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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캠핑가고 싶어요.’
‘그래? 세리가 가고 싶다면 할아버지는 무조건 가야지. 어디가 가고 싶은데?’
‘작년에 갔던 월악산 캠핑장이요. 계곡에서 물놀이도 하고 물고기도 또 잡고 싶어요.’
‘거긴 억수계곡 (용하 야영장)인데, 거기가 그렇게 좋았니?’
‘네. 수영장이 텐트 밖에 가깝게 있어서 정말 좋았어요. 다시 가고 싶어요.’
‘그럼 다시 가야지 뭐. 알았어. 이번엔 물고기 스므마리 잡아줄게.’
‘정말요? 할아버지 약속하셨어요? 그럼 고기 잡아서 튀김으로 먹게 해주실거지요?’
‘튀김이야 얼마든지 만들겠지만, 너가 정말로 먹을 수 있을까? 세리가 먹는다면 이번엔 백 마리 잡아야겠다.’
‘할아버지가 약속했어요? 아싸~~~~~!’
작년 여름에 캠핑을 했던 용하 야영장이 우리 손녀들 뇌리엔 무척이나 인상적으로 남았던 것 같다.
나 역시도 그랬다. 주변 지인들에게나 블로그를 통해 (용하 야영장)을 ‘어린이를 동반하는 최고의 여름 캠핑장’으로 꾸준히 권장을 해왔으니 말이다.
숲이 아름답고 그늘이 풍부하면서도 맑고 차가운 계곡물이 아주 가까운 골짜기로 풍요롭게 흘러내리는 천혜의 캠핑 조건을 갖춘 데크 영지가 풍성하도록 넉넉하게 설치되어 있고, 월악산 국립공원이 관리하는 천혜의 여름 휴양지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A 데크와 B 데크 사이로 인공조성해 놓은 봇도랑은 그야말로 어린이 물놀이장으로는 최고의 시설이라 하겠다. 근처를 흐르는 월악산의 천연자연수 그대로를 조금 상류에서 봇도랑을 만들어 캠핑장 가운데를 흘러가게 만들어 어린이를 위한 천연 물놀이장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크기와 깊이와 흘러가는 수량을 오로지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의 신체조건에 맞추어 최적화시켜 놓았다. 어린 자녀들이 그 봇도랑 물놀이장에서 윔블던 테니스 경기에 출전한 선수처럼 물놀이 경기에 전념하고, 양쪽의 데크에서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윔블던 테니스 경기장 관중석의 가족들처럼 여유롭고 우아한 시선으로 자녀들의 경기를 물끄러미 지켜보면서 나름의 망중한 내지는 캔맥주 파티를 벌인다. 이곳만의 이색적인 한가로운 풍경이다.
그야말로 ‘이런게 가족캠핑 아니겠어?’하는 표정들로 말이다.
해마다 여름이 되면 저마다 앞다퉈 여름 휴가를 떠나지만, 어린 자녀들 둔 부모들 입장에서는 오히려 고심이 많아져 휴가가 아니라 고행의 수난일이 되기도 한다. 날은 덥지, 길은 막히지, 이름이 났다하면 어디든 엄청난 웨이팅이 생기기 마련이지, 툭하면 비 매너와 어처구니 없는 갑질이 이젠 지극히 일상이 되어버린 현실속에서, 어린 자녀들에게 인내심이나 설득이 어려운 불가항력의 상황들이 사방에 즐비하게 펼쳐져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즐거운 휴가 여행이 아니라 어린 자녀를 동반하고 지뢰밭을 통과해야 하는 살 떨리고 피 터지는 한바탕 난장판이나 전쟁터와 다름 없을 것이다.
하여 바로 그런 분들에게 적극 권하고 싶은 곳이 바로 (월악산 용하 야영장)이다.
비록 지도상으로는 대한민국의 한복판이지만, 한참 헤매고 찾아가야 하는 변방의 오지라 할만하고, 가까운 곳에 꼭 필요한 하나로마트 하나 없지만, 일단 어느정도 신경써서 준비를 갖추고 꼬불꼬불 허접한 시골 산길을 돌고돌아 축구장만한 주차장이 널널하게 펼쳐져 있는 (용하 야영장) 팻말을 찾아가 체크인을 하고 주차장에 주차를 마쳤다면......... 이제 당신은 제대로 낙원에 들어선 것이다.
하나 남은 마지막 관문은 차량 출입이 불가능(오토 캠핑장이 절대 아님)한 선택받은 데크까지 부지런히 짐을 옮겨야 한다는 마지막 숙제만 해결하면 된다. 가족을 위한 아빠의 마지막 스퍼트가 필요한 순간이다.
'웰컴 투 파라다이스! 어린 자녀를 동반하시는 당신을 위해 낙원을 펼쳐놓았으니 여유롭게 즐기고 가십시요.'
(용하 야영장)의 봇도랑 양쪽에 인접한 A데크와 B데크는 하나같이 모두가 명당이라 하겠다.
그중에서 굳이 딱 하나만 고르라면 나는 무조건 (A9) 데크를 꼽겠다. 직접 사용해 본 경험으로 최고의 자리는 적어도 우리에겐 무조건 (A9)이다. 왜냐고? 가보면 안다. 어린이를 데리고 가서 지내보면 자연히 알게 된다.
(용하 야영장)의 명당 이야기를 하면서 가장 많이 거론되는 자리가 (B42)다. 많이 회자되는 것을 보면 충분히 그만한 이유가 있을 터인데, 그 이유의 대부분이 가장 깊숙한 곳에 따로 떨어지듯 위치하여 프라이빗 캠핑이 보장된다는 이유를 든다. 충분히 타당한 이야기다.
하지만, 내가 전제하는 ‘어린이를 동반하는 가족여행’으로는 (A9)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프라이빗은 좋겠지만, 구석진 자리는 모기를 포함한 해충과 울타리 밖의 자연적 위험에 가장 근접해 있고, 데크 안으로 위치한 소나무들이 장애를 만들어 주기 때문에 넉넉한 공간 확보가 가능한 대형 텐트나 타프의 설치에 절대적 장애를 만든다. 프라이빗 때문에 어린이들에게 필요한 넉넉한 공간을 포기해야 한다면, 그리고 봇도랑의 접근에 약간 불편이 따른다면 나는 절대 바꾸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A9)을 꼽는 최우선 이유이기도 하다.
(A9)을 대체할 수 있는 한 곳을 더 고른다고 해도 나는 결코 (B42)를 고르지는 않을 것이다. 차라리 (B41)을 고르겠다.
(B41)을 (A9)에 비교해서 보자면, 짐 나르는 데 조금 더 멀고, 그런만큼 화장실에서 더 멀어진다는 점만 빼면 하나도 더 부족할 것이 없다. 대신 데크 옆으로 활용이 가용한 공간이 더 많다. 그리고 옆 계곡으로 물놀이를 다니기에 가장 효율적이라는 장점을 대신 가졌다. 하여, 아직 계곡 물이 차갑다는 5월 6월 7월 초나, 9월의 여행이라면 (A9) 데크를 ‘어린이를 동반하는 여름 가족여행의 최고 명당’ 자리로 선택하겠고, 8월 폭염의 같은 여행지라면 나는 기꺼이 (B41) 데크를 최고의 명당이라고 선택하겠다. 계곡에 풍덩하는 시간을 더 많이 갖기 위해서 말이다.
예정대로 였다면 2026년 5월에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동유럽에 있어야만 했다. 지난해 12월부터 준비해 온 모처럼 만의 유럽 배낭여행이 계획되었었다. 그런데 뜬금없이 중동에 전쟁이 벌어졌고, 금방 끝난다던 전쟁은 오리무중 지금까지도 여전히 진행중이다. 기름값부터 요동쳤고 국제 정세를 비롯한 온 세상이 요란해 졌다.
어수선한 상황속에서 출발일자는 다가오고, 결국 우리는 이번 동유럽 여행을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야속하게도 46만 원이라는 예약 취소 페널티를 감수하면서 말이다. 결과적으로 지내놓고 보니 포기하기를 잘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 결정은 오로지 할망구의 몫이었지만 말이다.(아내 말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나 뭐라나?)
그렇게 비워두었다가 새로 생겨난 5월 이라는 한 달의 시간이, 엉뚱하게도 참으로 이상할 만치 바쁘고 여러 가지 일들로 가득 차 버렸다. 만약 동유럽에 있었다면 지나 보낸 5월 한 달 동안에 생긴 일들을 도대체 어떻할겨?
그런 덕분에 어버이날을 집에서 맞이하게 되었고, 가족 외식을 하려고 찾아 온 우리의 작은 병아리가 할아버지에게 해온 부탁이 바로 캠핑이었다.
그래?
우리 세리가 캠핑이 하고 싶어?
할아버지한테 맡겨. 할아버지가 이 세상에서 제일 잘하는게 놀고 싸돌아 다니는 것 아니니? 할아버진 아직 현역이야.
그날 부로 당장 캠핑장 예약을 했다.
우리 세리가 오매불망하는 (용하 야영장 A9)을 5월 중순에, 그리고 (B41)을 5월 하순에 힘들게 찾아내 예약을 성공시켰다.
그런데 웬걸? 전혀 예상치 못했던 엉뚱한 암초에 걸려 그만 제동이 걸리는 것이 아닌가?
‘사고 좀 치지 말래니까? 5월 중순은 물이 아직 너무 차가워서 안 돼. 거기는 여름 물놀이장인데 우리 애들이 물가에 가서 얌전히 있기만 하겠어? 너무 일러. 그리고 하순 기일엔 일이 잡혀서 안 돼. 큰 공사가 예약되어 있어. 애들도 열 명은 투입해야 하고 당연히 당신 도움까지 필요해. 그런 걸 포기할 수는 없잖아? 그러니까 자꾸 사고치지 말고 여름방학 때까지 기다리자니까? 물놀이는 여름이 되어야 맘 놓고 애들을 풀어놓지? 그러니깐 이번엔 양보해라?’
할망구의 타당성 있는 거절에 제동이 걸려 결국 예약해 둔 두 건을 모두 취소하고 말았다.
그렇다고 무조건 병아리들 여름방학까지 나보고 무작정 기다리라고?
못해. 죽는다면 몰라도 살아있는 동안엔 우리 병아리들과의 캠핑이나 여행을 절대 포기 못 해. 방학 때까지 기다리라고? 차라리 죽으라고 해. 난 절대 그렇게는 못 해. 남편 사표낼래.
다시 캠핑장을 구하려고 (숲나들이)와 (국립공원 관리공단) 싸이트를 검색하는데, 아뿔싸.
벌써 여름 성수기에 접어들었는지라 주말 추첨제와 성수기 추첨제가 6월 1일부터 접수가 시작된다는 안내문이 나온다. 일단 당장 내마음대로의 계획 성립이 불가능하다는 이야기가 된다. 물론 사설 캠핑장이야 사방에 널려있지만, 아주 특별한 경험지가 아니라면, 나는 줄곳 국립이 아니면 지자체가 관리하는 공립을 고수하는 편이다. 아니면 차라리 내 경험에서 나온 차박지를 찾을망정 말이다.
5월이 안된다고 하니 6월은 되겠지 하고 작전을 짜야 하겠는데, 6월은 선택이 허락치 않는 추첨제란다. 순전히 운빨이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추첨의 영향력에서 슬쩍 벗어나있는 지자체 관리 캠핑장을 찾아 보자.
그렇게 하다가 눈에 띄는 뜻밖의 캠핑장이 있다.
단양 곳곳엔 그동안 수없이 여러 번 드나든 캠핑장이 사방에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캠핑 초기엔 도락산 근처의 중선암 상선암 주변의 오지 캠핑을 즐겼는데, 국립공원 관리지역에 포함되면서 개발된 허가지역 외의 모든 캠핑은 금지되고 말았다. 하여 마지막으로 남겨진 곳이 소선암 지역의 (자연발생 캠핑장)이고, 우리 가족의 추억이 아주 많이 남아있는 추억의 명소다. 그런 후에 오토 캠핑이 대중화 되고, 우리도 어쩔수 없이 일단은 전기 시설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서부터 단양 지역 하면 늘 (소선암 오토 캠핑장)을 염두에 두고 즐겨 찾았었다. 그 (소선암 오토 캠핑장)은 월악산 국립공원 관리공단 관할이 아니라, 단양 지자체에서 관할하는 공립 캠핑장이다. 아울러 단양군에서 관리하는 공립 캠핑장에는 (소선암 오토캠핑장) 이외에도 (다리안 캠핑장)과 (천동 오토캠핑장)과 (대강 오토캠핑장)이 더 있다. 물론 지나다니면서 이곳들을 둘러보기는 했지만, 실질적으로 이용해 본 캠핑장은 (소선암 오토캠핑장)이 유일했다.
그래서 6월 캠핑을 계획하는 방편으로 (소선암 오토 캠핑장)을 다시 찾아 보았는데, 캠핑장 입구인 다리 공사가 거듭거듭 완공이 늦어지면서 캠핑장 재개장 공고는 한없이 미루어 지고만 있는 것이 아닌가?(현재 공고는 8월1일 재개장을 예고하고 있지만, 아직 예약 접수는 받지 않고 있다.)
그러다가 새롭게 발견한 곳이 바로 (다리안 캠핑장)이다.
소백산을 가장 짧은 거리로 그나마 가장 무난하게 오를 수 있는 등반 코스가 바로 다리안 코스다. 희방사 코스와 비로사 코스에 비하자면 다리안 코스는 난위도에서 하나나 둘 정도 아래라고 그동안의 경험에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30년 전쯤에 초등학생 아들 짱구를 앞세우고 다리안 코스로 연화봉까지 두 번인가 올라간 기억이 있다. 그때도 주차장 옆쪽으로 초장기의 (다리안 캠핑장)이 있었는데, 당시 소백산 등산은 충주에서 당일 코스로 다녔었기에 주차장만 이용했었고, 캠핑은 주로 소선암 계곡 상류의 (솔밭 야영장)을 이용했었다.
우연히 무심코 (다리안 야영장) 홈페이지를 둘러보다가 불현듯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어쭈? 이건 순전히 (용하 야영장)을 리모델링한 엎그레이드 판이네? 거기다가 계곡이 깊어 풍부한 수량이 얼음장처럼 차갑고 숲이 빼곡히 우거진 것은 30년 전부터 알고 있던 것이고, 이건 완전히 세련된 (용하 야영장)이네?’
하여 여기저기 인터넷을 통해 (다리안 야영장)에 관한 다양한 기사들을 찾아서 읽어 보았다.
한 마다디로 지척의 너무나 익숙한 곳에서 그동안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보물을 찾아낸 느낌이 아닌가?
‘이 정도였어? 왜 그동안 지나다니면서도 알아채지 못했던 것이지? 여기면 되겠네? 완전히 새롭겠네.’
그래서 즉시 예약을 했다. 검색하면서 알게 된 좋다는 테크는 엄두도 낼 수 없는 처지였지만, 다행히도 마음에 드는 예약을 하게 되었다. 더하여 다분히 내가 데크를 선정하는 기준이 남들과는 사뭇 다르고, 다행히도 이런저런 이유로 아직 가보지는 못했지만, 내가 그곳에서 깨닫게 된 좋은 장소 기준 세 곳 중에서 하나였다. 다행이라고 할 수 있었다. 예약 데크는 (다리안 야영장) C구역의 11번 데크로, 여행을 마친 지금의 경험에서도 아주 좋은 자리였다고 하겠다. 가장 명당이라고 소문이 자자한 바로 옆의 12번 데크 보다는 11번 데크가 좋다고 나와 할망구는 생각하고 있다.
어쨌거나 우여곡절은 약간 있었으나 기어코 (다리안 야영장) 예약에 성공했다.
이제 남은 과제는 두 개다.
하나는 겡구(며느리)에게서 병아리들을 빼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더 버거운 과제인 할망구의 허가를 받아내는 것이다.
하이고야. 이를 어쩐다?
여기까지 와서 또 태클에 걸리면 어쩌지?
이럴 때 필요한 것은 철저한 사전 계획인거야. 수준높은 잔머리가 필요한 것이라고. 실패하면 병아리 방학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인생 한 방을 걸자!
'아들. 이럴 때 아빠를 위해서 너가 나서서 효도 좀 해라.'
변했다. 우리 병아리들이 그간 변해도 너무 변했다.
그게 아니라면 할아버지의 기대와 확신이 너무 컸던 때문일까? 그걸 모르고 개꿈만 야무지게 꾸었단 말인가?
캠핑장 출입 관리실에서 체크인을 하고 야영장 근처의 차량 출입이 허가되는 지역까지 들어갔다. 오토캠핑장이 아니기에 여기서부터는 장비와 짐을 내려서 캐리어에 싣고 예약한 데크까지 운반해야만 하는 것이다.
‘다리안 휴’라는 휴게실 겸 화장실 건물앞에 차를 세우자마자 병아리들이 뛰쳐나간다. 저만치 앞쪽에 계곡을 넘나드는 철제 다리가 보였으니 당연히 그 아래가 물고랑이라는 눈치를 채고 난 직후였다. 일체의 망설임도 없이 계곡으로 뛰어 내려가 텀벙하고 발부터 담그고 만다. 동시에 계곡 가득히 ‘할머니. 빨리 와요.’라는 메아리가 울려 퍼진다. 그렇게 여우 공화국의 절반 국민이 계곡 속으로 사라졌다.(우리 집은 여우 네 마리에 이빨 빠진 푸른 늑대 두 마리가 한 가족인 자유 공화국이다.)
그래도 안전을 확인해야해서 멍한 표정으로 쫓아가 보니 이미 저만치 하류쪽으로 내려가 있다.
이렇지는 않았었는데 지금 이게 뭐지?
할아버지 껌딱지인 작은 손녀 세리는 짐 내려서 옮기는 것도 도와주고, 장비며 설치며 온통 궁금한 것이 천지라 연실 질문에다가, 조금 위험한 것이든 말든 무조건 직접 해보겠다고 덤벼서 잠시도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들었었는데, 개뿔......... 돌아와서 도와줄 낌새조차 야예 보이질 않으니 말이다.
‘짐을 다 옮기고 텐트를 치고 나서 물에 들어가는거야?’라는 다짐을 왜 미리 해두지 못했을까?
거기다가 꼬맹이 둘이 늘었을뿐인데 뭔 짐이 이렇게 늘어났단 말이야?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기본 필수 장비면 준비 끝이었는데, 병아리 두 마리 늘었다고 짐이 2.5배 정도는 늘어난 것 같다.
오매불망, 소중한 병아리들 안전과 편안하고 즐거운 캠핑에 오로지 주안점을 두다 보니, ‘팩 박기 지옥’이라는 몽골 텐트여야 만 되고, 바닥관리 해야 한다고 대형 러그(깔판)를 두 개나 가져와야 하고, 테이블도 두 개에다가 의자도 네 개인데 상황에 따라 키 높이 조절해야 한다고 어린이 체어 두 개를 별도로 추가하고, 더워도 추워도 안된다고 이 계절에 선풍기랑 절전형 전기난로까지 따로 챙겨야 한다. 바비큐 먹여야 한다고 통돌이까지 챙기고, 잘 마른 장작도 챙기고, 거기다가 물고기 잡아야 해서 낚시와 어항까지 추가로 챙긴다. 이거 손녀들과의 가족 캠핑이 아니라 어디 에베레스트 원정대 장비 담당이라도 된 느낌이 들 정도다.
허니 어쩌겠는가?
이 모든게 다 내가 좋아서 자청해서 내가 저지른 일인 것을.......... 할망구께서 ‘그러게 제발 사고 좀 치지 말라고?’했음에도 또 내가 몰래 저지른 결과인 것을......... 이게 내 팔자이고 또 살아가는 낙(樂)인 것을.......
할머니의 태클을 극복하기 위해서 저질러버린 음모의 댓가인가?
몰래 (다리안 야영장) 예약에 성공한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큰손녀 태리에게 카톡으로 작년 (용하야영장) 물놀이 캠핑 사진을 보낸 것이다. 이는 여지없이 태리로 하여금 캠핑가고 싶다는 열망에 불을 더 지르게 될 것이다. 그럼 태리는 너무도 당연하게 아빠에게 '아빠 캠핑가고 싶어'를 연발하게 될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틀 뒤에 아들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래서 곧바로 아들에게 (다리안 야영장 캠핑)에 관한 사진 모아놓은 것을 카톡으로 보냈다. 호감 가득한 긍정적인 반응이 왔다. 그래서 이미 예약에 성공한 이번 캠핑 계획의 전모를 아들에게 전달했다. 절대 엄마에겐 비밀이라는 전제를 깔고 말이다. '아들. 넘어야 할 과제가 둘 있는데, 하나는 겡구(며느리)가 허락해서 병아리들을 내주어야 하는 것이고, 그 다음에 번번히 태클을 걸어오는 엄마를 설득해야만 하는 것이야. 일단 겡구 의중이 궁금해. 그런 다음에 차차 시간을 두고 엄마 눈치를 살펴가면서 설득을 해야되겠지. 이해하겠니? 그러니까 일단 엄마에겐 완전 비밀로 하고 겡구와 먼저 상의를 해주렴.' 이라고 할아버지의 의중 전부를 낱낱이 전달해 의근한 의도된 협박을 가했다.
퇴근하고 아들 부부간에 협의가 이루어졌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저녁 먹고 나서 아들에게서 몰래 카톡이 왔다.
'아빠. 겡구가 무척 좋아하던데요? 그날짜에 맞춰 준비해 놓겠대요. 저녁 먹으면서 태리 세리에게도 날짜까지 알려줬어요. 많이 신나하고 있어요. 물총 들고 배낭메고 갈거래요. 아빠 생각대로 진행 하세요.'
'아들. 엄마에겐 절대 비밀이다. 시간을 가지고 눈치껏 설득을 해 볼께. 엄마 촉이 9단인거 알지? 비밀 지켜줘.'
'알았어요. 걱정 마세요. 아빠를 믿어요.'
후후후후.
이런 특별한 기분을 남들이 알까?
우리집은 모두 공평하고 절대 비밀이 없기로 하고 지낸다.
그런 여섯 식구중에 다섯명이 모두 알고 동의를 넘어 동맹을 맺었는데 한 사람만 전혀 모르고 있다. 그것도 실세중에 실세인 구미호 대비마마만 모르고 있다. 할머니를 골려먹는 것만도 통쾌한 할아버지 입장에서 이런 가문의 쿠데타는 그야말로 살아있음에 대한 짜릿한 환희라 할만하다.
설득해서 안되면 이미 식구중 다섯명이 동의했다고 반란이라도 일으켜야 하겠는데, 그럼 할머니가 서러워서 우는것 아닌지 모르겠다.
그럼 이 태클을 어떻게 극복해 할망구를 설득해야만 하느냐?
내가 평소 하나뿐인 우리 아들에게 내 목숨 이상으로 절대적인 신뢰를 보내지만, 딱 한 가지 경우에는 거꾸로 절대 믿지 않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아들과 맺은 약속의 어디에 아주 약간이라고 엄마가 관련되어 있으면 절대로 믿어봤자 다 헛빵이라는 사실이다. 말짱 도루묵이다. 그야말로 백전백패가 뻔한 불문율처럼 자명하다. 엄마가 속상해 하거나 슬퍼할 일은 절대로 만들지 않는 녀석이 하나뿐인 아들놈이기 때문이다. 이번 쿠데타의 마지막 해결은 또 아들이 자연스레 해결해 줄 것이다. 절대 자주는 안되겠지만, 이렇게 슬쩍 아들에게 떠맡긴 경우가 몇 번 있었다.
평소 그런 아들임을 알기에 쿠데타 아니라 쿠쿠쿠데타라 해도 아들이 앞잡이면 엄마는 저절로 무장해재된다. 거기에 뒷탈도 없다.
몇 날을 아무런 낌새도 보이질 않고 설득하려 시도도 하지않고 그냥 평범한 날처럼 지냈다. 그러다 오후에 불쑥 할망구에게서 카톡이 왔다.
'정말 이럴꺼여? 상의할 게 있으면 상의를 해야지, 내가 뒤통수 치지 말랬지? 집에 들어올때 술 사가지고 와.'
쿠데타가 들통난 것이다. 이제 터질때가 되었다 싶었었다. 안주를 좀 색다른 것으로 사서 갈까? 이제 캠핑은 허락된 것이니까 말이다.
후후후후후. 이번에도 할아버지의 굳히기 작전이 성공했다. 아들 내세우면 백발백중이다.
하나뿐인 아들은 한 달에 서너 번 엄마와 안부 통화를 한다. 아빠와는 어쩌다 문자 연락이 전부지만 말이다. 우리 집안 전해 내려오는 내력이다. 아들과 엄마는 어떤때는 아주 시시콜콜한 것 까지 장시간 통화를 하기도 한다. 그런 와중에 엄마만 빼고 가족 다섯명이 이미 사전 모의한 음모가 있겠다, 병아리들 동향 이야기 하다보면 오매불망 여름 캠핑갈 생각에 들떠 있는 분위기가 안나오겠는가? 거기다가 아들은 엄마와 아빠의 합의 진척이 어디까지인지도 전혀 모르고 있는 상황에서 병아리들 물놀이 열망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다보면, 어디쯤에선가 촉이 9단인 엄마가 어떤 의문이 들게 마련이고, 추궁이 이어지면 언제나 처럼 아들은 엄마 앞에서만은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고 사전모의 실토를 할 것이다. 이 모든게 아빠의 모략인것을 눈치 채서 격노에 들어갈 것이고, 그럼 아들은 아빠의 가엽은 처지를 생각해서 병아리들을 앞세워 엄마를 진정시키면서 자칫 벌어질지 모르는 가문의 내전 진화에 애를 쓸 것이다. 그리고 지금 카톡이 왔다는 것은 타들어가는 할망구의 속이 진정되었고, 이왕 이렇게 된것 무조건 병아리들을 위해서 꼼수를 부린 할아버지가 무한의 책임을 지라는 엄포인 것이다. 물론 다시는 사고 좀 치지 말라는 다그침이 있을 것이고, 그런 약속은 얼마든지 할 수있는 아량을 갖춘(?) 말썽꾸러기 할아버지가 바로 내가 아니겠는가?
'태리야. 세리야. 6월 12일부터 14일까지 우린 (다리안 캠핑장)에서 물놀이 캠핑을 할꺼야. 할아버지 마음 너희는 알지? 벌써 보고싶어.'
‘팩 박기 지옥’이라 소문이 자자한 <브라이튼 12.3 텐트> 데크 위에 펼쳐놓기만 했을 뿐인데 벌써 지친다.
완전한 사이트 구축까진 아니라고 대충 세워서 펼쳐 고정 시킨다고만 해도 얼추 팩을 20개 정도는 박아 주어야 한다. 26kg이나 하는 덩치를 어기까지 들어 옮기는 것만도 버거웠는데 말이다.
거기다가 느닷없이 캠핑장 관리에 대한 원성이 절반 정도의 욕설로 튀어 나오기 시작한다.
(다리안 캠핑장)의 이용 수칙 중에는 데크의 관리를 위해서 오로지 (오징어 팩)만 사용해 달라는 당부 조항이 있다. 나사 형태의 팩을 사용하면 방부목 데크가 손상 우려가 크기 때문에 오징어 팩 사용을 요구한다. 부득이 오징어 팩을 사용할 틈새(구멍 공간)이 부족하면 연장선을 사용해 달라고 한다.
그런데 (브라이튼 12.3 텐트)의 경우는 연장선 사용이 불가능하다. 바닥 부분이 그 자리에 그대로 고정되어야만 가운데 기둥을 세워 형태를 갖출 수 있는 구조다. 바닥 고정이 안되면 사이트 전체가 허공으로 들려 딸려 올라간다. 외부 고정선이야 텐트 형태가 좀 망가지나 마나 끌어낼 수 있겠지만, 바닥 고정은 확실해야만 하는 구조적 특성이 있다. 그런데 (다리안 캠핑장)의 데크는 설치 과정에서 그런 용도를 염두에 둔 작업 공정이 미미해서 오징어 팩 사용이 가능한 틈새를 거의 염두에 두지 않고 작업의 속도만 내었던 것으로 보인다. 필자인 내가 하는 일이 바로 그런 작업을 수시로 하는 건축 분야이기 때문이다. 20개의 팩을 박는데 오징어 팩이 들어가는 곳이 딱 하나였다면, 관리자측에서 데크를 원활한 사용이 가능하게 뜯어고치거나, 아니면 오징어 팩만 사용을 강요해서는 안된다. 그건 억지다. 그래서 나는 하나의 오징어 팩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고정을 나사고리 형식의 팩으로 바꿔 박았다. 누군가가 와서 제지를하면 타당성과 근거를 가지고 대대적으로 한 판 붙을 각오를 하고 말이다. 휴양림 관리 공단을 넘어서 산림청장과 맞장 뜰 생각과 각오가 되어 있었다.(오징어 팩과 연장선을 다 줄테니까, 너희들이 여기에다 내 브라이튼 12.3 텐트를 사용 가능하게 설치해 봐. 핏이 살고 각도가 잡히기까지 바라지는 않을께. 안돼? 그럼 안내문에 브라이튼 12.3은 설치 불가라고 적어놓던가? 그리고, 오징어 팩만 써라 요구하지 말고, 어느 데크던지 똑같은 불편과 불만이 연이어 생겼으면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아서 개선해야지, 대한민국 다른 자연휴양림 야영장과 대부분 캠핑장은 다 되는데, 왜 여기만 안된다고 하는 거야? 차라리 방부목 데크를 걷어 치우던가?)
부아가 좀 치밀었다. 그런데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고 태클을 걸어오는 사람도 없었다.
‘할아버지야. 우리가 이게 지금 뭔 짓이니? 현장에서 일하는 것보다 더 힘들어.’
‘그건 나도 그런데 그렇다고 어떻하겠니? 그래도 당신은 연실 웃고 있잖아?’
‘저것들 노는 걸 보고 있는 것은 즐거우니까. 이쁘잖아? 그런데 쳐다보는 내가 슬슬 배가 고파.’
‘나도 많이 고파. 우리 단양 나가서 시장 구경 겸 먹고 올까?’
‘애들 안간데. 배도 안고프대. 그냥 물에서 논대. 방금 물어봤어.’
‘나는 부랴부랴 텐트 설치하고 나면 오후엔 밖에 나간다고 캔 맥주도 하나 안 따고 땀만 흘렸구만, 밖에도 안 나가고 밥도 안 먹으면 이적지 힘쓴 할아버지는 어떻게 하라고?
텐트와 타프를 설치했을 무렵에 이미 물어 젖은 채 올라온 우리 병아리들, 이제 옷갈아 입고 늦은 점심을 서둘러 해먹자고 통돌이까지 돌리기 시작했는데, 억지로 끌어다가 옷을 겨우 갈아입혀 놓으니까 느닷없이 ‘저희는 점심 생각 없어요’를 외치더니 물총을 챙겨 들고는 이웃의 어린이들과 물싸움하러 뛰어나간다.
이게 도대체 뉘집 아이들인지?
그럼 옷은 왜 갈아입힌 것인지?
그 유명한 단양 구경시장에 먹거리 군것질 투어도 안 가신단다. 카페산 패러글라이딩도 싫으시단다. 만천하 스카이 워크도 싫으시단다. 고수동굴도 안 가신단다.
저녁에 언니는 짜파게티면 되고, 동생은 불루베리에 방울토마토면 된단다. 더하여 매점에서 아이스크림 하나씩만 사달란다. 나머지는 오로지 ‘지금처럼 물놀이만 실컷 하게 해주세요.’
우리 병아리들은 정말 못 말린다.
그럼 도대체 단양 캠핑장까지 뭐하러 온거지? ‘애들아. 그럼 할아버지가 정말로 오후에 운전 안해도 되는 거지?’
통돌이에 구워 낸 막창 맛이 정말 기가 막히다. 식당에서 사먹는 것보다 훨씬 맛있다.
계곡에서 말아내는 소맥이 정말 환상적이다. 그러면서 은근하게 취기가 돈다.
데크에 앉아서 내다보면 C구역 전체가 한 눈에 들어온다. 녀석들이 구역을 벗어날 일은 화장실 갈 때밖에 없다. 그런데 그런 정도는 이제 익숙해서 걱정을 안해도 된다.
‘그래. 이 야영장 전체가 오늘 내일은 너희들 거다. 실컷 즐기려무나. 할아버지는 할머니랑 따로 놀고 있을 테니까, 매점 가고 싶어질 때 이야기하렴.’
‘할망구야. 우리 건배를 해야지? 병아리들을 겡구에게 빼앗아와서 온전히 우리꺼로 만들었잖아?’
‘뒤통수를 맞아 끌려오긴 했지만 오니까 좋네? 우리 병아리들이 저렇게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까.’
‘더 크면 안따라 오겠지만 그래도 빨리 쑥쑥 컸으면 좋겠어.’
‘뭐 그런 앞날을 미리 걱정해? 우리 가족 모두 건강하고 지금 당장 이렇게 즐거우면 된거지. 겡구랑 아들도 잘 보내겠지. 난 정말로 지금이 행복해.’
‘그렇게 행복하고 좋으면 앞으로도 내가 종종 사고를 쳐도 된다는 뜻이네?’
‘개뿔. 아무데나 잘도 갖다 붙이기는, 좋기는 한데 이젠 정말로 삭신이 쑤시고 아퍼. 좋은건 맞는데 현실적으로 많이 힘이 든다고. 우리가 맨날 청춘이니? 그러니까 다음 우리 병아리들과의 계획은 좀 시간 차를 두고 천천히 하자. 내가 아프지 않고 건강해야 씩씩하게 같이 놀아주는 거라고? 그런데 지금 나는 사방이 다 아프다니까?’
‘쳐다만 보고 있어도 아픈게 싹 낮는다면서? 우황청심환에 비타민에 보약이 저기 저렇게 눈 앞에 있잖아?’
‘쌩쌩하고 예쁜 할머니 모습으로 곁에 있고 싶다니까? 그 마음 몰라? 난 늙어 보이고 나약해 보이는 구질구질한 할머니 모습 애들에게 보여주기 싫어. 그런데 이번엔 머리 손질도 못하고 염색도 못하고 구질구질하게 끌려온 모습이잖아. 그러니까 앞으론 제발 상의하고 절차대로 계획하고 준비하는 여행을 부탁 좀 하자고? 그게 안돼? 나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 좀 해주면 안돼? 난 죽을 때까지 우리 병아리들에게만은 최고의 할머니고 싶어.’
‘접수했어.’
분위기가 다소 무겁게 가라앉을 즈음에 아니나 다를까?
‘할머니. 지금 매점 가주시면 안될까요?’
흐메. 오늘은 너희가 할아버지까지 구해주는구나. 때~~~~앵 큐!!!!
옛날 소백산 자락의 아주 깊고 험한 골짜기에 저마다 한이 가득 서린 사연을 담은 사람들이 하나씩 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하나같이 삶과 죽음의 기로(岐路)에서 살려고 이 험준한 산골로 찾아든 사람들이었다.
사람들은 바위벼랑 사이를 요새처럼 가로막고 쏟아져 내리는 거대한 물줄기(다리안 폭포) 앞에서 산신님께 치성을 드렸다. 지금도 그 자리엔 산신당이 남아 금줄이 처져있다.
‘부디 가엽다 여기시고 목숨만은 부지할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산신령님께 이렇게 간곡하게 빕니다.’
치성을 마친 간절한 생명들이 서둘러 바위벼랑을 타고 올랐다. 이 격류만 건널 수 있다면 살아남을 수 있다는 간절함을 가지고 가시덤불을 맨손으로 움켜쥐며 이끼 낀 바위틈새를 기어 올라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생명의 동아줄을 찾아냈던 것이다. 바위벼랑 양쪽의 박달나무에 칭칭 동여맨 다래 넝쿨로 만들어진 구름다리가 놓여 있었던 것이다. 너무나 연약한 덤불 줄기 다리였지만 사람 하나쯤은 계곡을 겨우 건널 수 있어 보였다. 자연히 다래 덩굴이 양쪽 계곡에 걸쳐 자란 것이 아니라 분명 누군가가 엮어서 매달아 놓은 것이 분명했다. 아마도 산신령님 자비로움이 어떤 은인을 보내셔서 자신들을 위해 구름다리를 놓아주셨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이 골짜기 안에 어딘가에는 그런 산신령님의 자비를 배워서 베푸는 다른 누군가가 살고 있다는 뜻이 된다. 비로소 살아났음에 대한 어떤 안도의 숨을 크게 내쉰 사람들은 한 걸음 한 걸음씩 구름다리 위로 조심스럽게 내뻗었다.
그들에겐 구름다리 안쪽은 삶의 세상이요, 구름다리 밖은 죽음의 세상이었다.
겨우 구름다리를 건넌 사람들은 살아났음에 안도의 한숨을 크게 내쉬면서 잠시 상념에 잠겼다.
‘이제 이 다리를 어쩌면 좋단 말인가?’
혹시라도 어디선가 자신들의 뒤를 쫓는 죽음의 마수가 여기까지 따라온다면....... 구름다리를 끊어 흔적까지 지워내야 하겠지만, 혹시나 자신들의 처지와 같은 누군가가 같은 상황에 이곳까지 왔다면 그에게는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구원이 아니겠는가? 누군가의 은혜로 방금 자신이 살아났다고, 이제 자신이 온전하게 살기 위하여 다른 누군가를 매몰차게 죽음으로 내몰 수가 있는 것일까?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던 사람들은 마침내 결심했다. 다리를 손질하되 부러 아주 약하게 만들어 절실한 마음의 사람만이 아주 조심스럽게 건너올 수 있는 정도로 남겨두기로 했던 것이다. 그 모든 결과는 산신렴님의 자비로우심에 맡기기로 했던 것이다.
그후로 부득이 이 계곡을 건너야 했던 사람들은 이 구름다리를 운제(계구교. 융탁교)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이 다리를 건널 때마다 마음을 맑게 가다듬고 스스로 자신을 경계하여 산신령님의 자비로우심을 결코 잊으면 안된다는 뜻이담겨있다. 하여 그때부터 이곳에 모여든 사람들은 너나없이 모두 식구가 되어서 화전을 일구고 약초를 캐면서 생활해 갔다.
세월이 한참 흐르고 세상이 바뀌어가자 차차 이곳 사람들의 바깥세상 나들이가 잦아졌다.
그러자 단양 일대의 사람들이 그들을 일러 ‘다리안골 사람들’이라 부르기 시작하였으니, 바로 운제(구름다리) 안쪽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이들이 사는 다리안골의 높은 골짜기 산봉우리를 옛 지도를 찾아보면 교내산(橋內山)이라 표기되어 있는 것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물론 현대의 지도에는 교내산(橋內山)은 사라졌고 소백산(小白山)이라는 표현으로 모두 바뀌었지만 말이다.
왜 다리 안쪽은 삶의 세상이며, 밖은 죽음의 세상이라 했을까?
그것은 다분히 조선시대 중기 이후로 급격하게 불어닥친 참혹한 당쟁의 결과로 하루아침에 권문세족이 멸문지화를 당하는 일이 빈번해졌고, 온갖 세금과 부역이 가혹해서 도망치는 사람들이 파다했고, 양반의 자녀를 대신해 군역을 치르거나 전란에 끌려가거나 전염병의 창궐로 정말 하루하루 생명을 부지하기에 벅찬 사람들이 살아남기 위해 택할 수밖에 없는 마지막 선택이기도 했으며, 거듭된 사화(士禍)의 와중에 등장한 정감록(鄭鑑錄)의 영향이 크게 작용했다고 하겠다.(그에 대한 이야길랑은 혹여 말미에 기회가 되면 해 보기로 하고)
30년 전쯤에 지금의 다리안 캠핑장 안내소의 자리엔 위쪽 사진의 안내판이 서 있었다. 그리고 바로 아래 사진의 풍경들이 그 자리에 아름답게 들어서 있었다. 지금은 모두 사라지다시피 한 아주 먼 추억 속의 한 장면이 되어버렸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 추억의 한복판엔 지금 우리 큰손녀 윤태리 또래였던 하나뿐인 아들 짱구가 있었다. 그 짱구가 자라서 결혼해 분가를하고, 당시의 저만한 딸을 둘씩이나 낳아서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안겨주었으니 어찌 지나친 세월이 참 무심하더라고 할 수 있겠는가? 조물주의 허락하심으로 혹시 시간을 다시 되돌릴 수 있더라도 나는 지금 이순간으로 되돌려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아쉬움이야 있지만 내가 가졌던 시간과 선택들에 후회는 없다. 그 어떤 보상이나 대가가 따른다 해도 나는 지금처럼 우리 병아리들 곁에, 여전히 서슬이 시퍼런 마눌님과 함께 머물고 있는 이 순간에 감사할 따름이다. 무조건 행복한 오늘에 감사하고, 오늘이 똑같이 내일로 이어지기를 바랄 뿐이다.
이곳 (다리안 관광지)의 역사가 고스란히 사진속의 안내 표지판에 담겨있다.
실제로 6.25 전쟁(1950년)이 벌어졌을 때도 다리안산 깊숙한 골짜기에 살던 일부 사람들은 전쟁이 끝날 때까지 그런 세상 밖의 일을 몰랐을 정도였다고 한다. 어쩜 정말로 제대로 된 십승지지(十勝之地)가 바로 다리안골이 아니었을까 싶어질 정도다. 그만큼 이곳은 오지 중에서도 절대 오지라는 말이 된다고 하겠다.
흔히들 말하길 ‘험준하다 험악하다 하면 강원도’를 먼저 떠올리는데, 본래 단양군 지역이 고려 시대에는 강원도 원주군의 속현이었다가, 조선 초기에 이르러 충청도에 편입된 고장이었으니 속된말로 산비탈 오지 강원도나 마찬가지라는 평가가 지극히 당연해 보인다.
단양에서 급하게 흐르는 거대한 강을 건너서 어상천으로 향하는 가파른 길목에서 소백산 자락으로 길이 갈라서고, 이제부터 길은 굽이굽이 휘돌면서 가파른 언덕길을 끊임없이 올라간다. 고수대교를 건너 시작된 7km 가파른 고갯길을 오르고 나서야 단양군 단양읍 천동리 마을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자동차가 없던 시절에 등짐을 지고 악에 받치는 계곡 언덕을 오르내리기란 여간해선 엄두도 내기 싫었을 정도로 모진 고난의 행군이었을 것이다. 그런 오지였기에 어떤 사정을 가진 사람들이 몰래 숨어들어 살기엔 딱 좋은 은신처였을 것이다.
그 산자락에 매달린 마을 가운데 샘이 솟아 샘골이라 불렀으며, 장수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전하니 바로 천동리 마을이다. 오고 가기 힘든 오지라 하겠지만, 그래도 여기까진 세상에 어느 정도 알려진, 다리안 밖의 열린 세상이라 할 수 있겠다.
화전 부락인 샘골(천동리) 우측으로 소백산 비로봉에서 시작된 계류가 우거진 숲과 기암절벽 사이를 흘러내리면서 폭포(다리안 폭포)를 만들었고, 그 아래 계곡에 세 층의 깊은 웅덩이를 만들었다. 그 거대한 물줄기로 인해 골짜기 안으로의 접근이 불가능한 천험의 요새를 만들어냈던 것이다. 심한 가뭄이 들면 이 폭포 아래서 기후제를 지내곤 했다.
그러했음에도 사실은 그 단절된 산골짜기 깊숙한 곳에(다리안골) 세상을 등지고 숨어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이들은 다리안골의 금곡과 백빙곡과 압암동과 현명동에 흩어져 화전을 일구고 약초를 캐고 사냥을 하면서 모여 살았으니, 그 숫자가 결코 적지 않았다. 하나 같이 언젠가는 새로운 세상이 도래하겠지 하는 염원을 가지고 말이다.
조선시대 말기엔 민비(명성황후)의 피붙이 일가가 이곳으로 도망쳐 왔는데, 이곳까지 도망쳐 오면서도 상당한 재력이 있어서 이 골짜기 중심에 민씨사가(閔妃私家)를 지었을 정도였다고 하며, 이 집터를 그곳 사람들이 대궐터라고 불렀었다고 전한다. 아울러 근처에 민비(명성황후)가 후원해 지었다는 불당까지 있었다.
어쩌면 안견의 몽유도원도에 나오는 무릉도원이 이곳에 실재했었던 것은 아닐까?
실제로 샘골(천동리) 윗편으로 다리안의 옆쪽 골짜기에 해당하는 지역에 달밭(月村)이라는 마을이 있는데, 한참 위쪽 깊은 골짜기에 민백이재(갈현)가 있다. 이 골짜기를 넘으면 영주시 순흥면(풍기 방향)이 나오는 소백산 등산로다. 그런데 이 마을의 탄생 설화에, 이곳으로 도망쳐 온 민씨 일가가 다리안골에 저택을 짓는데 필요한 자재들을 이곳을 통해 인근의 산자락을 넘어 다리안 폭포의 운교(구름다리)를 거치지 않고 옮기기 위하여 인부들이 거처하는 임시처소로 설치한 것이 훗날 달밭마을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것으로 보아, 지금은 흔적조차 희미하거나 거의 유실된 다리안골 마을과 사람들의 살림살이를 짐작해 보는데 나름 어느 정도 근거가 되는 것으로 보인다.
6.25 전쟁 이후로 급격하게 세상이 변해갔다.
이젠 그 누구도 드나드는 것 조차 힘에 겨운 소백산 자락 두메산골 오지 천동리에 살고 싶어 하지 않았다. 이제는 굳이 숨어서 화전을 일구며 살아갈 필요가 없어졌던 것이다. 하여 모두가 떠났다. 일자리를 찾아서, 그리고 자녀 교육을 위해서 최소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도심 근처는 나가야만 했으니, 대부분이 구단양(단성리)나 인근 도심인 제천이나 영월로 이주했다. 도시의 근처엔 일자리가 있었고 학교가 있었다. 그러자 다리안골 사람들도 세상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그 깊은 산골짜기에 숨어서 모질게 하루하루 생명을 연명해야 할 이유가 모두 없어진 마당에 다리안에 머물러야 할 이유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비록 자신들의 삶은 비루하고 억울했지만, 자녀들이 새로운 세상에서 당당하게 살아가게 하기 위해서는 하나도 둘도 오로지 교육이 최우선인 새로운 세상이 도래했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 다리안은 고요해 졌다. 모두가 떠나간 다리안은 점차 사람들의 기억에서 모두 지워졌다.
그저 극히 소수의 등산가들만이 이 계곡을 통하는 길이 소백산 정상에 오르는 가장 짧고 나름 수월한 등산로라는 것을 알고있었기에 버려져 황폐해진 이 골짜기를 겨우 다시 찾아올 뿐이었다.
정확히 1970년대 초까지 (다리안 계곡)은 대부분의 사람들 기억에서조차 모두 지워졌다.
이곳을 고향으로 두고 타지로 떠났던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명절을 맞아 조상 묘소를 다시 찾았을 뿐이었다.
아주 오랜 옛날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까지는 아니고, 임진왜란(1592년)이 벌어졌던 시기에 한양 땅에 살았던 밀양 박씨 가문의 형제가 있었다. 선조 임금을 따라 의주까지 갔다가 남해에서 이순신 장군의 눈부신 승리가 연이어 벌어지고 명나라 군대의 참여로 다시 한양을 수복하자 뒤를 따라 돌아왔다. 하지만 한양은 예전의 도읍지가 아니었다. 침략군의 수탈과 백성을 버리고 달아난 임금에 대한 백성의 분노로 도성은 불에 탔고 한 나라의 도읍지로 위엄과 기능을 모두 상실했다.
결국 형제는 낙향을 결심했다. 청주에 내려와 터를 닦으며 정착을 시작하였으나, 동생과 달리 형은 그곳에 마음을 두지 못하여, 결국 새로운 터전을 찾아서 풍기나 안동 지방의 새로운 정착지를 찾아 나섰다. 단양을 거쳐 북면 별곡리 상진 나루에서 강을 건너던 중에 타고 다니던 말이 발목을 접질리는 바람에 강 건너 마을에서 사나흘 간 쉬어가기로 하고 강나루 주막에 머물렀다. 하지만 그 사나흘 간 머무는 동안에 그만 이곳의 빼어난 정취에 취해서 그만 그곳에 정착하기로 했다. 이곳 주변의 강변이나 계곡이나 심지어 병풍처럼 늘어선 산봉우리 언덕까지도 키가 큰 풀(갈대)들이 유독 무성해서 정착을 결심한 박씨는 이곳을 고수리(高藪里)라고 이름 지었다. ‘키가 큰 수풀이 우거진 마을’이라는 뜻이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옛 고(古)로 바꿔 부르기 시작하더니 지금의‘단양군 고수리(古藪里)’라는 지명이 되었다.
터전을 일군 박씨는 우연히 골짜기에서 아주 커다란 동굴을 발견하였는데 장정 백 명이 들어가고도 남을 정도로 컸다. 박쥐가 유독 많이 서식을 하고 있어서 그때부터는 그냥 ‘박쥐 굴’이라 불렀으며, 나라에 환란 소식이 들리면 임시 피난처로 활용하였고, 실제로 6.25 동란 때 많은 사람들이 이곳으로 피난해 한동안 숨어 살았다.
하여 이 박쥐굴은 근처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누구나 알고 있는 그런, 석회암 지대인 단양 지방에는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그런 흔한 동굴이었다.
1973년 여름 태풍이 한반도를 휩쓸고 지나간 뒤에 박쥐굴에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
검은 돌과 흙덩이뿐인 어두운 커다란 동굴인줄로만 알았는데 폭우로 인해 천장이 무너져 뻥 뚫려버린 것이다. 꽉 막힌 공간인 줄로 알았었는데 천장과 함께 무너진 벽면 너머로 억만년의 시간이 창조해 낸 놀라운 종유동 석굴이 감추어왔던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긴급하게 정부의 관리하에 그해 10월 한국동굴학회 조사단이 파견되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된 최고의 동굴이 그곳에 숨어 있었던 것이다. 조사단과 학계는 우선 보존이 시급하다는 결론을 내렸고, 일반인의 접근 차단과 무너진 천장으로 인한 환경 생태계의 보존 방법을 강구하는 한 편, 보다 심도 있는 조사와 연구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하지만 이 놀라운 발견의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사방으로 퍼져나갔고, 당시가 군사정권의 시절이다 보니 세도가니 권력자니 부정부패가 판을 치고, 행정력의 부재가 여실하였던 시대라서 온갖 불법과 파행이 자행되었다. 지방에서 방귀 좀 꾼다는 사람들은 너나없이 초기의 박쥐 굴을 남몰래 다녀왔고, 억만년의 종유석들이 무단 방출되어 시중에서 버젓이 팔리기도 했다. 당시 우리 부친도 다녀 오셨는데, 훗날 개발과 개방을 여러 번 거친 후에 직접 모시고 가 보았더니, ‘이건 고수동굴의 본래 모습이 아니야. 물에 빠져가면서 로프에 매달려 기어 들어간 고수동굴은 그냥 천상의 모습이었어. 어쩌면 그곳은 아직 개방하지 않은 곳에 숨어있을지도 몰라.’라고 하셨다. 우리 집에도 직접 채굴해 가져 오셨다고 자랑하시던 고수 동굴 종유석이 서너 개가 있었다. 지금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런 종유석 반출과 훼손이 심각해지자 마침내 kbs 뉴스에까지 나오게 되었고, 결국 정부가 나서서 공권력을 동원해 통제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미 나도는 소문에 의해서 ‘대한민국에서 최고로 아름다운 동굴이다’ ‘동양에서 최고다’ 라는 이야기까지 흘러나왔다. 그러자 자연히 개발과 개방에 대한 기대가 생겨나기 시작했고, 당연하게 자본주의의 생리인 ‘머지않아 이곳에 커다란 돈벌이가 생기겠다’는 가설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요즘이야 부동산이 아주 흔한 용어이지만, 당시는 복덕방이 흔하게 사용되던 군사정권 시절이었다. 돈 있고 빽 있는 부류가 따로 있었고, 그들은 늘 주동자를 중심으로 우르르 몰려다니는 이상한 습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이 이곳에서 돈 냄새를 맡기 시작한 것이다. 다리 하나 없고, 포장도로 하나 없고, 어상천까지 넘어가지 않으면 주유소 하나, 식당 하나 없는, 널린 것이라곤 온통 사방으로 무성한 갈대뿐인 이런 황량한 산골짜기 촌구석에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사방에서 소유권과 개발권과 시장성에 대한 투자가치에 대한 의견과 요청들이 군사정부에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산속의 동굴을 개발해 장사를 하는 것은 좋은데, 누가 맡아서 하는 것이 좋으냐가 문제였다. 동굴까지 접근하는데 필요한, 그동안 쓸모없어 방치되거나 버려졌던 땅들은 엄연히 주인이 있는 사유지가 아닌가? 도로를 새로 내야 하고, 주차장을 지어야 하고, 상가들이 들어서야 하는데, 그러자니 흔하게 돈지랄(?)이 있어야 한다는 결론인데, 이 돈지랄(?)에는 항상 탐욕과 부정부패가 따르게 마련이 아니겠는가?
군사정권은 일단 박쥐굴의 이름은 ‘고수 동굴’로 개명하고, 학술적인 조사와 보존 대책 마련에만 주안점을 두기로 했다. 당장 개발과 개방은 엄두도 내지 못할 상황이었다. 사방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개발허가권이 이런저런 이유로 통제와 책임이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다들 저마다 나름의 그럴듯 한 명분을 내세우는 마당에 누구 편을 들어줄 수도 없다고 판단되어 무한정 유보 방침을 택한 것이다.
같은 시점에서 자본주의 시장 논리를 앞세운 기업과 권력자들과 지방 실세들의 야합과 부정 청탁이 쇄도하는 속에서, 참으로 신선하고 명분 있고 참신한 요청이 군사정부 책임자 책상에 올라왔다. 프레지던트 박(?)의 업무 보고서에 말이다.
유신학원 설립자이신 고(故) 박창원 선생이 고수 동굴을 자라나는 미래의 꿈나무인 청소년들을 위한 (자연 관찰 학습장)으로 개발을 허락해달라는 청원을 넣은 것이다. 개발 도상국을 벗어나 정신없이 산업 혁명의 꿈을 실현하려고 외길로 달려오기만 한 군사정부에 청소년들의 교육 차원에서 개발을 허락해 달라는 요청은 자본주의 시장 경제의 논리가 아닌 대한민국의 미래에 대한 투자 성격을 띠었다고 할 수도 있다. 고심 끝에 정부는 1976년 청소년 교육을 목적으로 하는 개발을 허락했다. 경제 발전과 국가 성장에 필요한 인재 개발은 모두 교육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투자가 아니겠는가?
결국 고수 동굴은 개방되었다.
(소풍)과 (수학여행)이 전부였던 학교 생활에 (자연관찰 학습)이 생겨났다.
대한민국 방방곡곡의 학생들이 관광버스를 타고 고수 동굴로 자연관찰 학습을 다녀오기 시작했다. 입소문이 나면서 부모와 일반인들까지 관광버스를 타고 단양으로 몰려오기 시작했다. 80년대 전후로 (고수동굴)을 한 번쯤 다녀오지 않은 한국인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고수동굴) 개발은 (청소년 자연관찰 학습)의 대중화에 붐을 불러일으켰다.
그런 (청소년 자연관찰 학습)의 대중화는 곧바로 (다리안 관광단지 조성)의 결과를 만들었다.
그 과정에 등장하는 용어가 바로 유스 호스텔(Youth Hostel)이다.
위 사진의 안내 표지판에 등장하는 다리안 개발 지역에 핵심으로 청소년 숙소인 (다리안 유스 호스텔)이 1996년에 등장하면서부터 옛날 화전민들이 삶을 일구었던, 오래 방치되었던 쓸모없는 천동 골짜기가 다시 세간의 이목을 잡아끄는 대단위 관광지로 개발이 된 것이다.
청소년들의 (수학여행)이나 먼 곳의 (자연관찰 학습)은 주로 여관이나 여인숙 중심으로 진행되어왔다. 학생들 처지로서 단체 여행에 호텔을 이용한다는 것은 경제적으로 상당이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일단 가격이 싸고 방 하나에 최대한 여러 명이 기거할 수 있음으로써 최대한 여행 비용을 절약해야만 했다. 그러다 보니 커다란 온돌방이 있는 여인숙 근처의 역시나 싸고 여러 명의 단체 식사가 가용한 곳이 최우선 섭외 대상이었다. 절대적으로 가성비니 개인적 프라이빗이니 편리성은 논할 게재가 되지 못하던 시절이 분명히 있었다. 요즘으로서는 가히 상상할 수 없는 조건에서 벌어진, 그래도 학교생활의 유일한 낙인 일탈이었다고 해야겠다.
그런 와중에서 호텔과 여인숙의 중간 쯤 정도에 새롭게 등장한 것이 호스텔(Hostel)이었던 것이다.
사실 호스텔(Hostel)이라는 용어는 우리가 흔하게 이야기하는 게스트하우스(Guest house)와 같은 뜻을 가진 용어다. 거기에 청소년을 뜻하는 유스(Youth)를 붙여 우리나라에서는 처음부터 주로 사용되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이 시작을 청소년 자연관찰 학습과 연관시켜 시작되었기 때문에 그런 표현의 이름이 등장한 것이고, 외국의 경우를 보면 그냥 유스(Youth)를 분이지 않아도, 청소년뿐 만이 아니라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비교적 저렴한 숙소의 한 종류라 하겠다.
1909년에 처음 독일에서 시작된 호스텔(Hostel) 문화는, 경제적으로 넉넉지 않은 청소년이나 단체 여행객들이 비싼 호텔 비용의 억압에서 벗어나고자 만들어진 새로운 숙박 문화 형태의 하나라고 하겠다.
지금도 여전히 다양한 형태로 변화를 거듭하고 있지만, 일단 가장 크게는 공동 화장실과 샤워실을 전제로 하고, 도미토리 형식의 한 방에 낯모르는 사람들과 여럿이 함께 지내기도 하고, 간이 주방 시설 등으로 끼니를 해결할 수도 있게 함으로써, 프라이버시 보다는 비용의 절감을 가장 중요한 목표로 하는, 어쩌면 과거의 여인숙 문화를 조금 현대적으로 엎그레이드 했다고 이해하면 되겠다.
충주나 제천에서 고수동굴 자연학습을 다녀오는 것이야 충분히 당일치기로 되겠지만, 부산이나 목포라면 상황이 달라진다. 그때 꼭 필요한 것이 바로 (다리안 유스 호스텔)인 것이다.
너른 온돌방에 10명에서 20명까지 단체 숙박이 가능하고, 단체 식사까지 같은 장소에서 해결할 수 있다. 비록 군대식 같다는 올드한 표현이 되겠지만, 인솔한 선생님들의 학생들 관리(?)가 아주 수월하다. 그런 목적으로 나름 애초부터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잘 정리된 단체 화장실과 단체 목욕탕에다가, 휴게시설과 체육시설을 갖추어 놓았음은 물론, 다양한 강연이나 레크레이션 프로그램에 전문 강사들까지 갖추었기 때문이다. 한때 다리안 유스 호스텔은 하루 숙박객으로 1.000 명의 청소년을 유치했을 정도로 엄청난 성황을 이루었다.
다리안 유스호스텔의 경우 흔한 게스트하우스 형태만이 아니었다. 안내 표지판의 (다리안 산장)은 흡사 호텔이나 자연 휴양림의 (숲속의 집)이나 (방갈로) 형태의 좀 고급지고 세련된 숙소로 꾸며져 호텔의 객실 못지않은 이색적인 선택권을 여행자에게 부여해 주기도 했던 것이다. 거기에다 호스텔의 영역에 캠핑여행자의 영역을 만들었는데, 이곳이 바로 지금 (다리안 캠핑장의 A 구역)이다. 나름 잘 꾸며놓은 야영지였던 것이다.
하여, 당시엔 지금의 계곡에 설치된 B구역, C구역, D구역, 원두막 구역 등은 모두 미개발지로 무로 노지 캠핑 영역이었다. 그렇기에 그때 우리 가족의 경우는 여기 대신 소선암 계곡의 평탄하고 너른 곳을 주로 이용했었다.
그랬음에도 여전히 이곳은 학생 청소년들만이 주로 이용하는 유스호스텔이 있었을 뿐이었다. 일반인들은 단양(구) 시내나 인근의 다른 지역에 주로 머물렀다.
당시 (다리안 유스 호스텔)의 운영진이 (수안보 한알 유스 후스텔)과 연계된 같은 운영자였기에, 직업적인 일로 필자(나)는 수안보와 단양을 빈번하게 드나들었었기에 당시의 정황에 대해 나름 웬만큼은 직접 경험해 봐서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잘나가던 (다리안 유스 호스텔)이 2014년부터 페업하고 무단 방치되었다.
다양해진 새로운 숙소들의 등장과 자연관찰 학습의 패턴이 변한 것도 있고, 낡은 시설은 개선을 필요로하는데 거기에 따른 막대한 비용을 감당할 수 없는 처지로 전락해 버린 탓도 있다.
학교 생활에서 소풍이나 수학여행을 배제 시킬 만큼 여러 가지 사건과 부작용들이 한꺼번에 현실적인 문제로 부각 된 것이 엄연한 현재 우리 교육분야의 실체이고, 급속도로 너무 발전해 버린 우리나라의 교통 시스템과 도로망은 대한민국을 어디든 당일치기로 충분히 가능하게끔 만들어 버렸기에, 부러 머물면서 놀고 쉬는 여행이 아니라면 굳이 타지에서 불편을 감수해 가면서 외박을 하고 싶지 않게끔 만들어 버렸다.
나부터도 손녀들을 데리고 여행을 떠나면 자연휴양림이나 호텔이나 아니면 아예 캠핑장을 찾는다.
결국 어쩔 수 없이 시대에 밀려난 (다리안 캠핑장)은 문을 닫을 수 밖에 없게 되었다.
도약을 꿈꾸는 단양군은 2019년 민간업체로부터 (다리안 유스호스텔)의 상당부분 부동산을 매입했다.
그리고는 '즐거움과 체류 시간이 두 배(double)가 되는 단양 여행'이란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다리안 관광지구 재개발 사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가 바로 지금의 (다리안 관광지구)이며, 추가되고 확장된 캠핑장 사업은 어느정도 안정 궤도에 오른 것으로 보인다. 유스 호스텔의 경우는 새로운 형태의 숙박업소로 탈바꿈을 추진중인데, 아직 완공은 안 된 것으로 보인다.
이제 과거속의 단양이나 다리안 관광지의 모습은 모두 사라졌다.
70년대 단양의 모습이 지금 같았으리라는 추측이나 상상은 절대로 하지 말아라. 이미 모두 사라져 어디에도 없다. 과거의 단양은 거의 대부분 충주댐 물속으로 잠겨버렸기 때문이다.
구단양(현 단성중학교 일대)이 충주댐 공사로 대부분 수몰되고 새로운 신단양(현재 단양군 시내)로 이주했다.
단양군의 랜드마크와도 같은 고수대교가 1984년 착공되어 완공되었고, 구단양 군청이 현재의 신단양으로 옮겨져 (단양 이주 관련 사업)이 최종 완료된 것이 1985년 7월 10일의 일이다.
그러니까, 그 이전에 이곳은 온통 자갈밭과 갈대뿐인 산골 오지 깡촌이었다는 뜻이다.
적어도 이 지역은 아직 덜 알려진 미개발 지역이었다.
이 일대에서 흘러가는 강물의 유속이 가장 작은 별곡리에서 고수리로 건너다니는 나루터가 있을 뿐이었다.
<다시 날자 다리안> 이라는 문구가 낯설지 않게, 다시 활성화 되어서 많은 사람들이 찾는 단양을 기대한다.
손녀들과의 가족여행에서 가장 큰 고민은 언제나처럼 늘 ‘끼니 해결’문제다. 국내여행이건 해외여행이건 언제나 항상 똑같은 문제이다. 현실적으로 할머니와 할아버지에겐 이 난제를 해결할 특별한 묘책이 없다. 이건 어디까지나 엄마와 아빠가 풀어야 할 숙제가 아닐까 싶다.
그런데 ‘집에선 주는 대로 무엇이든지 잘 먹어요. 학교와 유아원 급식도 잘 먹는다고 해요.’라고 하고, ‘아빠. 그냥 모르는 척 내버려 두세요. 배고프면 다 먹게 되어 있어요. 커가면서 조금씩 바뀌어 가는 것 같아요’라는 아들의 대답에서도 해결책은 보이질 않는다.
그런데 말이다. 엄마 아빠는 그럴 수 있을지 몰라도, 할머니 할아버지는 절대로 그럴 수가 없다. 처지가 완전 다르다. 뭐가 어떻게 다른가 하면? 그건 훗날 너희들이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 봐야만 알 수 있다. 나도 내가 이렇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해본적 없기 때문이다.
눈 앞에서 당장 손녀들이 밥을 안먹겠다는데......... 그래서 우리 가족여행은 늘 배고픔 극복훈련이 되곤 한다. 먹을 게 없어서가 결코 아니니, 정말로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큰 손녀 태리는 주로 육식을 선호하는 고기파다. BBQ를 많이 좋아하는데 이상하게 닭고기는 별로라고 하는 좀 독특한 취향을 가졌다.
작은 손녀 태리는 완전 과일과 채소를 고집하는 비육식파다. 그렇다고 채식주의자는 아니다. 어찌나 과일을 좋아하는지 언제든 과일로 식사를 대신할 정도이다. 엄마 아빠가 장보기에서 과일을 사는 이유는 오로지 세리 때문이다. 우리집안의 과일은 거의 전부가 녀석의 몫이다.
어디 그뿐인가?
태리는 주야장창 콜라파다. 그것도 정확하게 코카콜라를 고집하는 맹렬 콜라파다. 그런데 세리는 모든 탄산음료를 거부한다. 탄산이 느껴지기만 해도 절대 거부한다. 탄산이 없는 주스나 우유나 생수를 고수한다.
그러니 외식을 하려 해도 메뉴를 선택하는 게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거의 소식을 하니 문제 해결을 위해 뷔페를 가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하나씩 데리고 다른 식당을 따로 가기도 그렇지 않겠는가? 야시장이나 행사장 가서 주점부리를 하려해도 각자의 선택 기준이 완전하게 다르다. 헐!!!!!!
이를 해결하는 묘책은 중화요리점을 가는 방법뿐이다. 둘 다 자장면을 아주 좋아한다. 그래서 여행하다가 끼니해결 때문에 지친다싶으면 중화요리점엘 무조건 간다.
혹여 이 타이밍을 놓치면 ‘할머니. 숙소에 가서 짜파게티 먹을래요’나 ‘할머니. 간장 계란밥 주세요'가 금방 튀어나올것이기 때문이다.
계란 후라이에 밥을 섞어 볶다가 간장을 넣어 비벼서 맛김에 싸서 김치를 반찬으로 먹는 것만은 둘 다 무척 좋아한다. 여기에 가끔은 캔참치를 추가하면 더 금상첨화다. 덕분에 언제부터인지 자연스럽게 이제 그 정도 요리는 할아버지가 도사가 되었다.
오후 2시에 체크인을 하고 나서 사이트를 구축했고, 열심히 뛰어다니며 놀았으니 시간도 제법 흘렀고 배가 많이 고풀만도 하겠건만, 녀석들은 요지부동 물놀이 삼매경에만 빠져있다.
단양하면 구경시장이고 여러가지 먹거리 천국이건만 녀석들은 단호하게 외출을 거부한다.
고수동굴을 다녀오자는데 역시나 거절이다.
카페산에 가서 빵과 스무디를 사준대도 사양이고, 패러글라이딩을 하재도 역시나 거절이다.
만천하 스카이 워크에서 짚라인을 타보재도 싫다고 한다.
마지막 은근한 협박으로 먹을 게 없으니 하나로 마트에 가서 장을 보아야 한다고 했음에도, 돌아온 대답은‘할아버지. 매점에 라면이랑 짜파게티 있어요. 소주도 있던데요? 그러니까 좀 더 놀다가 저희랑 매점엘 가면 되잖아요.’라며 해맑게 웃는다.
허니 어쩌겠는가?
‘당신이 좀 어떻게 해봐? 나도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이야?’
‘애들 쫓아다니느라 이젠 나부터 죽을 지경이야. 나도 못 움직이겠어. 당신 혼자 장보러 다녀오시던가?’
‘누구 하나라도 따라가면 모를까. 혼자서는 싫어. 나도 못가.’
‘그럼, 일단 간단하게 먹이고 나서 저녁쯤에 지들도 지칠테니 그때 다시 꼬셔보시던가?’
‘간단하게면? 간장 계란밥? 참치 비빔밥? 그럼 우린 또 굶는거야?’
‘여긴 전자렌지 없더라. 햇반 데우려면 어른 가스 버너부터 켜. 당신도 하나 더 비벼서 먹든가?’
‘재들. 도대체 누구를 닮아서 저런거니? 아이고 내 팔자야.’
그렇게 해서 간단하게 계란 후라이에다가 참치 비빔밥을 만들어 놓고, 쫓아다니면서 통사정을 해서 붙잡아다가 겨우 한술 뜨게 만들면, 뻔하게 둘 다 마지못해 어정쩡한 태도를 보이며 마지못해 밥그릇을 끄적거리는데......... 어쩜 그렇게 밥 먹는 표정까지도 이쁘단 말인가? 이적까지의 모든 시름과 피곤이 한순간에 확 달아난다.
‘느그들은 할아버지 노릇의 참 맛을 잘 모를거여? 나중에 할아버지 한 번 되어 봐. 할만 혀.’
매사에 늘 뛰어다니며 넘치는 호기심을 해결하려는 맹렬 에너자이저 세리를 할아버지는 '잠들면 천사'라고 놀려댄다. 이를 다른 말로 한다면 '깨어 있으면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 악마구리'라는 뜻이다. 그런 할아버지가 오늘 세리에게 다른 별명을 하나 더 붙여줘야 겠다고 생각했다. '윤세리는 숲속의 요물'이라고 해주고 싶다. 다른 어떤 부연 설명도 필요치 않다. '세리야. 할아버지는 말야. 그냥 너가 옆에 있어서 행복해!'
‘할아버지. 물고기가 왜 없어요? 아까 계곡에 내려갔는데도 물고기가 없었어요. 그럼 물고기 잡아서 가지고 놀 수 없는건가요?'
‘세리가 잡아갈까봐 무서워 숨었나보지. 물고기는 여기에도 많이 있어. 다만 이런 캠핑장이나 국립공원 같은 보호구역에서는 함부로 물고기를 잡지 말아야 한다는 규정이 있는거야.’
‘그럼 이번엔 물고기 못잡는 건가요?’
‘아냐. 물고기 잡으러 갈거야. 캠핑장 아래로 조금만 내려가면 될거야.’
‘언제요? 언제 물고기 잡으러 가요?’
‘글쎄. 아무 때고 갈 수는 있는데, 우선은 세리가 배고프지 않게 밥부터 먹는 것을 보고나서 판단해야지?’
‘그럼 제가 이 밥을 다 먹으면 지금 물고기 잡으러 가는거예요?’
‘할아버진 그렇게 하고 싶어.’
‘아싸!!! 할아버지 약속 하셨어요? 제가 이 밥 다먹으면 지금 가는거예요?’
‘응. 그런데, 처음엔 너랑 낚시로 물고기를 잡으려고 준비를 해왔는데, 이 날씨랑 지나가는 사람들 때문에 낚시는 힘들 것 같고, 저 아래 마을 옆에다가 고기잡는 어항을 설치하려고 해. 물속에 고기 잡는 어항을 놓고 시내 나가서 하나로 마트엘 다녀오는 거야. 물고기가 잡힐 시간을 주어야 하니까. 하나로 마트에서 시장을 보고 돌아오면서 어항을 건지면 물고기가 많이 잡혀있을거야. 고기잡는 통 가져왔지? 그걸 잘 챙겨.’
‘큰 통을 가져 왔으니까 이번엔 열 마리 잡아주실 거지요?’
‘시간을 좀 주어야 많이 잡히는 건데, 하나로 마트 다녀올 시간이면 스므 마리는 잡을 수 있을거야. 너가 더 잡고 싶다고 하면 또 어항 놓아서 내일 아침에 건지러 오면 되는 거고. 그러면 되겠니?’
‘할아버지. 스므 마리 약속하신거예요? 그 정도면 충분해요.’
단박에 표정이 바뀌는 우리 요물 덩어리가 당장 밥을 삽으로 퍼서 먹어치울 기세다.
차를 몰고 마을을 지나 내려가다가 중하류 지점의 웅덩이가 너른 장소를 찾아서 어항 두 개를 설치했다.
읍내의 하나로 마트엘 들려서 이런저런 부족한 장거리를 구입했다. 나온김에 근처의 구경 시장에서 주점부리도 하고 안주도 사고했으면 좋겠는데, ‘할아버지 약속을 지키셔야지요’라는 눈초리의 서슬 시퍼런 두 마리 병아리들 무언의 시위가 무서워 서둘러 다시 차에 부랴부랴 오른다.
어항을 건지러 들어가는 할아버지 옆에 물고기 담을 통을 손에든 (할아버지 껌딱지)가 착 달라붙어 따라나선다.
와!!!!!
최고예요!
(숲속의 요물)이 외치는 함성 소리가 천동리 계곡에 가득 울려 퍼진다.
물고기가 제법 많이 잡힌 어항을 들고 나왔는데, 이 겁대가리(?)를 애초부터 상실한 온 세상이 온통 제 호기심 놀이터라고 생각하는 세리는 덥썩 손을 집어넣고 바글바글한 물고기들을 손으로 움켜쥔다. 제가 가져 온 통으로 옮겨 담는다는게 그만........ 미끌거려 놓쳐 버렸다. 몹시 아쉬워하는 새침한 표정이 사뭇 귀엽고 또 우습다.
한참 옮겨 담다가 잡힌 것 중에 가장 큰 놈을 움켜쥐고 코 앞까지 가져가 살펴보다가 그만 미끈....... 달아나 버린다. 그 당혹해하는 모습이란, 물가에까지 내려오지 못한 할머니가 슬쩍 원망스럽다. 이런 장면은 사진을 찍었어야 하는건데 말이다. 좀 더 깊은 곳의 두 번째 어항을 건졌는데, 거기엔 더 많이 잡혔다. 그래서 두 번째 어항은 아예 할아버지가 덜 듯이 옮겨 담아 주었다. 셀 수 없을만큼 많이 잡혔다.
‘세리야. 더 잡을까?’
‘아니예요 할아버지. 이 정도면 튀겨서 먹어도 충분할 것 같아요. 그만 잡아요.’
‘정말로 튀김 만들어 먹을거야?’
‘음........... 일단은 캠핑장으로 가져가서 놀면서 생각을 좀 해봐야 할 것 같아요. 할아버지.’ 자뭇 심각한 표정으로 고심하는 모습이다.
물고기 부자가 된 우리 세리.
다리안 캠핑장에 온 또래 어린이들에게 무상으로 한 두마리씩 물고기 분양도 해준다.
그리고 저녁 시간이 되었음에도, 고기를 튀겨 먹고 싶다는 이야기는 다시 꺼내질 않는다.
'할아버지. 밤새 물고기가 죽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요?'
' 도랑물에 깊게 담구면 되지?'
'통이 떠내려 갈지 모르잖아요? 혹시 뚜껑이 열려서 모두 달아날지도 모르고요?'
'가라앉고 뚜껑이 열리지 않게 돌맹이를 얹어 놓으면 되지 않을까?'
'아하! 큰 돌을 구해와야 하는구나.'
쫄래쫄래 텐트 뒷쪽으로 돌덩이를 구하려 쫓가간다.
'아무래도 넌 이 할아버지 유전자를 고스란히 물려받은 것 같아. 그렇다면 담엔 그림 그리는 것을 함께 해봐야겠다.'
'세리야. 네가 할아버지 껌딱지라서 정말 고마워!!!!!'
-- 다음 이야기에서 (다리안 캠핑장)을 좀 더 이어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피안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