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시카고》에 출연하는 가수 인순이(50)는 기자간담회 시간에 약속보다 70분 늦었다. 6일 오후 서울 국립극장.
반짝이가 붙은 검은 옷을 입고 나타난 그는 넙죽 허리를 굽혔다. 8일 새 음반 발매를 앞두고 신곡을 홍보하는 무대에 올랐다가
허겁지겁 달려온 길이었다.
경직된 분위기는 금방 풀렸고 인순이는 웃는 얼굴로 "요즘 기분이 너무 좋다"고 말했다. 음반은 5년 만이고 뮤지컬 출연은 9년
만이다. 그는 "내게 뮤지컬은 《시카고》 한편뿐"이라며 "1920년대 미국 시카고를 배경으로 하는, 어둡고 범죄가 난무하지만
아름답고 강렬한 작품"이라고 했다.
신시컴퍼니가 제작하는 《시카고》는 의상도 무대도 온통 블랙(검은색)이다. 주인공은 살인을 저지르고 여성 교도소에 수감 중인
벨마 켈리(인순이·최정원)와 록시 하트(배해선·옥주현·고명석). 빛이라곤 없는 그 밑바닥에서도 그들은 스타 배우를 꿈꾼다.
돈을 밝히는 변호사 빌리 플린(허준호)의 능청에 희망을 걸 만큼 불쌍한 신세지만 무대언어는 희극적이다.
- 《시카고》에 출연하는 인순이는“최정원씨와는 다른 에너지의 벨마를 보여줄 것” 이라고 했다./신시컴퍼니 제공
인순이는 2000~2001년에도 이 뮤지컬에서 벨마를 맡았다. 그는 "감옥 안에서 벨마는 '짱'이고 강렬한 에너지를 뿜어낸다"며
"이번엔 '나쁜 벨마'를 목표로 정했다"고 했다. '나쁜 벨마'라니? "초연 때 식구들(동료 배우들)이 나를 '착한 벨마'라고 불렀어요.
강해야 하는데 약하다는 거죠. 연출자는 '남편이랑 싸우듯이 해라' '애 야단치듯이 해라' 주문을 하는데 해본 적이 없으니 당황
스러웠죠. 이젠 알 것 같아요." 15세 된 딸이 사춘기라서 종종 다툰다고 했다.
뮤지컬에 대해 인순이는 "팬에게 선물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30년씩 나를 보고 있는 팬들에게 인순이의 다른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며 "재즈 공부하고 춤이랑 창(唱) 배우는 것도 같은 이유"라고 했다.
인순이는 승부욕이 강하다. "인생으로서도 가수로서도 아직 전성기를 못 만난 것 같다"고 했다. 《시카고》에서 가장 좋아하는
삽입곡은 벨마와 록시가 함께 부르는 《마이 오운 베스트 프렌드(My own best friend)》.
자신들밖에 믿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을 깨닫는 노래다. "저도 그래요. 인생이 학교라면 1등, 게임이라면 우승을 바라죠.
내가 나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책임져야 하잖아요."
나이를 묻자 인순이는 "건방진 얘기 하나 할게요"라고 운을 뗀 뒤 "나이 하나도 안 먹은 것 같아요" 했다.
"난 여가수잖아요. 화려하고 섹시해야죠. 표가 잘 안 나 그렇지, 노력하고 있습니다. (웃음) 할머니가 돼도 난 '여자'이고 싶어요."
▶6월 6~29일 성남아트센터. 1544-15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