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를 잊으면 매일 부족하다는 아우성을 치게 된다.
그들 중에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이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이르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 - 민 11:4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원망한 이유는 거창한 게 아니었다. 바로 먹거리의 문제, 지극히 본능적인 문제였다. 백성들이 원망하는 근본 원인은 탐심이었다. 이스라엘의 원망하는 모습을 보라. ‘고기’를 먹고 싶다고 아우성이다.
그들은 출애굽 원년 2월 15일부터 그 이듬해 2월까지 약 1년이나 만나를 먹으며 하나님의 기적을 날마다 체험하며 살고 있으면서도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이 만나를 지겨워했다.
은혜 중의 은혜는 바로 ‘지속되는 은혜’이다.
건강이 지속될 때, 평안함이 지속될 때, 일정한 수입이 지속될 때 그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가 부어졌다는 증거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렇게 지속되는 은혜 속에서 주어진 것들을 당연시하며 삶을 무료하게 여기는 우를 범하곤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응답을 주신다. 메추라기를 이스라엘에게 쏟아부으시되, 이스라엘 진 사방으로 하룻길 되는 지면 위로 쏟아부으셨다.
만약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시선이 있었다면 이런 하나님의 행하심을 보았을 때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그쯤에서 회개 기도를 먼저 했을 것이다. 쏟아진 메추라기를 보며 눈이 휘둥그레지기보다는, 철렁 내려앉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하나님께 잘못했다고 비는 게 마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탐욕에 사로잡힌 미성숙한 모습 그 자체였다. 백성이 일어나 그날 종일 종야와 그 이튿날 종일토록 메추라기를 모으니 적게 모은 자도 열 호멜이라고 했다(민 11:32).
10호멜은 약 2.2톤 정도의 양이다. 그들은 고기를 보자 완전히 정신이 나가서 낮밤으로 메추라기를 주웠을 뿐 아니라, 그다음 날도 고기 모으는 일에 힘을 다했다. 도대체 그렇게 많은 고기를 모아서 언제 다 먹을 심산이었을까?
그들은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면서도 어떤 회개나 감사의 고백을 고하지 않았다.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그들의 탐욕의 크기만큼 고기를 계속해서 쓸어 모았을 뿐이다.
어쩌면 쏟아진 고기를 보고 “봐라, 내 말이 맞지? 우리가 이렇게 좀 세게 나와야 하나님도 겁먹고 고기를 내놓는 거야”라며, 자신들이 불평한 행위를 정당화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하나님을 자신들의 탐욕을 채우는 수단으로 봤을 수도 있다. 우리가 간혹 하나님을 주인 삼고 살기보다는 내가 주인 되어서 하나님을 종 부리듯 부리며 흔들 듯이.
결국 이스라엘은 이 일로 하나님의 진노를 샀고, 탐욕을 부린 백성들은 기브롯 핫다아와에 장사 지낸 바 되었다(34절).
이를 통해 성경은 어쩌면 끝없는 욕심으로 산을 넘지 못하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우리 삶에 부으신 은혜는 이스라엘에게 내려주신 만나처럼, 모자라지도 남지도 않게 가장 적절하고 가장 적합하게 주시는 최상의 은혜다”라고 선포하는 듯도 하다.
그럼에도 혹시 당신은 하나님의 은혜가 늘 부족하다고 아우성치고 있지는 않은가? 만약 그렇다면, 아직도 애굽에서의 삶의 잔상이 삶 속에 남아 있지 않은지부터 돌아봐야 할 것이다.
본문은 우리에게 웅변하듯 알려주고 있다.
혹 무엇이 부족하거나 무엇 때문에 힘들다고 느끼더라도 조금만 더 인내하고 순종하며 기다려야 한다고. 조금만 더 기다리면 주님께서 약속하신 축복의 땅에 갈 수 있음을 믿고, 이제는 “고기 달라”라는 아우성을 멈추라고. 그리고, 이제는 그 불평과 원망의 산을 넘고 믿음과 신뢰의 경주를 달려갈 때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