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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가정과 양육적 가정의 분위기의 차이 문제가정의 분위기는.... 그런 가족과 함께 할 때마다 나는 금방 불편함을 느낀다. 어떤 때는 모두가 얼어붙은 것과 같이 차갑게 느껴지는데 분위기는 지나치게 공손하며 모든 사람이 눈에 보이게 권태에 빠져있다. 때로는 모든 일이 팽이 같이 계속해ㅓ 빙빙 도는 것 같아 어지럽고 균형을 잡을 수 없다. 그렇지 않으면 어느 순간이라도 천둥이 울리고 번개가 칠지 모르는 폭풍전의 고요함과 같은 예감을 주는 공기일 수도 있다. 때로 이 공기는 간첩본부의 분위기처럼 비밀에 가득 차 있다. 문제가정에서 몸과 얼굴은 그들의 고통스러운 상태를 말해준다. 몸은 굳어있고 조여들어 있어가 꾸부정해 있다. 얼굴은 골이 났거나 슬퍼 보이고 아니면 가면처럼 무표정해 보인다. 눈은 아리로 내려다보고 사람들을 지나쳐 버린다. 귀로는 분명히 듣지 않고 있다. 목소리는 거칠고 귀에 거슬리거나 잘 들리지 않는다. 가족 개인 간에 우정의 증거는 거의 없고 서로 간에 느끼는 기쁨도 거의 없다. 가족 간에 서로 참으려고 애쓰고 그저 의무적으로 함께 지낼 뿐이다. 때때로 문제가족 중 누군가가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려고 시도하는 것을 보지만 그의 말투가 무겁게 내려앉는 것을 본다. 유머는 신랄하게 빈정대고 잔혹하기까지 하다. 어른들은 끊임없이 아이들에게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말라고 요구하기에 바빠서 아이들은 그 자신이 누구인지도 탐색할 시간이 없으며 인간으로서 그 자신을 결코 즐기지도 못한다. 결과적으로 아이들은 인간으로서의 그의 부모와 함께 즐겁게 살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흔히 가족들이 실제로 서로 기쁨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문제 가정의 가족들에게는 매우 이상한 일로 여겨지기 쉽다. 양육적 가정과 함께 있을 때는 얼마나 다른가? 나는 즉각 생동감, 순수함, 솔직함과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이성뿐 아니라 감성과 영혼이거기에 함께 있음을 느낀다. 내가 그런 가정에서 살았다면 남들이 내 애기를 들어줬을 것이고 나도 남들에게 경청하는 것에 흥미가 있었을 것이며; 남으로부터 배려를 받고 남들을 배려하기를 바랐을 것이며; 모험에는 약간의 실수가 따르기 마련이고 나의 실수는 곧 내가 성장하는 신호라는 것을 우리 가족들은 알터이므로 모험을 한다는 것에 대해서도 두렵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당당한 한 인간 - 남들이 알아주고 인정해 주며 사랑해 주고, 또한 남들이 알아주고 인정해 조고 사랑해 주도록 의심의 여지없이 원하는 - 으로 느꼈을 것이다. 그런 가정에서는 생동감을 정말로 보고 들을 수 있다. 몸은 우아하고 얼굴 표정은 편안하다. 사람들은 그냥 건성으로 스쳐지나 간다든지 마룻바닥을 내려다보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바라본다.; 말은 크고도 분명한 목소리로 한다. 서로간의 관계는 자연스런 흐름과 조화가 있다. 어린아이들은 심지어 갓난아기들 일지라도 숨김이 없고 친근해 보이며 다른 가족들도 그들을 인간 그 자체로 대우한다. 이런 사람들이 사는 집은 빛과 색깔이 풍부하다. 이러한 집은 이웃에게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안락함과 즐거움을 위해서 설계된 분명히 사람이 사는 곳이다. 집안이 고요할 때 그것은 공포나 적막함이 아닌 평화가 깃든 고요함이다. 소리가 날 때는 다른 사람들을 끌어 내리려는 공격이 아니라 뜻있는 활동의 소리이다. 각자는 자신의 의견이 받아질 기회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지금 당장 차계가 오지 않는다 해도 그것은 그가 사랑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다만 시간이 없기 때문인 것이다. 사람들은 나이에 상관없이 피부를 맞대어 애정을 나타내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사랑과 관심의 증거는 쓰레기를 버려주거나 음식을 만들어 준다든지 월급봉투를 갖다 주는 것들로 한정되어 있지는 않다. 사랑과 관심을 숨김없이 이야기하며 관심을 가지고 들어줌으로써, 서로는 직선적이면서도 진실 되게 대함으로써, 그리고 단순히 함께 있어줌으로서도 얼마든지 표시할 수 있는 것이다. 양육적 가정의 사람들은 서로에게 자신의 감정을 자유롭게 나타낸다. 기쁨과 성취만이 아니라 실망, 공포, 상처, 분노, 비판 등 어떤 것도 다 이야기되어질 수 있다. 만일 아버지가 어떤 이유로 해서 나쁜 말을 듣게 되었다면 그의 아들이 “저런 아빠께서 오늘 맥이 빠져 있군요.”라고 솔직하게 말할 수 있다. 아들은 아버지가 “네 녀석이 아버지한테 그 따위로 말하다니”라고 호통 칠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렇기는커녕 아버지 역시 “맥이 빠졌고말고. 지옥과 같은 하루를 보냈단다.”라고 솔직하게 말할 수 있다. 그에 대해 그 아들은 “아빠 저한테 말씀해 주셔서 고마워요, 저는 아빠가 저 때문에 맥이 빠졌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지요.” 양육적 가정은 분명한 계획의 증거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무슨 일이 생겨 그 계획을 방해하면 그들은 언제라도 적응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겁을 먹지 않고도 삶의 문제들을 더 많이 다룰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