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도세자의 자취를 찾아
◇ 삼육 서울병원 : 동대문구 휘경동 산 4번지
- 1908년 미국의 러셀 박사(Dr. Riley Russell)가 평안남도 순안에서 '순안병원'으로 개원
1908년 : 미국 제29대 워런 G. 하딩 대통령의 주치의였던 러셀 박사(Dr. Riley Russell, 한국명 노설)에 의해 평안남도 순안에서 '순안병원'으로 첫 진료를 시작했다.
1932년 (경성요양의원 개원) : 진료의 중심을 서울(경성)로 이전하며 '경성요양의원'을 개원하였다. 1936년에 현재 동대문구 휘경동 부지로 이전하면서 '경성요양원'으로 이름을 변경했다.
1947년 (서울위생병원 명칭 변경) : 해방 이후 병원 이름을 우리에게도 매우 친숙한 '서울위생병원'으로 개칭하며 근대의학의 기틀을 마련했다. 6·25 전쟁 중 피난지였던 부산에 분원을 설립하였다.
1985년 : 늘어나는 의료 수요에 발맞추어 현대식 본관을 증축 준공하며, 400여 병상 규모의 현대식 종합병원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1990년대 : 대규모 치과병원 신축(1998년) 등 진료 기반 시설과 복지 시설을 크게 확충해 나갔다.
2009년 : 2009년 1월 1일부로 공식 명칭을 '삼육 서울병원'으로 변경.
◇ 영우원(永祐園) 터 : 동대문구 휘경동 산 4번지
- 삼육 서울병원에 자리한 사도세자의 묘소인 영우원(永祐園) 터
수은묘(垂恩墓)의 조성 : 1762년(영조 38) 임오화변(壬午禍變)으로 사도세자가 비극적인 죽음을 맞게 되자, 영조는 양주 배봉산 아래(현재의 동대문구 휘경동 배봉산 자락)에 묘를 조성하고 '수은묘(垂恩墓)'라 이름하였다.
영우원(永祐園)으로의 격상 : 1776년 정조가 즉위한 후, 아버지 사도세자의 존호를 '장헌세자'로 추승하면서 묘소의 이름 역시 '영우원(永祐園)'으로 높였다.
정조는 배봉산 영우원을 자주 찾아 아버지의 묘소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절을 올렸고, 이 때문에 이 산을 '고개를 숙여 절하는 산'이라는 뜻의 배봉산(拜峰山)이라 부르게 되었다.
융릉(현륭원)으로의 천릉 : 정조는 늘 아버지의 묘소를 길지(吉地)로 이전하고자 고심했고, 즉위 13년째 되던 1789년에 마침내 사도세자의 묘소를 경기도 수원부(현재의 경기도 화성시) 화산 기슭의 '현륭원(훗날의 융릉)'으로 천릉(묘를 옮김)하였다.
사도세자의 묘소가 화성으로 이장된 후 이곳은 빈터로 남게 되었고, 세월이 흘러 일제강점기인 1936년 제7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선교부가 삼육 서울병원의 전신인 '경성요양원'을 휘경동 배봉산 자락에 건립하면서 병원 터가 되었다.
사도세자 묘지(墓誌) 출토 : 1968년 11월 20일, 당시 서울위생병원(현 삼육 서울병원) 뒷산의 간호학교(현 삼육보건대학교) 신축을 위한 터파기 공사 중, 지하 약 5m 깊이에서 석함(길이 1m, 폭 50cm, 높이 75cm) 두 개가 발견되었다.
석함 안에는 납석(蠟石)으로 만든 상자가 들어있었고, 그 내부에서 상아로 된 판에 정조가 사도세자의 묘를 이장할 때 그 슬픔과 이장 사실을 기록한 천릉문(遷陵文)과 영조가 아들의 죽음을 슬퍼하며 직접 지었던 일대기인 '어제 사도세자 묘지(御製思悼世子墓誌)'가 출토되었다.
이들 출토품을 확인한 문화재 위원장 김상기(金庠基) 박사에 의하면 사도세자(思悼世子)의 묘가 중랑천 위 배봉산(拜逢山) 아래 있었다가 그 후 수원 현륭원[융릉(隆陵)]으로 옮겼다는 기록이 조선왕조실록에 있었으나, 그 이장 터의 봉분이 확인되지 않아서 알지 못했다고 한다. 김 박사는 “이번 영우원의 발견으로 조선왕조의 왕릉 천릉에 관한 연구에 귀중한 자료를 얻게 되었다”라고 덧붙였다.
현재 삼육 서울병원 내의 에덴동산과 배봉산 자락으로 이어지는 구역이 사도세자가 27년간 잠들어 있던 옛 영우원의 터이며, 당시 출토된 '어제 사도세자 묘지'는 사도세자의 비극과 정조의 효심을 보여주는 매우 귀중한 역사적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 휘경원(徽慶園) 터 : 동대문구 휘경동 286-66 일대
- 순조의 생모 수빈 박씨의 묘소 휘경원의 이름에서 휘경동 동명이 유래
이곳 휘경동에 정조의 후궁인 수빈(綏嬪) 박씨(순조의 생모)의 묘소 터에는 조선 제24대 왕 헌종의 후궁인 경빈 김씨의 묘(순인 묘)가 새로 들어섰으나, 이 역시 훗날 서삼릉으로 이장되었다.
오늘날 '휘경동(徽慶洞)'이라는 동명의 이름은 바로 이 수빈 박씨의 묘소인 '휘경원'에서 유래되었다. 수빈 박씨가 1822년(순조 22)에 세상을 떠나자, 이듬해인 1823년 이곳 배봉산 아래에 묘소를 쓰고 '휘경원'이라 불렀으나, 이후 두 차례에 걸쳐 이장(천릉)되었다.
수빈 박씨의 휘경원은 풍수지리상 좋지 않다고 하여 1855년(철종 6) 양주 순강원(선조의 후궁 인빈 김씨의 묘) 근처로 이장하였다. 1863년(철종 14)에 다시 풍수가 불길하다는 이유로 현재의 위치인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부평리로 최종 이전하였다.
이 때문에 본래 처음 묘소가 조성되었던 휘경동 터는 빈터가 되었고, 세월이 흘러 휘경중학교와 주택가 등이 들어서면서 현재는 봉분이나 석물도 없이 '터'를 알리는 이정표만 세워져 있다.
◇ 배봉산 쉼터 (배봉산 보루): 동대문구 전농동 산 32-20
- 해발 108m의 배봉산 보루 유적
해발 108m의 배봉산 보루(堡壘) 유적이 있는 정상부에 해맞이 광장 전망대에 다다르면 푸른 잔디와 정자, 넓은 데크형 전망대 쉼터가 펼쳐진다.
이곳 벤치에 앉으면 동대문구 일대는 물론 남산 서울타워와 북한산까지 한눈에 조망할 수 있어 배봉산에서 도심 파노라마 경치가 좋은 가장 탁 트인 전망 쉼터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