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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대표하는 초서의 대가(大家) 취운 진학종 선생 | |||||||||||||||||||||||||||||||||||
고향에 작품 80여점 기증, 선운초서문화관 개관 | |||||||||||||||||||||||||||||||||||
2010년 07월 14일 [(주)고창신문] | |||||||||||||||||||||||||||||||||||
신문의 사설 집필진이 될 정도로 폭 넓은 지식을 득하였다. 또한 서예의 영역에서도 스승이 없는 초서분야를 택하여 옛 성군의 글을 스승으로 삼아 독창적인 예술의 경지를 구축하였다. 만년에는 사상의 포용력과 취운초서의 미학적 공감대의 확대로 그 교류의 폭이 국내외 예술계 및 정재계로 확장되었다. 최규학 전 국가보훈처장, 선운사 주지 법만 스님, 김남곤 전북일보 사장, 진기풍 전 전북일보 사장, 손경식 대한민국서예문인화 원로총연합회장 등 정계·재계·문화예술계 등 각계 각 층의 수많은 인사들이 참여하여 높은 관심과 성원을 보여주었다. 혼을 담은 서예병풍 20점, 그림병풍 6점, 목재서각 20점, 합죽선 10점, 족자 22점, 액자 2점, 도자기 2점 등 총 82점의 다양한 초서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기증하겠다는 의향을 밝힘에 따라, 고창군에서는 경관이 수려한 천년고찰 선운사가 있는 선운산도립공원 내에 초서작품 전문전시관을 마련하기로 결정하고 금년 6월까지 건평 242㎡ 규모의 초서문화관을 완공하였다. 끌어당기는 견인차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초서예술의 세계적인 명소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유명하신 분인 줄은 알았지만 가까이서 뵙기는 처음이었다. 아흔 가까이 되시는 연세에도 전체적으로 풍겨지는 깔끔함과 젊은이 못지않은 힘 등이 느껴졌다. 최근 들어 노환으로 인해 병원에 입원하고 계시다는 소식을 들어 내심 개관식에 참석하실 수 있을 까 걱정했지만 다행히도 취운 선생은 개관식에 당당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 러나 우리 앞에 나타나신 선생은 예전의 모습과는 달리 휠체어에 의지한 모습으로 우리 곁에 있었다. 하지만 인터뷰를 하는 내내 취운 선생은 어느 누구보다도 건강하셨고 총기 있는 모습으로 좌중을 압도했다. 이게 취운 선생의 본래 모습이다. 다음은 취운 선생과의 인터뷰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내가 살아온 인생이 담긴 작품들을 한 자리에 모아 개관식을 하니 기쁘다. ▲작품 활동을 하면서 힘든 일은 없으셨으며 무엇에 중점을 두고 하십니까? 사명감이 없으면 안 된다. 초서를 쓸 때는 앉아서 쓰지 않고 서서 붓을 잡고 글씨를 쓴다. 작품을 쓸 때는 목숨을 걸고 한다. 이것은 사명감이 없으면 안 된다. 그래서 70년 동안 초서만 써왔다.
남긴 활자체를 공부했다. 이것은 못 가르치고 섣불리 배우지도 못한다. 후계자를 둘 수가 없다. 이것은 연습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한마디로 말해서 ‘영적’이며 ‘미학’이다. 앞서 말했지만 이것은 형이상학적이다. 부드러워야 한다. 이것이 연습을 해서 되는 것이라면 중국, 일본, 한국의 서예가들이 쓰지 않을 리가 없다. 잘못 쓰면 망신이다.
사람이 글씨를 잘 쓸 수가 없는 것이다. ▲초서가 선생님 대에 맥이 끊어지는 것에 대한 걱정이 다들 많은데 이에 대해 한 말씀 하신다면? ▲초서와 관련해서 한마디 해주신다면? 또 자기가 예술을 창조해야 한다. 창조는 신의 개시이다. 그리고 창조하는 사람은 하늘에서 지정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초서에서는 50개의 글씨로 표현할 수 있다. 초서는 최대한의 속도이다. 빨라야하고 거기서 발생하는 선은 아름다워야 한다.
1924년 고창군 무장면 출생, 대한민국국전 초대작가, 예술의전당 초대작가,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 초대작가, 대한민국초서심추회 회장, 국제서법예술연합 고문, 국제미술문류협회 고문, 서울오페라단 고문, 범태평양미술대전 고문, 국가보훈복지공단 고문, 일본동경동양경제일보 고문, 일본대판공동신문 상담역 / 작품전 : 주일문화교류전 동경전시회, 서울시립미술관 초대전, KBS한국방송공사 초대전, MBC문화방송 초대전, CBS기독교방송 초대전, 동아갤러리 초대전, 백상기념관 초대전, 포스코미술관 초대전 / 저 서 : 취운초서병풍첩, 취운초서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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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신문 김희정 기자
심즉무법(心卽無法)
취운 진학종 선생의 초서작품
나는 오늘 점심식사를 하려고 금산사 입구에 있는 한 음식점에 들렸다가 우연히 우리나라 서단의 서예 대가이신 취운 진학종(翠雲 陳學鍾)선생의 액자 글씨 심즉무법(心卽無法)을 발견하고 무척 기뻤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전라도를 가리켜 흔히 예향이라고 말한다. 그를 증명이라도 하듯 특히 전라북도에 가면 웬만한 식당에 가면 사화작푼이 걸려있지 않은 집이 거의 없다. 오늘 내가 점심시간에 들렸던 식 당도 아주 평범한 식당이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당대 초서체의 최고 대가라 할 수 있는 취운선생의 작 품을 보게 될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한 일이 었다. 주인에게 그런 이야기를 했더니 그는 "이층에 그분의 초서체 병풍이 하너 더 있습니다."라고 말하며 "식사를 마치신 후에 구경을 시켜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과연 예향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병풍은 모두 10폭이었는데 좁은 공간 속에서 다 펴 놓고 제대 로 사진을 찍을 수 없어 두 번 나누어 찍어야 했다.
취운 진학종선생 10폭 병풍 중 1쪽
취운 진학종선생은 1924년 고창군 무장면에서 출생하였고, 진의종 전 국무총리의 친동생이다. 그는 60 여 년 동안 고집스럽게 초서에 몰두해왔으며 병풍과 전각 액자 등 1백 여 점을 모아 대형작품집 ‘취운 초서병풍첩’을 발간하기도 했다. 수십 차례에 걸쳐 국내 개인전을 가진 것을 포함, 중국 상하이 한중합 동전, 일본신문협회초대전, 홍콩초청작가전 등 해외작품전(개인전 등)에 참가하기도 했다. 범태평양미 술대전초대작가상과 싱가포르 공익부 공로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취운선생은 제3회 세계서예전북 비엔날레(2001년)에 초대된 바 있으며, 서울미술제, 대한민국미술대상 전 심사위원 등을 역임, 현재 국전 초대작가, 예술의전당 초대작가, 세계서법예술연합 고문, 대한민국 초서심추회 회장을 맡고 있다. 취운선생은 올해 83세로 60여년 동안 소멸해가는 초서문화를 재현시키기 위해 힘써왔으며, 어려운 악 필(握筆) 솜씨로 천의무봉한 초서의 진수를 구현하여 사계에 명성이 자자, ‘ 동양 3국 최후의 초서’대가 란 말을 듣고 있다. 취운선생은 평소 “초서는 선과 여백이 어우러진, 글씨이자 예술입니다. 2백년 전에 절멸되다시피한 초서를 재현하는데 몰두,개발한 취운체는 말뚝을 땅에 힘껏 박을 때 쥐는 방식인 악필로, 특유의 리듬 감이 살아 있는 글씨입니다. 해서가 앉아 있는 글씨라면, 초서는 달음질 치는 글씨지요. 초서의 묘미 는 몰아지경에서 단숨에 일필휘지로 써내려가는데 있습니다.” 라고 말해왔다. 취운선생은 “초서를 쓰기 위해선 붓을 한 번 먹에 적시면 한 번에 써내려 가야 하기 때문에 모든 내용 이 머리 속에 훤히 암기돼 있어야 하는 것은 필수”라며 “수만 번 연습한 결과, 2백10자나 되는 굴언의 ‘어부사’를 단 25분 만에 써내려갈 수 있다.”고 한다.
취운 진학종선생 10폭 병풍 중 2쪽
고 왔다. 해석을 못하는 것은 소장자도 마찬가지였다. 초서라고는 하나 비교적 행서에 가깝도록 쓴 글 씨이기 때문에 해석이 마무리 되는대로 연락을 드리겠노라도 약속을 하고 돌아 왔다. 시간만 허락한다 면 주위에 있는 식당을 다 돌아 보고 싶은 심정이었다. 오늘은 예향에 와서 우연히 구한 글을 접하여 대단히 기분이 좋은 하루였다.
-서예세상 자료-
녹음이 짙은 초록으로 그 빛을 더해가는 6월. 싱그러운 초록과 시원한 물빛의 계곡이 만들어 내는 조화는 세상, 그 어떤 빛깔보다 아름답다. 그동안 잊고 있었던 계곡 물소리를 들으며 산을 오르다보면 나도 모르게 자연스레 원시의 생명력을 느끼며 흠뻑 빠져들게 될 터. 대자연을 찾아 잘 가꿔진 꽃과 나무들이 뽐내는 아름다움에 흠뻑 취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며, 조각배를 타고 낚시를 하다가 한 잔 술에 세상 모든 시름을 날려보내는 여유는 금상첨화이자 저마다 꿈꾸는 모두의 희망 사항. 초여름의 무더위를 한 방에 날려버릴 수 있는 전시회가 기획돼 눈길을 끈다.<편집자 주>
‘손님도 저 물과 달을 아는가. 가는 것이 이와 같으나 일찍이 모두 가지 않았으며, 차고 비는 것이 저와 같으나 마침내 줄고 늚이 없으니, 변하는 이치로 보면 천지도 한 순간일 수 밖에 없으며, 변하지 않는 것으로 보면 사물과 내가 다함이 없으니 또 무엇을 부러워하리. 천지의 사물은 제각각 주인이 있어 나의 소유가 아니면 한 터럭이라도 갖지 말 것이나, 강 위의 맑은 바람과 산에 걸린 밝은 달은 귀로 들으면 소리가 되고 눈에 뜨이면 빛을 만듦에도 불구, 가져도 금할 이 없고 써도 다함이 없으니 조물주의 다함이 없는 갈무리로 나와 그대가 진정으로 함께 누릴 바 로다.’ ‘적벽부(赤壁賦)’ 고창출신의 취운(翠雲) 진학종(陳學鐘, 83, 서울시 노원구 중계4동)선생의 초서작품전이 6월 30일부터 7월 13일까지 전북예술회관 1층 1-2실서 소동파의 ‘적벽부’ 등 병품 20점을 포함, 족자 20점, 서각 20점 등 모두 60여 점이 전시된 가운데 베풀어진다. 작품 세계를 감상할 수 있는 기회로, 전주고별전의 성격을 갖고 열리는 서예 마당인 셈. 2시간 여를 느긋하게 구경해야 비로소 제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고문진보’에 실린 명문을 발췌해 쓴 초서 병풍, 족자, 서각은 바로 이같은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는 옥동자인 셈. 특히 초서는 예서의 자획을 생략해 흘림체로 쓴 서체로, 한문 공부를 통해 문장을 외우지 못하면 실현 불가능한 분야인 만큼 83세의 노익장을 과시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그 결실을 보게 만든 것. 때문에 어려운 악필(握筆) 솜씨로 천의무봉한 초서의 진수를 구현하여 사계에 명성이 자자, ‘ 동양 3국 최후의 초서’란 명성의 실체를 낱낱이 풀어헤쳐 보인다. 한평생 황산곡(黃山谷), 왕총(王寵) 등 초서 대가들의 글씨를 익혀 독자적인 ‘취운체’를 개발, 초서의 최고봉으로 우뚝 솟아 있기 때문. 초서를 재현하는데 몰두,개발한 취운체는 말뚝을 땅에 힘껏 박을 때 쥐는 방식인 악필로, 특유의 리듬감이 살아 있는 글씨입니다. 해서가 앉아 있는 글씨라면, 초서는 달음질 치는 글씨지요. 초서의 묘미는 몰아지경에서 단숨에 일필휘지로 써내려가는데 있습니다.” “초서를 쓰기 위해선 붓을 한 번 먹에 적시면 한 번에 써내려 가야 하기 때문에 모든 내용이 머리 속에 훤히 암기돼 있어야 하는 것은 필수”라며 “수만 번 연습한 결과, 2백10자나 되는 굴언의 ‘어부사’를 단 25분 만에 써내려갈 수 있다.”고. 초서의 길에는 도공이 흙으로 다양한 명품을 빚어내고, 주물사가 철그릇을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겪는 변화가 극치가 있다는 설명. 하지만 요즘엔 초서를 쓰는 사람이 줄어가는 것이 안타깝기만 하단다. 시간이 흐를수록 쓰는 사람이 줄어 안타깝다.”며 수준 높은 한학의 본 고장 전주에서 다시 초서전을 갖는 만큼 개관적이고도 냉정한 평가를 듣고 싶다고. 귀빈이 방문하면 언제나 빼놓지 않고 자랑하는 취운선생의 글씨로, 지금도 회자되고 있는 보물과 같은 존재. 김대중 전 대통령을 포함, 김윤환, 이회창, 정몽준, 하순봉, 조순, 박희태, 한광옥, 이수성, 김기춘, 신현확, 오명, 김수한, 황낙주, 이어령, 진념, 고은, 강현욱 전라북도지사 등 내놓라하는 인물들이 취운선생의 주요 병풍 소장처이기도. 한학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은 가운데 요즘도 꼭두새벽에 일어나 마음을 가다듬고 일필휘지의 공력을 들이고 있다. 살려 아름다운 선율처럼 유려한 느낌 바로 그대로. 부안 직소폭포에서 내리치는 듯한 폭포 소리를 들으며 살얼음같이 차가운 계곡물에 발을 담그면 더위를 식힐 수 있는 이치이거니와 눈과 귀 또한 이제 막 보고, 듣기 시작한 듯한 상쾌함을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을 선사할 때란. 탁 트인 전북예술회관 1층 전시실에서 한가로이 시간을 보낼 수만 있다면 이 여름의 무더위는 대수가 아니다. 요산요수(樂山樂水), 물아일체(物我一體), 선인불이(仙人不二)의 세상으로 사방팔면 벽면마다 유혹할 날이 이제 나흘 앞으로 다가왔다.
진학종은 병풍과 전각 액자 등 1백 여 점을 모아 대형작품집 ‘취운 초서병풍첩’을 발간하는 등 60여 년 동안 고집스럽게 초서에 몰두해왔다. 수십 차례에 걸쳐 국내 개인전을 가진 것을 포함, 중국 상하이 한중합동전, 일본신문협회초대전, 홍콩초청작가전 등 해외작품전(개인전 등)에 참가하기도 했다. 범태평양미술대전초대작가상과 싱가포르 공익부 공로상을 수상하기도한 취운선생은 제3회 세계서예전북 비엔날레(2001년)에 초대된 바 있으며, 서울미술제, 대한민국미술대상전 심사위원 등을 역임, 현재 국전 초대작가, 예술의전당 초대작가, 세계서법예술연합 고문, 대한민국초서심추회 회장을 맡고 있다.
이종근기자
2010년 7월 22일 금요일 오늘은 우리 "인터넷 남강산악회(회장 김삼용 / 경남 진주)" 에서 전북 고창군 소재 선운산으로 등산가는 날. 무더운 여름날씨라, 높지 않으면서, 풍광이 아름답고, 역사의 숨결이 느껴지는 곳으로 찾아 나선 산행이었다. 일행 46명. 그런데 버스 주차장에서 불과 40m인접한 곳에 "선운초서문화관"이 있었다.
선생님의 생생한 작품이 전시된 문화관의 방문은 축복받은 행운이었는데, 플래시를 사용하지 않는 조건으로 사진도 찍을 수 있는 배려까지 받았다. 선생님에 대한 약력,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초서의 대가라는 점, 그리고 열정과 혼이 담겨진 선생님의 작품세계...... 를 감히, 졸필이 글로서 다듬기를 삼가하지만, 선생님의 주변에는 항상 고독한 예술인들이 끊이지 않았다고 하니, 가슴속 한쪽이 찡합니다.
고창 선운사에 가시면, 잊지 마시고, 고독한 예술인들에게 꿈과 희망을 위해, 취운 진학종선생님의 문화관을 찾아주시기 바라는 마음에서 .......... 올립니다.
대형서예병풍 10폭 1점, 족자 20점, 대족자 2점, 대액자 2점, 항아리 2점 서예병품 8폭 5점, 서예병풍 10폭 15점, 그림병풍 10폭 5점, 목재서각 20점, 합죽선 10점 등 80여점 ********** 전북 고창군 아산면 선운사로 / 선운산 도립공원 내 063-560-2224~5 휴관 : 1월1일과 월요일 만 / 이용료(입장료) : 무료
들리는 음악은 차이코프스키의 발레모음곡 "백조의 호수" 중 제3곡 "작은 백조들의 춤" 입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십시오
-출처- 청산님의 모데라토블로거
굴원이 죄 없이 쫓겨나 상강의 물에서 할 일 없이 놀 제, 연못가를 오가며 슬픈 노래 읆조리네. 얼굴빛은 시름으로 핼쑥해지고, 몸마저 마르고 축 늘어졌네. 한 어부 이 모양을 보고 말을 건넨다. 『당신은 초나라의 삼려대부 아니신가? 귀하신 몸으로 이런 곳엔 무슨 일로 오시게 되었소?』 굴원이 어부에게 연유를 말한다. 『세상이 온통 이욕에 흐려져 있는데 나 혼자만이 맑고 깨끗하였기에, 사람들 모두가 이욕에 취해 제정신이 아닌데 나 혼자만이 초롱초롱하게 깨어 있었기에, 그만 이렇게 쫓긴 몸이 되었다오.』 어부 이 말 듣고 일러준다.『성인은 맑거나 흐리거나 걸릴 것이 없이 맑으면 맑은 대로 흐리면 흐린 대로 시세 따라 자유로이 활동하거니 세상사람 모두가 다 흐려있거든 결백한 지조야 안으로 감춘 채 나 또한 그런 양 진흙 칠하고 물결치는 대로 어이 함께 출렁이지 못하는가. 사람마다 이욕에 마음 취해 있거든 나 혼자 초롱초롱한 그 모습은 드러내어 뭣하리. 안 취해도 취한 양 술 찌꺼기 씹고 밑술 들이마시며 어이 각이 없이 둥글둥글 넘어가지 못하고서 그리도 깊이 생각하고 고결한 걸 세워서 그 몸을 이 지경에 이르게 했단 말인가.』 굴원이 말한다.『나는 일찍이 이런 말을 들었소. 새로 머리를 감은 이는 갓의 먼지를 털어서 쓰고, 새로 몸을 씻은 이는 옷을 털어서 입는다고. 이토록 결백한 몸에다가 그 더럽고 욕된 것을 어이 받아들일 수 있단 말이오. 차라리 상수에 이 한 몸 던져서 물고기 창자 속에 장사를 지낼망정 이다지도 희고 흰 결백한 몸에다가 세속의 티끌 먼지를 어떻게 뒤집어 쓸 수 있단 말이오.』 어부 빙그레 웃음 짓고, 돛대를 두드려 장단 맞춰 노래하며 떠나간다. 『창랑의 물 맑은 좋은 세상이라면, 이 내 갓끈을 씻고 벼슬하러 나아가리. 창랑의 물 흐린 어지러운 세상이라면, 발이나 씻고 물러가 숨어 살으리.』 그렇게 가더니 다시는 주고받는 말이 없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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