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9명의 예술가들이 모여 있는 월선리 예술촌. 토담 길이 정겹다. 2 무안에는파밭이 지천으로 널려 있다. 건강한먹을거리가 나오는곳이지만 그 자체의 정경만으로도 탐스럽다.
길, 팔방미인을 만나다 월두마을에서 차머리를 몰아 해제반도로 나아간다. 현경면 해운리에서 해제반도의 만풍리까지 이어지는 함해만 해안에는 월두마을을 비롯해 여덟 곳의 소박한 갯마을이 숨어 있다. 무안 사람들은 이를 두고 ‘팔방미인’이라 부른다. 두동, 용정골, 수양촌 등 이름부터 정겹다. 저마다 친환경 농업 마을로 지정돼 있는데 양파 캐기, 마늘 캐기, 주말 농장, 낙지 잡기, 천연 염색, 김장 체험, 두부 만들기 등의 생태 체험 프로그램을 연중 진행한다. 3월 말이면 무안읍에서 해제반도 도리포까지의 길 주변을 연분홍 벚꽃이 화사하게 물들인다. 봄철 드라이브 코스로 손색이 없다. 요염하게 수줍은 벚꽃에 정신이 팔리지 않도록 조심스레 운전할 일이다.
도리포는 영광군과 함평군을 경계로 하는 칠산 앞바다와 인접한 작은 포구다. 강태공들에게는 숭어, 농어, 도미 등의 바다 낚시터로 사랑받는 곳이다. 포구 주변 횟집에서는 인근 바다에서 막 길어 올린 싱싱한 회를 넉넉하게 즐길 수 있다. 지난 1995년 도리포의 이름이 온 나라에 울려 퍼진 일대 사건이 있었다. 이곳 앞바다에서 고려청자가 무더기로 발견됐던 것이다. 14세기 후반 강진에서 고려청자를 싣고 중국으로 가던 배가 이곳에서 침몰했기 때문이다. 그물을 던지면 고기 대신 국보급 고려청자들이 줄줄이 올라온다는 농이 오갈 정도였다. 물론 당시의 떠들썩함과 흥분은 잔잔한 수면 밑으로 가라앉은 지 오래다. 도리포는 당진의 왜목마을처럼 일출과 일몰을 모두 담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무안의 바다를 감상하는 적지로 현경면의 홀통도 빼놓을 수 없다. 바다로 돌출한 길쭉한 지형이 호리병의 목을 닮았다 해서 홀통이란 이름을 달게 됐다. 울창한 해송과 길고 단단한 백사장이 돋보인다. 잔잔한 수면과 바람의 질이 좋아 윈드서핑 대회가 열릴 정도다.
차 안에 불변의 진리가 있다
봄기운 한 자락 더 움켜잡으려고 월선리를 찾는다. 앞서 말한 김문호 선생이 둥지를 튼 예술촌이 자리한 곳이다. 목포 태생의 선생이 월선리에 들어온 지도 벌써 17년이나 흘렀다. 선생의 뒤를 좇아 그림 그리고, 옹기 빚고, 조각하는 예술가들이 하나 둘씩 자리를 마련해 지금은 19명에 달한다. 마을 규모에 견줘 적은 숫자가 아니다. 언덕길을 따라 마을 뒤편으로 오르니 텃밭에서 시금치 뽑는 촌부의 모습이 보인다. 정월에 한창 수확하고 남은 것들을 마저 정리하는 것이라고 한다.
봄빛은 끝물 시금치를 챙기는 촌부의 굽은 허리와 깊게 팬 주름살에도 완연하다. 마을 곳곳에는 매화와 이름 모를 야생화들이 피어 있다.
매화야 그렇다 치더라도 야생화는 발견의 꽃이다. 워낙 작은 놈들이 많아 발밑을 잘 살피는 사람에게만 그 상깃한 자태를 허락한다. 이곳의 매화나무는 광양 다압마을의 그것들처럼 온 마을을 뒤덮지 아니하고 담장 한쪽에서 단출하게 서 있을 따름이다. 흔히 봄이 되면 수많은 사람들이 특정한 꽃이 천둥처럼 울리는 군락지를 찾는데, 나는 가끔 꽃이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그런 풍경이 꼭 아름답게 보이지만은 않는다. 꽃이 위압적일 수도 있구나 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3 현경면 오류리의 홀통 옛날횟집에 도착하기 직전 차를 잠시 세웠다. 일몰 직후 불을 밝힌 시빅 하이브리드
의 모습도 주변 풍경과 어울려 아름답다. 4 해질녘 도포리 앞 바다의 웅혼한 풍경.
좀 더 무성한 봄꽃은 무안읍에서 목포 방면으로 18킬로미터 떨어진 삼향면 왕산리 초의선사 탄생지에서 감상한다. 하얀 매화, 분홍 매화, 붉은 매화, 붉은 동백 등이 제가끔 아름다움을 겨룬다. 물론 승자를 가릴 수 없는 게임이다. 널리 알려졌듯이 초의선사는 조선 후기의 대선사이자 한국의 다도를 중흥시킨 다성 茶聖이다. 시·서·화에도 두루 장했다. 역사에 그 이름을 길게 드리우고 있는 다산 정약용, 소치 허련, 추사 김정희 등과 폭넓은 교유를 가졌는데, 다산은 <동다기 東茶記>를 쓰고 초의는 <동다송 東茶頌>을 지으며 우리 국산 차를 찬예했다. 초의선사와 소치, 두 사람 사이의 도타운 정을 엿볼 수 있는 일화에도 매화가 끼어든다. 해남 대흥사에 있던 초의선사는 평소 아끼던 소치가 운림산방에 터를 잡자 일지암 마당에 있던 백매화를 운림산방으로 보냈다. 이를 받은 소치는 산방 정원에 심어놓고 그림 공부에 정진했다고 한다. 초의선사는 차를 마시면 법희선열 法喜禪悅을 맛본다고 했다. 즉 차 안에 부처님의 진리와 명상의 기쁨이 다 녹아 있다는 것이다. 선사의 탄생지에는 사당인 다성사, 선사의 유물을 전시한 기념관, 다기와 차에 관한 자료를 전시한 다 문화관 등이 있다. 차를 애중했던 선사가 40년 동안 머물렀던 대흥사의 일지암, 그리고 추사 김정희와 2년간 함께 지냈던 용호백로정 등도 그대로 복원되어 있다.
조용하고 안정감 있는 승차감이 매력적인 시빅 하이브리드가 무안읍 상동마을에 네 바퀴를 멈춘다. 해마다 3∼4월이면 동남아시아에서 월동한 2만∼3만 마리의 백로와 왜가리가 찾아드는 곳이다. 마을 앞 청용산과 용연저수지 중간에 조성된 작은 섬을 가려 덮은 백로와 왜가리의 모습이 대관을 이룬다. 워낙 예민한 성정이라 혹여 인기척이라도 들리면 수목을 박차고 날아올라 창공에서 집단 군무를 펼쳐 보인다. 새들은 이곳에서 떼를 지어 번식하고 10월이면 다시 남녘을 향해 힘찬 날갯짓을 시작한다.
information
가는 길 서해안고속도로 무안IC에서 빠지면 된다. 호남고속도로를 이용할 경우 동광주IC에서 나와 광주순환도로를 탄 다음, 1번 국도로 진입하면 된다. 월두마을이 있는 현경면은 무안읍에서 24번 국도를 이용하면 도착할 수 있다. 현경면에서 해제반도 방향으로 계속 직진하면 도리포가 있는 해제면으로 접어든다.
회산 백련지 무안의 대표적인 관광 명소다. 온 세상의 기운이 돌아와 모인다는 의미를 지닌 일로읍 복용리 회산. 이곳의 대규모 연못에서는 지름이 1미터는 됨직한 둥근 연잎의 바다가 끝없이 펼쳐진다. 10만 평이란 면적도 대단하지만 회산의 연꽃은 불가에서 신성시하는 백련이어서 더욱 의미가 있다. 회산 방죽은 둘레가 3킬로미터로 저수지를 한 바퀴 도는 데 얼추 1시간이 걸린다. 보통 7월부터 연잎이 덮이기 시작한다.
음식 무안 세발낙지, 명산 장어구이, 양파 한우고기, 돼지고기 짚불구이, 도리포 숭어회를 묶어 ‘무안 5미 五味’라고 한다. 무안의 특산품인 황토밭 양파를 먹여 사육한 한우는 특유의 누린내가 없고 육질도 아주 부드럽다. 무안읍의 ‘승달가든(061-454-3400)’은 이 양파 한우 암소만 쓴다. 구이와 육회는 물론이고 생고기의 맛도 기가 막히다. 현경면 오류리의 ‘홀통옛날횟집(061-452-2622)’은 숭어회 전문이다. 소고기에 버금가는 쫀쫀한 육질이 자랑거리다. 영산강변에 위치한 몽탄면 명산리는 장어구이로 유명하고, 사창리는 돼지 짚불구이의 원조다. 무안읍 공용 버스 터미널 뒤편은 낙지 골목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