 한옆으로 침을 탁 뱉아 던지기가 무섭게, 이것이 필연 즈 여편네의 신이겠지, 커다란 고무신을 짤짤 끌며 안으로 들어갔으니 놈이 나를 모욕했는가 혹은 내가 무서워서 피했는가, 알 수가 없으니까 옆에서 구경하고 서 있던 아이에게 다시 한 번 그 감독을 나오라고 시키어보았던 것이나 인젠 안 나온대요, 하고 전갈만 해 오는데야 난들 어떻게 하겠는가, 망할 놈, 아주 겁쟁이로구나 하고 입 속으로 중얼거리며 좀 더 행위가 방정토록 꾸짖어 주지 못한 게 유한이 되는 그대로 별 수 없이 집으로 들어왔던 것이나 밤이 이슥하여 잠결에 두 내외의 소곤소곤 하는 소리가 벽 너머로 들려올 적에는 아하 그래도 나의 꾸중이 제법 컸구나, 싶어 맘으로 흡족했던 것이 웬일인가. 차츰차츰 어세가 돋아져서 결국에는 이년 하는 엄포와 아울러 제꺽 하고 김치 항아리라도 깨지는 소리가 요란히 나는 것이 아닌가. 이놈이 또 무슨 방정이 나 이러나 싶어 성가스레 눈을 비비고 일어나서 벽 틈으로 조사해 보았더니 놈이 방바닥에다 아내를 엎어놓고 그리고 그 허리를 깡충
타고 올라앉아서 이년아 말해, 바른 대로 말해 이년아, 하며 그 팔 한짝을 뒤로 꺾어올리는 그런 기술이었으나 어쩌면 제 다리보다도 더 굵은지 모르는 그 팔목이 호락호락이 꺾일 것도 아니거니와, 또 거기에 열을 내가지고 목침으로 뒤퉁수를 콕콕 쥐어박다가 그것도 힘에 부치어 결국에는 양 옆구리를 두 손으로 꼬집는다 하더라도 그것 쯤에 뭣할 아내가 아닐 텐데 오늘은 목을 놓아 울 수 있었던 만치 남다른 벅찬 설움이 있는 모양이다. 그렇게 들을 만치 타일렀건만 이놈이 또 초라니 방정을 떠는 것이 괘씸도 하고 일방 뭘 대라 하고 또 울고 하는 것이 심상치 않은 일인 듯도 하고 이래서 괜스레 언짢은 생각을 하느라고 새로 넉점에서야 눈을 좀 붙인 것이 한나절쯤 일어났을 때에는 얻어맞은 몸같이 휘휘 돌리어 얼떨김에 세수를 하고 있느라니까 쥔 노파가 부리나케 다가와서 내 귀에 입을 들이대고는 글쎄 어쩌자고 남 매를 맞히우. 무슨 매를 맞혀요, 하고 고개를 돌리니까 당신이 어제 감독 보고 뭐래지 않았소. 그래 저의 아내 역성을 들 때에는 필시 무슨 관계 있을 게니 이년 서방질한 거 냉큼 대라고 어제 밤은 매로 밝혔는 것인데, 아까 아침에 그 처남이 와서 몇 번이나 당부하기를 내가 찾아와 그런 짓을 하면 저 누님의 신세는 영영 망쳐놓는 것이니 앞으론 아예 그러한 일이 없도록 삼가달라고 하였으니 글쎄 반했으면 속으로나 반했지 제 남편보고 때리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소, 하고 매우 딱하게 눈살을 접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그 아내를 동정한 것이 도리어 매를 맞기에 똑 알맞도록 만들어논 폭이라 미안도 하려니와 한편 모든 걸 그렇게도 알알이 아내에게로만 들씌러드는 놈의 소행에는 참으로 의분심이 안 일 수 없으니까, 수건으로 낯도 씻을 줄 모르고 두 주먹만 불끈 쥐고는 그냥 뛰어나갔다. 가로지든 세로지든 이놈과 단판 씨름을 하리라고 결을 하고는 대문간에 가 서서 커다랗게 박감독 하고 한 서너 번 불렀던 것이나 놈은 아니 나오고, 한 삼십여 세 가량의 가슴이 떡 벌어지고 우람스런 것이 필연 이것이 그 처남일 듯 싶은 시골 친구가 나와서 뻔히 쳐다보더니 마침내 말없이도 제대로 알아차렸는지 어리눅는 어조로 아 이거 글쎄 왜 이러십니까, 하며 답답한 상을 지어보이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넌지시 하는 사정의 말이 이러서면 우리 누님의 전정은 아주 망쳐놓으시는 겝니다. 그러니 아무쪼록 생각을 고치라고 촌뜨기의 분수로는 너무 능숙하게 넓적한 손뼉을 펴들고 안 간다고 뻗디디는 나의 어깨를 왜 이러십니까, 하고 골문 밖으로 슬근슬근 밀어내오는 것이었으나 주춤주춤 밀려나오며 가만히 생각해보니 변변히 초면 인사도 없는 이놈에게마저 내가 어린애로 대접을 받는 것은 참 너무도 슬픈 일이었다. 나중에는 약이 바짝 올라서 어깨로 그 손을 뿌리치며 홱 돌아섰 것만은 썩 잘된 것 같은데, 시꺼먼 낯판태기와 떡 벌은 그 엄장에 이건 나하고 맞투드릴 자리가 아님을 깨닫고는 어째보는 수 없이 그대로 돌아서고 마는 자신이 너무도 야속할 뿐으로 이렇게 밀려오느니 차라리 내 발로 걷는 것이 나을 듯 싶어 집을 향하여 삐잉 오는 것이다. 내가 아내를 갖든지 그렇지 않으면 이놈의 신당리를 떠나든지 이러는 수밖에 별도리가 없으리라고 마음을 먹고는 내 방으로 부루루 들어와 이부자리며 옷가지를 거듬거듬 뭉치고 있는 것을 한 옆에서 수상히 보고 서 있던 주인 노파가 눈을 찌긋이 그 왜 짐을 묶소, 하는 묻는 것까지도 내 맘을 제대로 몰라주는 듯하여 오직 야속한 생각만이 들 뿐이므로 난 오늘 떠납니다, 하고 투박한 한마디로 끊어버렸다.
-끝-
2016년 12월 8일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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