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일: 8월25일(일)
새벽3:30 일어나 정진하고 세수하다.
공승재供僧齋가 열리는 린코우 林口로 달리다. 린코우는 한국으로 치면 서울 밑에 자리한 광명시와 비슷한 위치에 있다고 가이드가 얘기해준다.
린코우 체육관에서 열리는 국제 공승법회에 참석하다. 영어로는 Sangha dana ceremony라고 한다. 우안거 3개월 정진을 완성하신 스님들을 초청하여 선망부모의 천도를 기원하는 우란분경을 독송하면서 승가에 공양 올리는 연례 불교 행사이다. 09:00에 개회하다.
1. 대회에 참석하신 주요 스님과 사회 저명인사를 호명하며 소개하는 순서
2. 예불합송
3. 회주스님의 인사말과 주요 스님들 및 시주대표의 인사말
4. 우란분경 독송
5. 10법공양: 대만, 일본, 베트남, 티베트, 한국에서 온 여성불자들이 단아하게 치장한 채 열 가지 공양물을 불전에 올리는 의식이다. 한 걸음 한 걸음에 정성을 기울여 발을 옮기면서 계단을 오를 때 연기(드라이아이스)가 피어나니, 彩雲을 밟고 가는 선녀의 모습인 듯 황홀한 감동을 준다.
6. 공양청사
7. 스님들 에게 점심 공양 올림11:00
8. 재공양: 8계를 수지한 출가자(고동색 가사와 장삼을 걸치고 남자는 8부 삭발을 하고 여자는 삭발하지 않는 수행자)가 보시금을 황금빛 쟁반에 담아 스님들께 공양 올리는 순서
9. 회향 인사말
10. 퇴장하는 순서. 12:00에 끝나다.
참석한 불자가 약 5천명쯤 되는데 일사분란하게 행사를 진행하는 모습이 경건하고 공순하다. 평소에 쌓은 불자들의 용심 공덕이 드러난다. 조직화된 대만 불자의 불심을 잘 보여준다.
행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사방에서 온 불자들이 나름대로 준비한 공양물을 스님들에게 바친다. 독송용 소형 책자와 망자의 관에 넣는 다라니 등등 일상생필품을 보시한다.
버스를 타고 中台禪寺로 이동한다. 길에 차가 별로 보이지 않는 까닭은 대만사람들이 해외여행을 많이 나간다는 사실이다. 특히 한국으로 여행 많이 간다고 하니 한류 붐을 타고 있는가 싶다. 코로나 사태이후에는 중국 본토에서 관광객이 들어오지는 않는다고 한다. 예전에 중국 관광객이 많이 올 때는 “메뚜기 떼가 지나갔다!”고 표현할 정도로 편의점과 백화점의 상품을 싹쓸이하고, 호텔에 비치된 편의품을 몽땅 가져가버렸다고 한다. 중국관광객을 이끌었던 중국 가이드가 “눈에 보이는 건 모두 공짜”라고 잘못 소개하여 손님들로 하여금 TV나 타월, 커턴, 배게까지 거리낌 없이 가져가게 했다고 하니 당시 중국손님들의 교양 없는 행태를 말해준다 하겠다. 5성급 호텔에 중국관광객들이 지나가고 나면 4성급 호텔로 수준이 뚝 떨어졌다고 하니 당시 대만사람들이 중국민에 대해 가졌던 인식이 어떠 했을 지 짐작할 수 있다.
일본이 대만을 50년 지배했는데도 불구하고 대만사람들은 일본에 대해서 한국처럼 악감정을 가지지 않고 오히려 호감을 가지는 현상에 대해 이야기한다. 당시 대만사람들은 주권을 가진 단일 민족이라든지 하나의 국가라는 개념이 희박하여 일제가 쳐들어와 통치를 한다 해도 나라를 뺏겼다는 생각을 심각하게 하지 않았다. 한편 일제에 대한 대만인들의 저항이 비교적 적었거나 없었기에 일제가 한국에 대해서 저질렀던 짓을 대만인에게는 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대만사람들은 일제가 대만의 근대화에 기여했다는 생각을 했을 수도 있다. 우선 일본은 대만에 수력발전소를 지어주며 교량과 도로를 건설해주었다. 대신 지하자원을 빼어갔다. 석면, 사금, 석탄과 목재(삼나무, 편백나무)가져 갔다. 일본 국내 유수의 사찰 대들보는 대만산이라 하니 얼마나 많이 뺏아갔는 지 알 수 있다. 아리산이나 양명산에 유황이 많이 난다. 1년에 100만톤을 생산하여 화약재료로 쓰인다 하니 모두 일제가 벌인 대동아 전쟁물자로 동원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대만 전 지역에서 온천이 나온다 하니 천혜의 혜택을 받았다고 볼 수 있지만, 반면에 태풍과 지진이 잦아 기상재해를 당하는 고통을 면할 수 없다. 一得一失이다.
버스는 거침없이 달려서 어느덧 남투포리를 지난다. 산 좋고 물 좋은 산수가 펼쳐지면서 풍경이 달라진다. 中台禪寺를 품은 장소에 가까이 오니 연봉들이 멀리서 연꽃 모양으로 중태선사를 둘러싸고 있는 형국을 나타낸다. 중태선사는 참선과 교학을 연찬하는 도량으로 惟覺선사가 개창했다. 가이드가 도량에서는 묵언할 것과 사진을 찍지 말 것을 당부한다. 중태선사 지객스님이 나와서 일일이 안내해준다. 가이드가 일행을 이끌며 지객스님의 말을 통역하면서 따라다닌다.
유각스님이 이 지역에 처음 왔을 때는 판잣집을 짓고 몇몇 신도와 수행을 시작했는데, 서서히 사람들이 모여들어, 바야흐로 웅장한 도량을 이루게 되었다. 초창기 절 이름은 靈泉寺영천사였으나, 유각대사가 대만의 중심이 되는 불교센터가 될 것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중태선사中台禪寺라 이름했다고 한다. 설계에 7년, 시공에 10년 걸렸다고 하니 지극한 원력에서 나온 웅대한 불사임에 틀림없다. 불전과 요사채를 비롯한 세계불교박물관 및 초, 중, 고, 대학교를 운영한다. 특히 대학교는 기숙사 시설을 완비하고, 학생들에게 4개국어를 습득하도록 독려하고 있으며, 국가에서 학력을 인정해준다고 한다. 이 역시 도량불사 뿐만 아니라 인재불사도 주력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 하겠다. 세계 각처에 90개의 지부가 개설되어 전 세계로 불음을 전파하고 있다. 석가전, 약사전, 미륵전 및 大禪堂을 둘러본다. 대선당은 500명이 좌선할 수 있게 해 놓았다. 좌선당에서 아픈 발바닥을 쉬면서 5분간 정진했다. 중태선사를 이룩한 대작불사에 1조4천억 원의 보시가 모연 되었다는 소식이니, 그야말로 좁쌀을 모아 태산을 이루는 보시공덕의 장엄한 회향이다.
버스는 다시 달린다. 저녁 8시, 嘉義가의(도시 이름) 프린스 호텔에서1박하다. 신도분들과 차 한잔 나누고 오늘도 좋은 하루, 내일도 좋은 하루를 기원하며 헤어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