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의 우박은
송엽/박기선
가을 하늘가에
타는 불길 잡느라
가랑비가 내리고 있나 했지
스스로 무너지는
갈잎의 애환을 듣노니
어둠 속에 하늘을 가르는 빛
쏟아 내리는 우박을
대책 없이 맞으며 흐트러진
알알이 진흙 벌에 쌀알을 보았나
40대 젊은 어머니는
논바닥에 산산이 부서진 낟알
쓰레받기에 쓸어 담기에 흐르는 피땀
가을바람에 타는 속내
아무도 본 사람 없으니. 누구라
젊음을 흙 속에 묻고 살았음을 안다고 할까
그 시절 배움은 뒷전에
흙에 살아야 허기진 배를 채울 수 있어
부모의 다스림에 순종의 삶이 미덕이라 했나
허리가 끊어지는 아픔
한마디 말인들 못 한 촌아이를
논바닥에 떨어진 쌀알을 줍느라 흘린 눈물이
팔십이 넘은 나이에도
가슴에 품고 잊지를 못했는데
창살에 부딪는 우박으로 마음이 녹아나네
그 시절 어린아이에
견디기 힘들어 하늘은 노랗고
젊은 새댁 어머님 얼마나 가혹한 시련이었을까
지금도 우박 내린 그때를
몸서리치는 아픔으로 떠오르니
불평 한마디 어머니는 농군의 자리를 지켜 왔으니
어머니를 도와서 흙을 딛고
길기만 했던 하루가 원망스러워
눈물을 가슴에 묻고
쓰레받기에 담던
저무는 노을 등에업고 집으로 가는 발길은
땅거미 어둑한 논틀길 진땀은 등을 타고 내리고
어머니 뒷모습은 한숨에 젖어
허기진 배에 트림이 가냘프고나
그해 가을은 우박으로
천년을 산처럼 주름이 늘어
어머님의 청춘은 간 곳을 묻노니
어머니가 가신 길 위의 꽃인들 피었을까?
카페 게시글
☞일반게시판
간밤의 우박은
기선
추천 0
조회 4
23.10.31 17:28
댓글 0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