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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사랑을 전달하는 천사들의 집~! 원문보기 글쓴이: 호박조우옥
2008년에 나는 스무살이 되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신체검사를 받았는데 역시나 결과는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다. 검도라는 운동을 하면서 고질적인 어깨탈구에 시달려 왔던 것이 문제였다. 현역복무에 문제점이 있을 것으로 판단되어 4급 공익 근무요원 판정이 나온 것이다. 한 편으론 기쁘기도 했지만, 친한 친구들이 하나둘씩 입대하고... 휴가를 나올 때마다 점점 철이 든 남자가 되어 돌아오는 느낌을 받을 때, 그리고 그들의 대화내용을 전혀 알아듣지 못할 때 느껴지는 엄청난 소외감과 자괴감은 나를 괴롭혔다. 또한 나는 20대 초반에 부모님과의 관계악화, 3년간 사귀었던 여자친구와의 이별, 학창시절 친했던 친구들이 점점 연락이 뜸해지고 멀어지는 것에 대한 외로움 등으로 타락한 나날을 보냈다. 술, 즉흥적으로 만나는 여자들, 게임과 1년 가까이 함께 하다 보니 세상은 더욱 나를 무시하고 등지기 시작했고, 여기저기서 나를 비난하고 욕하는 것이 느껴졌다. 이렇게까지 무너질 것이라곤 예상치 못했는데... 너무도 빨리 모든 것이 사라지고 적이 되었다... 공을 들여 쌓아둔 돌탑이 순간의 실수로 0.1초라는 시간에 무너지는 것... 딱 내 상황이 그랬다...
그러던 어느 날, 2009년 9월에 입대한 친구녀석이 전화가 왔다. 20사단 107기보대대에서 장갑차를 운전하던 그녀석은 축구선수 출신답게 군생활도 굉장히 잘 적응하고 있었던 터라 상당히 멋스러운 구석이 있는 녀석이다. 그 녀석과의 통화는 나의 인생을 바꾸어주는 계기가 되었고, 또한 내 인생에서 가장 성공한 선택지가 되었다. 그 내용은 이러하다. ‘야 너 그렇게 폐인처럼 거리에서 방황하지 말고 그냥 재검받고 군대나 와라. 군대오면 인간된다. 넌 지금 군대가 제일이다. 내 말 새겨들어라. ’이렇게 대화를 마치고서 나는 엄청난 고민에 빠져들었다. 그때내 나이 22세... 신병으로 입영하기엔 적지 않은 나이었다.
많은 고민 끝에 나는 결국 재검 후 현역입대라는 결정을 내리게 되었고, 그 날 이후로 정형외과에 찾아가 물리치료와 가벼운 운동을 병행하며 석달 정도를 보냈다. 그리고 8월쯤이었나? 떨리는 마음으로 의사선생님의 소견서를 손에 들고 재검을 받으러 갔다. 결과는 3급 현역판정이었다. 과연 잘한 일인가? 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내겐 이 길이 가장 최선의 선택이라는 생각에 후회는 없었다. 어느덧 12월이 되고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논산으로 향했다. 부모님과 함께 KTX를 타고 논산으로 향하는 내내 창 밖의 모든 풍경이 새롭고도 두려웠다.
12월 13일의 그 날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겨울인데도 겨울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그날... 입소대대 앞 이발소에서 삭발을 하고, 부모님과 마지막으로 부대찌개를 먹고서 정식으로 입대를 하던 그날... 돌아서서 멀어지는 부모님의 얼굴을 마주치면 눈물이 날까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었다. 나는 마음으로 울었다. 내리는 비 만큼이나 많은 양의 눈물을 나는 남자라는 이유로 마음으로 흘렸다. 논산의 29연대 2교육대 8중대 4소대에서의 훈련을 모두 마치고 나는 36사단 109연대 1대대 일명 대관령부대로 배치되었다.
입대 당시 115kg까지 불어있는 체중덕분에 마오전뚱(마오쩌둥을 인용한 별명) 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던 나는 자대에 배치받기 직전에 90kg까지 감량을 하는 놀라운 기적을 만들어냈다. 대관령에서의 생활은 힘들기도 했지만 소중한 인연들을 만나는 계기가 되었던 행복한 시간들이었다. 훈련과 군인자세만큼은 눈물이 나올 정도로 철저히 하셨지만, 놀때는 화끈하게 같이 어울려 주시던 박종삼 전 대대장님, 나보다도 먼저 전역하신 이규연 전 중대장님, 친형처럼 우리랑 어울려 주시고 분대장을 차면서 잘 맞는게 많아서 굉장히 좋아했던 김민규 전 중대장님, 아버지같은 마음으로 밤 늦게까지라도 끝까지 우리와 함께 일하시다 퇴근하셨던 최표순 주임원사님, 새로 오셔서 오래 뵙지는 못했지만, 있는동안 정말 친절하게 대해주셨던 이정훈 중대장님 등 대대 간부님들과의 인연... 이등병때 어리버리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 종교행사 선탑자로서 먼저 말도 걸어주고 먹을 것도 챙겨준 김민정 하사님, 정말 동네 푸근한 삼촌처럼 따뜻한 말씀과 웃음을 선사해 주시던 박문수 연대장님, 캐치볼 파트너였던 이은석 대위님, 동네 형처럼 친근하게 대해주시던 김성남 하사님 등 연대간부들과의 인연도... 1대대 기동타격대로서 함께 웃고, 분노하고, 슬퍼했던 나의 모든 전우들과의 인연도... 내게는 너무나 소중하다. 또한 행군과 준비태세, 국지도발 차단선훈련, 초동조치, 유격훈련, 동원훈련, 혹한기훈련 등 수많은 훈련을 통한 리더십과 협동심을 배울 수 있었고, 지속적인 체력단련과 병영 내 활동 등을 통하여 전역당시에는 키 183cm에 82kg까지 감량 하는 기염을 토했다.
무엇보다도 부모님과 친구들에 대한 소중함, 사람 관계의 중요성, 협동심에서 우러나오는 전우애, 만남과 이별에 대한 연습 등을 배울 수 있어서 정신적으로 큰 영향을 주었다. 군대는 결코 무서운 곳이 아니다. 군대도 결국엔 사람사는 곳이다. ‘함께’ 군대에선 아주 중요한 말이다.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즉, 적응을 못한다는 것, 두렵다는 것은 ‘함께’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군대는 체력과 정신력을 증진시켜 주는 장점도 있지만, 무엇보다 사회생활을 배울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집단이다. 자신이 수줍음이 많다거나, 붙임성이 좋지 못하다면 군대에서 고치고 전역할 수 있다. 충분히 가능하다. 좋든 싫든 1년 9개월간 함께 살아가다 보면 친해질 수 있다. 그러다보면 말이 트인다. 대화가 자주 오고가다보면 서로를‘이해’하게 된다. 이해를 하게되면 그때부턴 전역해서도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는 그리운 ‘전우’가 되는 것이다. 나는 지금도 현재 재학중인 학우들과 10년 지기 친구들 다음으로 전우들과 가장 많은 연락을 주고받는다. 그들도 나도 서로를 그리워한다. 나는 사람이라는 큰 선물은 안고서 전역한 셈이다.
혹시라도 병영생활이 두려워 현역입대가 꺼려지는 분들... 군대는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맞습니다. 솔직한 말로 모든 일은 자기가 하기 나름입니다. 돌려줍니다. 안다칩니다! 그리고 그 힘든 시간들, 눈물, 분노, 서러움... 군생활에도 분명히 이런 시련들이 닥쳐올 겁니다. 허나 그 또한 다 지나갈 것입니다. 그리고 먼 훗날 여러분의 추억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겠지요... 그리고 여러분들은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호탕하게 웃으며 자랑스레 얘기하겠지요... 여러분과 전우들의 추억을...
그럼 무운을 빕니다! 이상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