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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묵상 #280
은혜 구한 내게 은혜의 주님
(Once It was the Blessing)
찬양곡: 441장 은혜 구한 내게 은혜의 주님
영어제목: Once It was the Blessing
작사자: 알버트 벤자민 심슨(Albert Benjamin Simpson, 1843-1919)
작곡자: 알버트 벤자민 심슨(Albert Benjamin Simpson, 1843-1919)
찬송곡조(Hymn Tune): HIMSELF
찬송가사:
1.
은혜 구한 내게 은혜의 주님
은사 원한 내게 은사의 주님
신유 구한 내게 신유의 주님
나의 마음속에 지금 오셨네
[후렴]
나의 생명 되는 내 주 예수님
영원토록 모셔 내 기쁨 넘치네
2.
말씀 위에 서서 내 뜻 버리고
감정을 버리고 말씀에 서니
불완전한 믿음 완전해지고
내가 이제부터 주만 붙드네
3.
나의 모든 욕심 던져 버리고
내가 염려하며 계획하던 것
믿고 기도하며 주께 맡기고
주의 뜻을 따라 살기 원하네
4.
믿음으로 닻을 주께 던지고
끊임없이 주를 찬송하면서
전엔 나를 위해 일해 왔으나
이젠 주만 위해 힘써 일하리
5.
나의 소망 되는 구주 예수님
이 세상에 다시 강림하겠네
나의 등불 밝혀 손에 들고서
기쁨으로 주를 맞이하겠네
[찬송 묵상]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에베소서 3:17)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솔로몬 왕은 말년에 성령의 감동으로 전도서를 기록했는데,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 1:2)라고 고백했습니다.
솔로몬은 나라를 부강하게 했고, 왕궁과 하나님의 성전을 아름답게 건축했으며, 창고엔 금은보화가 차고 넘쳤습니다.
시종 드는 수많은 궁녀도 있었고, 궁궐 안에는 먹고 마시고 즐길 거리가 차고 넘쳤습니다.
그런데도 헛되고 헛되며 헛되었다고 했습니다.
왜일까요.
하나님 안에서 행하지 않고, 신앙의 뿌리를 깊이 내리지 않고, 욕심만 좇으며 살았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를 향해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골 2:6~7)고 했습니다.
성도 중에는 삶이 공허하고 우울하다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믿음의 뿌리가 깊지 않고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브닌나가 왜 한나를 격동시켰을까요.
성령으로 새롭게 거듭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요 3:6~7)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모양은 있으나 중심에 하나님을 모시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비판하고 판단하고 정죄했습니다.
자신의 허물은 보지 못하고 타인의 허물만 지적했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나지 못한 사람은 자존심 강하고 잘못된 행동조차 정당화시키고 남 탓으로 돌립니다.
‘육적인 몸’을 벗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뿌리를 깊이 내린 나무는 땅속에 있는 영양을 풍성하게 섭취합니다.
뿌리 깊은 나무는 비바람도 견디고 풍성한 열매도 맺습니다.
뿌리 깊은 나무는 새들이 와서 깃들이고 사람들이 와서 그 그늘에 쉬기도 합니다.
“사람이 자기 채소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자라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였느니라”(눅 13:19)라는 말씀은 천국을 가리키는 것이기도 합니다.
신앙의 뿌리를 깊게 내린 성령으로 거듭난 요셉은 옥에 갇혔으나 험난한 종살이와 감옥 생활을 이겨냈습니다.
다윗은 사울 왕에게 쫓겨 다녔지만, 하나님만 바라보며 뿌리 깊은 신앙으로 승리자가 됐습니다.
다니엘은 사자 굴에 던져졌지만 믿음의 뿌리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한나는 브닌나로부터 온갖 험한 말을 듣고서도 이겨냈습니다.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기”(고후 4:7) 때문입니다.
예수님 안에 뿌리내린 성도들은 예수님의 성품으로 행하고 매사에 기쁨이 넘치며 범사에 감사합니다.
사랑을 실천하는 일에도 앞장섭니다.
주님의 권능을 믿고 믿음으로 승리합니다.
- 국민일보 가정예배 365, 양한승 목사(양무리순복음교회)
작사, 작곡: 알버트 벤자민 심슨(Albert Benjamin Simpson, 1843-1919)
심슨은 1843년 캐나다 프린스 에드워드 섬 캐번디시(Cavendish, Prince Edward Island) 근처의 베이뷰(Bayview)에서 제임스 심슨 주니어와 재닛 클라크의 셋째 아들이자 넷째 아이로 태어났다.
젊은 알버트는 엄격한 칼빈주의 스코틀랜드 장로교와 청교도 전통에서 자랐다.
그의 신앙 개종은 1859년 부흥 기간동안 아일랜드에서 온 방문 전도사 Henry Grattan Guinness의 사역을 통해 시작되었다.
심슨은 온타리오주 Chatham 지역에서 얼마 동안 시간을 보냈고 토론토 대학교 Knox College에서 신학 교육을 받았다.
1865년 졸업 후, 심슨은 캐나다 장로교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는데, 이는 그가 미국으로 떠난 후 합병된 캐나다 장로교 단체 중 가장 큰 규모였다.
21세에 그는 온타리오주 해밀턴 근처에 있는 대형 녹스 장로교회(1971년 폐쇄)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1873년 12월, 30세의 나이에 심슨은 캐나다를 떠나 켄터키주 루이빌에 있는 가장 큰 장로교회인 체스트넛 스트리트 장로교회의 설교단에 올랐다.
그가 처음으로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그 목적을 위해 단순한 성막을 짓는 것을 생각해 낸 것은 루이빌이었다.
체스트넛 스트리트 교회에서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심슨은 더 광범위한 복음 전도 활동을 위해 이 부담을 받아들이려는 교회의 주저함에 좌절했다.
1880년 심슨은 뉴욕시의 13번가 장로교회로 부름을 받았고, 그곳에서 즉시 복음을 가지고 세상에 다가가기 시작했다.
1881년 8월, 그는 심장병에 대한 신성한 치유를 경험했다.
1881년 10월, 그는 신자의 세례를 헌신의 상징으로 받아들이고 침례교회에서 침수 세례를 받았다.
그는 교회에서 자신의 신앙의 변화에 대해 논의한 후, 교회를 떠나기로 결정했다.
1881년에 그는 많은 새로운 이민자들과 뉴욕시의 소외된 대중들에게 독립적인 복음 사역을 시작했다.
교회에서 활발한 복음 전도 활동 외에도 그는 1882년에 그림이 실린 최초의 선교 저널인 선교 저널인 The Gospel in All Lands를 발간했다.
심슨은 또한 The Word, Work, and World라는 제목의 그림이 실린 잡지를 창간하여 발행하기 시작했다.
1882년 심슨은 "교회의 소홀히 여겨지는 자원을 통해 세계의 소외된 사람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비공식적인 훈련 수업을 시작했습니다.
1883년에는 공식적인 프로그램이 마련되었고 목사와 선교사들은 다문화적 환경에서 훈련을 받았습니다(이 학교는 나이악 칼리지(Nyack College)와 얼라이언스 신학대학(Alliance Theological Seminary)의 시작이었다.)
1889년, 심슨과 그의 가족은 44번가와 8번가 모퉁이에 있는 New York Tabernacle이라는 새집으로 이사했다.
이곳은 도시에서의 그의 전도사역의 기반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전 세계 선교 사업의 성장하는 기반이 되었다.
심슨은 1919년에 세상을 떠났으며, 그의 아내(Margaret L. Henry)는 1924년에 세상을 떠나 뉴욕주 나이악(Nyack)에 있는 나이악 칼리지의 Rockland County 캠퍼스에 안장되었다.
찬송곡조(Hymn Tune): HIMSELF
앨버트 벤쟈민 심슨이 이 찬송 가사와 곡을 동시에 만들었다.
이 찬송이 처음 우리나라에 소개된 것은 <신증 복음가, 1919>에 이장하 목사 번역으로 실렸고 지금의 가사는 <통일 찬송가, 1983> 때 오소운 목사가 했다.
[가사 영어원문]
Once It was the Blessing
1
Once it was the blessing, Now it is the Lord;
Once it was the feeling, Now it is His Word.
Once His gift I wanted, Now the Giver own;
Once I sought for healing, Now Himself alone.
한때는 축복을 원했으나, 이제는 주님을 원하네;
한때는 감정을 따랐으나, 이제는 주님의 말씀을 따르네.
한때는 주님의 선물을 원했으나, 이제는 주신 분 자체를 소유하네;
한때는 치유를 구했으나, 이제는 오직 주님만을 원하네.
Refrain:
All in all forever, Only Jesus will I sing;
Everything in Jesust, And Jesus everything.
모든 것 안에서 영원히, 오직 예수님만을 찬양하리라;
모든 것이 예수님 안에 있고, 예수님이 모든 것이라.
2
Once ’twas painful trying, Now ’tis perfect trust;
Once a half salvation, Now the uttermost.
Once ’twas ceaseless holding, Now He holds me fast;
Once ’twas constant drifting, Now my anchor’s cast.
한때는 아픈 시련이었지만, 이제는 완전한 신뢰이며;
한때는 불완전한 구원이었으나, 이제는 완전한 구원이네.
한때는 끊임없이 붙들려 했으나, 이제는 그분이 나를 굳게 붙드시네;
한때는 끊임없이 표류했으나, 이제는 내 닻이 내려졌네.
3
Once ’twas busy planning, Now ’tis trustful pray’r;
Once ’twas anxious caring, Now He has the care.
Once ’twas what I wanted, Now what Jesus says;
Once ’twas constant asking, Now ’tis ceaseless praise.
한때는 바쁘게 계획했지만, 이제는 신뢰하는 기도이라네;
한때는 근심걱정뿐이었으나, 이제는 주님의 돌보심을 받네.
한때는 내가 원하는 것이었으나, 이제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이며,
한때는 끊임없이 구했으나, 이제는 쉬지않는 찬양이라네.
4
Once it was my working, His it hence shall be;
Once I tried to use Him, Now He uses me.
Once the pow’r I wanted, Now the Mighty One;
Once for self I labored, Now for Him alone.
한때는 나의 수고이었지만, 이제부터는 주님이 일하시네;
한때는 주님을 이용하려 했으나, 이제는 주님이 나를 사용하시네.
한때는 능력을 원했으나, 이제는 전능하신 분을 원하네;
한때는 나를 위해 일했으나, 이제는 오직 주님만을 위해 일하네.
5
Once I hoped in Jesus, Now I know He’s mine;
Once my lamps were dying, Now they brightly shine.
Once for death I waited, Now His coming hail;
And my hopes are anchored, Safe within the veil.
한때는 예수님을 바랐으나, 이제는 그분이 내 것임을 확신하네;
한때는 내 등불이 꺼져갔으나, 이제는 밝게 빛나네.
한때는 죽음을 기다렸으나, 이제는 그분의 오심을 환영하네;
그리고 내 소망은 닻을 내렸으니, 휘장 안에서 안전하네.
https://youtu.be/hg-Qhq7W7DA
첫댓글 김성봉 : 찬송은 모두가 다 은혜롭고 좋은 것이지만
이 찬송은 평소에 잘 불러본 경험이 없는 것 같은데
새삼 따라서 불러보니 은혜롭네요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