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엠파티쿠스(공감하는 인간)

[Wondam:원담]

‘호모 엠파티쿠스’

                      -조국(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내가 어릴 때 영남 지방에서 공부 잘하는 아이는 ‘사(士)’자가 들어가는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었다. 실제 나의 고등학교 생활기록부에 장래 희망란에는 ‘판사’라고 적혀 있었다. 서울대 법대에 입학한 나는 이런 기대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대학을 합격하자마자 주위에서는 내 인생의 다음 장면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판사나 검사가 되어 ‘영감’의 호칭을 들어야 하는 게 수순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길로 가지 않았다. 80년대 초 군사독재 시절 대학을 다닌 많은 사람들처럼, 농촌활동, 빈민 활동, 반독재 시위 참여 등의 길을 택했다. 그런 선택을 하게 된 정신적·심리적 이유의 뿌리를 찾아가면 어린 시절 뇌리에 박힌 몇몇 장면들이 나타난다.

먼저 초등학교 저학년 때였는데, 우리 동네에 지능이 떨어지는 형이 한 명 있었다. 어릴 적 동네마다 볼 수 있었다는 ‘바보 형’이었다. 덩치는 큰데 머리는 모자라니 철없는 동네 아이들 입장에선 놀려먹기 딱 좋은 대상이었다. 그 형의 집안형편도 그다지 좋지 않았다. 부모님은 안 계시고 할머님께서 홀로 그 형을 키우니 하루 종일 세심하게 돌볼 수도 없었다. 휑하니 텅 빈 집보다 바깥이 좋을 수밖에 없었던 탓에 그 형은 아이들의 짓궂은 놀림에도 불구하고 매번 동네 골목에서 느릿한 황소걸음을 걸으며 돌아다녔다.

“야! 이 바보야!”

그 형이 골목에 보이면 아이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너도나도 해코지를 해댔다. 그 형보다 나이가 어린 아이들도 돌멩이를 던지면서 놀려댔다. 이런 모습을 그저 옛 추억의 한 장면으로 여기며 순진한 아이들의 골목 놀이로 넘길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아이들의 모습에 화가 났다.

아이들은 순진하지만 잔인하기도 하다. 생각 없이 하는 행동, 생각 없이 내뱉는 말들을 그저 ‘순진하다’는 말로 미화하기엔 상대가 받는 상처는 쓰리고 고통스럽다. 생각 없이 던진 돌에 개구리는 맞아죽는다지만, 상대는 개구리가 아닌 사람이다. 사람이 사람을 대상으로 이유 없이 괴롭힘을 가하는 행위는 아무리 아이라고 할지라도 결코 순진함으로 포장되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당시 나는 그런 아이들과 적극적으로 맞서지 못했다. 단지 “느그들 그러지 마라, 와 자꾸 불쌍한 사람을 놀리노!” 정도의 말 몇 마디 던졌을 뿐이었다.

나의 말은 소용없었다. 나는 바보를 두둔하는 이상한 아이가 되어버렸다. 이후 언제인지도 모르게 그 형은 동네에서 사라졌다. 그렇지만 왜 보통의 순진한 아이들이 그 형을 그리 잔인하게 대했는지는 오래도록 마음 속 의문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 부산에 사는 주변 어른들에게 바보 형 소식을 물어 보았다. 길거리에서 객사한 모습으로 발견되어 할머니가 장례를 치렀다고 했다.

어린 아이들은 아직 세상을 제대로 이해하기엔 부족한 점이 많다. 그 나이에 수용하고 있는 ‘상식’이란 것에도 한계가 있다. 하지만 그것은 상식, 비상식을 떠나 부당하고 불합리한 폭력 행위였다. 그런데 인간 세상에서 이런 일은 종종 일어난다. 예를 들자면, 나치가 집권하던 독일에서 수많은 아이들이 ‘히틀러 유겐트’ 단원이 되어 유대인들에게 돌을 던졌다. 히틀러 유겐트 단원이었던 독일 아이들도 바보 형에게 돌멩이를 던졌던 아이들과 똑같이 순진무구했을 것이다. 이런 상황을 접하고 이건 아니라는 생각에 나서면 잘난 체 한다는 비아냥거림을 들어야 한다. 집단의 논리에 빠져 있는 사람을 설득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순진한 집단성의 이면에 가려진 가학성과 잔인성에 대해 침묵할 수는 없다. 바보 형에 대한 기억은 내가 비합리적이고 부당한 대우를 받는 사람들의 현실에 대해 침묵하지 않고 발언하고 나서게 만드는 원초적 계기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성년이 됐음에도 저열하고 저급함을 넘어 악랄한 언동을 일삼는 사람들이 많다. 역사적인 사실마저도 왜곡하고 또 특정 지역 사람들을 마구 비하하는 일 따위를 서슴없이 저지른다. 상식이라는 기준으로 볼 때,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일이 버젓이 일어나고 있다. 최근 일어난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악의적인 왜곡과 당시 희생자를 비롯해 수많은 호남 사람들을 비하하는 표현 등은 대표적인 예다. 광주민주화운동의 희생자의 시신이 담긴 관 앞에서 통곡하는 어머니의 사진을 올리면서 “홍어 택배”운운하는 글을 덧붙인 대구지역 대학생의 의 소행을 접하고 경악했다.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각종 자유는 오랜 권위주의 체제를 대체한 1987년 헌법체제 덕분이며, 이 체제는 다름 아닌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빚지고 있다. 에스파냐의 화가 프란시스코 드 고야의 판화 작품 중 “이성이 잠들면 괴물이 나타난다.”가 있다. 이를 빌어 말하면, 이 ‘괴물’과 이를 불러내는 자들은 과거에도 있었고 현재에도 있으며 미래에도 있을 것이다.

유쾌하지 않은 초등학교 기억이 또 하나 있다. 1975년 초등학교 6학년 초 전교학생회장을 뽑게 되었다. 초등학교가 위치하고 있던 서대신동 토박이로 ‘모범생’에 속했던 나에게 담임선생님은 출마를 권유했다. 그런데 6학년 초 새로이 전학 온 친구가 출마를 선언했다. 그런데 이 친구는 당시까지 전혀 접하지 못한 선거운동을 전개했다. 딱지를 수백 장 사서 그 뒷면에 자신의 이름과 기호를 적어 교문 앞에서 학생들에게 돌린 것이다. 나는 황당하다 못하여 분노했다. 귀가하여 부모님께 이 일을 알렸더니, 두 분 다 혀를 차셨다. “어른들이 하는 짓 똑같이 하는구먼!” 하시면서. 사실 1970년대 공직선거는 돈과 조직으로 승패가 갈렸다. 선거 결과 이 친구가 회장으로 당선되었다. 나는 부회장이 되었다. 이 친구의 ‘획기적’ 선거운동방식은 아마도 그의 부모님에게서 나왔을 것이다. 이후 어머니와 이 친구의 어머니가 언쟁을 벌였다는 얘기를 들었다. 어린 시절이었지만 “이건 아니다”란 생각이 들었다. 돌이켜보면, 불공정에 대한 분노는 본능적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한편 고등학교 진학을 앞둔 1978년 중학교 3학년 때였다. 같은 반으로 친하게 지냈던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가 상업고로 진학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니는 왜 상고를 가노?”

“몰라서 묻나?”

“...”

당시의 나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대학생이 되는 것을 당연한 수순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러니 그 친구의 선택을 의아하게 여겨졌던 것이다.

“돈이 없어서 못 가는 거제!”

굳어진 표정으로 무뚝뚝하게 쏘아붙이는 친구의 말에 나는 그제야 내가 친구에게 큰 실수를 했음을 깨달았다. 이후 한동안 내 머릿속엔 다음과 같은 의문이 사라지지 않았다.

‘넌 공부도 잘하고, 공부하는 것도 좋아하는데 왜 돈이 없어서 상고를 가야만 하는 거지?’

그리고 주변의 친인척 중 머리가 좋음에도 상고나 공고를 선택해야 했던 어른들의 삶을 상상해보았다. 친구의 뜻과는 무관하게 집안 형편이 안 좋아서 인문계를 포기해야 한다는 현실은 내게 이 세상에 부조리함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다. 그때부터 나는 조금씩 세상에 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누군가에겐 당연하게 주어지는 것들이 또 다른 누군가에겐 그저 바라만 보아야 하는 것이 될 수 있는 세상. 그것은 세상을 얼마나 성실히 열심히 사느냐 와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 선거에 나섰을 때는 물론,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에도 반대 정파의 사람들은 노무현을 대학도 나오지 못한 사람이라고 멸시하고 조롱했다. 대표적으로 전여옥 대변인의 발언이 있다.

“다음 대통령, 대학 나온 사람이 돼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대학 못 나온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다.고졸 대통령 노무현이 싫다. 나는 대통령이 대학을 다니지 않은 경험이 있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박근혜 대표는 대학을 졸업해서 정치를 관망하는 시각이 탁월하다. 대졸자들은 큰 그림을 보는 데 타고난 천성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고졸자 대통령은 언행이 거칠고 역할이나 임무 수행에 문제가 많이 있다.”

노무현은 1975년 당시 60명만 뽑는 사법시험에 합격한 수재였음에도 대학졸업장이 없다는 이유로 차별받았다. 이 소식을 들을 때 나는 상고를 가야했던 그 친구를 떠올렸다. 한국 경제가 ‘개발도상국’ 수준이었고 국민 다수에게 대학 교육은 자기와 먼 이야기였던 시절, 대학을 갈 수 있다는 것은 단지 그 개인의 성실함과 우수함 때문은 아니다. 이를 외면하고서 당시 대학 진학을 엄두도 못 내고 다른 삶의 경로를 택해야 했던 수많은 사람들을 무시하는 것은 오만 중의 오만이다.

세상과 인생은 동화 속 낭만으로 가득 차있지 않다. 어린 시절도 마찬가지다. 순수, 아름다움, 희망,환상, 구원만을 기대하는 사람은 자신의 기대만큼 아름답지 못한 현실을 직면하면 질끈 눈감아버리고 만다. 그렇게 하나둘씩 눈을 감아버리는 세상에서 ‘해피 엔딩’은 있을 수 없다. 크리스마스에 산타클로스는 오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부터 아이는 어른이 되어간다. 세상과 인생은 동화처럼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부터 우리는 현실의 모순과 역설에 눈뜨게 되고 세상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게 된다.

어린 시절 이런 경험은 내가 어른이 된 후 부터 진보적 지식인으로 살아가는데 있어 진한 거름이 되었다. 나이가 들어 이하 러셀의 말을 접했을 때 가슴이 찡했다.

“사랑과 지식은 나름대로의 범위에서 천국으로 가는 길로 이끌어주었다. 그러나 늘 연민이 날 지상으로 되돌아오게 했다. 고통스러운 절규의 메아리들이 내 가슴을 울렸다. 굶주리는 아이들, 압제자에게 핍박받는 희생자들, 자식들에게 미운 짐이 되어 버린 의지할 데 없는 노인들, 외로움과 궁핍과 고통 가득한 이 세계 전체가 인간의 삶이 지행해야 할 바를 비웃고 있다. 고통이 덜어지기를 갈망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해 나 역시 고통 받고 있다.”

제레미 리프킨은 <공감의 시대>에서 ‘공감’을 “관찰자가 기꺼이 다른 사람의 경험의 일부가 되어 그들의 경험에 대한 느낌을 공유”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그리고 인류의 존속과 번영을 위해서는 ‘공감의 문명(empathic civilization)’이 중요하며, 21세기 ‘공감의 시대’에서 우리 속에 들어 있는 ‘호모 엠파티쿠스(Homo Empathicus)’, 즉 ‘공감하는 인간’을 찾고 계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사한 맥락에서 최재천 교수는 <호모 심비우스>에서 21세기가 추구하는 이상적 인간은 ‘호모 심비우스’(Homo Symbious)이라고 말했다. 경쟁 일변도에 빠진 사람이 아니라 ‘협력하고 공생하는 인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을 사적으로 잘 알지 못하지만, 그의 생애와 언동을 종합하면 그의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는 항상 ‘호모 엠파티쿠스’와 ‘호모 심비우스’가 자리 잡고 있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한국 전쟁과 권위주의 통치를 거치고 급속한 경제개발을 경험하면서 한국인은 철두철미 ‘호모 이코노미쿠스’(Homon Economicus), 즉 ‘경제적 인간’이 되었다. 생존을 위하여 이익을 추구하는 인간이 된 덕에 물질적 부는 누리게 되었다. 약육강식, 승자독식의 원리를 신봉하며 달려왔다. 승자의 ‘먹잇감’이 된 패자는 열패감 속에 살아야 하며, ‘한 탕’을 노리는 유혹에서 빠져 더 불행해진다. 먹이를 확보한 소수의 승자는 승리감에 도취하지만, 이들도 끊임없는 경쟁과 축적의 욕망의 노예가 되어 불안과 공허에 시달린다. 그리하여 모두가 불행하다. 지그문트 바우만이 <액체근대>에서 사용한 표현을 빌자면, ‘호모 이코노미쿠스’는 “이 세상을 일회용 물품들, 한번 쓰고 버리는 물품들―다른 인간들을 포함한 전체 세상까지―이 가득 담긴 용기처럼 보는 훈련을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호모 이코노미쿠스’에 의해 억압된 ‘호모 엠파티쿠스’와‘호모 심비우스’를 되살려야 한다. 법철학자 마사 누스바움의 표현을 빌자면, “분별 있는 관찰자”는 “역사의 수많은 부분을 차지해온 고통과 불평등에 대해 무지하거나 이에 대한 인정을 거부”해서는 안 된다.

원담이 덧붙이는 글: 

다른 사람의 고통에 공감하는 불자가 됩시다. 사회적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불자가 됩시다. 가해자의 관점으로 보기 보다는 피해자의 처지가 되어 사물을 보도록 합시다. 가진 자의 관점에서 사물을 보기보다는 못 가진 자의 처지가 되어 사물을 보도록 합시다. 이긴 자, 승자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기보다는 실패한 자, 패배한 사람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도록 합시다. 불자가 이야기하는 자비와 연민심이 다 무엇입니까? 바로 타인의 고통과 피해에 공감하는 가슴이 아닙니까? 불자들은 이 사회에 드러나 있거나, 숨어서 드러나지 않으며 고통 받는 사람을 위해서 해주어야 할 일을 찾아야합니다. 그것이 불자 된 도리입니다. 자신의 마음을 잘 닦았다면, 그 닦여진 마음으로 이웃에게 봉사해야합니다. 나눔과 섬김이 바로 불자의 실천이기 때문입니다.

[강물]

예 스님 진리의 말씀 잘 새기겠습니다.
나부터 부처님처럼
느리게 그러나 부지런히

[浩然]

오늘 아침 김형석교수(연대명예교수96세)의 " 인간의 행복은 어디에서 찿아야 하는가?"란 강의에서
두가지 분류의 사람이 있다고 ,첫째는 물질적 가치를 중요시 하는 사람, 둘째는 정신적 가치를 중요시 하는 사람
인생은 공수래 공수거라 했지만 , 이것은 전자의 사람을 두고 한 얘기고 ,후자는 이사회에 행복을 주고 간다고(故유일한박사)
또한 물질적 가치를 추구하다보면 타인을 괴롭히는 일이 많아지고 행복은 짧아지고 ,정신적 가치를 중시 하는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행복의 수치가 상승 곡선을 달리며 주변 사람을 행복하게 만든다는 말이(故ㅇ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스님 ! 날씨는 차갑지만 마음만은 따뜻해져 옵니다

[바즈라]

공감하는 인간! 소통할수 있다는것.
축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