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내돈내산이 무슨 말인지 알지."
"알~지.."
"어버이날 아들들이 카네이션 안 사줘서 엄마가 내돈내산으로 샀네.
괜히 현석이(작은 아들) 전화 왔는데.. 아들놈들이 어버이날 꽃도 안 사줬다고 투정 부렸네.
이렇게 엄마 돈으로 사면될 것을.. 꽃 예쁘지? "
". . ."
내돈내산(내 돈 주고 내가 산 물건). 어버이날 카네이션을 내돈내산 했다.
생각해 보니 유치하고 부끄럽다.
별로 서러울 것도 없는데... '으 앙' 이모티콘까지 첨부해서 단톡방에 올리다니...
카네이션이 뭔 대수라고? 아들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울 엄마가 갱년기인가? 왜 그러지?" 이랬을까?
아들 둘 엄마라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직업군인인 둘째 아들은 나라를 지키느라 볼 수 없지만 어버이날 아침에 전화는 했다.
"감사합니다" 하는 말에 부모로서 뿌듯함과 대견함이 느껴진다.
큰 아들은 어버이날 저녁에야 얼굴을 볼 수 있었는데.. 카네이션을 사 오지 않았다.
'카네이션 사뒀나? 어버이날인데...'
넌지시 문자를 보내 꽃 한 송이 사다 뒀기를 기대했었는데..
카네이션도 없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괘씸하다. 그래도 어버이날인데.. 내가 그렇게 힌트를 줬건만.. (엄마도 꽃 받고 싶다고!)
서운하다. 자식이라서 그런가?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것일까?
대단한 것 바란 것도 아니고 꽃 한 송이 받기를 원했는데.
누구는 딸이 커피쿠폰을 보냈느니, 누구는 기프트카드를 받았느니 자랑을 하는데..
나는 아무 할 말이 없다. 속만 부글부글.
우리 자식 놈들은 뭐지? 부모한테 고마운 마음이 없나? 그만큼 키워줬으면 대단하지 않아도
어버이날 성의표시는 하는 것이 맞지 않나? 내가 자식을 잘못 키웠나?
별별 생각이 다 들고 서운한 마음은 쌓이고..
한참 속을 끓이다가 서운한 마음을 접었다. 모 신부님의 강연말씀이 생각 나서다.
어머니들이 옆집 자식자랑하는 거에 속상해서 (남의 자식과 내 자식을 비교하면서)
이 놈이 전화오나? 저 놈이 밥을 사주려나? 속으로 기다리다가
화를 내고 서운한 마음을 갖는 것은 잘못하는 거라고..
먹고 싶은 음식이 있으면 자식이 사주려나 기대하지 말고 내 돈으로 내가 사 먹으면 된다고..
맞는 말이다.
내 돈으로 먹고 싶은 거 사 먹고 예쁜 꽃도 사면되지..
굳이 자식에게 기대했다가 실망하고 서운하고 괘씸한 마음 가질 일은 아니다.
앞으로는 뭐든 내돈내산 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자식에게 서운하다 섭섭하다 투정 부리지도 않을 것이다.
아들 둘이면 목메달이라는 우스갯소리를 많이 들었다.
"아들만 둘이라서 어쩌나? 제일 불쌍한 엄마네.. (걱정과 안타까움이 반반 섞였다)
계면쩍게 웃고 넘겼지만.. 딸이 없으니 가끔 아쉽고 섭섭한 마음도 있다.
이제 와서 어쩌겠나? 팔자에 아들밖에 없는 것을..
2005년 5월 8일 어버이날 큰 아들 녀석이 써 준 편지다.
20년이 다 되어가는 데 앨범에 고이 보관하고 있는.. 아주 아주 소중한 편지.
섭섭한 마음이 위로가 된다.
큰아들이 초등학생 때 어버이날 써 준 편지
사랑하는 어머니께
어머니 저 호석이에요. 안녕하시죠? 요즘 회사 일 힘드시죠?
엄마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엄마 힘내세요. 우리가 있어요.~~
이 노래 집에 가서 불러드릴게요. 힘내시고요.
저를 낳아주셔서 감사해요. 3살 때 폐렴 걸려서 병원 5Km인데 거기까지 업고 달려가 주셔서 감사하고요.
그때 엄마 달리기가 자동차 속도보다 빠른 것 같았어요.
여자는 약해도 어머니는 강하다.라는 말이 있듯이 그 말이 사실인 것 같아요.
어머니 감사하고요. 사랑합니다. 이제 공부도 열심히 할게요.
2005. 5. 8 사랑하는 아들 호석 올림
너무 귀엽고 사랑스럽고 고마워서 눈물이 날 것 같다.
그때 아들 둘이 내게 얼마나 큰 기쁨과 사랑을 줬는지 기억이 난다. 참 행복했던 시절이다.
그만큼 많은 사랑을 받았으면 되었지..
이 나이에 카네이션 안 사줬다고 삐지다니.. 유치하게!
올해 어버이날 카네이션은 내돈내산 했다.
내 맘에 쏙 드는 예쁜 카네이션을 샀으니 잘 된 일이다.
자식에게 잠시 서운했던 마음도 사라졌다.
오늘은 큰 아들 녀석이 미안했던지.. 쿠폰 있다며 아.아(아이스아메리카노커피) 주문한다고
내게 커피마실 거냐고 묻는다.
"엄마 커피 안 먹어. 얼마 전에 끊었어." 했더니.. 시원한 유자차를 주문해 줬다.
"엄마 것도 주문했어? 고맙네. 잘 먹을게."
유자차 한 잔에 감동이다. 나를 생각해 주는 아들 녀석의 마음이 너무 고맙고 대견해서다.
"아들, 엄마는 이렇게 소소한 거에도 감동해. 꽃도 좋아하고.. 알지?"
내년 어버이날도 아들들이 뭐해주려나 기대하지 않고 내돈내산 할 거다.
물론, 선물을 준다면 그 또한 마다하지는 않을 것이고.
지금 행복하자.
happy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