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십자가 아래 있던 군병들
본문 요한복음 19:23-24
병원과 약국의 마크는 세계 어디서나 십자가가 공통입니다. 병원은 아픈 사람이 치료받는 곳입니다. 그런데 병원에서 새로운 병을 얻게 되었다면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실제 28세 된 청년이 뇌경색으로 큰 병원 집중치료실에서 치료하면서 혈관 주사를 맞은 곳의 살이 썩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병원에 치료하러 왔다가 병을 얻은 것입니다. 마치 죄를 용서받기 위해 병원 십자가보다 더 강한 십자가가 있는 교회에 나와서 더 큰 죄를 얻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십자가 아래서 구원 얻는 대신 더 큰 죄를 얻는 일이 일어날 수 있음을 배웁니다. 어쩌다 그런 불행이 일어날까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함이 좋을까요?
십자가에 대한 두 가지 반응이 있습니다
십자가는 생명과 구원의 상징입니다. 십자가 아래 있던 네 명의 여인에 대한 말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본문에 십자가 아래에 또 다른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로마의 군인들입니다. 요한복음의 저자는 네 명의 여인과 네 명의 로마 군인을 대조하고 있습니다. 여인들은 예수님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며 슬퍼했으나 로마 군인들은 예수님의 고통과 몸부림에 관심이 없습니다. 이들은 생명의 상징인 십자가 아래서 예수님의 옷을 제비뽑으며 죽음의 노름을 합니다. 이들은 마침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을 박습니다.
예수님 십자가에 대한 반응은 어느 시대나 두 가지입니다. 십자가를 죄 사함과 구원의 증표로 삼는 사람이 있고, 로마 군병들처럼 십자가에 대해 무관심하고 조롱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십자가에 대하여 어떤 태도를 보이느냐는 정말 중요합니다. 삶과 죽음이 결정되고, 천국과 지옥이 갈리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하나님께 불평하다가 불뱀에 물려 온몸에 독이 퍼져 죽어갔습니다. 이때 모세는 하나님께 부르짖어 백성들을 구원해 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불뱀과 같은 모양의 뱀을 구리로 만들어 높은 장대에 매달아 놓으라고 했습니다. 뱀에게 물린 자들이 놋뱀을 쳐다보면 생명을 얻을 거라고 했습니다. 이때에도 두 가지 반응이 있었습니다. 장대에 달린 놋뱀을 보는 사람과 보지 않은 사람들로 나뉘었습니다.
사도 요한은 이 사건을 예수님의 십자가와 연관하여 설명했습니다. 요3:14 “모세가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는 뱀을 쳐다보는 자가 생명을 얻듯이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실 예수님을 믿으면 살게 될 것이란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요3:18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라고 했습니다. 고전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여러분은 십자가를 어떻게 여기고 있습니까? 군병들처럼 무관심한가, 아니면 여인들처럼 진실한 마음으로 그 앞에서 서는가요? 십자가는 구원의 상징이며 타락한 인류를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게 함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십자가 아래서도 구원받지 못했습니다
오늘 말씀 속에서 십자가 아래 있어도 구원을 받을 수 없음을 배웁니다. 로마 군병들은 십자가 밑에 있었으나 구원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누구보다도 십자가에 가까이 머물러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매달려 있는 장면과 십자가에서 하신 일곱 마디 말씀을 들었고 회개한 강도에게 낙원을 허락한 일도 들었습니다. 군인들은 직접 십자가를 만져 보았고, 십자가에 일어난 모든 일들을 목격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는 그들에게 구원이 되지 못했습니다. 도리어 저주와 심판의 증거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십자가를 믿음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십자가 아래 있으면서도 십자가에서 매달려 죽으신 예수님이 자기들의 죄 때문에 죽은 것임을 믿지 않았습니다. 자신들 곁에서 일어난 일을 보았지만, 자신들을 위한 일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일은 오늘에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교회당에 몸은 와 있는데,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지 않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음이 나를 위한 죽음으로 받지 않으면 로마 군병과 다를 바 없습니다. 십자가가 걸려 있는 예배당에 머물러 있으면서도 십자가를 믿지 못하면 구원은 없습니다. 십자가를 믿지 않으면 교회에서 살고 있어도 소용없습니다. 십자가를 목에 걸고 다닌다고 해도 구원 얻을 수 없습니다.
나는 과연 구원받은 자가 맞을까요?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구원을 이루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구원에 대한 확신이 없이 살라는 뜻이 아니라, 겸손하게 나를 살피고, 나를 위해서 피 흘려 죽으신 예수님과 나 자신과 연결되어 있는지를 생각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는 자에게만 구원이 됩니다.
십자가는 이익의 재료가 아닙니다
십자가는 이익의 재료가 될 수 없습니다. 로마 군인들은 십자가 밑에 머물며 이익 얻을 기회로 삼았습니다. 피를 흘리며 손발에 박힌 못에 살이 처지고 뼈가 부스러지는 처절한 고통으로 몸부림하는 십자가 밑에서 예수님의 옷을 제비 뽑아 자기 소유로 삼으려는 행동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옷값은 얼마 되지 않을 테지만 작은 이익을 위하여 무자비한 행동을 합니다.
오늘에도 십자가를 이익의 재료로 삼으려는 그릇된 자들이 있습니다. 교인들은 예전처럼 개척교회를 선택하지 않습니다. 자기희생이 많아질 것이란 생각 때문입니다. 선거를 앞두고 표를 얻기 위해 교회를 선택하거나 장사하는 사람이 고객을 더 얻기 위해 교회를 이용하기도 합니다. 바울은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삼는 자들에 대해 경고했습니다. 딤전5:6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버려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 교회를 이익의 재료로 삼다 보면 다툼이 일어납니다. 교회 분쟁의 문제는 대부분 재산 때문에 일어납니다.
네팔에서 온 선교 편지를 읽어 보았습니다. 선교사님은 교회 잘 나오던 사람이 있어 기뻤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자신이 한국에 가는 길을 위해 도움을 달라고 하더랍니다. 또 다른 교회 장로는 자기 손에 교인 20명이 있으니 자기를 사역자로 삼아주면 다 데려오겠다고 하더랍니다. 그리고 한 가족은 이 교회로 오고 싶은데 지금 다니는 교회에 빚이 있어서 못 나오니 갚아달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십자가를 믿음의 대상으로 삼는가, 아니면 이익의 도구로 여기고 있습니까? 십자가는 자기 욕심을 이루는 도구가 될 수 없습니다. 십자가는 믿음의 대상으로만 삼아야 합니다. 십자가를 믿음의 대상으로 삼을 때 구원과 생명을 얻게 될 것이며, 천국 문을 열며 하늘의 영광을 얻게 될 것입니다. 십자가를 믿음으로 굳게 붙잡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결론
병원에 치료받으러 갔다가 병을 얻는 것처럼, 교회에 와서도 구원대신 심판을 받을 수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교회 안에 머물며 십자가 가까이 있으면서도 구원을 얻지 못하는 그런 성도들이 한 명도 없기를 바랍니다. 십자가에서 죄 사함과 생명을 얻게 됨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십자가가 나의 소망이며, 나의 생명이며, 나의 구원의 증거임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