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백옥(伯玉), 호는 저헌(樗軒). 아버지는 회림(懷林)이다.
김반(金泮)의 문인이다.
1442년(세종 24)
식년문과에 장원급제하여 정언이 되었다.
이듬해 집현전부교리가 되었고,
1447년
응교로 있을 때 문신 중시에 급제했다.
1451년(문종 1)
집현전직제학으로 춘추관기주관을 겸직했으며,
이때 정인지(鄭麟趾) 등과 〈고려사〉·〈치평요람〉의 편찬에 참여했다.
1453년
계유정난으로
세조가 병권과 정권을 장악하자,
정인지·노효담·신숙주 등과 더불어 훈구파의 대표적 인물로 부상했다.
1455년(세조 1)
첨지중추원사를 거쳐 전라도관찰사로 나갔다.
1456년 6월
사육신사건이 일어나자,
사육신의 절의를 칭송하는 시를 익산 동헌에 남겨
대간에서 치죄하자는 논의가 있었으나
세조에 의해 예조참의에 올랐다.
1460년
황해도관찰사로 세조의 서계(西界) 지방순행을 도왔다.
그뒤 대사헌·호조참판 등을 거쳐
팔도체찰사로 호패법(號牌法)의 시행을 감독했다.
1468년
세조가 죽은 후 고부 겸 청시승습사(告訃兼請諡承襲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470년(성종 1)
판중추부사가 되고,
이듬해 좌리공신(佐理功臣) 4등으로 연성부원군(延城府院君)에 봉해졌다.
저서로 〈저헌집〉이 있다.
시호는 문강(文康)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