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식 농사가 살아야 한다
안철환_귀농운동본부 홍보출판위원장
이 기사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2008. 5)에 실은 원고입니다. 이는 웹진(곡우호)에 백승우 씨가 쓰신 글 내용 중 곡식농사를 지어야 한다는 의견에 찬성하면서 쓴 글입니다.
어릴 적 밥상을 떠올리면 재미있는 구석이 많다. 우선 내가 지금 먹는 공기밥 그릇보다 어릴 때 먹던 내 그릇이 더 컸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 나이가 40대 후반임에도 어릴 때의 그 그릇의 모양과 뚜껑이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내 그릇만이 아니라 식구들 그릇이 다 따로 있었다. 기억나는 그릇은 내 것과 아버님 것인데, 막내인지라 내 것이 제일 작고 아버님 그릇이 제일 컸는데 그 그릇만 보면 왠지 마음이 든든해진다고 할까, 그런 느낌이었다. 물론 막내인 내 그릇은 식구 중에 제일 작았는데 그래서인지 좀 귀엽다는 느낌이 기억으로 남아있다.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나서도 49제까지 아침, 저녁으로 어머니는 아버님 밥상을 따로 차려놓고 나서 우리 밥상을 차려주셨다. 같은 밥상의 아버님 그릇임에도 평소와 달리 그 큰 밥그릇이 뭔가 어색해보였다. 그릇에 혼이 나갔다 할까?
어린 마음에 또 이해가 가질 않았던 것은 큰 형님이 먼 데 나가 집에 들어오질 않는데 꼭 밥상에 형님 밥그릇이 올려지는 것이었다. 아마 먼 데 가서 굶지 말라고 하는 뜻이었을 것 같다. 하여튼 그 때 형님의 늘 같은 밥그릇도 생뚱맞게 밥상에 얹혀져 있는 게 참 어색하다는 느낌이었다.
사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밥상의 주인공은 밥그릇이라는 것이다. 수저도 주인이 따로 정해져있었지만 그 말고 주인이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은 밥그릇 말고 없으니 그럴만하다. 그러고 보면 주인 없는 지금의 밥상은 혼이 나간 밥상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더 따지고 들면 밥그릇보다 그 안에 담긴 밥이 주인공일 것이다. 밥 다음에 조연은 김치이고 된장찌개다. 어쩌다 생선이나 달걀찜이라도 나오면 진수성찬으로 환영받았다.
어릴 때 한번은 부자집 친구 집에 놀러가서 밥을 얻어먹은 적이 있었다. 옛날엔 친구 집에 놀러 가도 밥 때가 되면 꼭 집에 가서 밥을 먹었기 때문에 친구집에서 밥 얻어먹는 일은 별로 없었다. 그런데 그 친구집 밥상은 그야말로 고기 투성이었다. 소갈비, 불고기, 고기만두 등등.... 얼마나 맛있게 먹었는지 참 놀라운 경험이었다. 그러고 나서 우리집 밥상이 매우 가난한 밥상이라는 생각을 갖게 했다.
그런데 밥 투성이의 우리집 밥상이 과연 가난한 밥상이었을까? 그게 결코 아니었다는 것을 농사짓고 나서도 한참 있다 깨달았다.
전통농업을 찾아 취재 다니고 이러저러 공부한지 만 3년이 넘었다. 처음엔 막연히 진짜 유기농업은 전통농업일 것이라 생각하고 찾아다녔다. 몇 천년을 농약, 화학비료, 제초제 없이 자연의 힘만을 빌어 농사지어온 민족임에도 유기농업을 외국에서 배워왔다는 사실이 자존심을 상하게도 했다. 3년이 넘으니 이제야 명확히 문제의식이 서는데, 처음에 생각했던 것과 별반 다를 바 없다. 다만 막연한 것에서 확실한 것으로 바뀌었다 할까.
나는 전통농업을 이렇게 정의하고자 한다. 수 천년을 우리나라에서 적응하면서 우리 환경에 가장 잘 맞는 농업이 전통농업이라고. 그러니까 유기농업이든 친환경농업이든 그 개념의 유래는 인간에 도움되기 때문이 아니라 자연환경에 가장 도움되기 때문이며 그에 부산물로서 인간에게도 도움이 되는 농업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에게 도움되는 것이 2차적이라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자연에 가장 적합한 농업이 인간에게도 가장 도움이 되는 농업이 될 수 있다.
자연에 잘 적응한 농업이라는 것은, 농사짓는 데 들어가는 비용과 에너지가 가장 적다는 말과도 같다. 자연에 잘 맞는다는 얘기는 자연의 힘을 잘 빌어서 한다는 것과 상통한다.
그럼 우리 자연환경은 어떤 특징을 갖고 있고 그런 특징에 잘 부합하는 농사가 무엇인지 살펴보자. 우리 환경을 가장 크게 결정짓는 기후는 한여름의 장마철이다. 이른바 몬순기후 지대의 특징이다. 동남, 동아시아가 주된 몬순기후 지대인데 대체로 논농사를 하는 곳과 일치한다. 여하튼 여름 장마철에 거의 대부분의 비가 한꺼번에 쏟아지기 때문에 그 장마를 둘러싸고 어떤 농업 전략을 짜느냐는 일 년 먹을거리 전략을 좌우하는 제일 큰 관건이다.
장마철 다음으로 특징적인 기후는 추운 겨울 날씨다. 중부 지방 같은 경우는 심하면 영하 20도까지도 내려간다. 한여름엔 영상 30도 이상 넘기 때문에 연교차가 자그마치 50도나 된다.
영하의 날씨와 함께 중요한 기후는 서리다. 서리는 고온장일(高溫長日)성 작물, 곧 여름 작물의 생육기간을 결정짓는 기준이 된다.
우리나라 기후의 특징인 장마와 추운 겨울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채소 작물이 잘 되는 곳이 아니다. 장마 비를 맞으며 한여름 고온다습한 기후를 버틸 재간이 채소 작물에게는 거의 없다. 배추 등 엽채류는 강원도 같은 서늘한 고랭지 아니면 장마철엔 재배 자체가 되질 않는다. 대표적인 고온장일성 작물인 고추도 장마를 거치면 탄저병이다 역병이다 해서 갖은 병들이 달라붙어 장마를 곱게 지나치기가 쉽지 않다.
전통적으로 우리의 엽채류는 장마전에 다 거둬 먹게 되어 있다. 씨앗도 장마 전에 다 맺힌다. 그런데 양배추, 양상추, 브로콜리 같은 서양 채소들은 장마철에 꽃이 피기 때문에 씨앗 맺기가 매우 힘들다. 비가림 재배를 하지 않고서는 거의 자가 채종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도대체 장마라는 기후는 절대적으로 채소 농사에 불리하다. 한마디로 우리 환경에 유리한 작물이 못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김치거리 채소 말고, 특히 쌈채소, 셀러드 채소 수요가 늘어나 그에 따라 우리 농촌엔 비닐하우스가 매우 늘어났다. 도시 근교에는 더 하다.
채소의 소비가 느는 것은 육식 소비가 느는 것과 아주 밀접하다. 사실 쌈채소, 셀러드 채소는 다 고기를 먹기 위한 부재료들이다. 나는 그래서 채식주의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아무리 보아도 육식주의의 반편향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채소 작물은 대개 겨울을 나는 월년생(越年生) 작물들이다. 횟수로 따져 2년생이라고도 한다. 가을에 파종하여 겨울을 나고 봄에 꽃대를 올려 씨를 맺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겨울은 매우 춥기 때문에 겨울을 나기가 만만치 않다. 거름을 많이 주어 살을 찌개 해 놓으면 더욱 어렵다. 되도록 비만이 되질 않도록 해야 겨울을 잘 이겨내고 봄에 후손을 퍼뜨릴 수 있는 것이다. 장마도 어려운 난관이지만 겨울도 꽤나 넘기 힘든 장애다. 그래서 원래 조선배추는 지금 배추처럼 뚱뚱하질 않았다. 아예 결구도 되지 않거나 잘해야 반결구되는 정도였다. 무도 지금처럼 무청이 무성하질 않았고 무 자체도 그야말로 무다리(?) 마냥 크질 않았다. 본성이 살아남아 있어 무나 배추 스스로 겨울을 나기 위해 적당히 다이어트를 한 셈이다. 이렇게 작물 스스로 노력을 해도 스스로 겨울을 나기가 어려워 꼭 농부의 보온 손길을 거쳐야 겨울을 났다.
그렇다면 이런 우리의 기후 조건에 잘 적응하는 작물이 무엇인가?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벼를 비롯한 곡식들이다. 조, 기장, 수수, 옥수수, 콩 등이 그것이다. 겨울을 나는 밀, 보리도 서양만큼 잘 되는 것은 아니지만 채소에 비하면 그래도 잘 되는 편이다.
벼와 함께 우리의 곡식들은 장마철에 쑥쑥 큰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에 의존해 농사짓던 옛날엔 곡식들을 대부분 장마가 찾아오는 6월 하순 하지 즈음해서 파종했다. 장마 전인 5월 하순 소만(小滿) 이후부터는 꼭 가뭄이 찾아온다. 4월 하순 곡우에 내린 비로 파종을 한다 하지만 장마 전까지 봄 가뭄에 버티기 어렵기 때문에 곡우 이후 바로 파종하질 못했다. 또 5월엔 새들이 산란기에 들어가 먹을거리를 많이 필요한 때라 이 때 콩을 심으면 괜히 새들에게 먹이만 주는 꼴이 된다. 그럼에도 생육기간을 늘려 많이 먹을 요량으로 미리 심는 바람에 새를 쫓느라 쓸데없는 고생들을 한다. 총을 쏴서 겁을 준다든가, 꽹과리를 울려 시끄럽게 해서 쫓는다든가, 무식하게 돌을 던져 접근하지 못하게 한다든가 많은 노력들을 한다. 제일 확실한 것은 모종을 길러 심는 것인데 모종을 하면 수량이 많은 이점도 있다.
벼는 논에다 심어 장마비를 그대로 모아두면 그 물을 먹고 벼가 쑥쑥 큰다. 뿐만 아니라 논은 한꺼번에 쏟아지는 빗물을 담아두어 범람을 막아주는 댐 역할도 한다. 간혹 마른 장마로 가물 때면 밭벼를 심는다든가, 척박한 조건에서도 잘 자라는 조나 기장 아니면 메밀을 심어 먹었다.
이렇게 곡식은 우리 환경에 잘 맞는 작물들이다. 환경에 잘 맞는다는 것은 자연 환경을 잘 이용하면서도 환경에 도움을 주며 서로 공생한다는 뜻일 게다. 그렇기 때문이겠지만 환경에 잘 맞기 때문에 비싼 비용과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아도 농사가 가능하다는 점이 중요하다. 예컨대 장마비를 피하기 위해 벼를 비닐하우스에서 키운다든가, 물을 주기 위해 스프링클러를 돌린다든가 쓸데없이 돈 들여 헛수고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또 유일하게 연작피해도 없고 단작피해도 없는 작물이 벼이기 때문에 벼야말로 우리 환경에 가장 잘 맞고 환경을 가장 잘 지켜주는 절대적인 존재이다. 우리 문화를 거의 쌀문화, 논문화라 하는 것도 다 이와 관련이 없을 수 없다. 대부분 농경지는 논이 많았고 밭이라 해봐야 집 앞의 꼬딱지 만한 텃밭에서 최소한의 채소를 키워 먹었다.
서두에서 말했듯이 우리 밥상의 주인공이 밥인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밥과 김치, 찌개 정도 올라오는 우리 밥상이 가난한 밥상이라고 볼 게 아니라 우리 환경에 가장 잘 맞는 밥상이라 봐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실 밥 한 그릇이면 필요한 영양은 그것으로 족했다. 그러나 백미 갖고는 영양 충족이 되질 않는다. 논농사 지역에 정미기가 들어온 이후부터 각기병을 비롯해 각종 성인병이 퍼지기 시작했다는 말도 다 이 때문이다. 현미잡곡밥이어야 필요한 영양을 얻을 수 있다. 5곡밥 이상으로 갖은 곡식들을 넣어 만든 밥이라면 다른 영양이 뭐가 필요하겠는가? 김치와 찌개는 그런 밥이 입에 잘 넘어가고 배속에서 잘 소화되도록 도와주는 조연이라는 말도 이제는 이해가 갈 것이다.
곡식이 좋은 것은 이뿐만 아니다. 우선 곡식은 보관성이 좋다. 반면 보관성이 좋지 않은 채소는 일시에 팔아야 하기 때문에 시장 상황에 바로바로 영향 받는다. 채소는 1%만 시장에서 넘쳐도 가격이 폭등하고 1%만 모자라도 폭락하는 속성이 있다. 바로 저장성이 떨어져 한 번에 다 팔아야 하기 때문이다.
곡식은 가공하기 좋은 이점도 있다. 콩으로는 장을 만든다든가, 쌀로는 떡을 만든다든가, 등등...
다만 곡식의 단점이라면 값이 좋지 않다는 것이다. 안전성은 있지만 이익이 박하다. 하지만 여기에는 채소, 육식의 소비가 는 것과 무관치 않다. 말하자면 쌀 소비량이 적어진 것과 유관한 것이다. 옛날엔 쌀이 돈이었고 금값이었다. 그런 날이 머지않아 올 조짐이 최근에 여기저기 들어나고 있다. 수입밀가루 값이 오르고, 사료값이 오르고, 기름값도 올라 다시 쌀 소비가 늘 조짐이다.
쌀 외의 식량 작물들은 벌써 국제시장에선 식량 위기라고들 한다. 다른 식량 작물들은 거대 다국적 곡물 메이저들이 장악하고 있어 후진국들은 식량 위기에 휘청거리고 있다. 아직은 쌀이 주식이기는 하지만 쌀 외의 곡물 소비가 많은 우리도 결코 강건너 불구경하고 있을 수 없다. 당장은 경제성이 떨어질지라도 쌀과 곡식 농사를 점차 늘려가야 할 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