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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5년 3월 5일 수요일
[(자) 재의 수요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 전례
‘재의 수요일’은 사순 시기를 시작하는 날이다. 교회가 이날 참회의 상징으로 재를 축복하여 신자들의 머리에 얹는 예식을 거행하는 데에서 ‘재의 수요일’이라는 명칭이 생겨났다. 이 재의 예식에서는 지난해 ‘주님 수난 성지 주일’에 축복한 나뭇가지를 태워 만든 재를 신자들의 이마나 머리에 얹음으로써, ‘사람은 흙에서 왔고 다시 흙으로 돌아간다.’(창세 3,19 참조)라는 가르침을 깨닫게 해 준다. 재의 수요일에는 단식재와 금육재를 함께 지킨다.
오늘은 재의 수요일입니다. “사람아,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여라.”라는 재의 예식 말씀을 묵상하며 주님께 간절히 청합시다. “저희가 모르고 죄를 지었을지라도 뉘우치며 살고자 하오니, 갑자기 죽음을 맞지 않게 하시고, 회개할 시간을 주소서.”
말씀의 초대
요엘 예언자는, 이제라도 단식하고 울고 슬퍼하면서 마음을 다하여 주님께 돌아오라고 한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과 화해하라며 지금이 바로 매우 은혜로운 때이고 구원의 날이라고 한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자선을 베풀 때, 기도할 때, 단식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하지 말라고 하시며 사람들이 아니라 숨어 계신 아버지께 보이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너희는 옷이 아니라 너희 마음을 찢어라.>
▥ 요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2,12-18
12 주님의 말씀이다.
이제라도 너희는 단식하고 울고 슬퍼하면서
마음을 다하여 나에게 돌아오너라.
13 옷이 아니라 너희 마음을 찢어라. 주 너희 하느님에게 돌아오너라.
그는 너그럽고 자비로운 이, 분노에 더디고 자애가 큰 이
재앙을 내리다가도 후회하는 이다.
14 그가 다시 후회하여 그 뒤에 복을 남겨 줄지
주 너희 하느님에게 바칠 곡식 제물과 제주를 남겨 줄지 누가 아느냐?
15 너희는 시온에서 뿔 나팔을 불어 단식을 선포하고 거룩한 집회를 소집하여라.
16 백성을 모으고 회중을 거룩하게 하여라.
원로들을 불러 모으고 아이들과 젖먹이들까지 모아라.
신랑은 신방에서 나오고 신부도 그 방에서 나오게 하여라.
17 주님을 섬기는 사제들은 성전 현관과 제단 사이에서 울며 아뢰어라.
“주님, 당신 백성에게 동정을 베풀어 주십시오.
당신의 소유를 우셋거리로, 민족들에게 이야깃거리로 넘기지 마십시오.
민족들이 서로 ‘저들의 하느님이 어디 있느냐?’ 하고 말해서야 어찌 되겠습니까?”
18 주님께서는 당신 땅에 열정을 품으시고 당신 백성을 불쌍히 여기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하느님과 화해하십시오. 지금이 바로 매우 은혜로운 때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2서 말씀입니다. 5,20─6,2
형제 여러분, 20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절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권고하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여러분에게 빕니다. 하느님과 화해하십시오.
21 하느님께서는 죄를 모르시는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하여 죄로 만드시어,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의로움이 되게 하셨습니다.
6,1 우리는 하느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으로서 권고합니다.
하느님의 은총을 헛되이 받는 일이 없게 하십시오.
2 하느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은혜로운 때에 내가 너의 말을 듣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와주었다.”
지금이 바로 매우 은혜로운 때입니다. 지금이 바로 구원의 날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1-6.16-18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 “너희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의로운 일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그러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에게서 상을 받지 못한다.
2 그러므로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위선자들이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듯이,
스스로 나팔을 불지 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
3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라.
4 그렇게 하여 네 자선을 숨겨 두어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5 너희는 기도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려고
회당과 한길 모퉁이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
6 너는 기도할 때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은 다음,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16 너희는 단식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침통한 표정을 짓지 마라.
그들은 단식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려고 얼굴을 찌푸린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
17 너는 단식할 때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어라.
18 그리하여 네가 단식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지 말고,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보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사순 시기를 시작하는 오늘, 복음은 자선과 기도와 단식을 실천하며 이 시기를 잘 계획하도록 초대합니다. 특히 자선과 기도와 단식, 이 세 가지를 실천하려면 무엇보다도 숨은 일도 보시는 분께서 갚아 주실 것 (마태 6,6 참조)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이를 위하여 구체적으로 자선을 베풀 때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고, 기도할 때는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아야 하며, 단식할 때는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어야 합니다. 자신이 자선, 기도, 단식을 하고 있음을 사람들에게 드러내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하느님과 내밀한 인격적 관계를 맺는 데 방해되는 요소들을 피하려는 노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하느님과 맺는 관계에 집중하려는 노력의 다른 표현이기도 합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는 하느님과 맺는 인격적 관계를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인간은 자신의 능력으로 인격적인 하느님의 존재를 깨달을 수 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인간이 당신과 친밀해지도록 당신 자신을 인간에게 계시하시고, 그 계시를 신앙 안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은총을 주시고자 하셨다”(35항). 이 같은 교회의 가르침 안에서 사순 시기에 우리는, 숨은 일도 보시는 아버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은총을 믿고 하느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도록 애쓰는 신앙의 여정을 걸어야 합니다. 이 과정이 너무 어렵게 느껴진다면, 예수님께서 자주 산 위에 혼자 올라가셨던 것을 떠올려 보면 좋겠습니다. 하느님과 함께 머무는 시간은 그 자체로 그분과 인격적 관계를 맺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한창현 모세 신부)
언젠가 반드시 우리 모두 흙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기원전 5세기경, 남유다는 휘황찬란한 예루살렘 성전도 재건하고, 높고 든든한 성벽도 쌓아 올리며 정치적, 문화적, 종교적 차원에서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고 있었습니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그런 것 같습니다. 잘 나갈 때 더 겸손하고, 더 노력해야 하는데, 매사가 안정적이다 보면 즉시 나태해지고 안주하려는 경향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이런 순간에 등장한 예언자가 있었으니 요엘이었습니다. 그는 경신례에도 밝고 언어 구사가 탁월한 문학가였습니다. 그는 옛 예언자들의 가르침을 적극적으로 인용하며 주님의 날에 이루어질 심판과 구원을 힘차게 선포했습니다.
별 탈 없이 잘 지내고 있는데, 요엘 예언자가 불쑥 등장해서 강력한 경고성 메시지를 남발하니, 군중의 반발이 만만치 않았지만, 그는 조금도 흔들림 없이 가야할 길을 걸어가며, 외쳐야 할 말을 가감 없이 외쳤습니다.
예언자로서의 삶은 늘 외롭고 고달프고 황량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에게서 달콤한 하느님 위로의 말을 기대했을 것입니다. 격려나 칭찬, 해방의 기쁜 소식을 기다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작 그의 입에서 흘러 나온 말은 섬뜩하기 그지 없는 메시지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에 대한 신랄한 고발과 강력한 경고, 공포로 가득한 멸망의 예고였습니다. 그러면서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가슴을 쥐어 뜯으면서 울부짖으라고 외쳤습니다.
“사제들아, 자루옷을 두르고 슬피 울어라. 제단의 봉사자들아, 울부짖어라. 내 하느님의 봉사자들아, 와서 자루옷을 두르고 밤을 새워라. 너희 하느님의 집에 곡식 제물과 제주가 떨어졌다.”(요엘 1,13)
그러나 요엘 예언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계속해서 코너로 몰아넣지만은 않습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진정성있는 회개와 참된 단식을 통해 하느님의 자비가 베풀어질 것임을 선포합니다.
“주님의 말씀이다. 이제라도, 너희는 단식하고 울고 슬퍼하면서, 마음을 다하여 나에게 돌아오너라. 옷이 아니라, 너희 마음을 찢어라. 주 너희 하느님에게 돌아오너라. 그는 너그럽고 자비로운 이, 분노에 더디고 자애가 큰 이, 재앙을 내리다가도 후회하는 이다.”(요엘 2,12-13)
요엘 예언자는 이스라엘에게 닥친 대재앙, 그로 인한 시련의 원인이 바로 자신의 죄와 부족함이라는 것을 인식하라고 가르칩니다. 또한 옷만 찢지 말고 마음을 찢어라고 강조합니다. 형식적이고 외적인 회개가 아니라 진정성 있는 내적 회개를 촉구합니다. 또한 그는 특정한 한 사람이나 한 집단의 회개가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 모두의 범국민적, 범국가적 회개를 요청했습니다.
또 다시 재의 수요일입니다. 재를 머리에 얹으며 생각해보니, 우리 모두는 영원하신 하느님 앞에, 너나 할 것 없이 손톱만한 도토리들입니다. 티격태격, 아옹다옹하면서 ‘내가 더 높네. 내가 더 크네. 내가 더 대단하네.’ 외치지만, 하느님 눈에는 모두가 그놈이 그놈입니다. 결국 우리 모두는 잠시 떠다니다가 하느님 자비의 품을 향해 사라질 한 줄기 연기일 따름입니다.
광대무변하시고 영원하신 주님,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무한하신 주님 앞에 우리는, 너무나 작고 미약한 존재라는 진리를 잊지않고 살아간다면, 우리 공동체의 삶이 한결 부드러워질 것입니다. 내가 선배인데, 내가 연장자인데, 내가 원장인데, 내가 회장인데, 하며 어깨에 힘줄 이유가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언제나 인간 존재의 영원한 결핍성과 티끌보다 작음을 잊지 않는다면, 서로를 향한 날카로운 시선도 조금은 부드러워 질 것입니다. 결국 우리에게 남는 것은 이웃을 향한 측은지심이요, 진한 동지의식일 것입니다.
재는 무엇을 상징합니까? 타고 남은 것, 아무것도 아닌 것, 무가치한 것, 허무한 것, 보잘것없는 것을 의미합니다. 재를 머리에 얹을 때 우리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외쳐야겠습니다.
“본래 저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였습니다. 먼지요, 티끌, 무(無)였습니다. 주님께서는 이토록 보잘것없는 제게 큰 은총을 베푸셔서 생명으로 불러주셨습니다. 오늘 지금 저는 여기 서 있지만, 주님의 흘러넘치는 자비가 아니라면, 단 한 순간도 스스로 설 수 없는 미약한 존재입니다. 과거에도 저는 흙이었지만, 지금도 흙과 다름없는 존재요, 언젠가 반드시 흙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잇몸 치료를 받았습니다. 작년 2월부터 했으니 1년이 되었습니다. 치료받으면서 늘 감사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마취’입니다. 만약에 마취가 없었다면 잇몸 치료 과정이 엄청난 ‘고통’의 시간이었을 겁니다. 저는 마취의 도움을 몇 번 받았습니다. 2012년 다리에 골절이 있었을 때도 척추 마취를 받고 수술받았습니다. 의학 분야에서 마취가 있을 때와 마취를 할 수 없을 때는 인류의 삶의 질에 엄청난 차이가 있었습니다. 마취의 고마움을 생각하며 예전에 읽었던 책이 떠오릅니다. 인류의 건강과 생명에 도움을 준 10가지 발명품입니다. 여러분도 ‘아!’ 하면서 수긍할 것입니다. 의학과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현대인들은 많은 혜택을 받고 있습니다. 삶의 질이 높아졌고, 수명도 늘었습니다.
마취제 (Anesthesia)’가 있습니다. 19세기 중반 에테르와 클로로포름 등의 마취제가 도입되면서 외과 수술이 혁신적으로 발전했습니다. 이는 극심한 통증을 동반하던 수술을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항생제 (Antibiotics)’가 있습니다. 1928년 알렉산더 플레밍이 페니실린을 발견하면서 감염성 질환 치료의 혁명을 가져왔습니다. 이후 다양한 항생제가 개발되면서 세균 감염으로 인한 사망률이 크게 줄었습니다. ‘백신 (Vaccines)’이 있습니다. 천연두, 홍역, 소아마비 등 치명적인 질병을 예방하는 백신의 개발은 인류의 건강을 지키는 데 필수적이었습니다. 에드워드 제너의 천연두 백신(1796년)이 그 시작이었고, 이후 다양한 백신이 개발되었습니다. 지난번 코로나 팬데믹도 백신이 개발되면서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X선 (X-ray)’이 있습니다. 1895년 빌헬름 뢴트겐이 X선을 발견하면서 내부 장기를 비침습적으로 볼 수 있는 혁신적인 기술이 생겼습니다. 이는 질병 진단과 치료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인슐린 (Insulin)’이 있습니다. 1921년 프레더릭 밴팅과 찰스 베스트가 인슐린을 발견하면서 당뇨병 환자들이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치약과 칫솔 (Toothpaste & Toothbrush)’이 있습니다. 구강 위생은 건강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특히 19세기 이후 치약과 칫솔이 대중화되면서 충치와 잇몸병 예방에 이바지했습니다. ‘페니실린 외 기타 항균 소독제 (Antiseptics & Disinfectants)’가 있습니다. 조지프 리스터가 1860년대에 소독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외과 수술에서 감염률이 급격히 감소했습니다. 이는 병원 위생과 수술 성공률을 크게 향상했습니다. ‘심장 박동기(Pacemaker)’가 있습니다. 1950년대에 개발된 심장 박동기는 부정맥 환자들의 생명을 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심장이 정상적으로 박동하도록 전기 신호를 보내는 기기입니다. ‘MRI (Magnetic Resonance Imaging, 자기공명영상)’가 있습니다. 1970년대에 개발된 MRI는 인체 내부를 정밀하게 스캔할 수 있는 기술로, 뇌졸중, 암, 신경계 질환 등의 진단과 치료에 필수적인 도구가 되었습니다. ‘정수기 및 상하수도 시스템 (Water Purification & Sanitation Systems)’이 있습니다. 깨끗한 물의 공급은 건강 유지에 필수적입니다. 정수기, 하수 처리 시스템, 염소 소독 기술 등의 발전으로 수인성 질병(콜레라, 장티푸스 등)의 발생이 크게 줄었습니다.
신앙생활에 도움을 주고, 위로를 주는 것들을 생각해 봅니다. 성사가 있습니다. 그중에서 성체성사는 신앙생활의 정점입니다. 그 밖에도 묵주, 십자가, 성경, 성가, 성수, 성모상, 초, 성지순례, 구유와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우리의 신앙을 풍요롭게 합니다. 오늘은 재의 수요일입니다. 오늘부터 교회는 ‘사순시기’를 시작합니다. 사순시기는 신앙인이 지난날의 잘못을 뉘우치고, 하느님께 돌아가는 회개의 시간입니다.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느끼는 은혜의 시간입니다. 교회는 사순시기를 지내면서 4가지를 실천할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희생입니다. 희생의 방식은 다양할 것입니다. 하고 싶은 것을 참는 것도 희생입니다. 먼저 손을 내미는 것도 희생입니다. 양보하는 것도 희생입니다. 신앙은 희생이라는 밭에서 피는 꽃입니다. 둘째는 기도입니다. 교회는 ‘십자가의 길’을 할 것을 권고합니다. 본당에서도 사순시기 금요일에는 십자가의 길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본당에서 마련한 사순 특강에 참여하는 것도 기도입니다. 셋째는 단식입니다. 단식하는 의미는 몸과 마음을 하느님께로 향하기 위해서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기보다는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하는 것입니다. 단식을 통해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신 주님의 수난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넷째는 자선입니다. 본당에서는 사순 저금통을 나누어 주기도 합니다. 선을 베풀면 좋은 일이 생긴다고 하였습니다.
2025년 사순시기를 시작하면서 나의 허물과 잘못을 정화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희생, 기도, 단식, 자선을 통해서 주님의 수난에 함께 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절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권고하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여러분에게 빕니다. 하느님과 화해하십시오.”
<하느님과 나와 벗>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라.
그렇게 하여 네 자선을 숨겨 두어라.”(마태 6,3-4)
“너는 기도할 때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은 다음,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마태 6,6)
“너는 단식할 때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어라.
그리하여 네가 단식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지 말고,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보여라.”(마태 6,17-18)
기도
하느님께로
자유
나를 떠나
하느님께 가다
하느님을 만나다
하느님을 만나는 나를 만나다
나를 만나시는 하느님을 만나다
나의 하느님과 하느님의 내가 만나다
하느님과 나 사이에
오직 하느님
오직 나
그밖에 아무도 없게
그리하여 오롯이 만날 수 있게
단식
나의 것으로부터
자유
나의 것을 치우고
나에게 가다
나를 만나다
나를 만나는 나를 만나다
하느님 품에서 나와 내가 만나다
나와 나 사이에
오직 하느님
오직 나
그밖에 아무도 없게
그리하여 오롯이 만날 수 있게
자선
나로부터
자유
나를 열어
벗에게 가다
벗을 만나다
벗을 만나는 나를 만나다
나를 만나는 벗을 만나다
하느님 품에서 벗과 내가 만나다
벗과 나 사이에
오직 하느님
오직 벗
오직 나
그밖에 아무도 없게
그리하여 오롯이 만날 수 있게
오늘의 성인
성 제라시모 (Gerasimus)
신분 : 수도원장
활동지역 : 예리코(Jericho)
활동연도 : +475년
같은이름 : 제라시무스, 게라시모, 게라시무스
성 게라시무스(또는 제라시모)는 소아시아의 고향을 떠나 사막의 은수자들을 찾아보기 위하여 이집트와 팔레스티나(Palestina)를 배회하다가 사해 근방에 정착하였다.
그러나 신학적으로 갈 길을 잃고 방황한 끝에 성 대 에우티미우스(Euthymius, 1월 20일)의 노선을 따르게 되면서 이 두 사람은 절친한 사이가 되었다.
455년경 그는 예리코 근방에 라우라(Laura)를 세우기 시작하여 많은 제자들을 길렀다.
그는 이곳에서 은수생활을 원하는 지원자들을 훈련하기 위하여 공동체를 이루는 수도원을 조직하였다.
그의 상징은 사자이다.
성 요한 요셉(십자가의)(John Joseph of the Cross)
신분 : 수사
활동연도 : 1654-1734년
같은이름 : 얀, 요세푸스, 요안네스, 요제프, 요한네스, 이반, 장, 쟝, 조반니, 조세푸스, 조세프, 조셉, 조안네스, 조제프, 조한네스, 존, 죤, 주세페, 쥬세페, 지오반니, 한스, 호세, 후안
십자가의 성 요한 요셉(Joannes Josephus a Cruce)은 이탈리아 나폴리(Napoli) 연안의 이스키아(Ischia) 섬에서 태어나 카롤루스 가에타누스(Carolus Gaetanus)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그의 부모는 교양 있는 모범적인 부부였다.
그들의 집은 거의 항상 가난한 사람들에게 열려있었는데, 어머니인 마우라 부인은 음식을 미리 준비해 놓고 걸인들에게 나누어주곤 하였다.
이 부부의 일곱 아들 가운데 다섯 명이 수도원에 들어갔는데, 그들 중에서도 카롤루스가 가장 뛰어났다.
카롤루스는 에스파냐 출신의 작은 형제회 회원들이 지키는 엄격한 청빈에 큰 감명을 받고 수도원에 입회하였다.
불과 16세의 어린 나이로 지원기를 시작했으나 그의 절제나 신심은 훌륭한 수도자의 모범으로 인정되었다.
그는 서원하면서 십자가의 요한 요셉이라는 수도명을 받았다. 그는 천사적 사부인 성 프란치스코(Franciscus, 10월 4일)를 본받고자 부제로 남아 있기를 간절히 바랐으나 장상들의 결정에 따라 사제품을 받았다.
한없이 순결한 마음을 지녔던 그는 악을 모르고 자랐기 때문에 특별한 통찰력과 영적 지혜가 충만하여 고해자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그즈음에 그는 수도원 가까운 곳에 은둔소를 세울 계획을 장상에게 말씀드려 허락을 받았다.
그러나 하느님은 그에게 수련장이란 중책을 맡겼다.
그는 성 프란치스코 당시의 엄격한 규율을 수련자들에게 적용시킬 허가를 받고서야 그 직책을 맡았다.
그는 가끔 이미 세상을 떠난 형제들의 환시를 보았는데, 그때부터 이상한 기적까지 행하곤 하였다.
그는 치유의 은사로 병을 고치는가 하면, 음식을 많게 하는 기적까지도 베풀었다.
그는 자신이 죽으리라고 예언했던 산타 루치아(Santa Lucia)에서 운명하였다.
그는 1789년 복자품에 올랐고, 1839년 교황 그레고리우스 16세(Gregorius XVI)에 의해 시성되었다.
오락
요즈음은 노는 것도 일처럼 한다.
주말 내내 볼거리, 놀거리, 먹을거리를 찾아 다니느라 지쳐서 정작 월요일에는 쉬고 싶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휴식은 피곤한 몸과 마음을 회복시켜서 일상 업무로 돌아갔을 때 다시 활기차게 일하도록 하기 위한 것인데 그 본래의 목적을 잊는 것이다.
적당한 휴식은 반드시 필요하다. 휴식이 없다면 권태에 빠지고 생활에 활력을 잃게 된다.
믿기 어렵겠지만 십자가의 성 요셉은 오락의 챔피언이었다.
나폴리에서 좀 떨어진 이스키아라는 섬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남다르게 경건한 생활을 했고,
16살의 어린 나이에 프란치스코회 수사가 되었다.
그는 새로 들어온 다른 수사들에게 자신과 똑같이 엄격하고 경건하게 살 것을 요구했다.
후에 그는 수도원 건물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조용한 은둔처를 짓고 거기에서 더욱더 강하게 수련을 했다.
그러나 요셉이 수도원의 규칙만 강요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수련자들이 규칙적인 오락 시간을 갖도록 특별한 관심을 쏟았다.
오락은 사치가 아니라 정신 건강에 꼭 필요한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올 봄에는 재미를 좇아서 시간을 힘들게 소비하지 말고, 단순히 즐기는 시간을 가져 보라.
풍선껌을 불어 본다든지, 아이스크림을 먹는다든지, 재미있는 노래를 부른다든지,
아기에게 입을 맞춰 준다든지, 개를 데리고 산책을 하며 지내 보자. 그리고 자연 속에서 하느님을 찬미하자.
나는 시간을 현명하게 사용하는가?
시간을 낭비했을 때 죄책감을 느끼는가? 내 몸과 영혼을 위해 여가 시간을 사용하겠다.
성 비르질리오 (Virgilius)
활동년도 : +610년
신분 : 주교
지역 : 아를(Arles)
같은 이름 : 버질, 비르길리오, 비르길리우스, 비르질, 비르질리우스
프랑스 남서부 가스코뉴(Gascogne) 태생인 성 비르길리우스(또는 비르질리오)는 생오노라(Saint-Honorat) 섬의 수도원에서 교육을 받은 후 그곳의 수도자가 되었다. 그 후 그는 그 수도원의 원장으로 있던 중에 아를의 대주교로 간택되었고, 교황 성 대 그레고리우스 1세(Gregorius I, 9월 3일)로부터 팔리움을 받았으며, 힐데베르트 2세(Childebert II) 왕의 교황대사로 활약하였다. 지극히 거룩했으며 사도적 열성에 불탔던 그는 성 베다(Beda)에 의하면 영국 선교와도 무관하지 않았다. 또 그에게는 기적을 행하는 능력과 더불어 치유의 은사가 있었다. 그가 뱀에 물려 죽어가는 사람들을 구한 것은 아를 지방의 유명한 전설이 되었다. 이 때문에 아를 주민들은 그가 죽지 않고 살아서 그들과 함께 산다고 믿게 되었다.
성 피란 (Piran)
활동년도 : +5/6세기경.
신분 : 수도승
지역 : 콘월(Cornwall)
같은 이름 : 삐라노, 삐라누스, 삐란, 삐에란, 피라노, 피라누스, 피에란
성 피란의 전기는 거의 알려진 것이 없다. 다만 그는 영국 잉글랜드(England) 남서부 콘월(Cornwall)의 패드스토(Padstow) 근처에서 은수자로 살았고 선교의 중심지를 페란자불로에(Perranzabuloe)에 둔 것은 확실하다. 그 지방에는 그의 이름을 가진 성당들이 여럿 있다. 그리고 그는 그 지방 주석 광산 광부들의 수호성인으로서 공경을 받고 있다. 선으로써 악을 이긴 그리스도인의 신앙을 상징하는 검은 색 바탕의 흰 십자가는 콘월의 깃발로 성 피란의 십자가로 알려져 있다. 그는 피에란(Perran) 또는 피라누스(Piranus)로도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