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함께 살다가 나이 들면 한쪽이 먼저 떠나게 된다. 혼자 남아 쓸쓸하게 지내는 걸 본다. 외지에 나간 자식들이 가끔 들러도 저들 살기 바빠 앞앞이 챙기질 못한다. 또 ‘괜찮다’ 하며 돌려보내니 그런 줄 알고 지나기 일쑤다. 생활이 되니 혼자 사는 게 오히려 편하지 않겠나 생각하게 된다.
요즘 못 먹고 헐벗어 사는 일이 드물다. 아침에 나갔다 저녁에 들어오면 집안 물건이 고대로 있다. 누가 손대겠나 나 아니면. 잠결에 들리는 소변보고 물 내리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나 아니면. 어떨 땐 온종일 전화 한 통 없을 때 있단다. 춘란 캐러 웅동 불모산 기슭을 헤맬 때 동호인 중 여성 한 분이 외친다.
당구 치는 친구 중에 일찍 마쳐 주섬주섬 옷 입고 가기에 왜 그러냐 하니 어두워서 집에 들어가면 불이 꺼져 있는 게 싫단다. 아내가 갑자기 교통사고로 떠나자 허전한 집에 혼자 늦게 들어가면 힘들단다. 불 켜기 전 구석에서 아내의 웃는 모습이 보인단다. 생전에 살갑게 지나서인지 그녀가 쓰던 걸 모두 그냥 뒀단다.
자나 깨나 아내가 옆에 있나 두리번거리게 되고 그리워서 견딜 수 없단다. 따르릉 전화가 걸려 오면 혹시 아내 목소린가 싶어 얼른 받게 된다. 해운대 딸이 늘 어떤가 연락이다. 그런저런 얘기를 들어도 대수롭지 않게 여겨왔다. 대개 남자가 먼저 가니 여자들이 남아서 바시랑바시랑 살아가는 것을 본다.
‘혼자 사는 남자는 이가 서 말’이라는데 사는 형편이 엉망이란 말이다. 여자 없이 살기 어렵다. ‘혼자서는 용빼는 재주 없다’ 부스럭부스럭 함께 사는 게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 저마다 하는 일이 달라 집안은 여자가 차지해야 마땅하다. 남자는 바깥일이나 끙끙하지 집 일은 허수아비로 맹탕이다.
여자는 혼자 되어도 잘만 꾸려 나간다. ‘은이 서 말’이라 하잖는가. 경로당 최 회장은 심상해지기까지 남편 가고 2년 가까이 보고 싶어서 되게 힘들었다. 지금은 있으나 없으나 그럭저럭 살아간다. 남자는 죽을 때까지 옆에 있는 것처럼 살아간다. 다시 장가들어도 지나간 일들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그리움으로 지낸다.
대체로 그렇게 돼 간다. 거꾸로 가는 혼자 된 남자가 자꾸 눈에 띈다. 친구 문인과 교회 성도 중 늙바탕에 아내를 먼저 보내는 걸 보게 된다. 만날 때마다 안쓰러워서 다시 보게 된다. 빠르게 주름이 늘어가고 웃음이 점점 사라져 간다. 아침은 제대로 먹고 나왔나. 내복은 갈아입었을까 싶다.
천덕꾸러기가 됐다. 다리를 저는가. 지팡이를 짚고 다닌다. ‘장병에 효자 없다.’고 저러다 시설로 보내진다. 무슨 수로 삼시세끼 해 대고 수시로 눈을 박고 사는 수발을 들겠는가. 거기다 정신마저 놓아 치매기가 있으면 야단이다. 어디에도 맡길 수 없다. 나중에는 가까운 가족도 몰라보고 엉뚱 소릴 한다.
얼마 전엔 요도결석으로 입원했을 때 옆 환자가 정신없어 대변을 주물럭주물럭 만져 온데다가 묻혔다. 간호사가 말없이 닦아내고 갈아줬다. 그 냄새가 내게도 풍겨 참기 어려웠다. 마스크를 두 개나 덮었다. 자식들이 그리하자면 얼마나 힘들겠나. 아내와 남편은 그 지경이 돼도 서로 뒷바라지를 다 한다.
남남으로 만나서 그저 신기도 해라. 연산동 모임 때 늘 일찍 마치고 들어가기에 무슨 일이냐니 아내가 아파 저녁 준비해야 한다며 서둘러 간다. 교회 선교회 집사 한 분은 예배 마치고 나면 바로 사라져버린다. 늘 같이 식사하고 지하실에서 오후 예배 때까지 얘길 주고받았는데 그만 저리 한다. 삐쳤나 했다.
아내가 아파 아무것도 못 하니 음식이며 집 살림을 꾸려나가야 한다. 자식들도 저 가족 살피느라 오래 버티지 못한다. 가다 오다 들러볼 뿐이다. 여류 문인 중에 중풍 남편 뒷바라지하다 팔이 망가졌단다. 덩치 큰 남편을 일으켜 세우고 눕히며 병원 오가는 일이 그렇게 힘겨웠다고 한다.
다 요양원에 모심이 좋다고들 한다. 식사며 의복, 치료를 모두 도맡아 해주니 편하다는 말이다. 거기다 목욕시키고 여가를 만들어 즐겁게 해주니 자식이나 남편 아내보다 낫지 않느냐이다. 괜히 사서 고생할 필요가 없단다. 전에 별로 없던 시설이 곳곳에 막 생겨난다. 마을 병원도 요양병원으로 바뀐다. 산기슭은 갑자기 생긴 노인 보호시설로 여기저기 들어찬다.
그를 마다하고 보살피니 다시 보게 되고 억척스러움이 대견하다. 치매 아내 보살피려 일찍 나서는 구 회장과 중풍으로 드러누운 아낼 위해 서둘러 가는 한 집사가 참 고마워라. 되나마나 젊은 시절을 보내고 늙바탕이 되자 뒤늦게서야 정신이 번쩍 든다. 영감 할멈이 살다가 누가 먼저 가면 뒷감당을 어찌하나.
뒤따라갈 때까지 그 허전함을 누가 알까. 늙으면 반드시 찾아오는 외기러기다. 혼자 다 안고 간다. 오순도순 살아가는 늙수그레한 부부는 그게 얼마나 복 받은 갸륵하고 아름다운 천사들인가. 익어 떨어질 듯한 감이 붉고 탐스럽듯, 빛깔 좋은 물컹한 복숭아와 사과, 자두도 때깔 있는 늘그막 해로가 좋다 좋아.
밤늦게까지 꾸물꾸물 긁적이고 딸그락딸그락 설거지 소리가 들린다. 문지방 넘나들고 대문 여닫는 소리가 잠결에도 희미하게 들려온다. 새벽 기도에 나가는 댓바람 소리다. 아내 살아 움직이는 나지막한 발자국과 그릇 부딪는 소리, 대문 살며시 여닫는 게 바로 천국에서 들려오는 복음이 아니겠는가.
첫댓글 일상이 복음입니다. 맞아요. ㅎ
딸그락거림이 아름다운 소리인걸 이제야 알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