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를 사랑하였듯이, 너도 타인을 사랑하라.
내가 조건 없이 너를 사랑했듯이 너는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아무 조건 없이 타인을 사랑 하라.
너는 나에게 보답하려 하지 말고 오직 타 인에게 이 사랑을 주어라.
그들로부터 사랑을 받을 생각을 하지 말고 무조건적으로 그들을 사랑하라.
너의 정신적, 육체적 이익을 염려하 지 말고 오직 나의 영광과 이름으로 그들을 사 랑하라.
내가 그들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성녀 카타리나의 저서 ‘대화’편에 나오는 말씀 으로 그리스도가 카타리나에게 하신 말씀이다.
보통 사람과 성녀의 차이점은 이 단순한 말씀 을 실천에 옮기느냐 그렇지 못하냐에 있는 것 같다.
우리가 언제 타인을 조건없이 사랑한 적이 있는가? 우리는 타인과 관계를 맺는 순간 부터 마음속으로 저울질을 하기 일쑤이며, 무조건적인 사랑은 자식에게만 줄 뿐이다.
그런 데 성녀 카타리나는 예수님과 같은 나이인 33세로 사망할 때까지 이 말씀을 실천에 옮기며 살았다.
성녀가 교황 그레고리우스 11세에게 보낸 서한을 보면 그녀는 또한 교회의 부패와 잘못을 질타하는 냉정한 비판자이기도 했다.
“교회는 스스로 선택한 가난과 보잘 것 없는 어린양의 거울이어야 하고, 가난한 이들에게 부를 나누어 주어야 하건만, 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입니까?
그러기는커녕 세상의 사치와 야망, 그리고 허망 속에서 살고 있지 않습니까?
그것은 세속인들보다 천배는 더 나쁜 것입 니다.”
일개 수녀가 교황님께 이처럼 직설적으로 교회를 질타하였다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1374 년 카타리나 성녀는 당시에 치열했던 교회의 분열을 막기 위해 피사를 방문했으며 거기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것과 똑 같은 오상(五傷)을 받았다고 하는데,
남들이 알아보지 못하도록 상처를 숨기며 지내다가 죽음이 가까이 와서야 타인의 눈에 띄었다고한다.
당시 교회는 교황파와 대립 교황파로 나뉘어 싸우고 있었는데 카타리나는 늘 정통 교황파에 서서 교황의 정통성 확보에 이바지했고, 1309년 프랑스 남부의 아비뇽으로 교황청이 옮겨진 후 친히 그곳을 찾아가 교황님을 알현하여 1376년 교황청이 로마로 다시 돌아오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교회의 분열을 종식시키는 데에도 기여했다고 한다.
교회가 한창 분열의 혼란을 겪고 있던 1380년 경 카타리나는 먹고 마시는 것을 스스로 거부 하며 서서히 죽음의 길로 접어들었고, 그해 2월 29일 33세의 나이로 선종했다.
카타리나가 글 을 배운 것은 선종 3년 전에 불과하며, 그녀의 저서 ‘대화’와 40여 편의 서한은 그녀의 정신적 동지였던 성 라이몬디의 구술(口述)에 의한 것이다.
‘오상을 받는 성녀 카타리나’는 성녀와 동향 출신인 시에나의 화가 베카푸미가 그린 것으로 흰 색의 도미니크회 수도복을 입은 성녀 카타리나가 한쪽 무릎을 꿇은 채 두 팔을 벌려 십자 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상으로부터 오상을 받고 있는 장면을 그리고 있다.
실내는 정확한 원근 법에 의해 그려졌으며 아치 밖으로는 아름다운 전원 풍경이 이어지고 있고, 아치 바로 위에는 성 모자(母子)가 구름 사이에 떠 있다.
앞에 서 있는 두 사람 중 왼쪽에 흰 수도복을 입고 책을 들고 있는 이는 성 베네딕토이고 오른쪽에서 붉은 옷을 입고 책을 펼쳐 읽고 있는 이는 성 제 롬이다.
성 제롬의 발치에 사자를 그린 것은 성인이 사자의 발에 박힌 가시를 빼준 후 사자가 평생 성인 곁을 떠나지 않고 지켰다는 전설에 따른 것이다.
성 제롬의 붉은 옷에서 알 수 있듯 이 베카푸미는 강렬하며 비현실적인 색채를 구사할 줄 알았던 당대 최고의 화가였다.
작품의 주인공도, 그림을 그린 화가도 둘 다 시에나 사람이고, 작품이 소장된 곳도 시에나의 미술관 이니 시에나가 역사적으로 예술적으로 얼마나 풍요로운 도시인지 상상할 수 있겠다.
고종희 마리아 한양여대 교수 (가톨릭 신문 2009년 6월 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