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 배달 건배사
-부아아아앙~
“으어엌, 으헉!”
쌍칼이 달려드는 언더본 오토바이를 황급히 피해 돌아서며 기겁을 했다.
-부릉, 부아앙~
쌍칼을 아슬아슬하게 스친 언더본이 강철이 있는 곳에 도착하기도 전에, 이번에는 알피엠(rpm)만 올리고 있던 강철의 크루저가 급발진되며 쌍칼에게 쏜살같이 돌진했다.
뒤돌아서려던 쌍칼이 크루저를 발견하자, 그냥 반대편으로 냅다 도망쳤다.
죽을힘을 다해 병원 서관 뒤편 막다른 골목 입구로 튀어간 쌍칼이 길가에 주차된 SUV 차량 뒤로 피했다.
“전부 퇴각해라~!”
그러자 장유파 대원 중 한 놈이 소리 지르며 SUV 차량을 향해 뛰기 시작했고, 다른 놈들도 덩달아 뒤를 따랐다.
-끼익~! 부릉, 부릉, 부릉.
쌍칼을 놓치고 SUV 곁을 지나 한참 가던 강철의 바이크가 급정거하고 뒤돌아섰다.
그사이 쌍칼이 SUV 차량에 올라 시동을 걸었고, 뒤이어 우르르 몰려온 장유파 대원 10명이 모두 차에 올라탔다.
이 녀석들이 해삼을 납치해서 빨리 달아나려고 일부러 길가에 주차하고, 문도 안 잠근 채 키도 꽂아두었던 모양이다.
-부아앙~
강철의 크루저가 달려왔지만,
-부우웅~
장유파 차량은 바이크를 들이받을 듯이 한 템포 앞서 출발했다.
-끼이익!
강철은 바이크를 급정거하며 미끄러져 멈춰 섰다.
-부아아앙~ 끽!
주차장 뒷골목에서 달려오던 언더본도 장유파 차량을 피해 멈춰 섰다.
지켜보던 문도네는 안심하고 서로 부축하여 강철이 있는 사거리로 얼른 걸어갔다.
“강철아, 고맙다! 얘는 짱구지?”
문도가 헬멧 쓰고 언더본에 앉아있는 라이더의 어깨를 툭툭 치며 웃었다.
“응. 많이들 맞은 것 같은데, 괜찮아?”
강철이 선글라스를 벗으며 안쓰러운 눈빛으로 문도네를 훑어봤다.
“나는 괜찮은데, 너희들 다친 데 없어?”
문도가 어깨를 펴고 팔을 휘둘러 보이며 정훈과 삼봉에게 물었다.
“저는 말짱합니다. 이 경사님은 괜찮으세요?”
장유패에게 얻어맞자마자 구출된 삼봉이 아무렇지 않다는 듯 고개를 좌우로 꺾어 보였다.
“아, 박강철 사장님 되시죠? 저, 이정훈이라 합니다.”
정훈도 큰 상처는 없는지, 바이크에서 내려선 강철에게 손을 내밀었다.
“아, 예. 박강철입니다. 문도에게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
강철이 얼른 손을 잡고 반가운 얼굴로 악수했다.
“병원에 가서 치료부터 받으셔야 되지 않겠습니까?”
오늘의 2등 공신 짱구가 헬멧을 벗고 절하며 걱정스럽게 말했다.
“그 자식들 펀치가 영 형편없더라. 하하. 나는 약방에 가서 파스나 사서 붙이면 될 것 같은데, 어떠냐?”
문도가 웃으며 정훈과 삼봉에게 물었다.
“응, 나도 그래. 괜히 병원에 가서 치료하면 기록도 남게 될 거고···”
현역 해경인 정훈도 조폭에게 얻어터진 게 자랑스럽지는 않은 모양이다.
“저기, 해삼 씨한테 무슨 일 없을까요?”
그제야 생각나는지 삼봉이 불안한 눈동자를 굴리며 말했다.
“아, 그래. 빨리 가보자!”
문도도 아까 장유파 애들 중 두 명이 회칼을 휘둘렀던 게 퍼뜩 생각나서, 강철에게 손짓하고는 빠른 걸음으로 앞장섰다.
강철과 짱구는 오토바이를 타고 먼저 병원 입구로 달려갔고, 문도네도 뛰다시피 해삼의 병실로 걸어갔다.
**
“어? 지부장님! 어쩐 일이십니까”
병실에서 해삼을 간호하던 멍게가 우르르 들어서는 동료들을 보고 깜짝 놀라 소리쳤다.
“여기 누구 오지 않았어요?”
삼봉이 침상에 멀쩡하게 누워있는 해삼을 보고 안심이 되면서도 물었다.
“누구 말입니까?”
멍게가 무슨 일인가 싶어 멀뚱한 표정을 지었다.
“어제 수로왕비릉에서 봤던 걔들이요.”
“수로왕비릉이요? 안 왔는데요?”
“아, 그놈들이 미처 여기를 못 찾고 우리한테 몰려왔던 모양입니다, 지부장님.”
삼봉이 문도를 보며 다행이다 싶은 미소를 지었다.
“그런가 보네. 우리가 와보길 잘했다. 그지?”
문도가 정훈을 뒤돌아보며 웃었다.
“아, 정말 천만다행이다. 저분이 해삼이고, 여기가 멍게 되시는구나.”
정훈이 앞으로 나서며 해삼과 멍게를 번갈아 봤다.
“아, 인사드려라! 여기 내 친구, 해경에 다니는 이정훈 경사님이다.”
문도가 해삼과 멍게에게 정훈을 소개했다.
“아, 예. 멍게라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멍게가 먼저 악수로 인사했고,
“아이구, 이런! 못 일어나서 죄송합니다. 해삼이라 합니다.”
해삼은 침상에 누운 채로 손만 내밀었다.
“문도한테 얘기 들었어요. 어젯밤에 큰일을 해내셨다고요? 국가를 대신해서 감사드립니다.”
무슨, 문화재관리청을 대표해서 문병 오기라도 했남?
“하이구, 무슨 말씀을요.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해경 경사 한 명 만난 게 무슨 영광씩이나?
“때맞춰 와서 다행이다. 해삼, 힘내서 빨리 완쾌하고, 멍게는 여기서 불침번서야 되겠다. 하하.”
뒤에 서 있던 강철도 별일 없는 걸 보고 웃으며 한마디 했다.
“아, 예! 집에 안 가고 여기서 밤새우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뭔가 감을 잡은 멍게가 염려 말라는 듯 어깨를 으쓱거렸다.
“코모도, 치료 안 할 거면 약방에라도 들러 파스 사고, 어디 가서 식사하면서 막걸리로 태독이라도 풀어야 안 되겠나?”
강철이 이제 나가자고 웃으면서 서둘렀다.
“그래, 그러자. 그럼, 멍게는 밤샘 좀 하고, 내일 아침에 삼봉이가 교대하도록 해라.”
“예, 지부장님! 염려 마시고 얼른 가보십시오.”
“멍게 씨, 수고해요. 해삼 씨도 내일 봐요~”
병실을 나온 일행은 병원 입구에 있는 약국에 들러 파스 외에도 빨간 약 머큐로크롬과 타박상에 바르는 요오드팅크를 샀다.
“저기, 2백 미터쯤 가면 24시 감자탕집이 있답니다. 그리로 갈까요?”
핸드폰에서 인근 맛집을 검색한 삼봉이 병원 입구 대로변 동쪽 삼거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
오토바이 두 대를 끌고 일행 다섯 명이 도착한 맛집은 ‘통 묵은지 감자탕’이라는 간판이 커다랗게 붙은 제법 큰 24시 영업 체인점이었다.
좌석 식탁이 있는 방 하나에 들어간 일행은 감자탕과 막걸리를 주문하고 나서, 가져간 약품으로 임시 치료부터 했다.
“야, 인마. 생각보다 많이 맞았는데?”
상의를 벗은 문도의 등짝을 살펴본 강철이 놀란 눈으로 퍼런 멍 자국을 꾹꾹 눌렀다.
“아야, 살살 좀 해라. 어째 때리던 놈보다 더 아프게 치료하냐? 크크.”
문도가 엄살을 부리며 아픈 몸을 꿈틀댔다.
“아휴~ 이 경사님도 엄청 많이 맞으셨는데요! 아프시죠?”
웃통 벗은 정훈의 상처에 물약을 살살 바르며 삼봉이 눈살을 찌푸렸다.
“괜찮소. 그 자식들 발길질이 시원찮던데? 하하.”
정훈도 욱신거리는 등살을 움쩍거리면서도 괜히 웃어넘겼다.
“형님은 파스만 붙여도 되겠는데요?”
삼봉의 등짝을 살펴본 짱구가 그래도 제일 말짱한지 조심스럽게 말했다.
문도와 정훈도 물약이 좀 마르자 그 위에 파스를 붙였다. 크지 않은 방 안에 파스 냄새가 진동해서 잠시 후에 감자탕을 날라 온 종업원이 눈살을 찌푸릴 정도였다.
“자~ 그러면, 막걸리 먼저 마시고, 태독부터 풀고 나서, 밥 먹을까? 하하.”
문도가 큰 사발 잔에 막걸리를 철철 따르며 웃었다.
“아이구, 탁배기가 완전 뜨물 때깔이네. 제가 먼저 따를까요?”
문도 옆에 앉은 강철이 마주 앉은 정훈에게 잔을 권하며 활짝 웃었다.
“아, 예. 가득 채워주십시오. 하하.”
잔을 받은 정훈이 손목 받쳐 내밀며 예의를 표했다.
정훈도 강철의 잔에 따르고, 정훈의 좌우에 나란히 앉은 삼봉과 짱구도 서로 잔을 가득 채웠다.
“지부장님, 승전 축하 건배사 한 말씀 하시지요?”
재치 있는 삼봉이 잔을 들며 웃었다.
“건배사? 그래, 한번 하자. 진주 남강 둔치에서 이병율파도 물리쳤고, 김해 와서 장유파도 깨부쉈으니까, 우리가 오늘 하루에 두 탕이나 뛴 건각들이네! 잔들 들고 원샷 합시다. 하루 두 탕 뛴 건각, ‘건재한 배달의 사나이들!’, 건배사~!”
흥신소 ‘배달’의 부산지부장 문도가 막걸릿잔을 높이 치켜들고 건배사를 부르짖었다.
“건배사~” “건배사~!”
오토바이 배달업체 ‘어방배달’ 사장과 직원, 해경 한 명 등 다섯 건각의 우렁찬 함성이 방문이 흔들리도록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그러고는 모두 걸신이라도 들린 것처럼 감자탕을 쩝쩝거리고 후루룩대며 정신없이 먹기 시작했다.
“아참, 강 사장! 아까 나한테 전화 걸어서 웃기는 일이 있었다고 했지? 무슨 일인데?”
한참 맛있게 먹어대던 문도가 문뜩 생각나서 강철에게 물었다.
“아, 그게 말이야 진짜 웃기는데, 그때 내가 장유파 이무계한테서 걸려 온 전화를 받고 막 통화를 끝낸 뒤였어.”
“뭐? 장유파 두목하고 통화를 했다고?”
문도가 깜짝 놀라 어리둥절해하고, 정훈과 삼봉도 웬일이니 하는 표정으로 강철에게 시선을 모았다.
그 시각에 장유파 행동대장 쌍칼과 패거리 10명이 해삼을 잡으러 김해중앙병원으로 출동해 있었는데, 두목이란 놈이 어방배달 사장인 강철에게 전화를 걸었다니,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린가?
“응, 나보고 사업상 일로 얘기 좀 하자고 그러더라. 흐흐.”
조직폭력배 두목이 자기한테 전화 건 사실이 무슨 대단한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강철이 으스대며 말했다.
“사업상 얘기? 무슨 사업?”
“응, 나한테 도움 되는 일인데, 전화로 간단히 말할 수 없다며 지금 좀 만났으면 하데.”
“그래서 뭐라고 했어?”
“응, 내가 영업시간이라 바쁘니까 내일 낮에 만나자고 했지. 그랬더니 낮 12시에 강변장어타운 두레박에서 만나자고 하더라.”
“아, 두레박? 거기라면 장소는 괜찮네. 그 자식이 무슨 꿍꿍이수작이지? 해삼 잡으러 쌍칼을 보내놓고 너한테는 만나자고 하다니?”
문도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 정훈과 책사 삼봉을 바라봤다.
“해삼 씨를 잡아서 자기들이 실패한 파사석탑 도굴 실패에 대한 배상을 요구하려던 것 아닐까? 어방배달 오토바이 부대가 출동해서, 해삼 씨가 어방배달 직원인 줄 착각하고 말입니다.”
정훈이 얼핏 떠오른 생각을 말하며 문도와 강철을 번갈아 봤다.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아까 쌍칼은 해삼이 이글스파인 줄 알고 있었고, 나보고도 이글스파 진주 지부장인 줄 다 알고 있다더라. 큭큭.”
문도가 헛다리 짚은 쌍칼이 하도 우스워서 킥킥거렸다.
“이글스파? 쌍칼이 어째 그런 엉뚱한 생각을 했지?”
해삼이 서울 신림동 이글스파에 있다가 문도에게 의탁해 온 사실을 들어서 알고 있는 강철도 어이없어 실소했다.
“글쎄, 나도 그건 잘 모르겠는데, 혹시 해삼이 장유파 애들하고 결투하다가 겁주느라고 이글스파를 읊조리지 않았나 싶다.”
“아,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아까 해삼한테 물어보고 올걸, 내가 괜히 빨리 가자고 해서 그냥 나와 버렸네. 미안!”
강철이 끄덕이며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해삼 납치에 실패해서 어쩌지? 큭큭. 이무계 그 자식, 아주 성질이 되게 급한 놈인 모양입니다, 그죠?”
헛다리 짚고 민망해진 해경 마약 수사팀 반장 이정훈 경사가 괜히 강철을 쳐다보고 딴소리하며 킥킥거렸다.
“저기요, 사장님! 어젯밤에 수로왕비릉 정문 밖에서 싸울 때, 제가 탄 오토바이 세운 멍게 형님이 저한테 삼방, 최성덕 큰형님한테 전화하라고 한 말을 그놈들이 들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가만히 듣고 있던 짱구가 기억난 듯 나서서 참조하라고 알려줬다.
“그랬어? 그러면 이무계가 어방배달 사장인 너랑 성덕이형 관계를 알아보려고 만나자는 거 아니야?”
문도가 그럴듯한지 넘겨짚고 말했다.
“그런 것 같지도 않아. 나하고 통화할 때 무게는 좀 잡았지만 아주 정중하게 예의를 갖추려고 했어. 그러고, 뭔가 진짜 업무상 거래를 하자는 느낌이 오더라고!”
사업가 기질의 강철이 분명 사업 얘기를 하려던 것 같았다며 도리질했다.
“그래? 그럼, 뭐지? 혹시 성덕이 형 삼방파를 치기 전에 우호 관계로 보이는 너한테 무슨 야시꾸리한 수작을 벌이려는 거 아닐까?”
문도 생각엔 아무래도 장유파 두목 이무계가 음침한 음모를 꾸미고 있는 것으로 보여 자못 걱정된다.
< “건배사” : 건재한 배달의 사나이들 –
배달의 민족인 우리나라 건장한 남성들 건배사로 생각했던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