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는 BC 18년부터 서기 660년까지 존속하였으며,
수도는 한성(서울)에서 웅진(공주)으로 옴겼다가 사비(부여)로 이전되었다.
부여는 멸망시까지 마지막 123년(538-660년)을 보낸 수도로서
현재는 충남남서쪽 내륙에 위치한 전형적인 시골읍내 모습이었다.

피서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2009년 7월의 마지막 무더운 여름날.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집사람과 함께 배낭메고 백제의 옛 고도 부여를 답사하였다.
대중교통으로, 남부서울터미날 출발 07:50고속(1시간50분소요),
부여출발 18:00고속(2시간20분소요)를 이용하였으며,
택시를 한번도 이용하지 않아 폭염속 강행군이었다.
부여 시외버스정류소는 창구가 하나뿐 일 정도로 조촐하고 아담하였다.

정림사지는 시외버스터미날에서 한 블록 바로 동쪽편에 위치하고 있으며,
당시 도성 한 복판에 있었다 한다.
현재 옛모습을 복원 중에 있으며, 멀리 정림사지 5층석탑이 우뚝서 있다.
5층석탑은 국보 제9호로서, 목조탑에서 석재탑으로 옴겨가는 첫 양식이며,
660년 라당연합군에 멸망시 유일하게 살아남은 건축물이라 한다.

정림사지박물관은 정림사터에서 출토된 유물과 당시의 전돌과 기와를 제작하는 모습을
밀랍형태로 실감있게 전시하고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그 당시의 생활을 엿볼 수 있게 한다.

해마다 연꽃축제가 열리는 궁남지(서동공원)는 백제무왕 35년(635년)때 만들어진 인공연못으로
10만여평의 습지에 연꽃,수연,야생화를 가꾸고 있어 한번쯤 들러볼만한 아름다운 곳 이었다
연꽃사이로 징검다리가 있고 쉬었다가는 원두막도 있어 운치도 있었고, 사진찍기에도 좋았다.

궁남지내 수연못 이다. 이곳 궁남지는 매년 7월초 연꽃축제가 열린다

부여박물관아래 동남주공아파트 맞은편에 있는 장어사랑 집으로서
궁남지에서 나와 화지산 자락으로 걸어 갔으며 장어맛이 입에 쏠쏠 녹듯 그만이었다.
여행의 또 다른 묘미는 현지식을 맛보는 것이고, 인터넷을 보고 찾아왔다고 하니
내외분인 듯한 주인이 현장에서 조리된 음식으로 친절히 대해준다.
그래서 사진을 찍어와 인터넷에 리뷰소감을 적어 놓았는데,
사람의 근기에 따라 안티글도 있어리라 생각된다.

국립부여박물관은 백제시대유물 15,000점을 실내외에 소장하고 있다.
제1전시실은 선사시대 이전인 청동기, 초기철기시대,
원삼국시대의 유적과 유물을 소개하고 있으며
제 2전시실은 사비시대를 중심으로 의식주문화생활을 전시하고 있으며
국보 제287호 "백제금동 대항로"가 세계적인 문화재로 평가될 만큼 수작이었다.
제3전시실은 백제의 예술세계를 불교미술, 대외교류,건축기와 3부분으로 전시하고 있다.

부소산은 북쪽이 백마강과 접해 있는 해발106미터의 야트막한 산으로
동쪽과 북쪽의 두 봉우리 형태를 보이고 있으며 평상시에는 정원,
전시는 방어성으로 활용되었다 한다.
산문왼쪽의 충령사는 해방이후 시설로서 백제의 역사적사실와 무관하며,
산문 오른쪽으로 돌로된 비탈길을 오르면 부소산성 유물을 일목요연하게 볼수 있다.
삼충사, 영일루, 군창지, 반월루, 궁녀사, 사자루, 백화정. 고란사순이면
짧은 시간에 효과적으로 보게 된다
삼충사는 산문 바로 오른쪽에 있고,
사당내 왼쪽부터 성충,흥수(의자왕때 좌평),계백 영정이 모셔져 있다.
迎日樓는 해를 맞이한다는 뜻으로 '64.5월 홍산관아의 문루를 옮긴 것이라 한다.

사진이 흐려 있음은 갑자기 내린 소낙비 때문이다.
반월루는 '72년 지었다하며, 부여 읍내를 두루 조망할 있는 명당 위치에 있다.
반월루는 서문매표소에서 출발하지 않아도 가는 길 왼쪽언덕위에 있어
표지판을 잘 보면 둘러볼 수 있다.

사자루에서 내려와 고란사로 가는 길 왼쪽으로 가파른 바위위에 있는 정자가 백화정이다
백마강을 시원하게 내려볼수 잇는 지형에 위치하고 있으며,
일제시대인 1929년 '부풍시사'라는 시모임에서 건립하였고,
이 백화정바로 아래 중턱이 슬픈 역사를 남긴 낙화암이다.


고란사는 학교시절 역사를 배울 때
왠지 모르게 슬프고 애틋한 스토리를 지닌 절집으로 기억되어 왔으며
금번 답사시 가장 둘러보고싶은 장소로 새김하였다.
고란사는 백마강 절벽자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백제멸망시 낙화암에서 떨어져 죽은 백제여인들의 원혼을
달래기위해 후대인 고려시대에 건립되었으며,
절 오른쪽 뒤편의 고란초와 돌틈으로 흐르는 고란수로 유명하다
고란초는 이끼류 식물로 관람객이 볼 수 있도록 진열되어 있었으며,
고란수는 그 수량이 적어서인지 1미터쯤 되는 쪽자로 마실수 있었다
물맛은 표현력이 모자라 사양하겠고, 한 여름의 갈증탓 이어서인지 시원하였다.

고란사선착장에서 구드래선착장까지 10분간 운행되는황포돛대로 성인 편도 3,500원이다.
탑승한 노인여행객이 국가가 운영하는 줄 알고 요금에 대해 불평하기도 하였지만
본건 배를 탑승하지 않으면 전설적,역사적 장소인 낙화암을 가까이에서 볼수 없어
여행을 즐기는 자의 자업자수라 생각되었다
백마강의 너비는 밤에 본 프랑스 세느강보다 더 넓어 보였다.

황포돛대 안이다. 배는 고란사 선착장에 출발하여 구드래선착장까지 운행하여
실지운행거리가 짧아서 인지 선장이 부소산을 멀리서 바라볼수 있도록 유턴하는 등
관람객을 위해 신경써주었고
낙화암 바위를 지나칠때는 저 붉은 글씨가 낙화암이라고 안내방송도 해주었다.

숲속으로 빨간 선명한 음각글자(려 송시열선생 친필)가 낙화암이다

구드레 선착장은 일정한 출발시간이 없이 손님이 몇 명 정도 모이면 떠난다.
선착장앞 주차장옆에는다소 넓직한 야외조각공원이 있어 무료 감상할 수 있다.
구드래선착장을 나오면 Locaction(입지)답게 관광객을 위한 음식점이 즐비하다.
저녁은 성왕 동상이 있는 소방서 로타리의
"청기와 명가 감자탕"집에서 뼈다구해장국으로 했는데 맛이 있었다.
서울로 올라올 때는 예약된 버스보다 먼저 귀경하는 버스의 자리가 비는 바람에
40분을 당겨 탈 수 있는 행운이 있었다.
짧은 기간동안의 다방면 검색과 준비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불가의 삼법인중 하나가 제행무상이다.
사라져간 역사현장의 일부를 둘러볼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어 시원한 마음이다.
하루에 백제역사를 어찌 다 보았겠느냐고 핀잔하면
" 바닷물이 짠지 안짠지는 다아 먹어볼 필요가 없지 않느냐"고 이유을 달고 싶다.
첫댓글 ㅎㅎ...잘 보았습니다. 시간 내어서 함 다녀 와야 겠슴다...^(^
답사지는 문박사의 마라톤 실력이면 반나절에 충분히 둘러볼 수 있을 정도로 오밀조밀하게 근접거리에 있습니다. 사람이 붐비는 활기찬 장소는 아니지만, 템플 스테이처럼 잠시 바쁜 마음을 쉬어갈 수 있는 그런 곳이라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