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大中정권 200명 인물소사전
DJ 맨파워 2백명 ─
신상·경력·주특기·역할
정권교체라는 사상초유의 경험과 6·25 이후 최대의 국가경제 위기는 김대중 정권을 이미 실질적으로 출범, 가동시키고 있다. 이에 따라
김대중(金大中) 차기대통령과 김종필(金鍾泌)-박태준(朴泰俊) 체제의 신(新)여권을 움직이는 인사들의 면면도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이미 공식적인
역할을 맡은 인사도 있지만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일정 업무를 분담하거나 참여를 권유받고 있는 인사들도 적지 않다.
이들은 어디에서 왔고 어떤 이력과 기반을 갖고 있을까. 또 무엇을 추구할 것인가. 「신동아」는 DJT정권 핵심에서 높고 낮은 각종 역할을
맡고 있거나 맡게 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거명되고 있는 인사 2백명의 면면을 취재, 소(小)사전 형태로 정리했다. 인물 선정은 실무적인 역할 및
기용 가능성을 중심으로 한 것이다. 따라서 영향력이나 DJT에 대한 친소관계와는 다를 수 있다. 가나다 순이며 국민회의 소속인사는 (국)으로,
자민련 소속 인사는 (자)로 표기했다. 괄호안은 나이 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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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재홍(姜裁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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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전문위원(건설교통담당) △41세 △단국대 지역개발학과 △미국 롱아일랜드 대학원 도시행정학 석사
및 뉴저지 주립공대 대학원 교통공학 박사 △롱아일랜드 대학원 도시학과 조교수 △새정치국민회의 교통문제특별위원회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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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창희(姜昌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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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민련 사무총장. 본래 충청권내 DJ비토그룹의 대표적 인사로 JP독자출마론을 주장했으나 독자출마론의 한계를 느끼고
후보단일화로 마음을 정한 뒤 JP와 그 주변을 설득하는 데 앞장섰다.
육군대학 교수로 있던 34세에 정계에 입문한 충청권의 차세대주자. 11·12대 의원을 거쳐 13대는 「JP바람」 때문에 낙선. 14대에
무소속으로 재기한 뒤 95년 지방선거 후 자민련에 합류했다. 두주불사형으로 당내외에 두루 친분이 두터운 편 △충남 대전 (51) △대전고 △육사
△서울대 행정대학원 △육군대 교수 △중령 예편 △민정당 조직국장 △국무총리 비서실장 △11·12·14·15대 국회의원(현 자민련 대전 중)
△국회 통신과학기술위원장 | |
강태룡(姜泰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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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민련지방자치행정실장. △충남 당진(49) △서령고 △동국대 및 대학원 박사과정 △국제문제연구소 행정학교수
△신민주공화당 김종필총재비서실차장 △민자당 대전충남사무처장 △국회 정책연구위원 △자민련 정세분석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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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방(高在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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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회의총재비서실차장. 92년 국회 정책연구위원으로 DJ진영에 합류했다가 96년 비서실에 가담. 보이지 않게 김
차기대통령을 밀착보좌해왔다.
김 차기 대통령의 일정을 총괄하며 여론동향도 챙겨 보고해왔다. △서울(41) △서울대 영문학과 △미국 오하이오주립대 정치학박사 △미국
오하이오 주정부 연구원 △한국유럽학회 이사 △새정치국민회의 총재보좌역 국회 정책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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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해곤(郭海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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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직인수위정책분과위 전문위원. △대구 달성(38) △서울대 사회학과 및 행정대학원 △민주화운동청년연합회원
△이해찬의원 비서관 △이철의원 정책보좌역 △제정구·이수인의원 보좌관 △민주당 예산전문위원 △국민회의 예산 및 조세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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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노갑(權魯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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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교동 가신 1세대로 가신그룹의 맏형격. 포용력과 친화력에 보스기질까지 갖추고 DJ의 인맥관리를 대신했다. 김
차기 대통령의 가택연금 시절 DJ를 대신해 외부인사를 만나곤 하는 밀사역을 맡았다.
「DJ의 분신」 또는 「오른팔」로 불릴 정도로 김 차기 대통령의 신임이 두텁다. 김 차기 대통령의 목포상고 4년후배로서 김 차기 대통령이
59년 강원도 인제 보궐선거에 출마했을 때부터 생사고락을 같이 해왔다. 지난해 한보사건에 연루, 구속기소돼 같은해 12월26일 형확정으로
의원직이 상실됐으나 당뇨 때문에 조만간 형집행정지처분을 받고 풀려날 전망. △전남 목포(68) △목포상고 △동국대 경제과 △서울대 경영대학원
△하버드대 개발지도자 최고위과정 △김대중의원 비서관·특별보좌역 △민추협 발기인·상임운영위원 △신민당·민주당 창당발기인 △평민당 총재비서실장
△민주당 최고위원·부총재 △새정치국민회의 지도위원 △13·14·15대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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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승흠(吉昇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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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회의 지도위원. 김 차기 대통령의 외곽 자문교수 그룹인 「새시대 포럼」을 이끌었다. 지난 95년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로는 처음으로 야당에 입당.
길교수 영입은 대학시절부터 그와 가까이 지낸 한화갑의원이 주선했다. 한국정치학회장으로 있던 93년 12월 김 차기 대통령의 정계복귀
가능성을 강하게 제기, 주목을 끌었다. △서울(61) △경기 의정부고 △서울대 정치학과 △미 플로리다주립대학원 △미시간주립대 정치학박사
△서울대교수(정치학과) △현대일본연구회장 △한국정치학회장 △국민회의 지도위원 △15대 국회의원(국민회의 전국구) △저서:『한국선거론』
『정치학개론』 『일본정치론』 | |
김경재(金景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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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회의 홍보위원장. 김 차기 대통령의 공보비서 출신으로 미국에서 오래 활약. 80년대 「박사월」이라는 필명으로
김형욱(金炯旭)전중앙정보부장의 회고록을 집필했던 장본인.
논리와 언변이 탁월하고 스케일이 크지만 세밀한 맛이 다소 떨어진다는 게 흠이라면 흠이라는 평. 폴리에타 전 하원의원, 그레그 전 주한대사,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 등 미국내 친 DJ인맥들과 꾸준히 접촉해왔다. △전남 순천(56) △순천고 △서울대 정치학과 △미 독립신문 주필겸
발행인 △미주 민통연합의장 △김대중총재특보 △평민당·민주당선대위 대변인 △국민회의 당무위원·홍보위원장 △15대 국회의원(국민회의 전남순천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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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식(金光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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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무분과위 전문위원 △서울(43) △서강대 외교학과, 연세대 행정대학원 △프랑스 스트라스부르그대
IHEE과정 △신민주공화당 총재 보좌관, 외무 통일 전문위원, 청년위원회 사무국장 △민자당 총무국 총무부장 △자민련 총무국장, 대변인 행정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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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연(金珖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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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필명예총재보좌역. △37세 △인창고 △외국어대 영어과 △미 네바다대 경영학과 △하버드대 행정학석사 △국방부
공보관실 외신담당 △한국국제협력단 선임연구원·동북아과장 △자민련총재보좌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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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웅(金光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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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수. 정부조직개편심의위 실행위원장. 한국공공정책학회장. 한국의 관료제와 정부조직의 방만함에 대해 일찍부터
비판적·실천적 관심을 기울여온 행정학자.
「작고 효율적인 정부」를 만들기 위한 정부조직 개편방안을 체계적으로 연구, 이 분야 실무자들의 기본 텍스트를 제공해왔다. △서울(57)
△배재고 △서울대 법대 및 행정대학원 △미 하와이대 정치학박사 △서울대 행정대학원교수·행정대학원장 △행정쇄신위원 △미 노스웨스턴대 초빙교수
△의회발전연구회이사장 △저서:『사회과학연구방법론』 『행정과학서설』 『한국의 선거정치학』 『관료와 발전』 『한국의 관료제 연구』 『우리동네
선거이야기』 『작은 정부, 큰 국민』 『방법론 강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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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태(金槿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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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회의 부총재. 김상현고문이나 정대철부총재 등 중진과 함께 「비주류 트로이카」로 불리는 소장파. 87년 대선때는
김 차기 대통령에 대한 「비판적 지지론」에 섰으나 정치권에는 재야출신으로는 마지막 영입케이스로 95년 2월에 들어왔다.
당내에서 「열린정치포럼」이라는 개혁모임을 이끌면서 2세대 재야출신 인사들의 상징적 구심을 형성하고 있다. 지난해 대선후보 경선에서는
국민경선을 주장, 주류측으로부터 감정섞인 공격을 받기도 했다. 논리적이고 차분한 성격. △경기 부천(51) △경기고 △서울대 경제학과 △조영래
장기표 심재권 이신범씨 등과 함게 서울대생 내란음모사건으로 피신 △일신산업 근무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피신 △민청련 의장 △민청련사건으로
투옥 △전민련 정책기획실장·집행위원장 △전민련 관련 집시법과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투옥 △국민회의 상임지도위원·부총재 △15대 국회의원(국민회의
도봉갑) △저서:『남영동, 우리 가는 이 길은』 『열려진 세상으로 통하는 가냘픈 통로에서』 『희망의 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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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환(金基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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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회경제대사. 지난해 4월 대외경제협력특별대사로 임명된 이래 한국의 경제상황을 대외에 홍보하고 통상현안에 대처하는
임무를 수행해왔다. 특히 지난 연말 외환위기 속에서 정부 특사 자격으로 미국을 방문, 워싱턴에서 미 재무부 고위관리들을 접촉, 금융시장
개방문제와 조기 협조융자 방안을 협의하는 등 순발력있게 활동해왔다. 개방경제론의 신봉자.
△경북 의성(66) △대구 대륜고 △미 그린넬대 △미 버클리대 경제학박사 △버클리대 교수 △한국개발연구원장 △상공부 차관 △해외협력위원회
기획단장 △남북경제회담 수석대표 △한국태평양협력위원회 회장 △대한무역진흥공사 이사장 △금융개혁위원회 위원 △대외경제특별대사 △저서:『정부주도에
의한 한국의 경제발전』(세계은행 발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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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규(金德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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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수위 정무분과위원. 6·3세대의 한사람으로 13대때 민한당 전국구 마지막 순번으로 원내 첫발. 지역구(서울
중랑을)를 누비는 「마당발」로 통한다. △전북 무주(57) △대전사범학교 △고려대 정외과 △민추협 상임운영위원 △민주당 수석부총무 사무총장
△국회 행정경제위원장 △11·13·14대 국회의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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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득회(金得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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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총재보좌역. 재미파로 깔끔한 외모와 매너 때문에 「미국신사」로 불린다. △전북 전주(42) △전북대 화학과
△미국 휴스턴대 대학원 석사(인테리어 디자인 전공) △미국 CRSS Architects Co.Inc. 인테리어 디자이너 △인권문제연구소 휴스턴
지회 회장 △아태평화재단 미주지부 이사 △미 남서부 미술가 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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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석(金民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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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회의 수석부대변인. 12인 비상경제대책위 실무기획단 자문위원으로 비대위와 정부간 연락관 역할을 하고 있다.
85년 서울대 총학생회장 시절 「서울 미문화원 농성사건」으로 구속기소됐다. 14대 총선에서 당시 민자당 중진 나웅배후보와 맞붙어 2백85표차로
아슬아슬하게 낙선, 정치권 거물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 뒤 96년 총선에서 여유있게 당선됐다.
미남형에 최연소 국회의원. 지난해 4월 한보청문회에서는 차분하고 분석적인 신문으로 정태수피고인의 허점을 매섭게 파고드는 면모를 보였다.
△서울(34) △숭실고 △서울대 사회학과 △서울대 총학생회장 △미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석사(MPA) △미문화원점거사건 배후조종 혐의로 투옥
△국민회의 총재특보 △15대 국회의원(국민회의 영등포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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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하(金玟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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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총회장. 지난해 4월 「교육대국 건설을 위한 입법화」 등을 내걸고 교총회장에 선출됐으며 정치권에도 인맥이
깊다.
△경북 상주(64) △중앙대 정외과 △중앙대 정치학박사 △중앙대 교수 △중앙대 총장 △사립대총학장협의회장 △한국대학교육협의회장 △아태재단
자문위원 △저서:『정치사상사』 『정치학대사전』 『한국정당정치론』 『현대사회와 이데올로기』 『국제사회와 이데올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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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복동(金復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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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민련 수석부총재. 노태우 전대통령 처남으로 군시절 전두환 노태우 전대통령과 같이 11기 선두그룹에 속했다.
그러나 5공 출범 당시 전·노씨의 권유를 뿌리치고 군의 정치개입에 반대했다.
신군부와 불편한 관계 때문에 육사교장 임기를 못채우고 전역한 뒤 매제인 노대통령 재직 시절에도 견제를 받았다. 14대 총선때 대구에서
당선돼 정계에 입문했으나 민자당의 김영삼 후계구도에 반발, 민자당을 탈당한 뒤 국민당에 몸담았다. 후신인 신민당 대표에 올랐다가 95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자민련과 통합한 뒤 신민계 수장으로서의 상징적 지위를 지켜왔다. 김대중-김종필 두 김씨의 정계은퇴 필요성까지 거론,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고 대선을 앞둔 DJP단일화에 대해서는 지역정서를 내세워 소극적 입장을 취했다. △경북 청송(65) △육사 △연세대 행정대학원 △미
사우스캐롤라이나대 명예박사 △연세대 고위정책과정 △육사교장 △광진공 사장 △국제문화연구소 회장 △신민당 대표 △14·15대 국회의원(현 자민련
대구동갑)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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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호(金琫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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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회의 지도위의장. 비상경제대책위원. 해남에서 도정공장을 운영, 재력을 쌓은 관계로 별명이 쌀봉호. 지난 대선때
당후원회장으로 활약.
김영배부의장의 뒤를 이어 98년 야당 몫의 국회부의장직을 승계할 예정이었으나 이제 국민회의 집권으로 바로 국회의장으로 직행할지 여부도
관심. 당내에서는 또다른 재력가인 김인곤의원과 후원금 기부 1위를 놓고 순위다툼을 벌였다. 고사성어를 적절히 활용해 상대방을 제압하는 논리도
갖추고 있다. △전남 해남(65) △해남고 △전남대 농대 △연세대 행정대학원 △국회 헌법특위 10인 기초위원 △평민당 정책위원장 △국회
경과위원장 △평민·신민당 사무총장 △국민회의 지도위의장 △10·12·13·14·15대 국회의원(현 국민회의 전남 해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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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우(金翔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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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회의 국회의원. 케임브리지대 정치학박사 출신으로 DJ진영에 합류한 뒤 92년 대선때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공보업무를 전담했다. 아태재단의 해외활동을 위해 만들어진 아태민주지도자회의 사무총장을 지낸 국제통.
공군무관으로 있던 아버지를 따라 미국에서 생활하던 국민학교 시절부터 재즈에 관심을 갖게 된 재즈광이기도 하다.
△경남 사천(44) △배재고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케임브리지대 국제정치학 석·박사 △김대중대통령후보보좌역 △케임브리지대 국제문제연구소
객원연구원 △아태재단 이사장특보 및 선임연구위원 △아태민주지도자회의 사무총장 △당 해외동포특위 위원장 △15대 국회의원(국민회의 광진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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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윤(金相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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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필명예총재특보. △경북 의성(62) △대구공고 △경북대 정치학과 △동국대 행정대학원 △내무부 치안본부 근무
△국무총리 비서실 근무파견 △신민주공화당총재비서실차장 △13대 국회의원 출마 △민자당 김종필대표보좌역 △자민련 김종필총재특별보좌역
△가락중앙종친회 이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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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현(金相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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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회의 고문. 당내 비주류의 대표주자. 지난해 5월19일 대선후보 경선에 도전한 정대철부총재와 러닝메이트를
이루어 당권에 도전했으나 김대중후보에게 패함으로써 차기 당내 주도권 확보에 어려움을 안게 됐다.
그러나 『집권하면 총재직을 내놓겠다』는 김 차기 대통령의 약속이 이행된다면 총재직에 도전, 주류측 대표주자와 정면대결을 벌일 전망.
친화력이 뛰어난 마당발로 각종 대표직함만도 10개가 넘는다. 특히 환경문제에 큰 관심을 보이고 적극적인 활동을 펴 지난해 유엔환경상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전남 장성(63) △서울 한영고 △성균관대 행정대학원 △러시아 상트페체르부르그대 정치학박사 △민추협공동의장 대행
△민주당최고위원 △민주대학이사장 △국민회의 지도위의장 △한국그린크로스공동의장 △국회 환경포럼 회장 △6·7·8·14·15대 국회의원(현 국민회의
서대문갑)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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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훈(金聖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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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대교수. 김 차기대통령의 농업분야 자문역을 맡아왔다. 94년 UR협상때 「우리쌀 지키기 운동」을 주도한
농업전문가.
지난 95년에는 동교동계의 지원설 속에 영입케이스로 민주당 전남지사 후보경선에 나섰으나 허경만의원에게 패배, 정치판의 「쓴맛」을 보기도
했다.
△전남 목포(59) △목포고 △서울대 농업경제학과 △미 하와이대 자원경제학 박사 △전남대 조교수 △중앙대 산업경제학과 교수
△아시아농업금융기구 사무총장 △중앙대 사회개발대학원장 동북아연구소장 중소경제학회장 △북경대 초빙교수 △한국농업경제학회장 △우리쌀지키기
범국민대책회의 집행위원장 △아태재단 운영위원 △저서:『한국농업, 이 길로 가야 한다』 『쌀의 정치경제론』 『중국의 길잡이』 『동북아경제권』
『장보고 해양경영사 연구』 『쌀개방과 우루과이라운드』 『농산물유통론』 『동북아시대의 한민족』 『중국경제의 부상과 대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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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金令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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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부의장. 국민회의내 몇 안되는 충청 출신으로 5선이며 수십년간 김 차기 대통령만 추종해온 충성파.
「사무라이」라는 별명처럼 짙은 눈썹에 무사형 인상이지만 성격은 부드러운 편. △충남 논산(66) △영등포 공고 △고려대 경영대학원 △연세대
행정대학원 △가락중앙종친회 부회장 △정치활동 피규제 △민주당·평민당 사무총장 △평민당·신민당 원내총무 △국민회의 부총재
△10·12·13·14·15대 국회의원(국민회의 양천을) △국회 노동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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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진(金泳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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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협근무 경력을 갖고 농민입장을 강성으로 대변하는 3선의원. 농림수산위 활동을 통해 국민회의내 대표적인
농업문제전문가 소리를 들을 만큼 농업문제에 대한 관심과 열정을 나타냈다.
△전남 강진(51) △강진농고 △전남대 행정대학원 △농협근무 △광주 YWCA사건으로 투옥 △광주 5·18추모식 사건으로 투옥
△NCC중앙위원 △국회 5·18광주특위 위원 △당 농어민특별위원장 △민족농어업연구소 이사장 △13·14·15대 국회의원(국민회의 강진·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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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환(金榮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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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회의 총재비서실차장. 재야 노동운동가 출신이면서 시인이자 치과의사. 연세대학교 재학시절 유신반대로 구속되면서
제적당한 뒤 노동자생활을 하면서 기술자격증을 6개나 따는 등 독특한 경력의 소유자.
재야에서는 민통련 정책실차장, 민족민주운동연구소 부소장 등을 역임했고 86년에는 「시인」 「문학의 시대」 등에 시를 발표하며 문단에
등단했다. 88년 입학 15년만에 연세대 치대를 졸업하고 강남에서 치과병원을 개업, 솜씨좋은 치과의사 소리를 듣기도 했다. 90년에는 정보통신
벤처기업을 차려 3년간 운영했으나 95년 김근태부총재가 이끄는 통일시대국민회의에 참여함으로써 정치에 발을 담그게 됐다.
소장파이지만 「마당발」로 통할 만큼 각계에 인간관계가 다양하다. 국회에서는 통신과학기술위에서 통신자유보장과 불합리한 PC통신 요금체계 개선
등에 왕성한 의정활동을 펴왔다.
△충남 괴산(43) △청주고 △연세대 치대 △유신반대 시위 주도로 투옥, 제적 △민통련 정책실차장 △민족민주운동연구소 부소장
△역사문제연구소 이사 △국민운동본부 정책위원 △민족문학작가회의 회원 △김영환치과의원 원장 △국민회의 부대변인 정세분석실장 총재특보 △15대
국회의원(국민회의 안산갑) △저서:시집 『지난날의 꿈이 나를 밀어낸다』 산문집 『그대를 위한 사랑의 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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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두(金玉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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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차기대통령의 경호비서 출신 재선의원. 동교동 가신 1세대 출신. 김 차기 대통령을 그림자처럼 수행하며 줄곧 김
차기 대통령의 경호원을 지낸 까닭에 『총재는 옥두가 없으면 왠지 불안하다』는 농반진반이 나올 정도였다.
△전남 장흥(60) △목포국립해양고 △연대 행정대학원 △민추협 운영위원 △김대중후보 비서실차장·수행실장 △평민당·민주당
사무부총장·원내부총무 △연청중앙회장 △14·15대 국회의원(현 국민회의 장흥·영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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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채(金鎔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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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원구청장. 신민주공화당 멤버. 초지일관 JP옆을 지킨 JP사람. 4·11총선에서 낙선했으나 노원구청장 재선거에서
DJP공조에 힘입어 당선돼 재기.
△경기 포천(66) △조선대 경제과 △연세대 행정대학원 △재무장관·기획원장관 특별보좌관 △동방유량(주)사장 △국제외교협회장 △국민당
원내총무 △공화당 사무총장·원내총무 △남북국회회담준비대표 △국회 건설위원장 △정무1장관 △자민련 부총재·상임고문 △7·9·12·13대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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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환(金龍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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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민련부총재. 비상경제대책위 대표. 60년대말 재무부 이재국장 시절부터 당시 국회 재무위원이던 김차기 대통령을
상대로 정부정책 브리핑을 담당한 인연이 있다. 70년대 박정희 정권시절 청와대 경제수석과 재무장관을 지내면서 오일쇼크를 극복한 정통경제관료
출신. 당시 박 전대통령의 총애를 받았다. 무엇보다 권력자를 모셔본 노하우가 있어 JP는 물론 김 차기대통령에게도 깊은 신임을 얻고 있다.
대선때는 김 차기 대통령의 경제기자회견을 위한 별도의 경제브리핑을 하기도 했다. DJP단일화협상의 자민련측 실무책임자로서 단일화 성사에
일등공신이기도 하다. 92년 대선 때 김종필 당시 민자당대표의 곁을 떠나면서까지 YS와 등을 졌을 만큼 반(反)YS성향이 강하다. △충남
대천(66) △공주고 △서울대 법대 △고시 행정과 △재무부 이재국장 △대통령 외자관리 담당비서관 △상공부·재무부 차관 △대통령 경제담당특보
△중화학공업추진위 기획단장 △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 △재무장관 △한국산업경제연구원 회장 △민자당 정책위의장 △국민당·신민당 최고위원 △자민련
사무총장 △13·14·15대 국회의원(현 자민련 충남 보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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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기(金元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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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회의 고문. 김 차기 대통령이 95년 정계복귀와 분당을 감행하자 합류를 거부하고 민주당에 남았던 중진. 이
때문에 지난 96년 4·11총선에서는 4선 중진 경력에도 불구하고 전북 정읍에서 예상대로 낙선의 쓴 잔을 마셨다. 통추그룹을 이끌면서 명분론에
집착해왔으나 대선직전 「수평적 정권교체」를 기치로 DJ진영에 합류, 본가로 되돌아온 셈.
△전북 정읍(61) △전주고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서울대 신문대학원 △동아일보 정치부기자 △안보통일연구위원 △평민당 원내총무
△IPU총회대표 △국회 교육체육청소년위원장 △신민당·민주당 사무총장 △민주당 부총재 △10·11·13·14대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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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1997년 대통령 선거에서 김대중 후보가 당선되었을 당시 중요인물 200명의 개인 정보를 짧게 소개했습니다..회원님들이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 있으면 골라서 댓글로 달아주세요...^^ 어떤 재미있는 기억을 갖고 있느냐가 중요하지,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것은 별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