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일 맛을 이야기하려면 이해림 푸드 칼럼니스트,
“호로롭!” 면치기 소리가 아니다. 와인 테이스팅 때 나는 소리다. 공기를 입으로 들이마셔 입 안에 머금은 와인의 향을 증폭시킬 때 별수 없이 이런 소리가 난다. 커핑, 그러니까 커피 테이스팅 때도 같은 소리가 난다. 와인이나 커피는 맛과 품질을 평가하는 테이스팅이 산업적으로 규격화돼 있다. 그 평가가 가격 결정에 직결되기 때문에 꽤나 엄격한 테이스팅 규칙을 지켜야 한다. 음식도 그만큼은 아니지만, 식당을 평가하는 『미쉐린 가이드』 등 평가 매체도 무척 다양하며 꽤 정립된 평가 방법이 있다.
그런데 식재료나 과일은? 의외로 정해진 테이스팅 방법이랄 게 없다. 놀랍게도 진실이다. 맛을 이야기하는 평가 기준이 발달해 있지 않다. 대신 크기와 중량, 색과 윤기 등 외형 기준이 있다. 커피, 와인과 마찬가지로 농산물인데, 맛으로 가격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크기와 중량으로 가격이 결정된다. 이상한 일이다. 과일 한정으로 당도나 산도를 보기도 하지만, 맛을 이루는 요소가 그것뿐일 수는 없다. 맛은 당도, 산도를 포함해 질감, 향 등 더 섬세한 요소들에 대한 평가가 상호작용하고 종합돼 도출되는 결론이다.
바야흐로 새로운 품종이 쏟아져 나오는 품종 다양화의 시대인데, 지금까지의 정보기록 방식이 과연 유의미한지 연구자들도 다시 점검해야 하지 않나 싶다. 각 품종에 붙어 있는 정보라는 것에 맛에 대한 내용이 거의 무시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돼 경악했던 적이 있다. 얼마나 잘 자라고, 어떤 색을 갖고, 어떤 병에 강하고 등등 재배할 식물로서의 정보가 다 기재돼도 미식적인 측면에서의 정보는 여전히 빈약하기 짝이 없었다. 기껏해야 당도와 산도 조사 결과가 기록돼 있고 새콤달콤하다, 달다 정도의 무딘 인상평이 이따금 간신히 적혀 있을 뿐이었다. 특히 향에 대한 정보는 너무나도 중요한데, 거의 보지 못했다. 물론 전문적인 미각 훈련이 되지 않은 연구자들이 작성하는 품종 정보에 포함되기 어려운 내용이라는 점은 이해하고 있다. 결국 다 하나하나 테이스팅하며 기록하는 건 푸드 칼럼니스트의 일이 된다.
그리하여 꽤 진지하게 ‘계절시식’이라는 테이스팅 공부 모임을 열고 있다. 파티시에, 쇼콜라티에, 젤라티에레 등 과일에 관심이 많은 업계 전문가 몇몇과 삼삼오오 모였다. 알음알음 육종가들의 도움을 받기도 하고, 최대한 많은 품종을 전국으로부터 모아 한자리에서 전문적으로 맛보고 테이스팅 노트를 남기는 작업을 하고 있다. 지난 12월에는 20여 종의 귤을, 지난달에는 40여 종의 딸기를 테이스팅했다. 품종별 차이뿐 아니라 재배환경과 지역별 차이까지 비교하기도 한다.
테이스팅 결과는 다른 기회에 차차 공개하고, 이제까지 정립한 재미있는 과일 테이스팅의 방법론을 소개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마치겠다. ‘내 미각이나 후각이 둔하지 않을까?’라는 걱정이 들고 뭔가 어려울 것 같아도 생각보다 쉽고 재미있으니 꼭 해보시길.
1. 미지근한 물이나 연한 차를 마시고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켜 미각과 후각을 비운다. 2. 테이스팅하려는 품종의 과일은 최소 두 알 이상 준비한다. 개체별로 차이가 있기 때문. 3. 과형과 과피 등 외관을 본다. 4. 코에 가까이 대 향을 맡아본다. 5. 맛을 보고 단맛과 신맛의 정도와 균형을 느껴본다. 6. 단단한 정도, 수분의 정도 등 질감이 어떤지를 느껴본다. 7. 먹는 동안 나는 향, 삼킨 후에 올라오는 향을 느껴본다. 8. 잘 아는 익숙한 품종을 비교용으로 먹어보고 테이스팅한 품종과 얼마나, 어떻게 다른지 느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