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신학교 36 :
‘신학연구’ 창간호(1969)
고려신학교가 처음으로 본격적인 신학논문집을 낸 것은 문교부로부터 각종학교 인가를 얻은 후 대학으로 체제 개편을 준비하던 때였다. 대학으로서는 교수논문집 발간이 늦은 편인데, 1940년대 ‘파수군’, 1960년대 ‘개혁주의’가 발행되어 교수들이 글을 발표할 지면이 계속하여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들 잡지는 교단지이면서도 고려신학교에서 간행하였고, 신학 전문지와 신앙 교양지의 중간 형태를 띄고 있었다.
이 ‘신학연구’ 제1집은 오늘날 고신대학교 교수 논문집의 첫 호이다. 고려신학교 교장 한상동 목사가 서문에서 ‘보수주의 신학 논문집이 나온다는 것은 교계에 기쁜 소식이요 신학계에서도 값진 업적이 아닐 수 없다. 자유주의 신학이 범람한 이 땅에 교계 출판계에 이 한 권의 논문집은 분명히 이 땅에 보수주의 신학이 살아 있다는 생명의 약동을 또 한 번 보여주는 동기가 되는 것이다’고 하였다.
이 논문집에는 홍반식 교수가 천지창조와 홍수, 인종 분포와 열국의 시작을 중심으로 ‘창세기의 원시역사’를 발표했다. 홍 교수는 홍수 항에서 길가메시 신화와 창세기 홍수 사건을 비교 분석하기도 했다. 오병세 교수는 ‘히브리 사람들의 사회생활’을 발표했는데, 사회 일원으로서의 인간, 사회의 괴기한 사건들을 다루었고, 이근삼 교수가 ‘개혁주의 기독교 철학의 필요성’을 발표하면서 철학과 종교, 철학과 일반신자, 철학과 성경, 철학과 일상경험, 철학의 출발점과 그 방향, 철학과 실제의 의의와 성격, 철학에 있어서 반위 등을 취급하고 있다. 하도례 교수도 ‘What is Myth?’를 발표하였다. 세 교수의 이 논문들은 홍반식 교수의 ‘신학과 신앙’, 이근삼 ‘이근삼 전집 제3권 개혁주이 교회와 목회’, 오병세 교수의 ‘사해문서 연구’에 다시 실렸다.
그동안 ‘파수군’이나 ‘개혁주의’는 지면상 본격적인 논문 형식으로 발표하지 못했는데, 교수들은 처음으로 본격적인 논문의 형식을 갖추어 발표하였다. 46판 134면으로 구성되어 있고 영어 차례를 마지막 페이지에 실었다. 그러나 이 논문집이 발행된 후부터 계속하여 논문집이 간행된 것은 아니었다. 고려신학교는 ‘신학연구’를 매년 발행하려고 했지만, 그렇지 못하였고, 제2집은 1973년 5월에나 출간하면서 ‘논문집’으로 이름을 바꾸었는데, 당시 연세대 신과대학에서 ‘신학연구’를 발행하였기 때문인 것 같다. 이후에는 대부분 매년 정기적으로 간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