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방[7079]이개(李塏)-(梨花·이화)
塏=높고 건조할 개(다른 표현: 높은 땅 개)
[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557>
사육신의 한 사람인 이개(李塏)가 하얀 배꽃을 읊은 시
조해훈 시인·고전인문학자·목압서사 원장2026. 4. 5. 20:05
배꽃(梨花·이화)- 이개(李塏·1417~1456)
깊고 깊은 뜰에는 봄빛이 맑게 퍼지고
(院落深深春畵淸·원락심심춘화청)
배꽃이 활짝 피어 온통 흐릿하고 아득하네.
(梨花開遍正冥冥·이화개편정명명)
꾀꼬리는 정이 없는 듯 그저 날아다니며
(鸎兒儘是無情思·앵아진시무정사)
무성한 가지 스치니 뜰 가득 눈처럼 꽃잎이 흩날리네.
(掠過繁枝雪一庭·약과번지설일정)
위 시는 사육신의 한 사람인 이개(李塏·1417~1456)의 시.
‘육선생유고(六先生遺稿)’에 들어 있다.
이색(李穡)의 증손인 이개는 조선 전기 집의, 집현전 부제학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집현전 학사로서 훈민정음 제정에 참여했으며 단종의 스승으로서
세자를 잘 지도해 달라는 문종의 간곡한 부탁을 받기도 했다.
성삼문 박팽년 하위지 등과 함께 단종 복위를 모의했다는 이유로 거열형을 당했다.
위 시는 고요한 봄날에 꾀꼬리가 무심하게 배나무 가지를 스치니
꽃잎이 눈처럼 흩날리는 순간을 그리고 있다. 활짝 핀 배꽃이 안개처럼
아득하게 퍼진 가운데, 꾀꼬리는 아무 감정 없는 듯 가지 사이를 스쳐 지나간다.
그 순간 꽃잎이 눈처럼 흩날려 뜰을 가득 메운다.
목압서사가 있는 지리산 화개동에는 화사한 벚꽃과 복사꽃 등이
그제 내린 비에 많이 떨어졌다. 그래도 아직 즐길만하여 상춘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화려한 이런 꽃들이 낙화하기 시작하자
하얀 배꽃이 사방에 피어났다. 배꽃은 작은 꽃들이 나무 가득
한꺼번에 피어 흡사 눈이 쌓인 것처럼 보인다.
한시에서는 여인의 하얀 살결로 비유되기도 한다.
필자의 화단에도 눈송이가 쌓인 듯 배꽃이 하얗게 피어나 있지만,
하동 읍내~화개면 섬진강 변 19번 국도 옆 또한 온통 하얗다.
이 도로가 생기기 전에는 이 일대가 한때 유명했던 하동 배를 생산하는 배밭이었다.
배꽃은 붉은빛이 감도는 복사꽃 등이 지닌 화사함보다는 순백 이미지로
아련함과 그리움의 대상을 떠올리는 배경으로 자주 묘사되었다.
그리하여 전북 부안의 기생이었던 이매창은
“이화우(梨花雨) 흩날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
추풍낙엽에 저도 날 생각는가/
천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하노라”라고
헤어진 님을 그리워하는 시조를 읊었다.
원문=동문선 제22권東文選卷之二十二 / 七言絶句
梨花
院落深深春晝淸。梨花開遍正冥冥。
鶯兒儘是無情思。掠過繁枝雪一庭。
이화(梨花)-이개(李塏)
원은 깊고 깊어 봄 낮이 맑은데 / 院落深深春晝淸
배꽃은 가득 피어 자욱하구나 / 梨花開遍正冥冥
꾀꼬리는 참으로 무정하여 / 鶯兒儘是無情思
번성한 가지를 스쳐 지나가니 온 뜰에 눈일러라 / 掠過繁枝雪一庭
ⓒ 한국고전번역원 | 김달진 (역) | 1968