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작가가
한글로 쓴 소설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어.
기쁜일이지.
스웨덴 한림원의 선정 이유를 이렇게 밝혔어.
"for her intense poetic prose that confronts historical traumas and exposes the fragility of human life"
“역사적 트라우마를 직시하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강렬한 시적 산문"
독서클럽의 제일 웃어르신이
금요일 아침 6시 49분에
"속보입니다...."
카톡 소리와 함께, 소식을 접했어.
업무를 막 시작하려던 참이었지
그리고, 짧은 시간
작가와 함께 했던 시간을 추억한 후,
나는 이렇게 반응했지.
그 시간이 아침 8시 16분이었어.
소식을 듣고 접했던 작품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의 작품은 늘
어둡고
우울하고
뿌였고
마음을 무겁게 했습니다.
그녀의 태생, 가족, 환경이
작품의 근간을 이룬것이겠지요.
무엇보다도 시인으로
작품 세계를 시작한 것이
소설에도 지대한 영향을
주었을 것이 자명하구요.
그녀의 작품을
단순 감상용이 아닌,
작품의 탄생배경을
이해하고 성찰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래봅니다.
물론 어르신의 속보를 읽자마자
나의 감정을 큼직한 이모티콘으로도 올렸었고.
작가의 이름은 너무도 친근하고
작품을 원작 그대로 접하는
이런 세상이 오기도 하는구나 하는 생각.
더 가까이 다가서려는
지구촌의 어떤 사람은
한국어를 공부할 수 밖에 없고,
번역된 노인과 바다를 읽는
나를 이해할 수 있을까?
토요일 아침 8시26분, 그 어르신이 또 다른 소식을 카톡에 올리셨어.
한국계 미국 여류작가 김주혜
미국 톨스토이 문학상 수상 !!
the beast of a little land
작은 땅의 야수들
일제강점기때 폭정에 맞서는
호랑이 이야기
상금을 호랑이 보호기금에 기증
*
지금 월요일 아침이야.
소식을 듣고 사흘이 지났어.
그동안 적지 않은 뉴스를 접했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느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많이 불편했어.
어떤 뉴스는 참을 수 없어서,
부러 댓들을 남기기도 했어.
천박한 글을 쓸 수 밖에 없는
기자가 불쌍하게 느껴졌어.
수상에 대한 논평다운 논평을
아직은 접하지 못했어.
왜 일까? 하는 생각은
너무 자연스러운 것이었어.
historical traumas
역사적 상처로만 번역하기는 뭔가 모자라.
trauma의 사전적 의미를 모두 합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해
1.외상(外傷)
2.정신적 충격
3.외상성 상해
4.그 체험
5.(일반적으로) 충격
이 트라우마를 함께 전해야 하는데,
불편하거든. 많이,
참 많이 불편한 사람들이
스피커의 위치에 있어.
지금까지 뱉어낸 말들이 있으니
그녀를, 그녀가 소설에서 이야기하는
바로 그 내용이 불편할거야.
거기에 더해서,
나는 이런 생각도 했어.
"작은 땅의 야수들"
이 작품도 불편할 사람들이
어쩌면 모두, 그 위치에 있겠구나.
불편한데,
뉴스로 다루기는 해야하고,
나름의 고민을 했으리라고 이해했어.
이해해주면 안되는데.
일부는 폄훼하는 글을 애써 올리고,
어떤 이들은 이를 받아서 전하고
다른 뉴스들은
돈 냄새로 포장하는거야.
모두에게 관심있는 것은 "돈"이니까.
외신을 타고 전해지는 것이 있을까?
그녀의 문체, 표현방법, 그녀의 천재성
등을 다루는 것이 대부분이었어.
너무도 당연하게
작가의 글을 충분히 이해하려면
한림원의 지적을 알아야만 되잖아
트라우마를, 우리 일부는 너무 잘 알아
우리의 나머지는? 글쎄?
확실한 것은 스피커에서 끊임없이
울리는 소리는
그런 트라우마는 없었거나
만들어졌다고 하지
아직 논란이 끝나지 않았다고
표현의 자유라고
이익을 위해서
그렇게 이야기하는 사람은
이해할 수 있어
하지만
자기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지껄이는 사람은
정말 가여워!
*
그 일 후, 20년
지금부터 24년 전
노벨은 이 땅에 기회를 줬어
그러나, 그때나 지금이나
차이는 없는 것 같아
바라기는, 언젠가
고립되고, 짓밟히고, 훼손된
광주를, 가벼운 발걸음들이
지나가는 것을 보기를 원해
억지스럽지 않게
두렵기는, 앞으로도
답안지에 적을 단어만 살리고
죽은 동호는 땅에 묻어버리는
그럴까봐, 두려워
잠자는 노벨이
취한 우리를 깨우고 있는데
일어나!
소년이 오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