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웅
하희경
지하로 내려갔다. 전광판에서 그녀가 웃으면서 3호실에 있다고 한다. 3호실로 들어갔다. 평생 낮은 자리에 있던 그녀가 높은 단상 위에서 국화꽃치마를 펼쳐 입고 환하게 웃고 있다. 조카들이 달려와 품에 안긴다. 아니 덩치 큰 조카들에게 내가 안긴다. “작은 엄마 보고 싶었어요. 제일 먼저 작은 엄마가 생각났어요.” 큰 조카가 눈물 섞인 목소리로 말한다. 큰 조카의 등을 쓸어주고 그녀를 향해 돌아섰다. 가만히 웃고 있는 그녀에게 무릎 꿇고 절을 했다.
직원이 들어와 마지막 인사를 나눌 시간이라며, 원하는 분들은 참석해도 된다는 말에 따라 들어갔다. 탁자 위에 평생 꾸밀 줄 모르던 그녀가 새 옷을 걸치고 꽃신을 신은 채 단아하게 누워 있다. 가까이 다가가서 얼굴을 보았다. 하얗게 분칠한 얼굴에 빨간 립스틱을 바른 입술이 어쩐지 내가 알던 그녀가 아닌 것 같다. 순간 ‘가부끼’ 인형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원이 우리를 향해, 아직 들을 수 있다면서 하고 싶은 말을 하라고 한다. 그녀의 손을 잡고 속삭였다. 고생 많았다고, 가시는 길 평안하시라고, 고마웠다고 작별을 고했다.
75세 나이로 세상과 선을 그은 그녀. 그녀와 나는 삼십칠 년 전 처음 동서지간으로 만나 1년에 몇 번 만나는 사이로 지냈다. 집안 기제사나 명절, 크고 작은 행사 때마다 마주치기만 하면 ‘자네가 고생 많네.’ 하며 선하게 웃던 그녀였다. 온통 적들만 있는 것처럼 어려운 시댁에서 유일하게 마음을 터놓고 지내던 나의 큰 형님이 세상을 떠난다. 입관하면서 더욱 커지는 막내 조카의 울음소리에 큰조카와 둘째 조카의 울음이 뒤를 따른다. 저 곡소리가 다른 세상으로 접어드는 그녀를 반기는 천상의 나팔소리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정거장까지 따라온다는 큰조카를 달래어 들여보내고 집으로 왔다.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그녀와의 만남을 뒤돌아보았다. 세 딸의 사춘기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힘 들어 하던 그녀가 생각난다. 나를 언니처럼 따르는 조카들을 잘 부탁한다면서 미안해하던 그녀 모습이 뒤따른다. 간간이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던 그녀는 내가 아이를 입양할 때마다 그 어려운 걸 어찌하려 하냐며 걱정해주었다. 동서지간이라는 관계를 넘어 친정 언니처럼 따듯한 분이었다.
어려운 살림에 새 옷 한 벌 사는 것도 아까워하며 누구보다 열심히 살던 그녀였다. 사위보고 손자 보면서 이제야 살만해졌다며 환하게 웃기 시작한 지 몇 해 되지도 않았다. 그랬던 그녀가 손자의 재롱으로 지난한 시간을 다 털어버리려는지 치매를 앓기 시작했다. 길을 잃고 일상이 흐트러지는 중에도 만날 때마다 “자네가 고생이 많네.”를 주문처럼 건네던 예쁜 치매였다. 평소의 그녀답게 남은 가족들 고생할까 봐, 아주 잠깐 방황하다가 훌쩍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입관 장면이 떠오른다. 여전히 가부끼 인형 같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생전 보지도 못한 가부끼 인형을 왜 그 순간 떠올렸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아니 그런 인형이 있기나 한 걸까? 인터넷을 뒤져 보았다. ‘가부끼’란 일본의 전통 연극으로 16세기 후반 여승이었던 오쿠니가 불교도들을 풍자하면서 시작되었다고 나온다. 이후 천박하고 관능적이란 이유로 금지되었다가, 나이든 남자 배우가 역을 맡으면서 남자들로만 구성된 가부끼 형식을 이루게 되었다고 한다. 가부끼 인형 사진도 하얀 머리에 흰 수염을 길게 기른 남자였다.
난 한 번도 가부끼 연극이나 인형을 본 적이 없다. 아니, 가부끼란 말 자체도 몰랐다. 그런 내가 그녀의 마지막 모습을 보면서 가부끼 인형 같다는 생각을 한 이유가 뭘까. 평소의 그녀답지 않게 짙은 화장을 한 모습 때문이었을까. 어쩌면 그녀가 생전에 믿고 따르던 종교의 영향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남묘호렌게쿄’ 그녀가 수시로 중얼거리던 말이다. 시댁 식구들이 모인 날이면 구석진 자리에 앉아 남묘호렌게코를 열심히 중얼거리던 그녀를 볼 수 있었다. 언젠가 내게 “자네도 남묘호렌게쿄를 믿어야 팔자가 달라질 텐데.” 하며 몇 번이나 권할 정도로 그녀는 열심이었다. 그 종교가 일본에서부터 시작했다는 걸 알아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입방아에 오르기도 했지만, 그녀는 상관하지 않았다. 그녀는 나와 달리 어느 자리에서나 당당했다. 누가 뭐라 해도 자신이 생각한 대로 행동한 그녀의 용기는 어디서 나온 것일까. 어쩌면 나는 그녀의 살아생전 모습을 좀 더 닮아야 할지도 모른다. 매사에 쭈뼛거리며 눈치 보기 일쑤인 나와 달리,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에 대해 거침없었던 그녀를 말이다.
대전역에서 내려 집에 가는 버스에 올랐다. 차창 밖을 내다보며 잠시 마음을 모은다. 여자로 태어나 한 집안의 며느리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그녀의 걸음걸음이 충만했기를, 나아가는 세상이 어떤 곳인지 모르지만, 그 안에서 평화롭기를 바라며 안녕을 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