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페르민 축제의 ‘소와 함께 달리기’가 단지 오락을 위해, 단지 쾌락을 위해 벌이는 난장판이라면, 우리나라에는 본인과 가문의 흥망성쇠를 걸고 벌이는 난장판이 있습니다. 바로 과거시험장입니다. 여러 사람이 뒤섞여 어지러이 떠들어대거나 뒤죽박죽이 된 판을 뜻하는 난장판을 시장에서 유래한 말로 오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난전(亂廛)이고 난장(亂場)은 ‘과거시험을 보는 마당’에서 유래한 말로 난은 어지럽다는 뜻, 장은 과거장을 가리킵니다.
조선시대에 과거시험은 신분을 상승시킬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이자 가문의 흥망이 달린 절체절명의 관문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과거시험이 한번 열린다고 하면 전국 각지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난리가 따로 없었습니다. 이런 과거 마당의 어지러움에서 나온 말이 바로 ‘난장’입니다. 그가 어느 해인가 과거를 보러갔다가 우르르 몰린 응시자들에게 밟혀 죽을 뻔했다고 합니다.
언제나 위트가 넘쳤던 연암다운 글입니다. ‘만에 하나 합격하고, 열에 아홉이 저승 문턱까지 가는’ 난장판, 이런 부작용을 초래했다니 옛날의 과거제도도 오늘날 입시제도에 못지않았던 것 같습니다.
난장판과 비슷한 의미로 사용하는 말이 있습니다. ‘아수라장’입니다. ‘아수라’라고 하면 텔레비전 애니메이션 〈마징가 Z〉에 나오는 악당 아수라 백작이 먼저 떠오릅니다. 몸의 절반은 남자이고, 다른 절반은 여자인 기괴한 모습이었지요. 아수라 백작은 원래 서로 사랑하던 남자와 여자였는데 헬 박사가 자신의 부하로 이용하려고 하나로 합친 것이었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아수라가 아수라장의 그 ‘아수라’인 줄 알았습니다. 아수라장이 난장판과 비슷한 뜻인 줄 알았던 거지요. 그러나 사실은 완전히 다른 뜻입니다. 여러 사람이 어지러이 뒤섞여 떠들어대거나 뒤엉켜 뒤죽박죽이 된 곳이 난장판이라면, 아수라장은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참혹한 전쟁터를 일컫습니다. 어쩐지 으스스한 느낌이지요. 그렇다면 ‘아수라’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아수라(阿修羅)는 인도 신화에 나오는 존재로 하나의 독립된 신이 아니라 초자연적이고 신적인 힘을 가진 종족입니다. 처음부터 사악한 종족은 아니었습니다. 아수라의 수장 ‘잘란다라’가 군단을 소집해서 하늘과 싸우며 악한 신이 되었습니다. 아수라 군단은 몇 번을 죽어도 되살아나서 신들을 하늘에서 쫓아낼 정도로 위력을 발휘하는데요. 인도 신화에서는 아수라가 힘을 얻는 비결을 이렇게 풀고 있습니다. “인간이 악행을 거듭하면 불의가 만연하여 아수라의 힘이 강해지고, 선행을 하면 하늘의 힘이 강해져서 아수라와의 싸움에서 이기게 된다.”
세상을 아수라장으로 만드느냐 아니냐가 인간의 선행과 정의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인도 신화에서는 아수라를 악마로 분류하지 않습니다. 인간에게 잠재된 선과 악을 그대로 투영하고 있고, 그래서 생김새도 한쪽은 악의 얼굴을, 다른 한쪽은 선의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간이 악행을 거듭할수록 신들을 능가하는 신이 되는 ‘아수라’, 참으로 의미심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