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본문 : 수 3장 1-14절
설교제목 : 이전에 가보지 않은 길
가을이 이렇게 익어가면 좋겠다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우리 모두와 함께 하기를 빕니다. 한주간 평안하셨습니까? 맑은 가을날, 어딘가로 떠나고 싶은 계절입니다. 여전히 팔레스틴 땅에 전면전의 전운이 감돌고 있습니다. 미국 바이든 대통령은 두 나라를 중재하기 위해 이스라엘 땅으로 간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습니다. 악연의 고리가 풀리고, 평화의 시간이 도래하길 기도합니다.
‘가을 독백’이란 시에서 조현자 시인은 가을이 아름답게 익어가길 노래합니다.
...
강한 햇살 뻐기던 여름/ 한꺼풀씩 벗겨지는 자외선 껍질/ 땅에 떨어지면 먼지될 텐데
무성했던 가지마다/ 형형색색에 옷과 화장을 준비하면서/ 손님을 맞을 준비 바빠지면 좋겠고
땀 범벅 목욕은 일상이던/ 촌부의 하루도 가을걷이가 행복한/ 비명이면 좋겠고
도시의 식탁도 풍년이 들어/ 행복한 비명소리 집집마다/ 퍼지면 좋겠다.
우리의 가을이 / 이렇게 익어가면 참 좋겠다
평범하고 소박하지만 가을을 맞이하는 절실한 희구가 잘 드러나 있습니다. 이런 평범하고 소박한 바램조차도 사치가 된 이들 가운데도 가을의 풍성함이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빛깔로 맛나게 익어갈 수 있는 우리의 인생 길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언약궤 앞세우기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온 정탐꾼들은 여호수아에게 그동안 겪을 일들을 말하고, 그 땅의 모든 주민이 이스라엘을 두려워하고 있다고 보고합니다. 여호수아는 아침 일찍 일어나 이스라엘 자손과 더불어 싯딤을 지나 요단강 앞에 이릅니다. 요단강을 건너기 전에 진을 쳤습니다. 백성들에게 명령하였습니다.
“당신들은, 레위 사람 제사장들이 주 당신들 하나님의 언약궤를 들어서 메는 것을 보거든 진을 철수하고 제자장들의 뒤를 따르십시오. 당신들이 이전에 가보지 않았던 길을 가기 때문에, 제사장들이 당신들이 가는 길을 안내할 것이오(3-4a)”
지금 요단강 앞에 선 이스라엘은 이제 요단강을 건널 채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단강을 건너기 위해 먼저 하나님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을 보고 그들의 안내를 따라 뒤를 따르는 것입니다. 이런 행위 속에는 상징적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40년 광야생활에서 홍해바다 건너기가 입장의식이었다면, 요단강 건너기는 광야생활의 퇴장의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요단강을 건너 후 만나는 더이상 내리지 않습니다(수 5:12). 구름기둥과 불기둥도 출현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새로운 변환의 시기임을 시사합니다. 여호수아는 요단강을 건널 채비를 하면서 5절에서 먼저 자신을 성결하게 하고, 제자장이 멘 언약궤를 따라가라고 지시합니다. 언약궤가 선두에 서서 백성들의 가는 길을 안내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현존의 표징이 길을 이끌 것임을 가리킵니다. 이전에 가보지 않았던 길을 갈 때 자아의 생각과 방식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안내, 그 현존의 표징을 따라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언약궤는 하나님의 말씀이 담긴 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삼고 그 말씀을 앞세우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생생한 현존은 자연적 계시인 꿈을 통해서도 우리 앞에 그 실체를 드러냅니다. 우리는 무엇을 따라가고 있나요? 하나님의 현존의 표징의 안내를 따라가고 계신가요? 하나님의 말씀의 궤인 언약궤가 앞서가는 길을 따라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말씀의 궤가 가보지 않은 길을 안내할 것입니다.
성을 쌓는 자와 길을 내는 자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는 길은 이전에 가보지 않았던 길이라고 소개합니다. 요단강을 맨 땅으로 걷는 것은 감히 어떤 이와 상상할 수 없었던 행위입니다. 요단강을 건너는 것은 길이 아닌 곳을 지나는 일이며, 이전에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길을 가는 여정이었습니다. 인생은 시공간 속에 이전에 가보지 않은 길을 내는 여정입니다. 그렇기에 이전에 가보지 않은 길을 갈 때 옛날의 방식으로 길을 가면 그 길은 지루하고 경직된 길이 되고 맙니다. 그렇게 되면 길을 가기보다 성을 쌓으려하고 그곳에 안주하고, 우리는 강박적이고 불안해지고 두려워집니다. 지킬 것이 많은 자는 성을 쌓고자 합니다. 그곳에 누구도 침입하지 못하도록 성을 쌓고 자신의 안전과 행복을 지키려고 합니다. 그러면 삶은 딱딱해지고 경직되어 새로워질 수 없는 법입니다.
존경하는 유명한 목사님이 조기 은퇴를 선언한 이후에 주위에서 “은퇴 이후에 무엇을 할 것인가?”라고 자주 질문을 했습니다. 그래서 대답하기를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할 것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어떤 목적도 어떤 계획도 없이 향유하며 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은퇴준비를 충분히 하셨냐고 질문했더니 준비된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냥 되는대로 맞추어서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살 거라고 고백했습니다. 그의 고백 속에는 늘 그랬듯이 영혼의 단단함이 묻어 있었습니다. 평범한 은퇴를 고백했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는 비범함과 비장함이었습니다. 영상에서 그분의 옅은 미소에서 오랜 시간 목회의 무거움을 내려놓은 가벼움을 느낄 수 있었고, 은퇴 이후에도 자신의 길을 내어 여전히 길을 가고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 안전한 성을 쌓으려 하는 자는 그 성이 안전할 수 있지만, 그 성에 갇힐 수도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언제든 진을 철수하여 가보지 않은 길을 갔습니다. 이전에 가보지 않았던 길을 가는 것은 불안함을 불러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보지 않은 길을 가고 그 길을 내는 자는 날마다 기적의 신비, 삶의 축제를 경험하는 삶이 될 것입니다.
이전에 가보지 않은 길
이제 모든 지령을 받고 요단강의 물가에 이르거든 요단강에 들어가야 합니다. 여기에서 신뢰와 확신이 필요합니다. 요단 강 물에 제사장의 발바닥이 닿으면 요단 강 물줄기가 끊기고 둑이 생기어 물이 고였고, 위에서 흐르던 물이 멈추어 백성들은 마른 땅을 건널 수 있었습니다. 먼저 요단강을 건너기 위해서는 자아의 입장에서 신뢰와 확신이 필요합니다. 가보지 않은 길을 갈 때 내적 확신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마카엘 마이어의 “달아나는 아탈란타Atalanta fugiens” 도판 42의 표제에는 “자연, 이성, 경험, 독서는 화학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에게 안내자, 지팡이, 안경 및 램프가 되어야 한다”고 적혀 있습니다. 그리고 그 담화에는 “... 자연을 자세히 관찰하고 자연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살펴보고 결함이나 과잉 없이 자연적인 화학 주제에 도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거기서부터 자연을 그 위대한 여정의 안내자이자 동반자로 삼고 자연의 발자취를 따르라. 다음으로, 이성은 발을 안정되고 견고하게 유지하여 미끄러지거나 흔들리지 않도록 하는 지팡이와 같게 하라.”라고 적혀 있습니다.
그림에서 보듯이 앞에서 가고 있는 여성은 자연을 표상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자연의 발자취를 주의 깊게 살피며 그 길을 따라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조건으로 지팡이를 지목합니다. 발을 안정되고 견고하게 유지하고 미끄러지거나 흔들리지 않도록 자신을 지탱할 지팡이가 필요합니다. 이것은 자신을 견고하게 버틸 수 있는 로고스기능이며, 신념과 확신일 수 있습니다.
가보지 않는 낯선 길을 가야할 때 우리는 우리의 길은 안내하는 하나님의 현존이 있음을 알 뿐 아니라 내적 신뢰를 가지고 단단하게 지팡이를 집고 길을 가야 합니다. 이렇게 지팡이를 집고 길을 갈 때 하나님은 그 길을 여시고 새로운 이행을 가능케 하십니다. 홍해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이 건너갈 때 요단강물이 갈라집니다. 발을 내딛는 순간 하나님은 역사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은 거대한 이행을 위한 발걸음을 내딛기로 결정할 때 심리학적으로 자기가 활성화되고 자기의 협력과 도움으로 이전에 가보지 않은 길을 지나가게 합니다. 연금술의 문헌에서 돌이 말하기를, “네가 나를 돕는다면, 내가 너를 도울 것이다If you help me, I will help you.” 길을 내기 위해 발을 자아가 신뢰함으로 발을 내디디면 하나님은 그곳에서 역사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앞에서 놓인 이전에 가보지 않은 길을 향해 신뢰함으로 발을 디며 새로운 이행과 변환이 우리 가운데 일어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