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궤를 옮기고 기뻐하는 다윗!
(삼하 6:12-23)
다윗은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이스라엘의 수도로 삼고 이 수도 예루살렘에 하나님의 성막을 설치하고 이곳에서 제사를 드리려고 했습니다. 이 당시에는 아직 성전이 없었기 때문에 텐트와 같이 만들어진 성막을 중심으로 제사가 행해졌습니다. 그러니까 다윗은 예루살렘을 단순히 정치적인 중심지로 만들고자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며 제사하는 신앙의 중심지로 만들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이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신앙의 중심이 바로 서지 않으면 이 국가가 결코 견고하지 못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자면 먼저 이곳에 하나님의 법궤를 옮겨와서 진정한 제사를 드릴 수 있도록 해야겠고, 다음에는 이곳에 더 이상 옮겨다니는 성막이 아니라 영구적인 성전을 건축하려고 계획을 했습니다. 사울과는 달리 다윗이 하나님께 제사하는 그 일을 얼마나 중요시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그러나 법궤를 옮겨오는 과정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웃사가 법궤를 만진 일로 하나님께서 진노하셨기 때문에 웃사가 그 자리에서 즉사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서 다윗은 더 분명한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것은 이 나라를 신앙으로 이끌어 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 중심으로 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법궤를 가져오고, 성전을 짖는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 중심으로 하지 않으면 신앙으로 이끌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웃사의 사건을 통해서 이 사실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다윗도 이 사건을 통해서 법궤를 옮겨가는 그 과정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고 법궤를 가드에 사는 오벧에돔의 집에 삼 개월 동안 머물게 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두 번째로 말씀에 의지하여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는 이야기입니다. 법궤 속에 모세의 돌비, 아론의 지팡이, 광야에서 40년 간 먹은 만나가 들어 있습니다. 그 법궤는 하나님의 현존하심을 상징합니다. 마침내 하나님의 법궤가 사람들에게 메워져 예루살렘으로 들어오고 있을 때 모든 백성들은 모여서 나팔을 불고 환호하고 다윗은 그 백성들의 행렬 앞에서 춤을 추었다고 했습니다. 이 대목이 다윗의 진면목이 나타나는 부분입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아무리 하나님을 사랑하고 고대하던 하나님의 법궤가 예루살렘으로 들어온다고 해도 한나라의 왕이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이성을 잃고 춤을 추고 있습니다. 그것도 왕이 에봇을 입고 말입니다. 에봇은 제사장이 입는 예복입니다. 제가 설교할 때 입는 가운을 입고 여러분 앞에서 춤을 추는 모습을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다윗이 그랬습니다. 그것이 다윗의 값이고 다윗의 모습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다윗을 사랑하신 이유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다윗의 신앙의 위대함을 배워야 합니다. /아멘!/
▶하나님은 다윗의 무엇을 보고 기뻐하셨습니까?
①그의 마음의 중심을 보시고 기뻐하셨습니다.
삼상16장에 하나님이 사무엘에게 다윗의 집에 가서 그 머리에 기름을 부어 왕을 삼으라고 했을 때 '그는 내 마음에 합한 자'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나는 외모를 보는 것이 아니고 사람의 중심을 본다'고 하셨습니다(삼상16:7).
사람들은 외모를 보고 하나님은 마음과 중심을 보십니다. 이것이 사람과 하나님과의 차이입니다. 오늘 사람들은 외모를 너무 중시합니다. 그래서 자꾸만 속습니다. 외모는 얼마든지 그럴 듯하게 화려하게 포장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속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이 포장문화에 아주 익숙합니다. 그래서 자꾸만 외모를 화려하게 꾸미려고 합니다. 이렇게 포장하기를 좋아하는 것은 사람들이 겉모양을 너무 중시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사람은 외모를 보지만 하나님은 포장과 덮개를 여시고 그 속을 보십니다. 마음의 중심을 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다윗을 선택하셨습니다. /아멘!/
우리는 외모도 꾸며야 합니다. 그러나 내면을 가꾸는데 더 노력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나의 내면, 마음, 중심, 생각을 중요시합니다. 하나님이 다윗을 선택하실 때 그의 내면, 그의 마음, 그의 생각, 그의 정신을 보셨습니다. /할/
②다윗의 예배중심을 보시고 기뻐하셨습니다.
다윗은 평생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삶에 충실했습니다. 시27:4절에서 그의 고백을 들어보세요! '내가 여호와께 청하였던 한 가지 일 곧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나로 내 생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그 전에서 사모하게 하실 것이라' /할/
다윗의 시를 보면 구구절절이 성전에 대한 그리움, 사모함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다윗은 그렇게 평생을 하나님으로 인하여 행복해 했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매일같이 사울로부터 쫓겨다니는 삶을 살면서도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의지했습니다. 그러니까 다윗은 점점 강성하여지고 사울은 점점 쇠하여 갔습니다. 다윗이 그렇게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는 신앙으로 살아갈 때 하나님이 그의 곁을 지켜 주셨습니다.
역사적으로 예배를 거부한 사람이 성공한 예가 없습니다. 그래서 독재자들이 한결같이 예배를 거부하고 핍박하다가 결국에는 망하고 말았습니다. 일본이 그렇게 예배드리는 것을 방해하고 교회 문을 닫게 하고 신사참배를 강요하더니 망하고 말았습니다. 히틀러가 독일교회로 하여금 자신에게 충성하도록 강요하더니 끝내 망하고 말았습니다. 북한도 머지않아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신앙인은 예배중심의 삶을 바로 살아야 합니다. 다윗은 예배 중심의 사람입니다. 그의 아들 솔로몬도 그 영향을 받아 예배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솔로몬이 왕위에 오르자마자 하나님께 일천번제를 드렸습니다. 그 말은 왕으로 취임하자마자 예배부터 드렸다는 말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이렇게 예쁜 짓을 하면 은혜를 입고 복을 받습니다. 아브라함도 예배 중심 자였습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도, 다윗도 일평생 동안 그들이 가는 곳마다 하나님은 그와 함께 하셨고 그와 동행하셨습니다. 신앙인의 가장 소중한 삶은 예배생활입니다. /믿/
③다윗은 하나님의 신에 감동된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만으로는 다윗처럼 평생을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내 의지나 내 노력은 아주 보잘 것이 없습니다. 다윗이 평생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중심도 건실했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다윗이 하나님의 신에게 감동되었기 때문입니다. /할/ 그래서 우리가 성령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아멘!/
삼하16:13절을 보면 사무엘이 다윗의 집에 와서 그의 머리에 기름을 부었는데 그 일 이후로 '다윗이 하나님의 영에 크게 감동되었다'고 말씀합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삶입니다. 하나님의 영에 감동되는 삶이 축복입니다.
다윗은 8형제 중 막내였습니다. 하나님은 그 막내인 다윗에게 기름을 부으라고 했습니다. 당시는 첫째를 중요시 했던 시대입니다. 첫 열매, 첫 곡식, 첫 아들을 중시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왜 말 째인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삼으라고 하셨는가 하면 다윗은 하나님을 위해서 목숨을 버릴 수 있는 그런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목동시절에 맹수들이 양을 물어 가면 목숨을 걸고 쫓아가 맹수의 입에서 양을 뺏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골리앗 앞에 목숨 걸고 나아가 싸웠던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욕을 먹고 있는데도 사울을 비롯해서 누구도 두려워서 나가 싸우거나 나서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때 다윗이 그 모습을 볼 때 피가 역류하는 것 같은 분노를 느끼며 골리앗 앞에 나가 싸웁니다. 그것이 다윗의 모습입니다. 다윗의 가슴속에는 하나님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으로 인하여 감사하고 기뻐하고 감격할 수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그를 그렇게 크게 쓰셨습니다. /할/
④다윗을 비난했던 미갈은 어떻게 되었는가?
20절에 '이스라엘 왕이 오늘날 어떻게 영화로우신지 방탕한 자가 염치없이 자기의 몸을 드러내는 것처럼 오늘날 그 신복의 계집종의 눈앞에서 몸을 드러내셨도다'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춤을 추는 것을 보고 방탕한 것으로, 염치없는 행위로, 계집종들에게 웃음거리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21절에서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23절에서는 미갈이 버림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사울의 딸 미갈이 죽는 날까지 자식이 없으니라' 하나님을 대적하면 이 꼴이 되고 맙니다. /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